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질은 숭례문이 아니라 뭐라도 불타게 할 수 있다

!@#… 지난번 글이 요점만 갈겨놓아 불친절한 듯 하여 약간 친절버전. 숭례문 소실 사건을 놓고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역시 최근 가장 뜨거운 토픽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시장 당시 행한 숭례문 일반 출입 개방이 이번 사건에 얼마나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될 사람이 무려 국민성금 운운한 천박하기 그지없는 머저리질은 차치하고서라도, 확실히 당시 그것으로 스폿라잇을 받으며 ‘성과’로 인정받았던 만큼 그에 따른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명박 개인을 탓해서 무엇하리. 아무리 그가 재임 당시에 이 판을 깔았다고는 하지만, 그 판을 유지하고 더욱 굳건하게 움직인 것은 그의 기조를 이어받은 현직 서울시장, 같은 당의 중구청장, 공무원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견제하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어떤 부분은 협력까지 한 문화재청 아니던가. 그렇기에 봐야할 것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문제의 흐름 그 자체다.

미리 당연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방=방화”는 아니다. 개방하면 누가 와서 불지른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꼭꼭 걸어 잠그자 하고 오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밑에 깔린 경영논리의 흐름을 보면, 즉 ‘돈’이라는 변수를 살짝 집어넣어보면 이야기는 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가상 시나리오는 어떨까. 왜 가상 시나리오인가 하면… 내가 숭례문 예산 담당 중구청 공무원이 아닌데다가,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타버린 그 곳 말고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 가상의 국보급 건축물 A가 있다고 치자. 도시 한복판에 있어서 이거 사람들이 올라타는 관광자원으로 써먹으면 킹왕짱이겠는데, 기존의 시 운영자들은 문화재 보존이니 어쩌니 하면서 그냥 구경꺼리로만 ‘방치’하고 있다. 아아, 개발의 이름이 운다 울어. 확 개방해버리자! 그런데 개방을 해서 관광사업을 벌이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개방을 안하면 2교대나 3교대로 공익근무요원이나 의경 한 두명만 경비요원으로 배치해도 충분하다(사람이 있으면, 심지어 소화기 몇 개 정도라도 훌륭한 화재 방어 시스템이다). 하지만 개방을 하면 개방한 낮시간 동안 경비하고 안내할 사람이 여럿 있어야 한다. 관광지(!)로서 인기를 끌면 끌수록 더 필요하다. 그런데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새로 늘리려면 꽤 시간과 노력이 걸리며, 특히 공무원 시스템에서 인력운용 관련은 융통성 없기 그지없다. 인력 협조 시스템을 정식으로 거쳐서 새로운 조건에 맞는 경비를 갖추기는 귀찮고 복잡하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꼼수는? 간단하다. 기존 예산을 크게 수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력을 낮시간으로 돌린다. 관광객이 없는 밤은, 민간업체로 아웃소싱. 예산 추가 편성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복잡다난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니 만큼, 싸게. 게다가 아웃소싱 발주를 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이미지가 돋보일수록 좋기 때문에, 더욱 더 닥치고 싸게. 어차피 누가 거대한 구조물을 들고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까, 대충해도 큰 상관 없겠지.

이 경우 문제는 그나마 여러 요소들을 미리 고려해볼 수 있는 시스템을 귀찮다고 가볍게 건너뛰는 것 그 자체다. 즉, 닥치고 벌이는 것이다. 민간 이양이 효율적이면 민간에 넘겨도 좋다. 다만 그 경우 capcold가 꼽는 자본주의의 철칙 “비싼 것이 꼭 비싼 값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싼 것은 반드시 싼 댓가를 치룬다”는 것을 고려해서 민간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상시 체크를 해야한다. 그리고 유사시에 민관협동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각종 안전장치들을 2중3중으로 갖추어야 하고. 그런 것을 모두 감안한 뒤에도 더 유리할 때, 비로소 ‘효율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냥 눈 앞의 단가에 혹해서 이런 진짜 효율성에 대한 고려를 건너뛰었다면? 그걸 바로 야매라고 부른다. 경영기술이 아주 야매에요 야매.

!@#… 진짜 문제는 이미 불탄 숭례문이 아니라,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하지만, 소 잃고 분노하느라 바빠서 외양간도 안 고치는 것보다 낫다. 게다가 외양간을 어떻게(!) 고쳐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 우선 닥치고 밀어붙이기 전시행정을 가능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전봇대를 뽑는 것이 누구의 일갈로 확 되는 야매꾼 시스템이 아니라, 관계부처간의 치밀한 협의와 상황 고려, 대책 마련에 의거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 패턴을 국가 경영전략으로 대놓고 추구하는 것들을 브레이크 없이 전력질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질주를 막는다는 것은, 견제가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행정과 입법을 아우르는 완전 독재를 막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독제독이라도 어쩔 수 없다. 적의 적이 내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적의 적은 적을 견제해주니까.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진영이 있다면, 그들을 직접 밀어주는 것이 가장 좋고. 상식적으로, 야매꾼 독재는 사회에 – 아니 나한테 – 해로우니 방지하자는 것.

!@#… 그래서 숭례문 이야기를 하면서도 4월 총선 이야기를 한다. 아주 정치적으로. 자기 동네에 예산 잘 따와줄 듯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가끔은 “도대체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인가”라고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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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thoughts on “야매질은 숭례문이 아니라 뭐라도 불타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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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bbala의 미투데이 – 2008년 2월 15일…

    “Linux is a registered trademark of Linus Torvalds.” — The Linux Foundation. 2008-02-15 04:43:29 “자본주의의 철칙 ‘비싼 것이 꼭 비싼 값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싼 것은 반드시 싼 댓가를 치룬다’” — 김…

  2.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야매정부의 사회정책수석이라면 표절은 기본

    […] 국민일보 특종. 야매정부의 박미석 사회정책수석 내정자, 자기 석사 지도제자의 석사졸업논문 […]

Comments


  1. 노정권이 아마추어라는 얘기 참 많이 들었는데,
    이쪽은 한술 더 떠서 야매… -.-
    진중권 말처럼 수 년의 피로감을 단 두어 달만에 느끼고 있습니다.

  2. !@#… 덧말제이님/ 아마추어는 미숙해서라도 가로지르기보다 조심스레 절차를 밟아나가는데, 야매는 도저히 답이 없습니다.

    dcdc님/ ‘야매 정부’라는 키워드를 이곳에서부터 열심히 유포시켜볼까 합니다. 누가 동조해줄지는 몰라도…;;;

  3. 야매는 일본어 야미(やみ、闇)의 잘못된 발음입니다. 우리 말로는 암거래라고 하면 될듯합니다.

  4. !@#… 산신령님/ 단순히 잘못된 발음이라기보다, 그 단어에서 파생되어 한국에서 나름의 어감과 의미를 얻게된 변종 외래어죠 (다른 예로 ‘콘크리트 공사’라고 할 때와 ‘공구리’라고 할 때는 단순히 속어다 잘못된 발음이다 수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목적의 다른 어휘로 쓰이듯 말입니다). 야매라는 단어의 “겉으로 그럴싸하지만 편법, 비합법으로 일을 해치우는 것”라는 의미가, 야매라는 단어가 주는 본연적 천박함의 어감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