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 또한 누군가의 정의 -『아돌프에게 고한다』[기획회의 261호]

!@#… 뭐 어떤 분은 대운하도 정의라고 생각하고 삽질하는 거겠지.

 

그것 또한 누군가의 정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김낙호(만화연구가)

사람들은 정의를 추구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가급적이면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정의라고 믿고자 한다. 스스로 알고 있는 어떤 거창한 이상적 정의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하다못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의라고 자조하며 살고자 한다.

그렇기에 사회는 한 쪽으로는 여러 사람들의 정의 사이에서 합의된 공공선을 찾기 위한 지난한 작업, 다른 쪽으로는 그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형태의 정의를 솎아내는 작업을 해내야 기능할 수 있다. 그런데 전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 즉 용납할 수 없는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곧바로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을 수 있다. 바로 타인의 배제를 전제하는 정의가 그것이다. 나를 위해 타인을 몰아내고 파멸시켜야 하는 것은, 그 타인들까지 포함하는 보다 큰 사회에서는 정의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타인의 배제를 전제하는 정의의 가장 극단적이고 대규모화된 형태가 바로 국가 혹은 민족 간 전쟁이다. 연루된 국가나 민족들은 각각 자신들의 정의를 부르짖겠지만, 그 보다 큰 사회, 즉 인류 보편의 관점에서 볼 때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성격의 것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데즈카 오사무 / 세미콜론 / 전5권)은 각자의 정의로 인해 발생하는 전쟁을 비판하는 작품으로, 제목에서 쉽게 연상할 수 있듯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다. 이야기는 아돌프라는 이름을 지닌 세 명의 인물이 서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 인생이 교차하는 내용이다. 한 명은 고베에 사는 일본과 독일 혼혈 소년인 아돌프 카우프만으로, 일본 주재 독일 외교관의 아들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와서 일본에 정착한 유태인들 가운데 한 명이자 그의 친구인 아돌프 카밀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그 시대를 만들어내는 중심인물로서 세 번째 아돌프, 즉 아돌프 히틀러가 있다. 이들의 생활은 히틀러가 사실은 유태 혈통을 지녔다는 정보를 둘러싼 치열한 첩보전 속에 꼬여나가게 되고, 동생의 죽음을 통해 같이 휘말리게 되는 기자인 소헤이가 이들의 인생역정에 대한 기록자 역할을 하게 된다. 유태인 친구를 배신하고 싶지 않은 착한 심성의 소년은 SS친위대의 장교가 되고,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의 바탕에는 개인적 피학대의 기억이 있으며, 민족으로서 생명을 억압받던 이는 결국 나중에 다른 민족을 같은 방식으로 학살하게 된다. 매 순간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건에서의 정의를 부르짖는데, 그 정의는 타인의 배제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성격의 것이다. 독일의 나치세력도 일본의 군국주의자들도, 적극적 가담자도 소극적 방관자도 그렇게 충돌하고 결국 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된다. 그리고 작품의 말미를 장식하는 그 전쟁 이후에도 비슷한 방식의 전쟁들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심지어 작품이 만들어진 그 시대 이후 20여년이 넘게 지난, 바로 독자가 작품을 읽고 있는 오늘날의 세상에도 말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의 장점은 각자의 정의에 눈이 멀어 만들어지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비판하되, 손쉬운 양비론이나 책임전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의 잘못도, 독일의 잘못도, 이후의 다른 전쟁에서 또 그들의 잘못도 각각 크다는 것을 흐지부지 뭉뚱그리지 않는다. 누구나 선악의 요소가 있기에 조건이 형성되면 악의 역할을 맡게 되며, 그들은 시대의 풍파 속에 그렇게 된 것이자 역으로 그런 시대를 만드는 것에 일조한다. 집단이 개인을 비인간화하며 어떤 정의를 추종하도록 강요하는데, 그것에 어떤 식으로든 동조하는 순간 그 개인도 집단의 일원이 되어 또 다른 개인들에게 추종을 강요한다. 소수의 극단적 광기보다는 각자 조금씩 동조하여 만들어진 세상인 셈이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사람들을 동원하여 불행에 빠트리고야 마는 전쟁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인생 속에서 웬만큼 많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면 성공하기 힘든 접근인데(그렇지 않을 경우 대체로 표피적 인류애, 순진한 폭력반대 정도로 빠지기 쉽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해내는 소수 명작의 반열에 거뜬히 들고도 남는다. 