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리, 이상한 시대를 이상하다 이야기하기 [책속해설]

!@#… 막 따끈따끈하게 출간된, 경향신문의 4칸 시사만화 ‘장도리’의 2MB정권 스페셜판 단행본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의 책 속 해설로 들어간 글. 장도리라는 시리즈의 시대적 함의와 장점에 대한 이야기로, 책 자체의 면면에 대해서는 출판사 소개글(클릭) 참조. 여하튼 자신의 사회감각+유머감각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모든분들께 미리 암시를 걸겠다: 이 책을 읽으시오!

(* 주: 글에서 언급된 만화 게재 날짜는 온라인/오프라인 속성상 +1의 오차범위)

 

 

장도리, 이상한 시대를 이상하다 이야기하기

김낙호(만화연구가)

워싱턴포스트의 회장 도널드 그래험은 “저널리즘은 역사의 초벌 원고”라는 말로 언론의 동시대적, 그리고 이후 시대를 위한 역할을 명쾌하게 요약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초벌 원고의 매 페이지마다 모퉁이에 적어놓는, 신랄하고 솔직한 메모 한 줄이 있다. 폼을 잡으며 객관성을 가장하고 점잖음을 추구하는 본 원고와는 달리, 그 메모에는 사건에 대해서 동시대인들과 곧바로 함께 느껴볼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이 담긴다. 상황의 역설성, 저열함에 대한 조소, 그냥 순수한 기쁨과 응원, 혹은 답답함. 그 모든 것들이 짧고 직설적이며 종종 기발한 비유적 표현 속에서 세상사의 기록과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연결시켜준다. 그런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는 저널리즘의 필살기, 그것이 바로 시사만화다.

시사만화의 품질은 얼마나 독자들이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심경을 속시원하게 대신 풀어주는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농축된 한방으로 터져서 경탄과 해학적 재미를 주는가에 달려있다. 한국 시사만화의 역사 속에는 여러 차례 시사만화 장르 자체의 지평을 확장시킬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던 작품들이 등장한 순간이 있었다. 이도영 이래로 인물들의 노골적인 직설에 주안점을 두어 상황 자체의 손쉬운 이해에 신경 쓴 초기 한국 시사만화는, 과장된 비례의 캐리커쳐로 시각적 희화화를 극대화한 안석영의 만문만화를 만나며 새로운 지평에 도달했다. 김용환의 ‘코주부’ 등 히트작을 거치며 캐릭터성을 갖춘 시사 4칸 만화 장르가 확고해지고,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을 통해서 평범한 시민들의 시각에서 느끼는 소박한 비판의식, 기층의 정치판 모순에 대한 막연한 불만을 대변하는 정서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박재동의 ‘한겨레그림판’은 신문 시사만화가 다루는 의제의 폭을 주류 정치 소식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여러 모순들로 확장했으며, 형식적 틀 역시 한 칸 안에서 다시금 자유로운 칸 분할을 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이런 진화는 한일합병 목전의 어지러운 상황, 일제치하에서 근대문물의 일상화 속에 겪는 변화와 혼란, 해방과 독재정권의 와중에서 겪는 일상적 억압, 시민사회의 성장과 의제다변화 등 각각의 시대상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해내는 작품이 등장해서 독자들과 공명할 때마다 이루어지곤 했다.

그렇다면 이제 떠오를 질문은 뻔하다. 민주화 자체는 이루어졌으나 민주적 사고방식이 본질적인 생활 원칙으로 흡수되지는 않은 시대, 선진국을 자처하지만 개발도상국 특유의 개발만능주의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시대, 이념적 지평에 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진보와 보수가 왜곡된 민족주의의 중력장에서 사이좋게 허덕이고 있는 시대, 그 속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이 잘 사는 것에 대해 궁리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시대, 즉 바로 오늘이라는 이 이상한 시대에는 어떤 시사만화가 그 역할을 해줄 것인가. 온갖 복잡하고 이상한 모습들에 대해서 독자들과 공명하고, 그 도구로서 시사만화의 표현력과 사회적 역할의 지평을 넓혀줄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군의 후보들이 떠오르지만, 그 중 하나만을 꼽으라면 필자는 거리낌 없이 경향신문의 ‘장도리’를 이야기하겠다.

