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콜닷넷의 일련의 ‘2009 베스트’ 시리즈 중 첫타(사실 도서편이 이미 있었으니 두 번째지만), 만화편. 한 해가 지날수록 나름대로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며 더욱 성업중인(과연?) capcold 세계만화대상. 여전히 우주대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세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매번 먼저 제시하는 애매하면서도 간단한 선정기준. 2009년 한 해 동안 나름대로 완성도와 의미를 갖춘 작품들이지만, 굳이 한국작가에 한정되지 않고, 꼭 2009년에 나왔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예술성도 대중성도 매니아적 깊이도 절대적인 잣대가 아니라 그저 2009년의 만화, 만화 관련 사건들로 capcold적 성향의 독자가 기억할만한 것들을 뽑았습니다. 순위 같은 것은 계산하기 귀찮아서 그냥 무순. 왜 이 작품은 없는가 물어보신다면, 까먹었거나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거나. 여기 뽑힌 작품이나 사건에 관여하신 분이라면, 알아서 뿌듯해하시면 됩니다(뿌듯해할만한 것이라면).
**2009년의 작품들
(무순. 종이 단행본 발간시 출판사 표시, 온라인만화는 가급적 온라인 지면도 따로 표시)2009년의 만화.
– 악연 (랑또 / 미디어다음 연재 / 종이본 미출간 / 작품 클릭). 전성기 고병규 이래로 멸종한 줄 알았던, 완성도 높은 뚝심의 장르개그물. 캐릭터드라마로 엿가락 늘리기를 하지도 하지 않고 가차없이 완결까지. 후기의 미공개 에피소드까지 압권.
– 지미코리건 (크리스 웨어 / 세미콜론 / 서평 클릭). 만화의 공간 문법 자체에 대한 실험성으로 가득한 연출. 우울한 현대인의 양상과 깊은 뿌리를 다루는 내용. 종이공작, 옛 광고, 코믹스트립, 아이콘들을 한데 소화하는 디자인. 다른 작가들이 이런 것을 따라할 수 있기만 했더라면 아마 game-changer가 되었을 작품.
– 무한동력 (주호민 / 야후코리아 연재 / 상상공방 / 서평 클릭). 모든 의미에서 동시대 동세대와 함께 호흡하는 작품, 리얼한 생활 속에도 작은 꿈을 품고 살아가기의 힘. 훈훈함의 사전적 정의.
– 샌드맨 연작 (닐 게이먼 외 / 시공사 / 서평 클릭). 한국판이 나와줘서 감사합니다. 꾸벅.
– 나이트런 (김성민 / 네이버 연재 / 종이본 미출간 / 작품 클릭). 비장하고 드라마틱한 소드마스터 판타지를 거창한 SF설정 속에서 풀어나가면서 적잖은 간지를 뿜어내는 시퀀스로 가득채우고 심지어 격투로리와 안경미녀와 백합 코드로 도배를 한, 장르 팬들을 종합적으로 설레게 만드는 작품.
– 아돌프에 고한다 (데즈카 오사무 / 세미콜론 / 서평 클릭). “자신들의 정의”가 타인에 대한 파괴로 이어질 때 생겨나는 인간사의 문제들을 겹겹이 까발리는 대가의 솜씨로 고전이 된 작품. 널리 읽혀야 한다.
– 올라!치꼬스 (조훈 / 팝툰 연재 / 단행본 미출간 / 정보 클릭). 기필코 웃기려는 의지조차 없어보이는 탈력 속에, 대충 흐르는 ‘만화적’ 상상력이 최고의 웃음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재미.
– 삽질 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박순찬 / 책보세 / 서평 클릭). 2008-09년의 한국사회를 살아오면서, 그것을 뛰어난 리듬감의 풍자와 해학으로 오히려 가장 솔직하게 직면하는 만화를 꼽지 않으면 뭔가 직무유기를 한 느낌이다.
– 백도씨 (최규석 / 창작과비평 / 서평 클릭).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싸움에 나선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87년의 기억을 들춰주는 작품. 싸우는 것은 원래 어렵고 복잡했고, 그래도 성공할 가능성을 믿고 뛰어들 따름이다. 원래 상정된 독자층인 청소년보다, 그 당시 자신들을 잊고 사는 뭇 “자리 좀 잡은” 사회인들에게 더욱 추천.
– 이스크라 (이충호 / 미디어다음 연재 / 종이본 미출간 / 작품 클릭). 현 사회의 이슈들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담은 판타지라는 것이 그리 낯선 접근은 아니지만, 뚝심, 구체성, 장르적 재미를 최대한 발휘하며 힘있게 밀어붙이는 것은 충분히 희소하다. 이충호가 재탄생시킨 이 새로운 ‘수호전’이 끝까지 힘을 유지하기를.
– 치키타 구구 (TONO / 조은세상 / 서평 클릭). 시공사가 수년전 만화사업부를 대폭 정리하면서 떨궈낸(즉 안 팔린) 명작 중 하나가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정발. 비장함도 없이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생명들과 인간성에 대한 지독한 냉소를 통해서 오히려 생명과 인간을 칭송하는 특수한 감성의 요괴 동거물.
– 바쿠만 (오바타 타케시, 오오바 츠쿠미 / 대원 / 정보 클릭). 뜨겁다! 일직선이다! 우정, 노력, 승리. 점프 만화에 관한 점프 만화.
