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2

!@#… 제대로 들어가면 아싸리 길고 난해하고 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사변이 될 것 같은 이야기들은, 거두절미하고 토막으로 우선 펼쳐버리는 것이 낫다. 아직도 여전히 촛불 정국 관련, 광장과 귀찮음과 전의경들에 대해서.

!@#… 토막 하나. 요새 광장 위에서 토론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멋진 이야기가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는데, 시민발언대에서 100분토론 공개녹화를 하자는 기계적인 주장(게다가 실제로 그런 류의 이벤트는 이미 진행중)이 아니라면 더 세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위 현장으로서의 물리적 광장과 공론장으로서의 개념적 광장을 각각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가 일치하면 물론 좋다. 하지만 공론장에 필요한 합리적 이성이나 다른 견해에 대한 완전한 개방은, 시위 현장을 애초에 가능하게 만들어준 강력한 하나의 메시지(2008년 촛불시위라면, “이명박 정부를 못믿겠다”)와 그것을 강행시키기 위한 감성적 어필과 상충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성찰이 가능한 것은 개념적 광장이다. 즉 성찰이 있는 광장이라는 것은 20만 군중이 모인 백분토론이 아니라, 시위 현장에서의 경험을 시위 현장 바깥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토론하고 곱씹으면서 성찰을 하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시위 현장에서 에너지를 덜 소모해야 할 수도 있다. 낮에는 충실한 회사원, 밤에는 격렬한 시위대인 것도 좋겠지만, 좀 덜 격렬한 시위대여도 좋으니 그 에너지로 낮에도 회사 동료들, 친구들, 가족들과 조금씩이나마 더 이야기를 해보는 쪽이 더 낫다. 시위현장이라는 특수 경험 자체에 몰입하기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 세계 일반에서 성찰을 해보고 소통의 광장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물론, 적지 않은 경우 그것이 어떤 열혈 시위 참여보다도 더 고된 과정이다. 그러나 그런 성찰과 토론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 비로소, 다시금 시위 현장에 나섰을 때도 더 합리적이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부르짖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제도를 추진하는 의원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그리고 아직도 30%에 육박하는 한나라당 지지율도 좀 상식적으로 내려주고.

!@#… 토막 둘. 시위에서 capcold는 이번 시국을 겪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수많은 인원이 광장에 모여 힘을 발휘하는 것의 통쾌함에 기뻐하기보다는, 고작 그거 하나 바꾸기 위해서 이 정도로 쌩난리를 피워야 하는 것의 귀찮음을 알게 되기를 기원한다. 또다시 문제가 생기면 다시 광장에 서리라 다짐하기보다, 그런 문제를 광장 따위(!) 활용하지 않고도 해결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방지할 수 있는 일상화된 시스템을 세워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를 바란다.

여러모로, 상식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는 것은 무척 귀찮은 일이다. 덤으로, 일어난 상태에서 상식을 유지하기란 어렵기까지 하다. 물리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머릿수를 통한 힘모으기’의 경우라도 마찬가지고(한나라당 소속 권력자라는 이유만으로, 청와대와 내각의 실정을 지방단체장인 서울시장에게 묻겠다는 최근의 무척 동의하기 어려운 주민소환 운동이라든지). 귀찮음을 알기에 민주주의 시스템을 정비해야함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이번 시국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교훈이 되어주어야하지 않을까.

!@#… 토막 셋. 폭력진압이 발생하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 전의경도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죽을 맛이라서 그리 되었다는 것. 그리고는 더 철저하게 인권교육을 시켜서 뭘 방지하겠단다. 그런데 장비고 매뉴얼이고 교육이고 간에, 전의경들의 노동권은 어디로 갔나 모르겠다. 잠 좀 재우고, 밥 좀 제대로 먹이고, 교대근무로 출동시켜서 적당한 휴식을 취하게 하란 말이다. 그것을 위해, 줄어든 인력으로도 대응이 가능한 효과적인 전략배치를 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불상사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인권의식 부족은 시위에 대한 폭력 어쩌고가 아니라 당장 지휘관들의 자기네 인력에 대한 인권의식의 부족이고, 효과적인 시위 관리 실패는 전략적 사고를 하기보다는 초저가 노동력이라고 마구 혹사시키고 낭비하는 관행에서 온다. 뭐 그것 말고도 지휘관들의 경찰 권한과 의무에 대한 법리적 이해의 부족이라든지, 모 청와대 인사가 뜨면 갑자기 열심히 내달린다든지 하는 다른 문제들도 있지만, 이하 생략.