먼저 시사만화 일반에 대한 설명을 딱 한 가지만 더 하고 넘어가자. 시사만화의 여러 형식 가운데,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유독 한국에서만 오랜 기간 사랑을 받으며 주류화된 것이 바로 일일 연재 4칸 시사만화다. 보통 4칸 시사만화는 신문의 거의 뒷부분, 즉 다른 뉴스들을 다 읽은 뒤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된다. 그리고 4칸짜리 짧은 이야기 속에서, 하루의 이런 소식들을 접하게 된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보여주곤 한다. 연재되는 신문사에서 가장 일반적인 시민상이라고 생각할만한 주인공을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으로 놓고 재현하는 일종의 시사 일일연속극인 셈이다. 덕분에 독자들의 일상과 뉴스를 직접 연결시켜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는, 특정 사건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단칸 카툰형 시사만평보다 한 단계 유리하다. 하지만 작은 지면 안에 그런 이야기와 고정 캐릭터들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림체와 기타 시각연출이 간략해질 수 밖에 없고, 인물 캐리커쳐 위주의 희화적 과장이라는 시사만화 특유의 장기를 발휘하기가 상대적으로 힘들다.

이런 배경지식을 살짝 딛고 이야기하자면, 오늘날 ‘장도리’가 보여주는 미덕은 박재동 당시의 ‘한겨레그림판’에 비견할 수 있다. 당시 ‘한겨레그림판’이 단칸카툰 시사만화로서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도 그것에 부여된 여러 표현적, 내용적 고정 관념을 깨고 시대와 직접 호흡했듯, 장도리는 4칸 시사만화로서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일반시민의 시선에서 뉴스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이입이라는 4칸 시사만화 특유의 매력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캐릭터 상황극의 틀에 얽매이기보다는 종종 자유롭게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며 이상한 시대를 직면시켜준다.

‘장도리’는 표현 방식 측면에서 특히 세 가지 비법을 통해서 탁월한 풍자 능력을 보여주는데, 첫째는 리듬감 있는 지문의 사용이다. 그냥 적당히 불만 섞인 문장을 적당히 분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문이 그림의 전개과정과 같이 따라오면서 함께 재미있는 각운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2008년 11월 10일자의 “청수/만수/백수”라든지, 2008년 10월 29일자의 “개천에서/ 용이 나온건지/ /용가리가 나온건지” 의 독특한 리듬감은 여타 4칸 시사만화와 수준을 달리하는 독보적인 재미를 준다. 둘째는 시각적 패러디의 완성도다. 앞서 언급했듯 4칸 시사만화는 공간 관계상 표현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장도리’는 그 한계 안에서 빼어난 시각적 비유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약점을 없앤다. 2008년 11월 3일자에서 뭉크의 ‘절규’와 릭텐스틴의 ‘기쁨의 눈물’ 두 그림을 차용해서 시민들의 경악과 권력층의 기쁨을 대비시킨 것은 그 중 백미다. 그리고 셋째, 이전의 역사적 사례와 현재의 사건을 병렬함으로써 비슷한 어리석은 일이 반복됨을 이야기하는 기법을 즐겨 구사한다. 단순히 현재의 사건에 대한 즉각적 분노나 실망이 아니라 큰 시야를 가지게 해주면서도, 억지로 두 사건을 서로 직접 비교하여 편들기나 물타기로 쉽게 빠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2008년 12월 1일자의 역대 대통령 생선 비유에서 한국에서 대통령직을 하는 이들이 매번 쉽게 빠지고야 만 치부의 유구한 쳇바퀴를 떠올릴 때 얻는 카타르시스는 왜 장도리가 현재 연재중인 시사만화로서 가장 주목할 작품 가운데 하나인지 뚜렷한 방증이 되어준다.

