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pcold가 흔히 ‘지사정신‘이라고 칭하고 항상 비판하는 것은, 약간 풀어 말하자면 1) 큰 당위에 대한 희생적 헌신의 자세, 2) 그리고 타인들도 그 성향에 당연히 동참해야만 한다는 인식 등 두 가지의 결연한 결합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극악한 스팀팩으로, 당장은 열렬하게 몰입해서 세 배 더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후유증이 상당하다. 한눈에 봐도 자칫하면 “남에게 헌신 강요” 루트를 타거나, 최소한 “말이 안통하는 소통의 블랙홀”로 흘러가기 쉽잖아. 즉 논리를 희생하더라도 돌파력이 필요한 혁명전야 위급상황에서는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사회의 평상 모드에서는 백해무익(혹은 99해1익 쯤).
!@#… 지사정신의 반대말은 단순히 이기주의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적 이익을 여러가지의 근간에 놓인 중요 변인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자기 이익에 의해서 움직여주고, 다른 이들도 각자의 상황 맥락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태에서 연대를 제안하고 사회적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 지사정신은 그런 복잡하지만 균형을 맞추며 확실하게 굴러갈 수 있는 방법을 거부하고, 스트레이트한 질주를 꿈꾸기 쉽기에 오히려 목표로부터 벗어나는 문제를 낳곤 한다. 크게 두 가지, ‘약자’와 ‘순혈’에 대한 집착이 작동한다든지 말이다
– 약자 집착: 스스로를 자꾸 정당하지만 억압받는 약자의 위치에 놓는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충족적 예언이자 주문이 되어, 정당성이나 억압이야 어떻든 간에 여하튼 실제로 자꾸 자신에게도 타인들에게도 ‘약자’로 인식되도록 만든다. 강자들의 싸움판에 애초에 끼지도 못하게 된다고. 여기에 연동되어, 종종 “약자는 곧 정의다”라는 곤란한 환상까지 끼어들 수 있다. 약자에게도 인격적 대우와 최소 복지 보장을 해주는 것이 정의라면 모를까, 약자이기 때문에 곧 정의인 것 처럼 착시를 일으키는 것. 덕분에 각각의 행위와 결과에 대한 사회적 보상체계에 대한 세부적 고민은 날라가고 이상한 감상주의가 끼어들어온다.
– 순혈 집착: 현실적 전략과 조율보다 당위의 위대함으로 승부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앗 하는 사이에 순혈성 강조 루트에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순혈이 되기 위해서는 순혈이 아닌 자들이 필요하고,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진영을 적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 결과 점점 자뻑의 벽으로 둘러싼 거울의 방에 자신을 가두게 되는데, 당위가 최고의 전략이고 동질성이 강한 한줌의 이들만 똘똘 뭉쳤는데 바깥 세상이 보이기나 하겠는가. 덕분에 방언은 점점 심해지고 사고방식은 극단화된다. 세력도 물론 약해진다.
!@#… 예를 들어 최근의 이슈거리 가운데 민폐성 지사정신의 사례로 들기 편한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페라합창단 지지서명과 관련된 모 인사의 촌극이다. 아니 부탁을 했던 촌극 그 자체보다, 일이 시끄러워진 이후의 대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생각없음에 대한 지탄을 받을 수록 더욱 강력한 뻘타로 당당하게 변명하여 인증을 하고, 함께 지사정신을 불태우는 한 줌의 골수 지지자들로 인의 장막을 친다는 패턴은 얼마 전의 신해철 학원광고 쑈에서도 익히 접한 바 있다. 다만 나름 개인의 차원임을 강조하는 신해철의 경우와 달리 이 분은 어떤 종류의 당위에 대한 불타는 지사정신을 피력하는 바람에, 공연히 진보신당도 진보라는 성향 자체마저도 한꺼번에 말려들어 부대 피해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쪽으로 이목이 집중된 와중에 오페라합창단은 이미 해산. 정명훈의 인격이 어떻다느니 하는 쌩쑈로 초점을 잔뜩 돌려놓고는 지사정신으로 자뻑하는 것은 좀 많이 민폐다. 정말로 노동문제 (즉 애초부터 제도를 야매로 해놔서 고용상태가 이상한 상황이었다는 것의 문제, 금전적 대우 현실화 없는 일방적 비정규직화의 문제, 오디션에 실력 외적인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기 쉽다는 불공정성의 문제 등, 노동력 투입과 보상이 매치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 꾸준히 이 사안을 추적중인 이곳(클릭)을 가끔 체크하실 것 추천)에 집중해서 최대한 보편적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공감을 사려 노력하기도 바쁠텐데 말이지.
!@#…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사정신은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이라고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중간에 생겨날 수 있다. 항소심에서 패소한 직후 심히 버럭해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오픈웹의 사례를 보자. 시작은 이름 그대로 더 다양한 열린 웹 접근성을 위해 웹표준 준수를 보급하는 것. 따라서 MS윈도와 익스플로러에서만 구동되는 ActiveX 기술 남발을 문제삼고, 특히 공공기관과 인터넷뱅킹이 의무적으로 ActiveX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법적 소송을 걸어서 사안을 이슈화하고 웹표준을 관철시키는 일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갑갑하게 진행되는 소송에서 결국 항소심까지 패소하는 과정 속에서, 자꾸 ActiveX 자체를 악의 기술로 돌리는 패턴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금융단체들이 기본 조건으로서 ActiveX라는 비표준 기술을 강요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까지만 법적 소송으로 풀어내도록 하고, 앞으로 어떤 웹표준 기술로 보안 문제를 풀어낼 것인지는 열린 토론에 붙여서 개발자들을 한 편으로 끌어들여 같이 참여시키는 것이 기본일 터. 하지만 ActiveX로만 접속하도록 하면 안된다는 논리가 ActiveX를 쓰면 안된다, 그리고 ActiveX를 옹호하는 개발자들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까지 가면 뭔가 어긋나버린다. 그 기술에 매진해왔던 보안개발자들마저(즉 금융보안에 종사한 개발자들 대부분) 자꾸 적으로 돌려가다보면, 기술적 사안 – 왜 도입 당시에 ActiveX를 쓸 수 밖에 없었는지, 같은 – 에 대한 구체적 반박과 기술적으로 무지하다는 식의 입지축소밖에 없다. 아직 지사정신의 진행상황으로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정도이기는 하지만, 이런 반박(클릭)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면 마음을 다잡아야할 때다. 여론을 환기시켜온 덕에 여하튼 이제 이 정도(클릭)까지는 왔으니까 더욱 더.
!@#… 우연히도(우연일리가) capcold는 그 모 인사가 쌩쑈의 와중에 자신의 정체성으로 그리 강조한 진보신당의 당원이며, 오픈웹에서 당초에 사람들을 모아 공동 소송을 제기할 때 참여했다. 표방하는 목표를 추구해야할 필요성에 동의하고, 누군가 총대를 메준다면 장려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즉 당위에 공감해서 지지하고, 방식이 미숙하다고 생각해서 종종 어처구니 없어 하는 쪽이란 말이지. 그렇기에 더욱 지사정신에 불이 붙어 엉뚱한 쪽으로 빠지지 않고, 원래의 목표를 차근차근 추구해나가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 당위에 대한 내 지지까지 비웃음당하는 것이 싫으니까.
—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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