(약간 추가) PS. 이럴수가, 딱 정리해보고 싶었던 건데, 이미 나와버렸다! (센스쟁이 기자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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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thoughts on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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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본적으로는, 이전에 토막으로 던진 이야기를 확장시킨 것(역시나, 연재를 한다는 것은 글을 쓰기 위한 […]

Comments


  1. 세번째 토막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군요. 전경이 가장 박탈감을 느낀다는 주장도 있지요. ‘실전’은 계속 치르는데다 선뜻 편들어주는 사람도 흔하지 않고요.

  2. 이번에 커뮤니티를 돌아보면서, 가장 수준이 높은 대응을 보여주는게 디씨인사이드 갤러리라는 사실에 절망중입니다…

    막말과 욕설에 가려진 ‘진정한 의견의 다양성표출과 대화’가 유일하게 이뤄지고 있는듯…

  3. 공감하기 버튼 없습니까? ㅎㅎ
    하고 싶은 말은 비슷한데 캡콜님이 쓰시니 멋지고
    제가 끄적거리면 제가 보기도 한심하군요.

  4. !@#… 지나가던이님/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전의경의 고통을 시위대 vs 전의경의 구도에서만 찾으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군대에서 삽질하는 고통이 고작 단단한 땅 때문이겠습니까… 쓸데없이 산을 들어 옮기라고 명령하는 멍청이들의 문제가 더 크지.

    nomodem님/ 막말과 욕설에 가려졌다기보다, 그 동네는 막말과 욕설이 있기에 의견과 다양성이 표출될 수 있는 특이한 동네죠. 여튼, 절망할만 합니다 그런 건. OTL

    ullll님/ 그건 제 블로그가 디자인이 워낙 아름다워서 그렇습니다. (핫핫)

  5. 물론, 물리적인 시위의 장을 만들지 않고 제도나 시스템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고, 최상의 대안이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민주주의는 선거 날에만 존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아무리 현명한 지도자를 뽑는다 할지라도 민의를 배반하는 일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소환제 등의 ‘사후시스템’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도는 최대한 갖추어야겠지만, (피곤하더라도) 물리적 시위의 장은 반드시 필요하고, 또 기회와 공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관념적 공공장’도 필요하겠지요. 제 부족한 소견으로는 캡콜드님께서 ‘관념적 공론장’을 ‘물리적 공론장’을 기계적으로 분할하고 둘 사이를 위계화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코 모욕적인 의도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나치게 관념화된 지식인들(흔히 ‘살롱좌파’라 불리는)의 태도는 기묘한 무력증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해라면 죄송합니다.)

    저는 ‘관념의 장’과 ‘물리적 장’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관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둘 모두 필요하며,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87년 6.10항쟁이나 최근 촛불시위를 위해 광장에 선 사람들이 느끼는 ‘디오니소스적 경험’은 머리보다는 몸으로 느끼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몸’만으로 행동해서는 안 되겠지만, 광장에 선 시위대가 머리 없이 몸만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아마도) 책상에서 글을 쓰고 계신 캡콜드님도 머리로만 존재하지 않듯이요.

    생각거리가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6.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여쭤 봅니다.

    1. 국민소환 등을 이루려면 현 국회 구성으로는 불가능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헌의회를 소집하거나 현 국회 구성으로 국민소환제 등의 시스템을 이루는 일이 일상의 정치로 가능한가요? 거리의 정치하고도 백만이 넘는 시위대가 물경 몇 달을 달려야만 되는 거 아닌가요?

    2. 주민소환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부분도 과거 노무현 탄핵시 적용된 레벨의 잣대를 각 지역의 (한나라당) 단체장과 의회의원들에게 적용하면 그들은 거의 탄핵(?)되어 싸지 않나요? 오히려 http://xenga.tistory.com/?page=2에서 이야기된 것 처럼 현재 상황의 주도권을 사법부에게 넘기게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라 봅니다.

