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한나라당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라

!@#… 사실 그리 멀지도 않았던 어떤 과거의 날을 돌이켜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조해서 대통령 탄핵 시도라는 희대의 자충수를 두었던 지난날. 말도 안되는 비민주적 삽질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 그리고 직후에 실시된 총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거의 40%를 득표했다. 열린우리당은 “빗자루에 양복만 걸쳐놓고 후보를 내놔도 이길 태세”라고 평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를 겨우 턱걸이하고도 축제 분위기. 다행히도 민주노동당이 10% 지지를 겨우 확보하고 마찬가지로 축제 분위기. 그런데 그런 상황을 보고 자칭 보수 언론들과 딱 그 정도 의식 수준 밖에 없는 자칭 시민들은 뭐라고 불렀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 국민의 탁월한 균형감각”. 한쪽으로 쏠림 없이, 보수와 진보의 현명한 균형을 이루어냈으며 견재와 응원을 동시에… 어쩌고 저쩌고 자화자찬. capcold는 세상에 그런 편리한 자기만족성 구라가 다 있나, 하면서 실망했던 터.

이번 지방 선거결과가 그것을 여실하게 증명해준다: 광역단체장, 한나라당이 사실상 싹쓸이. 균형감각은 얼어죽을.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도 조건반사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뿐이지.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지 말자. 당신들은 한나라당과 이미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단 말이다!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시길. 하기야 뭐 심지어, 박근혜 상해 사건 이후로 한나라당으로 지지를 결정한 사람도 6%나 된다고 한다(비록 조선일보 기사라서 신뢰성은 무지 떨어지지만).

!@#… 한나라당에 대해서 한심하고 구태라고 생각하면서도 끝없이 지지해주는 위선적 행태는 바로 동경으로서의 사랑에 가깝다. 한나라당의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지켜내는(이것이 바로 보수주의자들 최고의 낭만!) 소수 야당이라는 어렴풋한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혹은 한나라당의 전신들이 절대여당이었던 시절을 겪어온 나이든 사람들은, 좋았던 과거(젠장)에 대한 왜곡된 환상적 기억을 무려 한나라당과 동일시하고 있거나. 혹은 심지어, 민병두 의원의 비유를 인용하자면 ‘무능한 남편보다 부패한 남편이 낫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기합리화를 하거나(왜냐하면, 열린 우리당이 무능하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자동으로 유능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부패하고 무능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오히려 97년 IMF 사태 당시의 경험 아니던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콩깍지 모드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얼마나 무식한 추태를 부리든 말든 눈에 안들어온다. 추태를 부리는 그 순간에 혀는 한번 차지만, 혀를 차는 대상은 ‘정치인 놈들’ 전반에 대한 분노지 한나라당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사그러들게 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 그런 의미에서, capcold가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차라리 그 사랑을 인정하라고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을 스스로 인정해야 어떤 식으로든 사랑이 완성되니까. 그리고 사랑이 완성되어야 나중에 권태기도 생기고, 실제 생활 하다가 눈꺼풀에서 콩깍지도 떨어지고, 다른 쪽으로 바람도 피니까. 자신의 진짜 정치성향에 대해서, 완전히 인식하고 또 커밍아웃을 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식해야 ‘생각’도 가끔 하고 사니까 말이다. 중립이니 어쩌니 하는 구라를 치면서 자신들의 무관심과 무뇌성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근거와 판단을 가지고 서로 충분히 정보와 시각들을 소통하고 정치적 견해를 만들어내는 것(이쪽 용어로, ‘숙의’라고 부르는 것). 좀 솔직하게 살아보자고.

PS. 그나저나 capcold가 당비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정작 울산에서도 밀리고 있구나…;;; 정당 지지율에 비해서 턱없이 낮은 실제 구역별 당선. 사람들의 그 ‘사표 심리’라는 것, 정말 연구대상이다.