하지만 표현기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담아내는 세상 소식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장도리’의 경우 퇴근 후 포장마차의 샐러리맨 3류 책사들이 좋아하는 정치판 궁정사극 촌평에 전념하지 않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 실제 시민들이 지니는 이해관계의 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올해의 시사만화상”에 선정된 바 있는 2008년 7월 26일자를 한번 살펴보자. 일본 유력인사의 독도 망언이 나올 때 다른 대다수의 시사만화들이 한국 국민의 민족주의적 감정을 대변하겠다는 듯이 그 인사를 모욕적으로 비난하기 바쁠 때, ‘장도리’는 이 사안을 소재로 삼되 다른 이야기를 한다. “독도는 우리 땅, 나머지는 내 땅”이라는 풍자를 통해서 실제 시민들의 당장의 이해관계에 더 가까운 부동산 소유 집중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즉 권력층의 알력을 설명함으로써 마치 정치판의 책사라도 되는 듯한 대리만족 혹은 구경꾼의 냉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담긴 사회상의 기록을 함으로써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권력층 가상현실이 아닌, 시민들의 현실 직시를 독려하는 당당한 즐거움인 셈이다. 당장의 거친 선동보다는 지금 정말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상황 자체의 난감함 그리고 그것이 심지어 반복적이라는 요소를 유머로 삼아,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이상한 시대를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절묘한 표현력의 재미와 시민들의 실제 이슈에 다가가는 충실한 자세 덕분에, ‘장도리’는 널리, 어쩌면 작품이 연재되고 있는 경향신문 자체보다도 더 폭넓게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시사적 사안에 대한 개인과 단체들의 논평을 할 때 대자보라는 매체를 애용하곤 하던 시절 박재동 화백의 ‘한겨레그림판’이 주장의 사이에 눈길을 끄는 절묘한 쉼표이자 강렬한 요약으로 자주 인용되었던 모양새 그대로, 블로고스피어에서 인기 짤방으로 사용되곤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모양새는 민주화되었으나 그 속의 가치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시끄러움을 한탄하지 않고 오랜 사회적 모순들을 자꾸 상기시켜주는 통찰은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이번 책은 그런 문제제기가 특히 절실하게 필요했던 지난 2년여의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민주적 가치의 진화보다는 “이미 그건 다 했으니 이제부터 먹고사니즘이다”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아무개들의 무능을 욕하며 그에 대한 보복으로 그보다 열 배 더 무능한 이들을 자발적으로 권력층으로 선출해주고는 그 후로 본격적으로 각종 문제에 시달려 온 실로 이상한 상황들의 연속이었던 시기 말이다. 원래 일일연재라는 속성상 확실한 성공작도 있고 그저 그런 평작도 있고 잘못 짚은 실패작도 있는 등 편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뚜렷하게 난감한 시대를 만나다보니 소재와 영감이 넘쳐흘러 그만큼 뛰어난 걸작이 풍년을 이루었던 어떤 시대의 쓰리도록 재미있는 기록이다. 무엇보다, 단순한 권력관계 비망록이 아니다 보니 현재진행형 성찰을 위한 소재거리가 수두룩하다. 성찰의 시작은, 이상한 시대를 이상하다고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을 이야기해주기 꺼려하지 않는 작품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무척 운이 좋은 일이다.

 

***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박순찬 지음/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PS. 여러 함의가 차곡차곡 담긴 대단히 훌륭한 표지그림(특히 촛불풍차는 허상 속 배후를 찾아 돌격하는 이미지가 그대로 담겨있다). 다만 모티브가 된 원래의 만화에서처럼 담백하게 ‘미국소’였으면 더 좋았을텐데, 눈이 풀어져 ‘미친소’ 코드가 추가된 과유불급이 다소 아깝다.)

Copyleft 2009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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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thoughts on “장도리, 이상한 시대를 이상하다 이야기하기 [책속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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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T @capcold: 경향신문 만평 장도리의 MB시대 스페셜 단행본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금주 발간. 책속 해설은 c모가 흔쾌히 진상했습니다: http://bit.ly/zSmZ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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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지령 받잡고, 지르고 돌아온 길입니다. 평소 즐겨봤던 작품인데도…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런지라, 오키도키하군요.

  2. 오오 엄청난 애죵이 느껴지는 해설문!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만화쪽 똥글똥글한 소 눈이 더 미쳐 보여서 표지는 순화된 느낌(…)

  3. 맨날 경향닷컴 접속해서 장도리 저장하면서, 장도리는 왜 단행본으로 안 나오나 했는데 드디어 나왔군요. 내일 당장 사러 가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역시 capcold님도 박순찬 화백의 리듬감 넘치는 지문을 장점으로 꼽으시는군요. 저도 장도리 볼 때마다 그 지문 센스에 감탄을 하면서 박 화백은 랩퍼가 되었어도 일가를 이루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4. !@#… 언럭키즈님/ 안그래도 다음 기획회의 도서평이 ‘지미 코리건’…;;; 뽐뿌연타.

    놀이기계님/ 이로써 쎈스를 인증하신겁니다! :-)

    시바우치님/ 신기하게도, (아직까지는) 책내해설 의뢰가 들어올때는 보통 제가 상당한 애정을 느낄만한 작품만 들어오더군요.

    j준님/ 떠들면서, 혹은 열심히 고민하시며 구입하셔도 무방합니다. (핫핫)

    Curtis님/ 그리고 만평 이야기들로 뮤직비디오도 직접…

  5. 만평이야기로 뮤직비디오라면 장르는 랩이겠군요..혹시 설마 메탈계열 ?!

  6. !@#… 마음동화님/ 워낙 정신이 혼미해지는 사건들을 많이 다루고 있으므로, 싸이키델릭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