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후에 확장판으로 증보한 글.]
!@#… 정치에 대해서, 항상 심심하면 들리는 이야기가 바로 야권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반대세력으로만 보여서 항상 밀린다는 것이다. 그 세부 내역에서는 민주화 담론이 유통기한이 지났다, 다시 서민의 생활 속으로, 보다 선명하고 과격한 진보 표방 등 여러가지가 진단 및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뭐랄까… 큼지막한 정론은 넘치지만 전략으로서의 노하우는 없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던지는 떡밥, 12가지 담론전략 가이드.
!@#… 그러고보면, 예전에 알린스키 담론 전략이라는 것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담론싸움의 링 위에서 적을 때려눕히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싸움을 보고 승자의 담론을 같이 취해준다는 식의 합리적 사고를 가정한, 완전한 대의민주주의는 갈수록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매스미디어 발전의 흐름을 놓고 생각할 때, 미디어를 권력자가 전적으로 틀어쥐고 있었을 때는 일방향 프로파간다, 미디어 통로가 상호 견제가 가능할 정도로 좀 더 확장되었을 때 대의 토론의 시대가 부각된 바 있다. 하지만 미디어 통로가 아예 확 넓어진 지금은 시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모습을 취하며 그들의 의식을 은근히 형성하는, 좀 더 복잡한 전략을 필요로 한다. 특히 진보진영의 방향성을 표방하는 언론매체들의 역할이 지대하다.
여하튼. 그런 식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capcold류 12가지 전략을 소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당부분은 이전부터 계속 다른 포스팅에서 해오던 이야기.
1. 사람들은 자신이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믿기를 원한다.
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엄청난 능력이다. 나쁜 이야기나 격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싫어하고, 중립적이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잘못했어”라고 누가 삿대질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성찰을 하게 만들되, 계속 가능성을 짚어줘야 겨우 통할락 말락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악의 방식은, “내가 그때 뭐랬어”, 즉 “내가 그때 어쩌자고 했는데 안따라서 꼴좋다 이것들아” 라는 접근이다. 그건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임을 만들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입바른 이야기로 자기 스트레스를 푸는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분명히 맞는 말을 했는데 왜 상대를 설득할 수는 없는가” 자문해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대답이다.
2. 그들의 욕망을 내 방향성에 이어붙여라.
대세가 뉴타운을 원한다면, “그래 뉴타운하자, 그런데 이왕 잘살아보자는 것, 생태그린자치커뮤니티뉴타운으로 가자”라고 한 술 더 떠주는 것이다. 아이가 싫어하는 시금치를 먹이기 위해서라면, 시금치피자, 시금치버거를 만드는 접근이 필요하다. 욕망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며 금욕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희생적 지사정신에 빠진 활동가들이 빠질 수 있는 너무나 흔한 에러다.
3. 이상향은 제시하되 혁명을 부르짖지 말아야 한다.
무려 혁명을 해서 모든 것을 뒤집어야 꿈꿀 수 있는 세상이라면, 너무 거리감이 멀어서 공감을 살 수가 없다. 게다가 대결적 싸움꾼, 실행력 없는 바보로 낙인 찍힐 뿐이다. 허구한 날 신자유주의가 나쁘고 사이비좌파 말고 진짜 좌파혁명으로 뒤집자고 해봐야 바보취급만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상향은 저 방향으로 가면 있고, 그것을 위해 지금 내딛을 수 있는 작은 첫걸음을 강조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안정에 대한 지향은 있다. 그것을 흔들지 않으면서, 개선을 이야기하고 최종 기착점을 이야기하는 ‘문칸에 발 집어넣기(foot-in-the-door)’ 기법이 필요하다.
4. 논의의 핵심을 개인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이야기하든, 사람들은 어떤 논의라 할지라도 결국 자신의 개인적 상황에 맞추어 수용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설득을 하려고 하는 사람 각 개인의 생활과 이해관계의 시각에서 논의를 설계해줄 때 비로소 의도한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대’라는 것은 각종 아름다운 도덕적 의의를 벗겨놓고 말하자면 당신이 극빈층만 아니면 세금 더 내라는 소리이며, 각 개인은 그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그럴 때 국가가 무언가를 당신에게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회에 투자를 한다는 식으로 개념을 잡아놓는 것이 바로 그런 개인화다.
5. 당신들과 가까운데, 기득권에서 멀지 않음을 과시하라.
설득력은 적당한 가까움, 적당한 거리감에서 나온다. 특히 사회/정치적 세력의 설득력이라면, 이 세력에 대한 내 지지가 무언가 실질적 결과를, 그것도 그냥 내가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효능감에서 나온다. 따라서 우리랑 연관이 없다고 보여도 안되고, 우리랑 어차피 별 다를 바도 없다고 여겨지도 끝이다. 실제로 큰 일을 해낼 만큼 우리보다 유능한데, 우리와 가깝게 함께할 세력이라는 식으로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6. 경쟁자의 논리에 맞서기보다는, 포괄하고 넘어서라.
강고한 경쟁자의 논리에 맞서는 도전자의 이미지는 기반이 전무한 곳에서 처음 싹을 틔울 때에만 유용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선택’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이고, 그것은 경쟁자의 논리의 여러 부분들을 충분히 흡수하고도 그 이상의 것을 이룩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자본주의의 모습들을 상당부분 그대로 계승할지라도 인간적인 모습이 될 수 있는 상위 구조로서의 사회시스템을 역설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7. 떡밥은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중간에 떡밥거리가 떨어지면, 이슈는 생각보다 엄청난 속도로 망각의 영역으로 직행한다. 게다가 상대가 만약 밀리고 있다면 더욱 필사적으로 이쪽 떡밥을 꺾을 더 강력한 무언가를 터트리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큰 사건이나 펑펑 터트리면 곤란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 여러가지 함의를 계속 던져주고, 여러 사안들을 하나의 일관된 상위 프레임으로 묶어서 항상 같은 건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내야 한다.
