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를 통해서 기자의 전문성을 생각하다

!@#… 뭐! ‘모에’가 이렇게 건전무쌍한 개념인 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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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모에를 소재로 기사를 쓴다면, 아무리 마감이 바쁘더라도 최소한 모에가 뭔지 한번 제대로 알아보는 정도는 했으면 좋겠는데. ( 단지 신문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이 설명이 ‘모에가 뭐에요?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표준 대답으로 스크랩되고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면, 참 세상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 기자에게 있어서, 속보와 흥행이라는 공명심의 불길 속에서 가장 먼저 증발하는 것은 바로 전문성. 하기야 기자 뿐만이 아니겠지만.

—(3번째 리플까지 보고 보충설명 추가)—

!@#… 그럼 모에가 뭐냐고?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히로스에 료코가 귀여워서 좋아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좋아하는 것일 뿐. 하지만 히로스에 료코라는 인물보다, 영화 <철도원>에서 커다란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있는 미소녀의 이미지가 눈앞에  집착한다면 뭔가 좀 다른 경지다. 아니 한발 나아가서 철도원이고 료코고 뭐고 간에, 아예 “단발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커다란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집착적으로 불타오른다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모에. 모에는 특정 요소들에 대한 , 그리고 그 요소들의 조합에 대한 애정적 집착. 그 과정에서 개개 인격체나 캐릭터 자체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날수도 있고. 그리고 그건 세부 요소로 환원될수록 확실해진다. 예를 들어서 미소년모에라고 한다면, 그다지 모에라고 명함 내밀기도 뭣하다. 안경모에, 고양이귀모에, 방울모에… 이 정도는 되야 좀 체면(?)이 산다. 위에서 어설픈 기자양반이 대충 쓴 것 마냥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에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귀여운 것이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어떤 특정한 요소(세라복이라든지, 안테나 머리라든지, 뾰족한 덧니라든지)에 집착을 하는 것이 모에다.  

에반게리온의 ‘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냥 팬일 뿐. 하지만 붕대를 맨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고, 하필이면 레이가 그 결정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어엿한 ‘붕대소녀모에’. 이 사람은 아마도 수많은 만화, 애니, 게임 등 장르 대중오락문화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그 중 붕대를 맨 소녀 캐릭터를 찾아내며 애착을 보낼 것이다. 아마 그리고 붕대소녀는 자고로 이래야해(3분에 한번씩 아픔으로 얼굴을 찌푸려야 하며,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활약을 벌이려다가 아픔으로 한번 넘어져 줘야 하며, 머리에 붕대를 맬 경우 머리카락 전체를 뒤덮어서는 안되고 이마와 한쪽 눈 정도까지만 덮어야 한다는 등…), 하는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당연히 붕대소녀를 묘사한 각종 피겨와 게임, 만화책들을 긁어모으고 (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용어를 빌자면, ‘데이타베이스적 소비’). 만화/애니/게임이라는 서브컬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으로 비대해진, 기호와 상징의 홍수인 일본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현상. 페티시즘적 쾌락과 집착적 대중문화 소비의 화려한 만남.

설명이 어렵다면, 이렇게 쉽게 요약할수도: 80년대의 애니광들은 <오렌지로드> 마도카의 ‘팬’이었지만, 2000년대의 오타쿠들은 <오네가이 티쳐> 미즈호를 보며 ‘누님 모에’를 한다

나중에 또 덤으로 추가:

1) ‘모에’라는 단어를 감탄사로 쓰면, “나는 지금 맹렬히 모에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뜻의 약칭이 된다. 왠 오타쿠 캐릭터가 아이돌 콘서트장에 가서, “모에~!!!”하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모에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모에~?”라고 귀엽게 한마디 불러준다면? 그건 “나에게 모에해주시지 않을래요?” 라는 말의 약칭이 된다. -_-;

2) 리플에서 pseudorandom님이 지적하셨다시피, ‘모에’ 행태는 실체를 획득할 수 없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면 가서 얻어내면 되는 것이지, 관련 굿즈를 사모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냥 팬으로서 상대의 전체를 동경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특정 요소 단위로 집착할 필요도 없고. 만화, 애니의 2차원 캐릭터(의 특정 요소들)에 모에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하지만 인기 없는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3차원 물질계의 여성들도 이미 실체를 획득할 수 없는 먼 세상 신비의 대상이다.