  7. !@#… 아큐라님/ 1. 백만 시위대의 몇달간의 거리 정치를 특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정말로 국민소환제 도입과 그것을 위한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것이어야 애초에 의미가 있죠. 지금 단계에서는 우선 그런 것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 조차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합의를 본 후, 어느 수위에서 실행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국회라는 제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우선 최대한 진행하고, 그 뒤 모자란 부분을 거리에 나와서 강제하는 것이어야죠. 아무런 합의도 토론도 없이 이왕 거리에 나온 김에 그냥 끝까지 밀어붙이자는 식으로는 실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적습니다. // 2. 바로 그 때 노무현 탄핵시도를 위해 적용된 레벨이 법적 기준에서 무척 문제가 많았기에, 결국 법원에서 스톱시켰습니다. 직접(!)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고, 직접 쇠고기 협상에 참가하지 않은 단체장들을 도대체 무슨 법적으로 타당한 명분으로 지금 소환하겠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다른생각님/ 애초에 Oeffentlichkeit라는 용어가 public sphere라는 영어용어를 거쳐 한국에 들어오며 뉘앙스가 이상해져서 그런 건데, (관념적 공론장과 물리적 공론장이 아니라) 공론장이라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관념입니다. 즉 살롱이든 시청앞 광장이든 어디든, 그 물리적 공간 자체가 공론장이 아니라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소통행위가 곧 공론장이라는 거죠(혹은 소통행위 +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그 물리적 공간을 통합해서 칭하거나). 저는 시위라는 물리적 실체를 반대하지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위현장이라는 ‘물리적 광장’은 공론장이라는 ‘개념적 광장’을 실현하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죠. 혹은 더 간단하게, 물대포 맞으면서 개방적 토론을 하고 있기는 무척 힘들다, 그런 이야기 되겠습니다. 굳이 그럴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경험을 좀 더 토론을 생활의 여러 장면으로 확대하는 수단으로 쓰자, 라는 제안입니다.

    nomodem님/ 제가 확인하기도 전에 삭제당했군요. -_-;

  8. 이명박이 냄비를 계속 끓게 해주고 있다니깐. 대한민국 대중심리를 너무 잘 꿰고 있는…

  9. !@#… 우유차님/ 저도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이, 사진 찍히기 그렇게 좋아해서 간간히 코스프레도 하고 뭐 먹을 때마다 폼잡고 인증샷 쎄우는 분이 어째서 그렇게 비주얼이라는 요소를 모르는지… 사실 컨테이너 자체가 특별히 새롭다거나 놀라운 건 아니지만, 그걸 광화문 한복판 이순신 동상 앞에 세워놨을 때 만들어지는 강렬한 시각적 상징이 어떻게 될지 전혀 계산을 안한 것 같아요 (교통난은 차치하고서라도). 차라리 청와대 대문을 컨테이너로 몰래 봉쇄하는 게 나았을 듯. (핫핫)

    hyol/ 오오, 불도저가 아니라 브루스타!

  10. ‘공론장은 관념적’이라는 캡콜드님의 주장은 절반만 옳습니다. 번역의 문제와 상관 없이, ‘공론장’을 장소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철학적 개념이기에, 당연히 관념적이지요. 하지만 합의에 이르는 과정까지 관념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공론장’은 아마 하버마스에서 빌어오신 듯한데, 하버마스는 부르주아들의 찻집 모임 뿐 아니라, 프랑스혁명과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까지 논의에 포함시킵니다. 제가 앞의 캡콜드님 글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웠던 것은, ‘시위의 광장'(님의 말을 빌면 “쌩난리”)과 ‘담론의 장’을 기계적으로 나눈 후 후자(‘편한 방식’)에 우월적 권위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광장에서 물대포를 맞고 선 사람들이 (집에서 자판 두드리는) ‘편안함’을 몰라서 그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론장의 조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대화상황에서의 ‘동등한 지위’와 ‘강압적인 힘의 배제’ 아닙니까? 시위대는 광장에 (대단히 불편하게) 서기 전 이미 수개월간 정부에게 부단히 대화의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동등한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강압적인 힘’을 사용한 것은 정부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공론장’의 계몽을 받아야 할 대상은 시위대가 아니라 정부고, 지금 시위대는 정확히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장에 나서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시위대가 하고 있는 일이 (관념적) ‘공론장’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현재의 시위대가 캡콜드님처럼 ‘편한’ 방식을 택했다면 정부는 그 같잖은 ‘소통’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을 거고, ‘공론장’의 기회는 더 멀리 사라졌을 겁니다.

