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미의 북콘서트 홍보는, 실제로 게재되었던 내용이라서 이미 지난 행사지만 그냥 남겨둠(물론 잡지 자체가 23일 이전에 출간). 얼마전 전자신문 글과 내용상 한 세트, 사태 당시 썼던 글들의 연장선(클릭, 클릭, 클릭, 클릭).
사람이 있다 – 『내가 살던 용산』
김낙호(만화연구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해 개최된 민가협이 주최하는 ‘인권콘서트’라는 행사가 있었다. 원래 처음 행사가 시작했을 때의 명칭인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그 취지는 따로 해설이 필요 없을텐데, 행사가 거듭될수록 꽃다지나 안치환, 정태춘 등 소위 운동권 인기스타들 뿐만 아니라 크라잉넛, 김종서, 전인권(짐작하시듯, 공연하면서 매번 이름으로 말장난했다) 등 한층 대중적인 스타들도 함께 하는 굵직한 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콘서트에서 항상 주요 출연자들이 하는 멘트가 바로 “내년에는 이 행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이다. 양심수도 석방하고 인권 의식도 마구 올라가서 더 이상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없어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어떤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자신들이 출간하려는 신간 작업과정을 소개하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런 책 만들지 않을 수 있었으면” 이라고 말이다. 그 책의 제목은, 『내가 살던 용산』(김홍모 외 / 보리출판사)다.
『내가 살던 용산』은 김홍모, 김수박, 김성희, 신성식, 앙꼬, 유승하 6명의 만화가들이 각각 하나의 단편 에피소드를 만들어 묶어낸 작품집이다. 작품집의 소재는 바로 2009년 1월에 벌어진 용산사태, 즉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의 항의를 관계당국이 과잉진압한 결과 철거민 5인 경찰 1인이 사망한 비극이다. 그 중 용산 4지역 현지인과 그들의 활동을 돕기 위해 나선 전철연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다섯 철거민의 이야기를 각각 한 명의 작가가 맡아서 그려냈다. 그리고 에필로그 격으로 그 다섯명과 다른 이들이 함께 비극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그날 새벽의 망루 이야기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포함되어 책을 구성한다. 작품은 유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려졌는데, 각각의 환경 속에서 나름의 생활을 꾸려나가다가 철거민이라는 비슷한 조건에 처하게 되고 결국 저항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 유족들에게 남겨진 일들을 묘사한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결국 용산에서 서로 만나게 되고, 이미 독자들은 알고 있는 결말로 한발씩 다가간다.
그런데 에피소드들 속에서 그려지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평범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엄청난 의기로 가득한 영웅적인 이가 없고, 그저 자리 잡아서 돈 벌고 가족과 함께 잘 먹고살아보고자 하는 이야기뿐이다. 그리고 주변에 비슷한 처지에서 곤경을 겪는 이들에게 오지랖 넓게 마치 품앗이 하듯 도우러 가기도 한다. 권리금 보상과 평가감정 문제로 실랑이를 벌일 수 있을 정도의 셈은 할 줄 알지만, 재개발로 인한 향후 전망 같이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설마 어떻게 되겠어하며 평범한 안일함으로 넘어가는, 딱히 자본주의적으로 명민하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앞에 재개발로 인한 철거라는 문제가 발생하고, 한국식 개발만능주의의 기본형 A코스인 용역깡패 동원과 경찰의 방조 속에 철거준비가 착착 진행된다. 그 와중에서 대부분은 포기하고 떠나지만, 소수의 어떤 이들은 끝까지 남아서 어떻게든 버텨보며 필요한 조건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평범한 이들의 소망만큼 녹록하지 않고, 극단적 상황에 몰린 평범한 사람들이 파국을 맞이했다.
작가들이 이야기를 나누어, 담당 에피소드를 통해 각각 하나의 삶을 담아낸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화재 현장에서 들려온 외침이자 이후에 이 사태를 상징하게 된 문장인 “여기 사람이 있다”는 이런 방식 속에서 비로소 인명에 대한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되어준다. 그들이 그곳에 불타던 것을 막연한 인명 존중으로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다가 결국 그곳에서 급작스런 종결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사람들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정말 사람이 있음을 사람의 이야기로 들려줘야 비로소 사람을 느끼게 되는 셈이다. 용산철거에 대처하는 조직체로서의 철거민이라는 집합체가 아니라, 각각의 살아온 사연이다. 각각 다른 작가들의 그림체와 연출 접근방식 속에 펼쳐지기에, 서로 다른 삶이지만 크게는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더욱 부각된다. 게다가 이런 주제 중심 옴니버스로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각 에피소드를 엮어내는 고른 구심력이 돋보인다. 특히 첫 문을 여는 김수박 작가의 에피소드는,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의 말을 직접 인터뷰 방식으로 보여주는 대목, 극화하여 지난 상황을 재현하는 대목, 직접적 메시지와 인용을 빈틈없이 합쳐내는 연출과 그 와중에서도 절제된 표현력이 돋보인다. 이후 이어지는 여러 작품들의 크고 작은 굴곡을 지나, 다섯 사람들의 사연은 사건 당일 망루의 비극을 그려낸 김홍모 작가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된다. 주제의 선정과 참여적 취재방식, 논픽션을 다루는 절제된 자세, 상황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설명력 등은 소위 “르포만화”라는 느슨한 범주에서 추구할만한 미덕을 충실하게 추구하고 있다.
조금씩 아쉬운 점은 있다. “그들은 열사도 아니고 테러리스트도 아닌 그저 사람 대접 받으며 살고 싶었던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다”는 메시지를 더욱 확장하여, 내용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좀 더 미묘한 모순들도 약간씩 도발해주었더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각각 완결적인 인간드라마가 아니라, 각각의 대처과정에서 발생해온 중층적 모순들을 좀 더 날 것 그대로 던져주어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주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소박한 욕심과 안이함으로 지나친 법적, 제도적 문제들이 파국적으로 발목을 잡은 부분들을 더 보고 싶어진다. 혹은 더 나아가 현장에서 마찬가지로 변을 당한 경찰특공대원의 사연도 같이 다뤄서, 양측을 망루의 그런 상황으로 몰아넣어 출세욕이든 금전욕이든 자신들의 이득만을 추구했던 어떤 이들에게까지 제대로 시선을 닿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 덧붙여, 사람으로서의 사연과 상황의 모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라이터와 지문 문제 같은 아직 더 검증이 필요한 부분들은 아쉽더라도 덜 부각시키는 것이 나았을 듯하다.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흑막 같은 느낌을 조성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을 서둘러 폭력으로 쓸어버리고 이득을 보는 자들이 도사리는 명백한 현실이 더 돋보이는 것이 책의 메시지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책의 최종 에피소드에서 한바탕 그날의 지옥도가 지나가고 나면, 마지막 몇 페이지에 책 전체에서 유일하게 그 누구의 증언에도 기반을 두지 않고 순수하게 작가의 상상만으로 만든 픽션 시퀀스가 등장한다. 그 강력한 마무리까지 보고 나면, 『내가 살던 용산』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상계동 올림픽 등의 정통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PS. 2010년 3월 23일, 홍대클럽 『빵』에서 이 책을 중심으로 작가와 유가족들이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개최된다.
내가 살던 용산 김성희 외 지음/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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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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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용산』은 6명의 만화가들이 각각 하나의 단편 에피소드를 만들어 묶어낸 작품집이다. 작품집의 소재는 바로 2009년 1월에 벌어진 용산사태, 즉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들의 항의를 관계당국이 과잉진압한 결과 철거민 5인 경찰 1인이 사망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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