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그렇듯 반쯤 중요한 아이디어 반쯤 농담으로, 담론가의 막장 루트 패턴을 분류해봐야하겠다는 생각. 뭐랄까, 애써 꺼낸 회심의 발언들이 (본인들이야 자뻑장벽 속에서 뭐라고 정신승리를 하든) 건설적 고민에 기여하는 바 없이, 지명도 높은 웃음거리와 지지집단의 합동 딸딸이로 빠지는 지극히 흔해빠진 패턴들 말이다. 확실히 건강한 담론생태계를 위해서는, 망가지는 패턴들을 좀 더 유심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 사실 기본축은 뻔하다.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는 전파 의지 그런 것도 물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막장화되지 않는다. 막장행의 핵심은 바로, 스스로의 무오류성을 굳게 믿어버린다는 점. 무오류성의 문제는 이전에 이야기한 지사정신과도 은근히 통하는 바가 있다.
- 무오류니까, 반론이 들어오면 내 주장을 고쳐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음해하는 것.
- 전투상황이 되기 때문에, 더욱 내 편을 결집해서 그들을 배척해야 한다.
- 점점 내용은 선명하게 극단화되며, 피해의식은 커진다.
- 더욱 그 기조에 맞는 더욱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남게 되고, 그게 다시 더 극단적인 자기 침작으로 돌아온다.
몇바퀴만 돌아도 이 막장의 하향나선은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서 웬만한 노력으로는 더 이상 거스를 방도가 없다. 그저 어떤 측면의 절대성을 확신하는가에 따라서 패턴이 달라질 따름이다. 가장 크고 주관적 느낌의 것 부터, 객관을 가장해서 무오류성을 스스로 믿기 더 쉬운 것 순서로 한번 펼쳐보자. (주: 당연히 임의의 실용적 구분이고, 딱히 뚜렷한 학문적 기반의 이론적 개념은 전.혀. 아니다).
A. 세계관의 무오류성: 혹은 유사종교 막장루트. 혹은 예를 들어, 김지하 루트. 지나치게 오래 이상한 책 몇권에 골몰한 이들이 오바하다보면 종종 빠질 수 있는데, 특히 진보에 대한 과도한 환상에 쩔다보면 직행이다. 지사적 열망과 민중적 희망의 이상한 변질 결합이 이루어지며, 뭔가 거대철학(주로 고대 동양철학이나 신비주의 어쩌고 쪽이다)을 들고와서 세계의 구성원리를 설명하고 지사적 참여를 종용한다든지 말이다. 루트가 진행될수록 점점 근거따위 논리따위 바이바이. 다만 믿는 이들은 사실상 신도화된다는 점에서 다른 막장보다 더 위험한 구석이 있다.
B. 정파성의 무오류성: 혹은 삿대질 막장루트. 혹은 예를 들어, 전여옥 루트. 내편은 옳다. 닥치고 공격하며, 특히 사람을 공격한다. 즉 공보다 정강이를 걷어차는 것인데, 파울플레이 공격수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있기 마련(H당의 대변인직은 대체로 이 루트의 엘리트코스). 그 과정에서 급격 막장화. 물론 정치 스펙트럼의 반대쪽에서도 얼마든지 ‘닥치고 약자, 닥치고 연대’ 또는 ‘닥치고 우리편을 지키자’ 논리로 가끔 화려한 병맛을 자랑하곤 한다.
C. 이슈 중요성의 무오류성: 혹은 유레카 막장루트. 혹은 예를 들어, 지만원 루트. 내가 주목하는 이게 최고로 중요하다는 것에 틀림이 없다. 자신이 혁신적 발상으로 계속 주목하고 있는 어젠다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자뻑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세상이 나를 해치려 하기 때문이라는 유사 편집증까지 발전한다. 진중권 스토커라고 놀림받곤 하지만 사실 최근 수년간의 진짜 주안점은 오로지 “포털을 공격한다”였던 변모씨의 경우도 여기에 가깝지 않나 한다.