    제가 캡콜드님의 글에서 발견한 또 다른 오류는 시민사회를 ‘기능’별로 이분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광장에서 물대포를 맞는 사람과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별개가 아니고, 이 두 가지 일이 분리된 것도 아닙니다. 지금 광장에 선 시위대들이 집에 돌아가서는 가족들이나 인터넷의 벗들과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이런 시위대에게 ‘소통의 장’을 말하는 캡콜드님의 글이 뜬금 없이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에는 ‘시위대’와 ‘토론자’의 두 그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위대/토론자’와 ‘토론자’ 두 그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살롱좌파’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편한 선택을 합리화하려는 노력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의 선택이 더 영리하거나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편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시위대에 가져야 할 것은 우월감이 아니라 부채의식입니다. 왜냐고요? 과거에 광장에서 피를 흘리며 경찰과 맞섰던 시위대가 아니었다면, 지금 ‘편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그다지 편하게 글을 쓰고 있지 못할 테니까요.

    ———————–

    제 표현이 과격했다면 용서하십시오. 블로그가 사적인 특성이 강한 공간이다보니 방문자들이 험한 이야기를 꺼내기보다 ‘덕담’을 던지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저는 캡콜드님이 좋은 글을 써 오신 훌륭한 블로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작가주의’ 관점에서 보면 위의 글에 대한 제 비판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팬의 문제제기로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건필하십시오.

  11. !@#… 다른생각님/ 1) 누차 말하지만, 저는 시위를 부정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소통은 권력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라든지 하는 이야기도 이전 글들에서 이미 반복해서 이야기해온 바입니다. 자판 두드리는 편안함을 운운하시지만, 시위 참가하겠다고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지 않는 정도는 감안해주십사 하고. 요새 일각에서 나오듯 시위 현장 자체에서 토론 기능을 바라는 요구가 무리라는 이야기이며(정운천 장관이 나타났는데도 무려 ‘주최측’에서 발언권을 거절시켰을 정도니), 애초에 발아점이 된, 링크시킨 글들의 맥락에서 같이 참조해주시길.
    2) 그리고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나온 것의 정당성과 별개로, 처음부터 시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더 낫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애초부터, 시위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시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시위를 안해도 말이 되게 굴러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월함 같은 개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시위를 하니까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시위라는 것의 진짜 목적에 더욱 충실하자는 이야기죠.
    3) 시민사회를 기능별로 이분화한 적 없습니다. 그러니까 시위현장의 경험을 공론장을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라고 한 것이죠.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시위대와 토론자 다 하시라니까요. 소위 ‘살롱좌파’를 찾아내기 위해서 읽지 마시고, 그냥 읽어주세요.

    PS. 이런 문제제기는 언제라도 대환영입니다. 본문과 합쳐지며 잘못 읽힐만한 부분이나 다른 읽기가 가능한 부분들을 세세히 보충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닙니까.

  12. [캡콜드는 “살롱좌파” 라는 호칭을 얻었다!]
    [기품이 30 올랐다.]
    [악명이 10 올랐다.]
    [“비밀살롱의 열쇠”를 얻었다!]

    …죄송하지만 너무나 쓰고 싶어서 그만…(퍽퍽)

  13. 저도 요즘 생각이 선거때 잘해야 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시민들이 이번 시위를 통해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또 모르겠네요; 에휴.

  14. !@#… 시바우치님/ 어째 레벨업에 따라 비주얼도 업그레이드해야할 것 같은…;;; 커다란 어깨라든지, 레이스 손목이라든지.

    erte님/ 정말이지, 또 모를 일이죠. 길거리에서 국민의 분노로 뭘 뒤집는 경험은 이미 한국사회에서는 충분히 차고 넘침에도, 아직도(!) 각 개인들의 민주주의의 제도적 측면에 대한 내실이 턱없이 부족한 것에 좀 더 문제의식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15. 최근들어 여기 ‘capcold님의 블로그님’에서 가끔씩
    “나는 왜 ‘그 전공’을 그만두었나”에 대한 좋은(?) 예들을 만나게 되는군요.

    혹시 기회가 되면 만화책도 빌려보고 하는 사이가 됐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조만간 M시를 떠납니다. 건강하시고, 계속 블로그에서 뵙죠.^^

  16. !@#… advantages님/ 뭐, 가끔은 버티다 보면 길이 나오기도 하죠. 여튼 계속 블로그에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