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합본호 칼럼으로 죽음을 소재로 내용을 풀어가는 것도 참 악취미인 듯.
죽음에 관한 만화들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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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한x덕춘을 밀어보자(…그럴리가). 아, 이 작품으로 명실상부 주류 인기작가로 입지를 굳히고 있으니, 여세를 몰아 ‘안녕잠수함’도 되살려달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자(라고 말로 해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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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cold가 흔히 ‘지사정신‘이라고 칭하고 항상 비판하는 것은, 약간 풀어 말하자면 1) 큰 당위에 대한 희생적 헌신의 자세, 2) 그리고 타인들도 그 성향에 당연히 동참해야만 한다는 인식 등 두 가지의 결연한 결합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극악한 스팀팩으로, 당장은 열렬하게 몰입해서 세 배 더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후유증이 상당하다. 한눈에 봐도 자칫하면 “남에게 헌신 강요” 루트를 타거나, 최소한 “말이 안통하는 소통의 블랙홀”로 흘러가기 쉽잖아. 즉 논리를 희생하더라도 돌파력이 필요한 혁명전야 위급상황에서는 나름의 역할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된 사회의 평상 모드에서는 백해무익(혹은 99해1익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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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훈훈한 뉴스, 세상에는 아주 가끔씩은 인과응보도 있기는 하다. 황우석 줄기세포 조작 사건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강성근 교수가 재임용 탈락.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핵심역할 한 강성근 교수 재임용 탈락
[경향신문 2007-06-07 임지선기자]
!@#… 누구는 아무 문제없이 자기 다니던 대학으로 돌아가서 재임용되고, 어떤 방송사는 준 공범질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막대한 경상 이익을 구가하고, 누구는 내가 틀렸으면 배짼다고 설레발 잔뜩 쳐놓고는 버로우 타서 DJ질로 잘나가고 하는 심히 불만스러운 추후 귀결로 넘치는 이 사건에 있어서, 간만에 좀 말이 되는 결과가 하나쯤 발생.
!@#… 사실 아카데미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뉴스를 바라보는 자세는 다소 양가적일 수 밖에. 교수직은 철밥통이라는 희망에 개인적 이익의 기대를 걸면서도,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당위를 주장해야 하니까. 하지만 역시, 지금으로써는 (그리고 희망하건데, 앞으로도 주욱) 뒤쪽을 훨씬 더 많이 지지한다. 실력이 워낙 없어서건 의욕이 없어서건 학문적 범죄를 저질러서건, 학과에 학문으로서든 교육/행정 실적으로서든 구체적으로 공헌하지 못하면 잘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그런 것은 탄압도 뭣도 아니라 최소한의 인과응보다. 김민수 교수 사건 당시처럼 인맥 같은 사적 관계 때문에 자르려고 하는 폐단이야 물론 막아내야 하지만, 그 경우에도 결국 김민수 교수의 정당성을 지지하게 만들어준 판단기준은 바로 그가 강의에서도 연구에서도 학과 발전 기여에서도 실제 공헌이 넘쳐났다는 팩트다. 여튼, 기사 속 ‘수의대 한 교수’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수의대 자체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본부에서 탈락 결정이 난 게 오히려 유감”인 것이다.
!@#… 여튼, 하나 다운, 수십 아직 대기중.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소박한 꿈은 현실에서는 심히 험난하도다.
— Copyleft 2007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올해도 예외 없는 한국 사법체계 최대의 이벤트, 광복절특사. 작년에 눈치때문에 넘어갔던 안희정 어쩌고 하는 노무현 측근들의 사면 때문에 참 시끄럽다. 사실 무슨 고스톱판에서 개평주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무슨 황제나 신도 아니면서 무슨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한 해에 2-3회 정도 꼬박꼬박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다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에 의아해하던 터. 이 사회의 ‘원인과 결과’의 책임관계, 즉 법적 정의를 과감히 무효화할 수 있는 궁극의 치트 코드.
노무현의 심복들이 풀려나게 되자, 한나라당은 노발대발. 물론 자기네 팀도 꽤 에이스들이 풀려나게 되었으나 (그 정도 거래 균형도 안해놨을리가 없지), 여하튼 법적 정의를 외치며 규탄. 재계는 재벌 총수들이 거의 포함이 안되어 있다고 항의. 수많은 일반인들은 이놈의 세상, 권력 있는 것들은 다들 쫌만 있으면 풀려나는구나 하면서 다 노무현 탓이라며 불만.
그런데, 한나라당은 작년에 똑같은 규탄을 똑같은 시점에서 똑같은 논리로 했었지, 아마. 그런데 정작 특별사면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법안은 1년 동안 그냥 처리도 안하고 놀고 있었다. 하기야 특별 사면 대상은 생계형 서민 범죄와 경제발전에 이바지할 기업인이어야 한다고 주장, 상호배타적인 대척점에 있는 두 대상(기업인이 들어가면 권력형 뇌물비리나 대형 탈세 사건으로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니)을 하나의 논리로 감싸안는 궤변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자들이니 뭐 할 말 다했다. 재계 역시 사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논리가 아니라, 당장 활동해야할 자기네 대장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할 뿐이고. 일반인들은? 솔직히 애초부터 사면권에 대해서 굳이 공개적으로 여론의 중심의제로 들고 오지도 않는다. 뉴스에 리플 두어개씩 다는 거라면 모를까. 아니 사실 한 이틀쯤 그것가지고 이야기가 되었으려나, 지금은 이미 다른 사안들에 모두 묻혀버렸다. 된장녀 논쟁에 쏟는 정성의 100분의 1만이라도 쏟는다면 우리사회 좋은사회.
!@#… 사람들은 법적 정의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상식과 대사면이 수십년간 매년 대규모로 여전히 마구 남발되고 있다는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정말 사람들이 갈망한다면 대사면을 모두들 진지하게 반대해서 결국 법적 정의를 지켜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와중에, 오캄의 면도날 원칙에 의거, 가장 간단명료한 가설에 도달. 바로 첫번째 전제를 기각하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법적 정의와 기회의 균등 따위,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법적 정의에 대해서 애초에 크게 신경쓰지 않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서 법적 정의의 구멍을 자신들만은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거나. 사면 쑈에 대해서 불만은 툴툴거리지만 그것을 제한하고 막기 위한 진짜 노력은 안하는 이유다. 남들이 모두 원칙에 따라서 처분되기에 나에게 ‘예측가능’ 하면 좋기야 하겠지만, 나는 그들을 후딱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팀은 모두 발로 축구하는데 나만 손으로 들고 뛰어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정적 사회정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굉장히 갑갑한 것이고, 마구 나아가고 싶은 내 행보에는 방해가 될 여지가 크기 마련이다.
!@#… 그렇다면 대사면은 이 사회는 그런 식의 야매가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상징, 즉 (자신에게 유리한) 야매를 동경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마음의 위안이다. 무려 ‘사회 대통합’이니 하는 이야기가 따듯하고 인간적이고 결국 긍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도록 설계되어 있는 이 사회의 성향 자체가 이미 그쪽이니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 사회 대통합을 위한 명절 특별 감동 쑈가 아닌, 정당한 죄과를 치룰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는 상식적인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가 되려면 얼마나 더 필요할지 가히 궁금할 따름이다. 뭐 그런 작은 푸념.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