!@#… 그간 밀린 포스팅 떨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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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 일상은 아니지만, 모범적 일상만화 – <생활의 참견>
잘 알려져 있다시피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코너들 가운데 상당수는, 청취자들이 보낸 사연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경험담을 털어놓는다는 것의 재미는 과연 무엇일까. 충격적인 소재와 극적인 전개, 놀라운 특수효과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야기 자체의 힘만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일상성의 매력, 공감의 힘이라고 불리우는 그 이상한 흡입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일상성의 재미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공감’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동물은 그다지 상상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모든 것을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경험과 가까운 것으로 적극적으로 변환시켜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디테일이다. 타인의 이야기 속에 담긴 소소한 디테일이 내가 경험적으로 기억하는 어떤 것과 일치하면 마음 놓고 전체 맥락에 공감해버린다. 거꾸로, 전체 맥락이 공감 갈 만한 내용이라도 디테일이 미묘하게 다르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다른 하나는 실존하는 화자다. 이야기가 가상적인 캐릭터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의 생활이다, 라고 현존하는 주체가 부여되면 공감의 수준은 더욱 올라간다. 이 두 가지가 갖추어질때, 남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우리네들 사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아예 소재로서 일상적 살아가는 이야기나 생활을 다루는 것을 ‘일상물’이라고 한다.
상상력 풍부한 모험담, 자유분방한 표현법을 주로 발달시킨 만화에 있어서 이 분야는 사실 비교적 늦게 개척된 것 가운데 하나다. 논픽션(다소의 각색과 과장은 너그럽게 허용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에세이, 일기, 사연소개라는 컨셉이 한국에서 만화와 만나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어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을 가지고도 만화를 발표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성장은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져서, 지금은 당당한 주류 장르 가운데 하나가 되어있다. 물론 항상 그렇듯이 함량미달의 물건들도 많지만,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작품들의 맥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생활의 참견>(김양수 / 애니북스)을 이러한 장르적 유행에 편승한 작품이라고 평한다면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이 장르의 사실상 선구자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월간
<생활의 참견>은 좋은 일상만화의 장점을 고루 지니고 있다. 자신과 자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부여되는 현실감, 세부적 디테일을 맛깔스럽게 포장해내는 솜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마치 10년만의 동창회 술자리에서 입담 풀어놓듯이 재미있게 전개시키는 이야기꾼 기질. 또한 각 이야기를 짧게 끊어주면서 일상 속 ‘에피소드’를 각인시키는 솜씨 역시 출중하다. 독자들은 작가의 삶 자체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감하고 즐길만한 편린들을 원하니까 말이다. 특히 책의 전반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것은 80년대 초의 청소년기인데, 그 때가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격변기였기에 참 기억을 같이 나눌 일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대단히 유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아 그때는 이런 게 다 생겨났었지. 우리 동네에도 그게 있었는데, 그 때 그런 친구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엉뚱하게도 **한 짓을 해버렸어!” 물론 좋은 마무리를 하려면, 결코 “그때가 그리워요” 식의 이상한 감상주의로 끝나면 안된다. 단편적인 재미있는 기억이 샘솟는 것과 정말로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예를 들어 군대 개그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좋은 일상만화의 또 다른 조건은 바로 일상의 공감 이상의 대단한 무언가로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생활의 참견>은 이 것 역시 잘 충족하고 있다. 억지로 감상주의를 강요하지 않고, 억지로 웃기려고 오버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림체마저도 부담없고 푸근하기 이를 데 없다. 세밀하거나 박진감 넘치는 데생과는 애초부터 방향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더그라운드 만화에서 종종 활용하는 위악적인 낙서체의 느낌도 아니다. 그림과 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만화라는 매체의 매력을 확실하게 활용하면서도 절제할 줄도 아는 균형감각 역시 좋은 이야기꾼의 증거다.
하지만 모든 일상물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인 소재의 고갈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듯 하다. 사실 사람의 일생이란 워낙 재미있는 일들이 한정되어 있는데, 남의 이야기를 잘 포장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를 포장하는 것과 전혀 들어가는 힘이 달라진다. 당장 이 책 한권 안에서도 직접 겪은 일과 ‘사연을 소개받았다’는 일들은 특히 디테일의 활용에 있어서 워낙 재미의 격차가 상당히 크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 컨셉을 이제부터 사연보다 잡상으로 바꾸기 시작한다면? 책 말미의 섹션을 차지하고 있는 잡상류 작품들의 면면을 볼 때, 작가의 특기분야가 어느 쪽인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아니 사실 책으로서 컨셉 통일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예 말미 섹션 자체를 넣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국, 방법은 끊임없이 폭넓은 재미있는 생활을 만들어나가서 자꾸 현재진행형으로 소재를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다. 잘 해나가면 7년 뒤에 또다시 단행본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마 독자들 역시 기쁜 마음으로 그 순간을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여하튼 지금은, 일상에 즐겁게 참견당해서, 또는 참견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같이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책이 나와줘서 즐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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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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