 

— Copy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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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에이~ 한나라당 안찍어~ 과거가 구려서 찝찝해~” 하시던 어르신들… 막상 투표하고 오신 뒤에 “누구 찍으셨어요?”라고 여쭤보면 답은 뻔하게 한나라당. 진짜… 그렇게 열렬히 사모하시면서… 커밍아웃들 좀 하시지…

    탈정치의 극단을 달리고 있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나이 들어서 이제 투표좀 해야겠다는 생각들을 할 시기가 되면 ‘내 운명의 상대는 보수정당’이라는 관성을 갖지 않고 있을테니 그 때가면 쫌 기대할만 할까요? 아님,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되면 자연스레 ‘내 운명의 상대는 보수정당’이라는 관념을 갖게되는 걸까요.

  2. !@#… yayar님/ 젊은 사람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보수정당을 찍는 것이야 뭐라 할 문제가 아니지만, 한나라당이 그나마 진정한 ‘보수’ 정당마저도 아니니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의 낭만적 이미지를 유리하게 팔아먹고 있을 뿐. 한국에서 진짜 보수라면 하다못해 불가침 민족주의 정도는 부르짖어 줘야 할 터인데, 미국의 몸종을 자처하며 게다가 친일잔재 청산도 거부하면서 무슨 보수주의입니까. :-)

  3. 제 기억대로라면, 젊은 사람들이 최근 매우 보수화, 또는 한나라당 지지자가 된 걸로 나와 있습니다. 20대의 한나라당 지지율이 40%를 넘었으니까요. 뭐, 다 그런거죠.-_-;;

  4.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캡콜드 님이 지적한 부분을 먹고 컸어요. 정치 자체에 대한 욕같은거. 그것도 같이 비난하실지는 모르겠는데, 그랬다가는 민주노동당은 망가질걸요;;; 최근에 경남에서 늘린 민주노동당의 세는 명백히 그런거에 기반하고 있다구요;;

  5. !@#… 기린아님/ 정치 자체에 대한 욕으로 득을 본 것은, 이번에 무려 10000표 가량을 득표한 서울시장 8번 후보 백모씨의 황우민족연대가 더 극명한 사례입니다! (웃음).

    !@#… 여하튼, 아무리 정치혐오의 반사 이익을 부분적으로나마 챙긴다고 해도 – 당연히 절대 그런 걸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지만 – 민주노동당은 고작 1,2%씩 힘겹게 지지율을 올려 나아가는 것이 전부인데, 정작 한나라당은 자치단체장의 1/3 가량이 부패 문제로 법적 제재를 받아도 강철 지지를 받는다는 현실 앞에서는 참 숙연해진다고나 할까요.

  6. 특정 분야에 한해서는 대한민국에 오랫만에 ‘일당독재시대’가 돌아왔네요 -_-/

  7. 역시 호남사람들은 정치의식이 뛰어납니다.
    호남이야말로 님이 지적한 견제와 균형을 기가막히게 만들어 놓았더군요..^^

  8. 정말 연구 대상입니다요. 사표심리. 하지만 또한 제가 보니까 정당지지율과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대체로 비슷하긴 하더라구요. 그러나 지역에서는 10% 정도 받아서는 당선이 안 되니까… 어쨋든 구의원, 시의원 단위에서는 의미 있는 신장을 이루어 냈습니다. 100명중 10명 정도는 후보도, 정당도 4번으로 줄투표 했다는 얘기니까요.
    그러나 또한 지방선거에서는 정당 줄투표의 폐해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한나라당이 받은 이익은 상당하구요. 아무래도 지방선거에서 번호를 일괄부여하는 방식은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사랑은 넘쳐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선도 같이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벌써 박근혜냐 이명박이냐 이런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요. 이제 대선이 기대됩니다. 한국 정치의 유일한 독립변수이니까요. (우리는 노회찬이냐 권영길이냐 심상정이냐.. 뭐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노회찬이 한번 해 주었으면 좋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