D. 근거의 무오류성: 혹은 골방 막장루트. 혹은 예를 들어, 조갑제 루트. 내 자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팩트 중심과 엄밀한 자료를 외치다가 어느샌가 아집에 빠져서 오히려 자료 검증력이 떨어지고, 자신의 머리 속에 있다는 자료에 과잉 의존하여 넘겨짚기 주장을 던져놓고는 책임지지 않는 패턴. 자칭 우익 역덕들이 가끔 빠지는 루트.
E. 불편부당의 무오류성: 혹은 엄정중립 막장루트. 혹은 예를 들어, 불특정 다수 냉소리플러 루트. 나는 중립이니까, 옳다. 스스로를 중립이라고 자뻑. 그 과정에서 무조건적 냉소와 폄하를 날리다가 결국 패배주의, 허무주의 루트를 탄다. 한번 들어서면 빠르게 “그놈이그놈주의”에 빠져서, 더 이상 근거를 찾지 않고 공전하고 “다 싸잡아 나쁜놈이야”라고 징징거리며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 병맛이면서도 주변에 부지불식 영향력 행사는 상당하기에 위험도 높음.
미분류 보너스. 말빨의 무오류성: 혹은 실패한 개그 루트. 반어법, 패러디, 위악쑈 그런 것을 펼쳐봤다가 그게 통하지 않았을 때, 멋쩍어 하고 재기를 다지기보다 그 것을 이해해주지 않은 세상을 탓하는 무척 독특한 병맛 루트. 너무나 처절하게 가슴아픈 안습 루트라서, 특정인들 지목해서 예를 들기조차 불쌍하다.
!@#… 그런데 문제는, 이미 막장루트에 빠진 담론가를 정상인의 궤도로 돌려놓는 것은… 뭐 동네 친구의 “그러는거 아냐 임마” 기법이 아니고서야, 순수하게 토론으로서 되돌려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엄청 수고스럽기까지 해서, 나름대로 애정을 가지고 구출해내는 과정에서 바로 그 막장루트 담론가에게 직살나게 욕먹고 정떨어지는 것이 차라리 흔하다. 다만 딱 한가지 작전은 쓸 수 있다: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 결국 치료법보다 예방법이 더 중요한 사안인 셈. 무오류성이 만들어주는 막장루트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3가지면 충분하다. 출력해서 어디 붙여놓고 외우자.
– “틀린 것보다, 틀린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100배 더 굴욕이다”: 틀리는 것은 자신의 문제라기보다 불가항력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틀린 것을 고치지 않는 것은 100% 자신의 문제다.
– “나와 성향이 같은데 다른 이야기를 해줄 사람, 그리고 성향이 다른데 같은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있는지 항상 체크하라”: 동의하는 사람들만 피드백을 하고 있다면, 매우매우 조심하라. 아마도 세상이 당신에게 동의한다기보다, 동의하는 사람들로만 당신의 세상이 좁혀지고 있다는 조짐일 가능성이 더 크다.
– “이 부분이 틀렸다면 전체 주장의 어디까지 잘라내야 할 것인지, 모듈적 사고를 하라”: 손톱에 때가 꼈으면 손톱을 깎아내면 되는데, 손목을 자르거나 아예 자살해야할 사안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면 막장루트 예약.
!@#… 혹은 외우기 싫다면, 이 모든 발상을 자신만의 어떤 주문(‘만트라’)으로 만들어놓는 것을 권장한다. 눈치 채실 분들은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capcold의 경우 바로 사이드바의 ‘그’ 표어다. 다만 무오류를 경계한다고 해서 스스로 하는 말에 처음부터 아예 확신이 없으면 곤란하니, ‘반증’이라는 조건을 달아놓고.
I might be wrong. So prove me wrong.
어쩌면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틀렸음을 증명해주십시오.
***
PS. 그런데 담론가와 실행가의 격차는 항상 염두에 두자. 부실한 사회시스템일수록, 담론능력과 실행권력의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의 미디어법 관련 권력을 생각해보시길. 토론 프로그램 나와서 아무리 0.5초만에 얄팍한 인식의 밑바닥을 드러내봤자, 입법강행에는 별다른 지장을 받지 않는다.
—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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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_k 뭐 그렇죠. 이전에 썼던 글 "담론가 막장행 루트 분류하기" http://capcold.net/blog/2264 를 좀 더 업데이트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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