– 이끼 (윤태호 / 미디어다음 연재 / 한국데이터하우스 / 만끽 연재 당시 서평 클릭). 권력의 음습한 속성. 적당히 모나지 않게 타협해야 돌아가는 세상의 틈새에 끼어있는 이끼. 힘있는 비주얼(특히 컬러링), 확실한 개성의 캐릭터들, 굵직한 사회성의 메시지. 한번의 매체 폐간을 극복하고, 결국 재개하여 완결까지 간 것이 다행이다.
– 오늘의 커피 (기선 / 애니북스 / 서평 클릭). 소위 ‘전문소재’가 캐릭터극의 들러리로 떨어지지도, 캐릭터들이 소재학습을 위한 병풍으로 동원되지도 않는 적당한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커피샵 시트콤 만화. 좀 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잘 팔리기만 하면, 아마 모범적인 모델.
– 블랙홀 (찰스 번즈 / 비즈앤비즈 / 서평 클릭). 7-80년대 미국 십대 공포영화들의 틀을 빌려와 사춘기와 성장과 그에 따른 ‘변신’을 다루는 어두운 작품. 전염병과 신체변형의 소재들이 난무하고, 검은 구멍에 대한 시각적 은유가 반복적으로 자극을 준다. 만화라서 가능했던 작품.
**아차상
– 악!법이라고 (여러 작가들 / 이매진 / 정보 클릭). 원래는 위의 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책인데, 개별 작품들이 연재되고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너무 직접 개입했기 때문에 예의상 아차상으로 끌어내린다.
– 에이스하이 (유희, 이창현 / 미디어다음 연재 / 종이본 미출간 / 작품 클릭). 나름 꽤 즐긴 작품이지만, 비슷한 방향에서 더욱 막강한 ‘악연’이 뽑혀서.
– 두근두근두근거려 (하일권/ 네이버 연재 / 종이본 미출간 / 작품 클릭). 신파에 압도되어 다른 요소들도 절름거리곤 했던 작가의 이전 작품들로부터 확실한 업그레이드. 하지만 좀 더 신파의 기름기를 빼주었으면.
**미묘
– 어게인 (강풀 / 미디어다음 연재 / 종이본 미출간 / 작품 클릭). 확실한 재미는 보장하지만, “타이밍 시즌2″를 기대했으나 외전 정도의 느낌으로 귀결. ‘악인’ 측과 파워밸런스가 너무 불균형하고 그들의 개별 개성에 따로 관심이 할애되지 않아 긴장감 감소.
– 세브리깡 (강도하 / 미디어다음 연재 / 바다출판사 / 작품 클릭). 초연은 페르수보다 연민이 가지 않고, 깡은 선보다 밝은 매력이 떨어진다. 캣츠비에 대한 다소 불협화음스러운 변주의 느낌.
**과대평가
– 꼴 (허영만 / 미디어다음 연재 / 위즈덤하우스 / 작품 클릭). 허영만이 관상을 다룬다면, 어떤 표정과 인상을 만들어준 ‘인생’을 다뤄주기를 바랬다. 인격차별 소지로 가득한 돗자리 퍼포먼스가 아니라.
**올해의 만화계 사건
– 한국만화가협회, 횡령 적발. 다른 지면에서는 그나마 “주먹구구 친목회의 길을 갈 것인가 직군의 발전을 도모하는 권익단체의 길을 갈 것인가 이제는 좀 현명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라고 코멘트라도 해줬지만, 솔직한 느낌이라면 한심해서 말 꺼내기도 싫다.
– 한국만화 100주년 전시회. 하지만 과천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 전시회 이외의 다른 100주년 사업들은 솔직히 존재감도 미미하고 그다지 잘 조율되었다는 느낌도 없어서, 산업분야로서도 문화적 위상으로서도 실질적 부스트를 만들어낼만한 힘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팝툰, 다운로드 만화 판매 모델 시동. 아직 활발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첫발. 관건은 동시성을 통한 상품성 확보인데 아직 그건 심히 미진.
– 아이팟/아이폰 만화, 주목을 끌다. 네이버 웹툰 아이팟 어플 소동(관련 글). 관련 토론회들의 범람과 사업 타진도 활발했다. 이니셜이나 다올 등 일부 업체들이 따로 사업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앞으로 더 많이 논의될 분야.
– 만화진흥법 논의. 개인적으로는 산업 특성상 따로 진흥법을 만드는 것도 그것에 기반해 어떤 결정권을 지닌 방식의 진흥원 설립도 도저히 찬성할 만한 구석이 없는 접근이기는 하지만, 논의 자체를 통해 만화에 대한 정책 이슈들이 만화계에서 유통된다면야 나쁠 것 없겠지.
**올해의 명장면
– 악연 작가후기의 미공개 에피소드 중, “괜히 과학 전공했어”. 절절한 실로 ‘한국적’ 개그.
– 장도리 중, 한국교육 오바마 편 (2009년 12월 10일). 이런 것은 영어로 번역해서 오바마에게 보내줘야 한다고 본다.
– 샌드맨 연작 중, 1권 ‘서곡과 야상곡’ 마지막 챕터 중, ‘죽음’이 ‘꿈’에게 한 마디 해주는 시퀀스. 낙천적 누님이 찌질한 emo주인공에게 좀 존재의 의미를 즐겨라 깨우쳐주는 의외의 상쾌함.
– 두근두근두근거려 1화 중, 담임선생님 첫 등장. 웹툰의 스크롤 넘김을 효과적으로 개그에 사용한 모범 연출 사례.
!@#… 정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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