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희망도 없는 우주 [팝툰 29호]

!@#… 워낙 광우병과 기타 안건들이 휩쓸고 있는 통에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망각의 영역으로 사라진 우주여행 이야기. 지난 호에 실렸던 글이기는 하지만, 2천만달러어치 홍보쑈치고는 너무나 단시간에 깨끗하게 밀려나버렸다. 이래서야 누군가의 바람대로 CF나 제대로 들어오기나 하겠어? (핫핫)

 

꿈도 희망도 없는 우주

김낙호(만화연구가)

최근, 한국인 최초로 지구 대기권을 벗어난 사람을 기리고자 하는 보도들이 넘쳐났다(특히 그 행사에 많은 금전적 투자를 한 모 방송사가 주축이 되어서 말이다). 그래서 비록 이 이벤트를 기획한 이들이 바라던 만큼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꽤 떠들썩하기는 했다. 그런데 우주관광객이라고 비판적 시선으로 보든, 우주시대의 개막이라고 추켜세우든 – 인공위성 무궁화호를 쏘아 올릴 때 이미 개막했다고 해놓고는 왜 또 개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근본적으로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잠깐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바로 우주에 대한 꿈이 없다는 것.

온통 미디어에는 국위선양이니 우주산업이니 돈 굴러가는 이야기와 지구 위에 달라붙어 “중력에 혼을 빼앗긴” 이들의 논리만 하나 가득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주요 당사자들에게서 이런 사고방식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이번 건으로 생긴 유명세로 CF찍고 돈 벌겠다는 무척 솔직한 인터뷰를 남긴 우주여행 당사자는 물론, 우주로 가면 무얼 가지고 가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무려 생수를 가져가겠다는 대통령과 공기를 가져가겠다는 영부인의 막강한 콤비플레이. 아아, 끝장이야. 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어.

한국어판이 나오다가 출판사의 소멸과 함께 같이 소멸된 『트윈스피카』라는 작품이 있다. 이야기는 우주선에 타기 위해 훈련을 받는 소년소녀들의 생활이 주축이 된다. 우주로 쏘아 올리려고 한 로켓 ‘사자호’의 사고가 있었던 한 마을의 소녀가, 그 우주선 승무원이었는데 지금은 사자가면을 쓴 모습의 유령인 라이온과 함께 지내며 우주를 동경한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신체적, 가족 배경의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우주인이 되기 위해 지원한다. 이 작품에는 우주에 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동경 그 자체가 가득하다. 사고로 쓰러진 그 전 세대의 꿈이 있고, 그 소망 위에 자신들의 꿈까지 보탠 현 세대의 꿈이 있다. 사람들 사이의 크고 작은 현실적인 갈등, 지금의 모든 힘든 노력은 우주라는 동경을 향한 과정이다. 그리고 우주는 아무리 그 냉엄한 물리적인 실체를 드러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낭만적 희망의 상징이 되어준다.

그 희망은 무엇일까. 저 멀리 있는 것, 아무것도 없는 저 공간에 대한 동경은 어떤가. 절대적인 고요함과 거대함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정 같은 것. 지구 위의 복작거리는 욕망들이 개미만큼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뛰어넘고 자신이 가장 갈망하던 어떤 영원의 형태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을 것이다. 큰 우주를 느끼며, 더욱 큰 소망과 꿈을 키울 수도 있다. 뭐, 필자가 우주로 나가본 적이 없으니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낭만을 대리체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작은 한 걸음, 인류의 거대한 걸음”을 운운한 스케일 큰 희망을 보고 싶고, 우주로 간 라이카를 생각하며 별을 바라볼 수 있고 싶고, 보이저호가 300년 후에 엔터프라이즈호와 조우할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아니, 꼭 거대할 필요도 없다. 같은 우주여행 프로그램에 수년전 지원했던 한 일본 사업가가 생각난다. 그는 우주에서 우주를 무대로 한 걸작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 코스프레를 하고 건담 프라모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바 있다. 작아 보이지만 이것 또한 얼마나 막강한 꿈인가.