3) 참고로, ‘모에’라는 단어는 “싹트다, 움트다” 라는 용어와 “불타오르다”라는 용어의 동음이의어 말장난이다. 오타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불타오른다 쪽이 훨씬 적합.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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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houghts on “‘모에’를 통해서 기자의 전문성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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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capcold님의 블로그님 » Blog Archive » 모에라는 취향문화를 바라보기 [문화저널 백도씨/창간호]

    […] !@#…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새로 창간한 월간 문화저널 백도씨에 기고한 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모에 취향은 아니지만 (구세대다 구세대…), 이쪽 계통의 현재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니까. 이미 전에 해오던 이야기에 약간 더 살을 붙여서 모에라는 현상을 한국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화두 몇개를 던진 정도. 한겨레에 기고한 하루히 글과 연동시켜서 읽어봐도 좋을 듯. 아 그래도 창간호의 품위를 조금 지켜주는 의미에서, 모에의 성적 코드에 대한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 다른 지면에서 한번 해봐야지. […]

Comments


  1. – 정서방 – 형 모에가 그럼 뭔데요??
    2005/09/02 08:03

    – 캡콜드 – http://mirugi.egloos.com/822471 이라든지, http://deephell.egloos.com/1258141 등 참조. 한마디로, 극렬한 페티시즘과 일본 로리콘(?) 서브컬쳐의 환상 궁합. 2005/09/02 09:08

    – 쿠쿠 – 근데… 밑에 설명에 있는 인기있는 일본미인들 히로스에 료코 등… 다 모에쪽 아닌가요? 다 귀엽기만 하더구만… 2005/09/02 10:12

    – pseudo – 요새는 모에라는 말이 남발되면서 그 뜻이 범속해졌죠. 도착증도 중요하지만, 초기에는 대개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대상, 가질 수 있어도 부서질까 두려워 손을 뻗지 않고 바라 보기만 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고 하더군요. 2005/09/02 13:58

    – 캡콜드 – !@#… pseudo님 / 뭐, 결국 2차원에 혼을 판 오타쿠들이니까요 (손을 뻗어도, 가질 수 있을리 없잖습니까!!! -_-;;;) 여튼 즐기다보니 집착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뭐 당연히 후자가 바로 모에의 패턴. 2005/09/02 15:54

    – pseudo – 그러니까, 2 차원과 3 차원의 괴리를 자각하면서 느끼는 공허를 강조하는 것이죠. 물론 그 공허는 역시 ‘즐길 거리’의 하나지만, 요즘은 집착 자체를 즐기더라도 즐기기만 하면 되지 그 ‘즐길 거리’가 공허이든 아니든 별 상관이 없는 거죠. 이것도 나름대로 속화로 보입니다. 2005/09/02 19:49

    – 퍼플레인 – 모에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나름 이해가 되는 글 감사합니다. 살짝 비공개로 담아갈께요. 답답함을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2005/12/27 02:11

  2. 단순히 동방신기의 영웅재중에게 두근하면 빠순이
    동방신기 영웅재중의 삼두박근에 두근하면 모에?
    뭐 그런걸까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까?)

  3. 단순히 가수 동방신기와 클론을 두고 봤을때
    동방신기의 영웅재중에게 두근하고 구준엽에게 무덤덤하면 빠순이
    동방신기 영웅재중의 삼두박근에 두근하고 구준엽의 삼두박금에도 두근하면
    삼두박근모에? 뭐 그런걸까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까?)

  4. !@#… 모에요소를 발견하는 것 자체는 진정한 모에의 초입 단계에 지나지 않지. 진짜 모에라면, 모에 요소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재구성하면서부터 시작. 즉 삼두박근을 지닌 가수들을 찾아나서고, 삼두박근형 캐릭터에 대한 ‘성격 특질’을 뽑아내기 시작하면 완연한 삼두박근 모에. 아~주 좁은 의미에서는 모에가 주로 미소녀형 캐릭터로 한정되어 있기는 한데(소위 ‘모에계열 그림체’라고 할 때), 그런 경우라면 삼두박근 미소녀를 추구함으로써 한층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