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예고했듯, 나름대로 소프트 노선(과연?)으로 돌아선 만화프리즘 칼럼의 제 1호. 사실은 2호에서는 다시 정치 이야기로 돌아갔지만. -_-;
동성연애, 취향문화의 미덕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진행되었던 차별금지법 개정 논의에 언급된 여러 차별 기준 가운데, 아주 반가운 손님이 하나 들어가 있었다. 바로 동성애가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해서, 시대가 그래도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나보다 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개신교 계열의 어떤 단체는 일어나 적극적인 반대를 하고 나섰다). 최종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정말 고무적인 것은 그만큼 동성연애가 무조건 말도 안 되는 혐오행위나 단순한 개그거리가 아니라, 계급이나 성차별 같은 여타 묵직한 주제들과 동급에서 논의되는 대상이 되어줄 만큼 담론적 위상이 올랐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아우팅 당하고 밥줄 끊겨가며 인권운동가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 얼마나 지났다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물론 동성애자 인권 향상을 위해 헌신한 ‘이반’ 운동가들의 공과는 크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라는 것이 바뀌어 나갈 수 있던 것은, 동성연애를 비장하고 운명적인 인권 이슈가 아니라 취향의 차원으로 끌어내린 문화적 소비의 트렌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동성애 자체가 쿨하다는 인식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지만(굳이 도달할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충분히 쿨하면 동성애자인 것은 별로 상관없다는 취향 문화의 경험이다. 간달프 맥캘런 경도 게이고, 석호필 밀러도 게이일지 모른단다. 아, 호그와트의 정신적 지주 덤블도어도 공식적으로 게이란다. 멋진데 뭐 어때.
취향 문화로서의 동성연애를 한 발짝 더 들어가면 단지 특정한 스타의 성적 취향뿐만이 아니라, 동성애의 코드를 장르에 받아들이는 것 역시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 경우, 동성연애는 거북하지 않은 즐거운 긴장감의 요소가 되어 재미의 공식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퀴어물은 비장한 인권운동의 이미지지만, 야오이는 소녀적 즐거움의 보고다. 전자의 무게감은 실로 대단하지만, 후자의 즐거운 파급력이야말로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원이 되어준다.
그렇듯, 만화야말로 이런 동성연애의 코드를 즐기는 문화트렌드의 최첨단에 자리해왔다. 혹은 굳이 야오이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그녀』같은 작품을 보면 동성연애의 코드가 넘쳐나지만 정작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동성연애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아들의 양육 문제 때문에 십여년 동안 완벽한 여장을 일삼아온 주인공이지만, 성적 정체성의 혼란도 동성애 기질도 없다. 그저 좋아하는 여자가 비실비실한 남자버전의 자신을 싫어하면서, 여장을 해서 당당한 싱글맘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물론,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좋아하기에 생기는 일련의 소동들이 깔끔한 코미디로서 풀어나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동성애적 관계는 가슴 아픈 비정상 취급의 상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재미의 코드가 된다.
동성애를 취향문화의 일부로서 즐기는 트렌드는 동성애를 그저 있는 그대로, 연애 대상을 고르는 방식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그 별 것 아닌 본질을 오히려 직면하게 해주었다. 지나친 희화화를 일삼다가 오히려 편견을 심어주는 것 정도만 살짝 피하기만 한다면, 이보다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비장한 절박함을 자아내는 문제의 해결책은, 때로는 가장 가볍고 즐겁게 향유하는 트렌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문화’라는 것을 만들어낸 인간사회의 묘미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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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허/영리불허 —
1. 동성연애 대신 동성애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편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2. [그=그녀]의 경우는 동성애 보다는 복장도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3. ‘야오이’에 있어서 동성애 코드가 “가볍고 즐겁게 향유하는 트렌드”가 된 것은 그 소비층이 동성애자가 아니라 이성애자 여성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소년만화의 주 소비층이 소년이고 순정만화의 주 소비층이 소녀인 것과는 달리 남성 동성애물인 야오이의 주 소비층이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것은 그들이 야오이를 소비하는 방식이 전자들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소년만화, 순정만화의 독자들이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감정 이입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야오이의 독자들은 등장인물들과 거리를 두고 그들을 훔쳐보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오이문화가 동성애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쉽게 동의할 수가 없네요.
마른미역님.
글을 제대로 읽어보시면, 주인장은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아주 제대로 구분해서 쓰고 있습니다. 좀 빨리 읽어버리는 분들에게는 주인장이 이 두 단어를 혼동하거나 실수로 그렇게 쓴걸로 받아들이실 수 있겠네요.
왜 동성애자들이, 야오이 만화에 대해서 진절머리내는 경향을 떠나서 마구 마구 분노하는지. 여성독자들은 자신의 성정체성과 만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고 항변하는지. 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을 더 하시면
왜 이 글이 동성애와 동성연애를 구분해서 쓰고 있는지를 아실수 있을겁니다. 사실은 그 단어를 따로 쓴 것 자체가 핵심중 핵심인데….
핵심을 몰라보시고 반박을 하신것은 그냥 글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신셈이 되어버렸네요.
“공과”라는 단어선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잘한 일 못한 일을 동시에 가리키는 말일텐데, 문맥상 잘한 일이라는 뜻으로만 쓰신 것 같아용.
!@#… 마른미역님/ 좋은 지적입니다. 좀 더 본문에서 명확하게 그 지점들이 읽히도록 하고 갔으면 좋았겠군요.
1) 본문에서 어색할 정도로 동성’연’애라는 용어를 반복한 것은 한국에서는 거의 인권운동을 지향하다시피한 퀴어와, 코드로서의 동성간 연애를 분리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한쪽으로는, 슬슬 보편적 愛말고도 이제는 戀으로서의 사랑 역시 당당하게 내세우고 다뤄도 좋지 않을까 하는 의도도 약간. 그런데 하필이면, 첫번째에서 차별조항 이야기하면서 동성애라고 써야했는데 동성연애를 넣었군요. 그건… 초보적인 실수. OTL 수정 들어갔습니다.
2) 문자그대로 동성애가 아닌 동성애 ‘코드’죠. 단순한 복장도착이라기 보다, 남남-여여 커플 구도를 슬그머니 쑤셔넣고 즐기고 있습니다.
3) 야오이가 무려 동성애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 다니면 그거야말로 막장이죠;;; 공/수를 모르는 쌈마이들이라면 모를까.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동성애 ‘코드’의 보편화고, 그것도 연애로서의 활용이 그만큼 일상적으로 파고들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야오이 자체는 오히려 연애의 구도 자체만 보면 동성애를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퀴어’가 지향하는 바와 정반대인 경우가 많아요.
nomodem님/ 아니, 이왕이면 본문에서 제가 좀 더 설명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하튼 제가 지향하는 바보다 훨씬 아직도 민감한 소재니까요. -_-;
intherye님/ 사실 ‘과’도 있지만(예를 들어, 지나치게 스스로들을 오히려 마이너리티화한 담론 전략이라든지) 이왕이면 간략하게 넘어가다보니 ‘공’으로만 쓰게 되어버렸습니다 O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