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육 제도 변경, 각 초중고교가 자율적으로 입시몰빵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파격적 조치가 강행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NCLB제도를 일부 베끼기도 하고, 그냥 자기들이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했던 옛 시절을 베끼기도 하면서 뚝딱뚝딱 뭔가 나왔다. 이런 제도 변경 자체의 허접함과 천박함에 대해서는 어차피 여기저기 넘쳐나니 생략. 그보다, 그것에 대한 담론 유통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발견해서 잠시 주목해본다. 바로 “희망의 언어”에 대해서.
!@#… 사람들을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희망의 언어가 있다. 바로 당신의 욕망을 인정해주고, 더욱 지펴주겠다는 뜻을 넌즈시 펼쳐주는 언어다. 한나라당 18대 국회의원 선거 수도권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뉴빠(뉴타운빠) 자특빠(자사고특목고빠) 기질을 줄기차게 희망의 언어로 표현해주어 결국 자리를 챙겼듯 말이다.
예를 들어 요새 자꾸 행적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홍막장’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홍정욱 의원 당선자의 표어 중 이런 것이 있었다: “노원구의 가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가치라는 단어 앞에 괄호를 넣어보면, 어떤 욕망을 건드리고 있는지 어떤 희망을 던져주고 있는지 무척 뻔해진다. 그런 희망 속에 부풀려진 빠심 앞에는, 서민 정책이나 현실성 있는 발전계획 따위로 상대가 될 리 만무하지. 제시해주는 희망이 사실은 개뻥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개뻥이라는 자료를 코 앞에 들이대도, 한번 시동이 걸린 빠심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줄기세포종교처럼 철저하게 깨지지 않고서야 말이다(그 경우마저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있지만). 반대로, 정말 근거 있는 희망이라면 더욱 해피한 삶에 보탬이 되기도 하겠지.
!@#… 여하튼. 희망의 언어는 강력하다는 거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쓰기 나름이고. 돈지랄보다는 말빨로 담론을 만들어가며 사람들을 설득하여 지분을 확대할 수 밖에 없는 약소 진영 – 예를 들어 현재 한국으로 치자면 야매정부를 진심으로 반대하는 제정신인 사람들 – 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공고하게 해주는 하나의 좋은 사례가 이번 ‘공교육 파탄쑈 제1부’에서 눈에 들어왔다.
‘0교시’ ‘서울·연고대반’ 학교 마음대로
조선일보 2008.04.16 04:15 | 안석배 기자
0교시가 생기니까 더 열심히 공부시키는 것 같고, 서울 연고대반을 학교 마음대로 만들 수 있게 되니까 내 자식도 그런 것 만드는 학교에서 그 반에 들어가면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샘솟는다. 학교 마음대로 하는 것이니, 내 자식이 멍청해도 내가 봉투 몇 번 챙겨주면 뭔가 수가 생길지도 모르고. 어차피 신문은 보통 부모가 읽다보니(학생들이 논술’공부’한답시고 사설 오려내는 것이나, 연예뉴스 악플달려고 네이버뉴스 뒤지는 것은 ‘신문 읽는다’는 정의에서 편의상 그냥 버리기로 한다), 정책으로 개고생을 당할 이들의 시각이나 정책의 이면 따위는 솔직히 가볍게 무시해도 무방하다. 0교시부터 공부해서 서울연고대까지 가도록 하는 훌륭한 학교제도가 시작된다! 개인의 성공신화를 합리적 사회제도의 정비보다 강하게 앞세우는 보수를표방하지만실상은단지날라리야매기득권™들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들어가있다. 희망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할줄 아는, 능란한 자들이다.
반면, 이 기사 제목을 보자.
학교도 학원처럼 ‘서울대반’?… ‘학교·학생 양극화’ 우려
경향신문 2008.04.15 18:28 | 최민영·임지선기자
불안해!
이게 바로 불편과 우려를 주는 불안의 언어다. 과연 어떻게 될지 뚜렷하게 뭔가를 제시해주지 않으며 뭔가 잘못될 수 있다는 흔적만 잔뜩 뿌리는 것. 물음표는 이 제도가 황당하다는 원래의 의도로 읽히기보다, 서울대반을 한다는거야 만다는거야에 대한 의문으로 읽힐 수 있다. 왜냐하면, 부모의 포커스는 애들 입시에 이미 가 있으니까. 학교와 학생의 양극화 우려는, 무려 따옴표까지 쳐져 있는데 누가 우려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우려란 과연 무엇인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불안하다.
차라리 ‘공포의 언어‘는 확실한 적을 만들어줘서 속시원하고 나름의 지분을 얻어낸다. 예를 들어 제목감으로 “정부 발표로 말미암아 각급학교에서 닥치고 차별교육 도입 전망, 한 줌의 서울대반 이외에는 모두 조낸 왕따 개차반 탈선의 온상 확실시” 같은 공포의 언어를 쓴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정교하게 접근하겠다고 선택한 불확실의 열린 언어는 그렇지 않다. 불안과 우려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불편함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비판적 자기개발 능력을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들은 많지 않다(이거야말로 초등교육부터 진짜로 추구해야할 방향이지만, 별반 관심들이 없다 – 어떤 넘들은 입시입시입시하느라, 또 다른 넘들은 닥치고 전인전인전인하느라고). 그렇기에 불안한 것은 애초부터 피해가고 싶어한다.
!@#… 즉 아무 생각이 없던 독자가 있다고 칠 때, 이 두 언어를 보고 어디로 마음의 무게추가 건너갈까. 웬만큼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면, 희망으로 간다. 500원 건다. 물론 충격의 씹탱 정책을 반대하는 처지에서 무슨 희망의 언어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머리를 써야할 수 밖에. 앞선 이야기처럼 아예 ‘공포’를 적당히 구현해서 ‘이 제도를 하면 당신 애들이 멍청해져서 오히려 경쟁에서 확실하게 밀려나!’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 아예 더 나은 변화 방법들을 끈.질.기.게. 먹여주는 근성이 더 좋다. 사실 그런 떡밥은 넘쳐나잖아… 스웨덴이든 프랑스든 독일이든 싱가폴이든 하다못해(!) 미국이든 어디든.
!@#… 뭐 비단 이번 건 만이 아니라, 어떤 담론에서든 크게 다르지 않을 터. 희망의 언어가 가장 강하다. 공포의 언어는 그보다 한참 뒤. 그리고 넘사벽 너머에 ‘불안’의 언어. 대중을 상대하겠다면, 불안의 언어를 자제하고 희망의 언어를 구사하라. 물론 캡콜닷넷은 애초부터 대중성과 거리가 좀 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안쓰겠지만. (핫핫핫)
—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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