그래서 아쉽다. 자고로 우주여행이라면, 별 맥락 없는 국가적 자존심이나 우주개발사업 논의 운운이나 생수와 공기와 CF 같은 것이 한눈 팔 것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동경의 본질을 건드려야 했다. 꿈을 일깨우고 느끼게 해주는 일대 사건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아무 소용이 없다. 꿈은 이상이 되고, 이상은 방향이 된다. 방향을 잡아 현실을 딛고 걸어갈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부여받는다. 꿈을 꿀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은 언제라도 무척 아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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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팝툰>. 씨네21 발간.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양상을 보여주는 도구로서 만화를 가져오는 방식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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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출세해서 돈벌고 CF찍겠다는 발언은 원래 사적 인터뷰를 통해서 “반농담”으로 이루어진 것이, 부정확한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서 확대왜곡된 측면이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어의 오마이뉴스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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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oughts on “꿈도 희망도 없는 우주 [팝툰 29호]

Comments


  1. – CF찍고 돈 벌고 싶다고 했던가요? 솔직하긴 하지만 별로 뜰 것 같지 않은데요. 얼굴은 아무래도 안되고 무슨 괜찮은 드라마가 될게 없지않습니까. -_-;;

    – 확실히 우주에 대한 관심을 진작시키려면 좀 더 꿈을 줘야 할텐데 아쉽군요. 돈을 벌자는 마음도 좋긴한데 좀 더 규모가 큰 돈벌이를 꿈꾸었으면 합니다.

  2. “유명세로 CF찍고 돈 벌겠다”는 말은 동아일보의 왜곡기사때문에 퍼져나간 말이죠. 그 인터뷰를 했던 시기는 한국에서 UCC라는 말이 있지도 않았던 2년전 여름에 우주인 선발 최종 30명에 뽑혔던 때였고, 인터뷰를 한 사람도 이소연씨와 잘 아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였습니다. 30분의 1 밖에 안되는 가능성에다가 2년뒤에나 있을 일에 대한 친구의 질문에 반농담으로 한 대답중에 그부분만 잘라서 인용한거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84466

    http://metropolitician.blogs.com/scribblings_of_the_metrop/2008/04/the-yi-soyeon-m.html

    http://metropolitician.blogs.com/scribblings_of_the_metrop/2008/04/this-just-takes.html

  3. 흑흑 이 주옥같은 글이 겨우 2MB와 미친소땜에 밀려나다뇨 ㅠ.ㅠ 역시 팝툰에서 후닥닥 다 읽고는 아아~ 했지말입니다.

  4. !@#… Dreamlord님/ 동아일보의 엉터리 보도에 관한 이야기 첨부 달았습니다 – 매번 추가정보 감사합니다. 다만 관점의 차이일수 있겠지만, 저는 사적으로 친한 이와 했다고 할지라도, 블로그라는 형식을 통한 인터넷 공개를 전제로 하고 있는데다가 이미 1만8천 대 1에서 30대 1까지 경쟁률이 압축된 상태에서 한 인터뷰라면 발언에 상당한 공식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UCC라는 말이야 막 유행하기 시작한 정도라 치더라도, 부주의한 미니홈피 발언으로 매장당하는 것이 이미 일상화(?)되어 있던 시절인데). 게다가 돈을 벌어서 학교에 기부하겠다는 좀 더 대견한 이야기가 포함된 전체 발언을 다 들어봐도, 정작 우주 자체에 대한 꿈과 희망은 여전히 무척… 메말랐어요. -_-;

    지나가던이님/ 솔직히 CF 찍고 돈 버는 것이 무슨 문제겠습니까. 다만 꿈과 희망이 없어서 그렇지. 그 결과 중 하나는 말씀하셨듯, 그 배경에 ‘드라마’가 없게 되는 것.

    erte님/ 아니 제 글이 밀려나는 건 어차피 상관없지만, 이 이슈 자체가 밀려난 것이 좀 흥미롭다고나. 하기야 드라마가 없다보니 그 이상 단물이 나올 구석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