8.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참여를 할 만한 구실을 만들어라.
이건 담론전략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영전략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지사적 열정 말고, 도덕 말고, 구체적으로 참여할 구실을 걸어라. 돈이 없다면(보통 없다) 당에서의 명예지분에 대한 구체적 메리트를 주며 정식 프로젝트를 의뢰하라. 일반 참여보다 공모전을 하라. 전문가가 그들의 전문성을 다른 곳이 아니라 여기 할애할 수 있도록, 하다못해 마누라/남편을 납득시킬만한 건더기를 제공해줘라. 자봉단 말고 전문 인력은 그렇게 해야 비로소 이쪽 진영에 끌어들일 수 있고, 그들이 더욱 훌륭한 구체적인 담론전략들을 만들고 수행해 줄 것이다.
9. 선택지를 충분히 주되, 결국 하나로 귀결되도록 하라.
사람들은 현실이야 어떻든 자신들이 주체적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 심지어 얼떨결에 멍청한 선택을 했더라도 나중에 자신만의 주체적인 이유를 찾아낸다. 이게 최고야 이걸 찍어 몰아세우면 오히려 역효과인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데도 결국 이쪽을 택하게 만들려면,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고는 그 선택지들이 모두 이쪽 방향으로 오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같은 벌건 국물에 두부를 넣어 순두부로 팔고 쇠고기 찢어넣어 육개장으로 팔고 소시지 잘라넣어 부대찌게로 파는 학교식당을 생각해보라.
10. 설전의 진짜 타겟은 눈앞의 적들이 아니라, 구경꾼들이다.
설전에서 ‘승리’해서 상대를 감복시키는 것은 뚫어질듯한 눈빛으로 정말로 책을 뚫어버리는 것 만큼이나 환상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이 이롭다. 그들은 논쟁에서 지더라도 설득당하지 않을 다른 장치들이 수두룩하다 – 정신승리, 지지집단, 편의적 망각 등. 중요한 것은 설전의 과정에서 ‘승패’ 자체에 직접 개입하지 않은 구경꾼들에게 논리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뇌리 속에 최대한 많이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11. ‘멋지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란 참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멋진 신세계에 대한 비전 자체보다, 그 비전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설득될 것인지 여부를 종종 결정하며 자신의 입장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간주하고자 한다(사실 꽤 유용한 인지전략이다). 즉 논리의 내용 만큼이나, 역할모델이 매우 중요하다. 즉 닮고 싶은 멋진 역할모델은 매우 중요하다. 잘산다는 것의 잣대를 재정의하면서라도, 이쪽이 행복하고 잘살고 폼난다는 것을 과시하라. 즐겁고 재미있는 모습을 떠벌려라. 구리구리한 역경 속의 근성 운동가는 아무런 동경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12. 행동강령은 대상별로, 구체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정치가에게는 권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제안을, 전문가들에게는 전문가로서 착수할 분석을 위한 데이터와 이론들을, 홍보활동가에게는 폭넓고 깊은 여론을 조성할 수 있도록 풍부하고 정확한 정보와 캠페인 전략을, 시민 일반들에게는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활기와 재미를 갖춘 참여행위 방법론을 공급하라. 그리고 최대한 그것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 양상과 행위로 나누어 참여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모든 논설의 끝에는 “그래서 나보고 내일부터 당장 어쩌라는 말인가”에 대한 대답이 주어져야 한다.
!@#… 여기서 나올법한 질문은 이런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것. 적어도 보수를 자칭하는 수구기득권 세력권들은 이 12가지 담론전략과 매우 비슷한 내용을 아주 뭐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하고 무위자연으로 체화하고 있다. 덕분에 자기 이해관계에 사실은 배치되더라도 잘만 그들을 지지하는 ‘서민’들이 부지기수다. 진보 진영도 그만 좀 발릴 필요가 있겠지.
PS. 아마 항목마다 실제 사례 한 두개씩 끼워넣고, 배경이 되는 심리학/언론학/사회학 이론 확장슬롯을 갖춰주고, 내용에 관련된 짧은 일화 만화를 첨가하면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지도. 캡콜닷넷보다 좀 더 보편적인 지면에서 그런 버전을 만들어달라고 원고 의뢰가 들어오면 한번 생각해보겠음. (…아니 당장 이 글조차도 별로 퍼질 것 같지 않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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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capcold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 http://bit.ly/19XFeF 진보 진영이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요소, 물론 다른 취약한 분야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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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pcold.net/blog/2382 사람 낚는 법에 대해 고민하는(정작 스스로는 사람을 낚지 못하시는 것 같지만… =_=) 캡콜드님의 신작 포스팅. 다들 이 글을 참고삼아 자신만의 사람 낚는 법을 개발해 우리 편을 양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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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12:30 pm !@#… 이전에 야심차게 올리고 미미한 관심으로 환대 받은 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에 대한 A/S, 약간의 짧은 후속 FAQ. Q: 어디서 본 내용들 같은데? A: 알린스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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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을 위한 12가지 담론 전략 가이드 http://t.co/lWEnqmx via @capcold 꼭 진보진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젼을 만들고 구성원을 설득하는 방법으로서도 유념해야하는 전략가이드 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