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 원고의(즉 그보다도 전에 쓴) 시사 안건이 아직도 불타고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일인지 모르겠다. 여튼 희망찬 10대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당장 20대 이상들이 6.4 재보선에서 뭔가 한번 보여주는게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까지 왔는데도 재보선에서 또 한나라당과 soon-to-be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면 뭐 꿈도 희망도 없는 것.
고기 민주주의
김낙호(만화연구가)
봉준호 감독이 영화로 제작하기로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던 만화 『설국열차』는 우리 현대사회의 모습을 어디론가 달려가는 열차에 비유한, 탁월한 암울 계통 SF다.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론가 달려가는 좁은 열차 속 탑승객들이 인류의 전부인 환경 속에서, 각 칸과 계급 권력에 따른 사람들의 배치라든지 그들 사이의 마찰과 이 여행의 끝이 어디이고 기차는 어떻게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여러 미스테리와 갈등이 촘촘히 그려진다. 이 안에 담긴 여러 우화적이지만 일상적인 마찰, 지극히 합리적인 과정을 거치더라도 그 결과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어긋나고야 마는 인간세상의 모습들이 드러난다.
그런 멋진 요소들이 넘쳐나는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필자는 작품을 읽는 내내 자꾸 소소하고 엉뚱한 쪽에 관심이 가고야 말았다. 도대체 무한한 여행을 하는 이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 거지? 아하, 이 정도 작품이 그런 중요한 요소를 빼놓았을 리가 없다. 열차 칸 중 하나에서, 고기를 만들고 있다. 소 돼지를 키우고 도축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고기 그 자체가 자라난다. 살아 숨쉬는 동물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는 고기 덩어리가 적당한 환경조건을 맞춰주면 스스로 성장하는데, 그것을 잘라서 요리하는 것. 그리고 당연히도, 그 고기의 원천을 쥐는 것이 열차 속 사회에서 지배자로서 있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고기를 주는 자의 말을 들을지어다. 열차의 사회 체제는 고기로 인하여 유지되는데, 고기는 돈과 달리 사회적 약속으로 성립된 가치체계이기 이전에 물리적 생존 즉 목숨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회가 흔들리고 뒤집히게 되는 계기에도 역시 그 고기가 있다.
사회라는 기능에 있어서 고기의 막강함이 SF 작품 속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근 한국에서 격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중현상이 그렇듯 팩트에서 크게 벗어난 과장된 불안과 공포가 많이 붙어있어서 어떤 부분은 상당히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목숨을 보장받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결정을 내리는 구조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 쇠고기 개방이 광우병 담론으로 번질 때, 그것에 대해서 현 정부가 자신들을 대선과 총선 승리로 이끌어주었던 돈 중심의 세계관을 고수하자 공포는 분노로 타올랐다. 분배고 상식이고 복지고 뭐고 돈 벌게 해주겠다는 논리 앞에서 접었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목숨에 대한 위협을 느끼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높은 쇠고기 가격, 무역 위축 등으로 인해서 그 소중하다는 돈에 대한 불이익을 감내하고라도 말이다. 보다 큰 이익을 위해서(목숨부지보다 큰 이익이 있을까) 눈앞의 이익을 양보하는 사회적 합의를 자발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는 셈이다.
재미있게도, 이런 사고방식이야 말로 선진 민주주의 사회가 움직이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살인정권 물러나라 또는 선거권 확보 정도의 형식 민주주의로 모든 것을 이뤄냈다는 듯 여기다가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지 않는 듯 보이자 불만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자신들의 집합적 이득을 위해 정책의 큰 방향을 잡아내는 실질 민주주의 말이다. 만약 지금의 이 분노의 열기가 과장된 광우병의 공포에 빠져서 유사 종교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라는 선진 민주주의의 절실한 필요성에 대한 공감으로 방향을 잡아나갈 수만 있다면, 이번 고기 파동은 대단한 사회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원외 법안 상정 제도, 다양성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언론 정책 등 보다 강력한 대변 시스템이 한 쪽이고, 정책적 큰 사안들이 정말로 일상생활의 가장 소중한 차원들로 금방 파고든다는 정치성이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사고방식 속에 갖추어지는 문화적 인식이 다른 한 쪽이다. 이 복잡해진 현대사회 속에서라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선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이 간단한 진리를 조금이라도 더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면, 2008년의 이 난리는 가히 ‘고기 민주주의’라고 칭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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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 Copyleft 2008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그다지 큰 희망은 없습니다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네요. 세상엔 지난총선에서 야권이 얻은 표만해도 지나치게 많이 가져간 거라고 보는 사람이 꽤 있지요. 현 여권이 싫다고 다른 쪽이 더 잘하지 않는다면서 투표따위 집어치우겠다는 부류도 많을 것 같습니다 -_-;; 너무 비관적일까요?
개인적으로 보고싶은 건 2010년에 있을 지방선거 입니다. 이명박식 돈벌어주기 선전이 그 때까지 제대로 먹힐지..
부르투스가 나는 시이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시이저와의 사적인 은원보다 공공성을 상위에 놓았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시이저가 로마시민에게 베푼 개인적인 은혜들을 상기시켰습니다.
로마시민이 부르투스 대신 안토니우스를 선택했을 때 공화정은 사라지고 제정이 성립됩니다.
황우석, 이명박, 이건희 모두 사적 이익의 합을 공공성으로 가장하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나 제정은 빵과 서커스를 계속해서 제공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빵과 서커스라도 제대로 제공할 능력이 있을까요?