정말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시대의 흐름과 사실은 어떻게 해볼 수 있었을지 모르는 개인들의 “정의를 위한” 선택이 하나씩 쌓여 비극의 고리가 계속되는 묵직한 주제가, 작가 특유의 유려하고 명쾌한 이야기 흐름 속에 매우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물론 『아돌프에게 고한다』에는 작가의 평소 장단점이 골고루 녹아들어가 있는 편이다. 장점이야 현대 일본만화의 문법을 만들어내다시피 한 거장다운 연출력, 상황의 정보와 개인의 감정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그림체,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한 통찰 가득한 대사와 상황들 등 일일이 꼽기 힘들 정도다. 반면 첩보전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단서가 빈틈없이 맞물리는 퍼즐식 미스테리 해결보다는 상황을 두루뭉술 진전시키고 넘어가며 그 와중에서 갑자기 페이스를 서두르는 습관은 이 작품에도 나타난다. 다만, 독특한 점이라면 데즈카 오사무의 일련의 성인취향 만화 중에서도 특별히 건조한 편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만화잡지가 아닌 일반 문예지인 ‘문예춘추’에 연재되었는데, 덕분에 작가 특유의 만화적 연출에 대한 실험이나 크고 작은 유머감각을 거의 배제한 모습으로 역사극으로서의 묘사 자체에 최대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게다가 말년에 그린 작품답게 인간사에 대한 시선이 한층 차분하다 보니 그런 점들이 더욱 부각된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데즈카 오사무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것에 있어서는 망설임이 생기는데, 그런 요소들을 풍부하게 활용하면서도 더 심오한 감성을 만들어내는 『불새』나 더욱 다양한 인생사의 아이러니와 삶에 대한 긍정적 의지를 심어주는 『블랙잭』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가의 작품군이 아니라 픽션 장르 일반의 성취도로 놓고 보자면 가장 손꼽히는 명작 가운데 하나로 두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국내에 이 작품이 해적판이 아닌 정식 한국어판으로 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얄궂게도 한미우호라는 ‘정의’를 위해 직접적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 물리적 억압을 가하게 될, 한국군의 아프간 재파병이 결정난 시기에 말이다. 독자들이 이런 작품이 주는 묵직한 감동을 그저 역사극이 아니라 현재 우리 세상에 대한 교훈으로 읽어낼 수 있을 때, 작품은 진정한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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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아돌프에게 고한다 세트 – 전5권 (일반판)
데즈카 오사무 글 그림, 장성주 옮김/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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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그것 또한 누군가의 정의 -『아돌프에게 고한다』[기획회의 2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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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돌프에게 고한다」 – 전쟁은 곧 정의인가…

    ⓒ 데즈카 프로덕션 어떤 이유에서든지 전쟁은 일어난다. 거창한 이유에서부터 축구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그 중 가장 많이 써먹히는 이유는 ‘정의’이다. 흔하게 붙이는 수식어 중에서 ‘정의의 용사’ 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용사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이고, 그들의 싸움은 정의로워야 한다. 그 싸움이 정말 정의롭든, 정의롭지 않든 간에 말이다. 애초에 싸움이 정의롭게 포장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싸움은 결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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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저도 비슷한 시기에 이 책을 소재로, 주제마저 비슷한 기사를 써서 좀 깜놀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겠죠? (…)

    사실 이 만화에서 ‘히틀러가 유대인이다’는 맥거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강조하는 부분은 ‘정의로 몸을 숨긴 전쟁’ 이니까요.

  2. !@#… Skyjet님/ 하지만 사실 제가 이 글을 쓴 건 4주 전이라능(핫핫). 정의의 문제에 주목하신 건, 그만큼 핵심을 바로 찔러주는 능력이 갖추고 계셔서 그런 것이라 자의적으로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