공허한 약속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심연이 문을 열겠지요.
!@#… 지나가던이님/ 그 정도 비관은, 현실적인 범주죠. 그러니까 야당이랍시고 무려 친박연대에 표를 던진거고…;;; 여튼 그래도 항상, 비관은 하더라도 희망은 잃지말자 주의자로 살아보자구요.
인형사님/ 말씀하셨듯 공공성을 사적 이익의 ‘합’이라고 선전하면 그건 순도 100%뻥, 즉 ‘공허한 약속’입니다. 각자 다른 사적 이익들을 조율해서 그 속에서 그 시점의 최대공약수를 찾아내는 합의가 공공성이죠. // 빵과 서커스 대신 ‘쇠고기’와 ‘대통령의 코스프레 쑈’를 제공하고 싶어하는 것 같더군요, 그 분은.
고기얘기가 아니라 설국열차 이야기인데요. 어쩨 2부로 들어가면서 이야기를 더 심오하게 이끌어 가려고 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라고 쓸려 했는데 다시 보니 작가가 바뀌셨군요-_-;
언제 고기나 같이…
!@#… 네이탐님/ 네, 사실상 같은 컨셉을 공유하는 별개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죠.
nomodem님/ 좋죠. 지구 반대편으로는 언제 오십니까? (핫핫)
“고기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참 맘에 든다능~ 그렇다능~ ㅋㅋㅋ
알고보니 “쇠고기를 키우는”이라는 발언을 한 MB도 사실은 설국열차를 읽었던것 아닐까요? ㅋㅋㅋ 그리고 보니 오늘 정말로 고기를 배양해내는 기술이 일단은 성공했다고 나오던데;;;
!@#… erte님/ 기본적으로 제가 ‘고기’라는 단어를 넣기를 좋아해서요… (이전의 ‘고기 저널리즘‘ 참조)
고기저널리즘 글은 비공개로 돌려놓으셨나봐요. 링크를 찍으니까 로그인창이 뜨네요;; ㅋㅋ 다음에 고기라도 같이 한번;; (지직지직)
!@#… erte님/ 링크수정했습니다;;; 고기 좋지요.
공공성이란 사적 이익간의 조율뿐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는 차원도 가지지요. 사익추구가 지나쳐 그런 공적 영역을 다 잡아먹으면, 모두 황제의 노예가 되겠지요.
김용철 변호사에게 의리없는 놈이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공화국은 아닌거죠.
그런데 그런 거라도 제대로 하려면 제국을 정복해야 하는데, 그러나 지금 갈리아를 정복하겠습니까? 브리타니아를 정복하겠습니까? 기껏 대운하를 정복하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하겠지요.
각설하고, 제가 불로그란 걸 처음 만들어 봤습니다. 아직 내용도 빈약하고, 저도 아직 개념을 다 잡지 못해 서투르지만, 한 번 왕림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http://puppetmstr.egloos.com/
!@#… 인형사님/ 전망하신대로, 이미 대운하 정복 프로젝트를 시작해버렸습니다(이름만 하천정비작업으로 바꿔서…). 공공성이나 연대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겠지만, 저는 우선은 한국사회는 “사적 이득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공성의 함양” 같은 완전 쌩기초부터 다져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 이상의 차원은 아직 한참… // 역시 둥지를 이글루스로 선택하셨군요 :-) RSS 등록하고 종종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고기 하면…[무극]이죠! 웬 뜬소리잡는 되다만 로맨스 판타지냐고 핀잔 먹고는 하지만 그 진상은 삼라만상의 근본은 고기라는 진리였던 것입니다. (사실 고기와 만두를 메세지로 보지 않으면 설명이 안되는 영화기는 하지만…;) 2MB가 좀더 빨리 그 영화의 진정성을 알아차렸다면 이런 사태가 오지 않았을 것을…!
!@#… 시바우치님/ 무극을 안봐서 모르겠지만, 삼라만상의 근본이 고기라는 건 애초부터 태고불변의 진리라능…;;;
뜻은 이해하지만 ‘고기 민주주의’라는 말은 거두시는게 나을 것입니다.
미래 지향적이지 않은 개념입니다.
고기라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에 멀고,
남성의 전유물이자 힘과 폭력의 상징, 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온 것입니다.
* 육식은 항상 ‘힘(strength)’과 연결된다. 고기의 붉은 피는 전통적으로 남성을 상징했다. 오랫동안 서양의 신화와 전통에서 붉은 고기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체력, 공격, 정열, 성욕’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한다.
– 제레미 레프킨, 《육식의 종말》참조
* 나아가 고기는 생명의 원기이자 정수(essence)를 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서양에서는 meat라는 단어로부터 ‘문제의 본질(meat of matter)’, ‘핵심질문(a meaty question)’, ‘보강하다(beef up)’ 따위의 관용어가 파생되기도 했다. 반면 식물은 ‘하찮은’ ‘수동적인’ ‘단조로운’, ‘활기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 캐럴 J. 아담스, 《육식의 성정치》참조
그리고 당장 모두 채식만 하라고 하지는 않지만,
채식인들이 오히려 건강하고 정력적이며 행복하고 즐거운 식사를 한다는 사실,
많은 유명인들 통해서도 알 수 있으니
육식 줄이거나 적게 하는 것을 염려하지는 마시라고..
!@#… 푸른여우님/ 바로 그런 연상작용 때문에 쓰는 겁니다. (물론, 비웃자는 의미가 아니라 역설적 뉘앙스의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