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범의 만화사랑

!@#… 29억 횡령 공무원, 알고보니 꽤 자기 취향을 가꿀 줄 아는 멋쟁이였다 파문.

’29억 횡령’ 공무원, 동전 수집에만 15억원
[노컷뉴스 2006-09-07 11:15]

29억을 횡령해서, 절반을 동전 수집에 투자. 뭐 그거야 단순한 수집욕뿐만 아니라, 투자가치를 노리고 그랬을 수도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별장 지하에는 미니바와 당구대를 설치했으며 방 2개에는 1000만원 어치의 만화책을, 또 다른 방 1개에는 400만원 상당의 비디오테이프를 진열해 뒀다” 는 대목이 진짜 대박. 돈 생기면 보고 즐기고 싶었던 만화로 잔뜩 한 방 채워넣는 뭇 소년들의 꿈을 직접 실현한 셈. 집착적으로 돈을 긁어모으기만 할 뿐 자신의 취향을 가꿀 줄 몰모르고 사기 명품과 골프채에나 돈 꼴아박는 뭇 졸부들에게 경각심을 울릴 만한 문화적 기개라고나 할까. 이 분의 만화사랑을 높게 사서, 감방은 만화도시 부천 인근으로 배정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다(거짓말이지만).

!@#… 아니 그보다, 난 이 사건이 왜이리 웃기지;;;

지금 세계는 ‘하루히’ 열풍 [한겨레21/615호]

지금 세계는 ‘하루히’ 열풍

괴짜 주인공의 엽기적 유머, 라이트 노블의 정점에서 탄생한 성공작… 만화·애니메이션의 감수성으로 향유자의 취향 클러스터에 눈높이 맞추다

– 김낙호 (만화연구가)

최근 인터넷을 돌면서 대중문화 관련 포스트들을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스즈미야 하루히’다. 알라딘이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과 교보문고 전체 판매순위에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3권이 100위 안에 포진해 있고, 인기검색어 순위에서도 이 이름이 종종 출몰한다.

각종 동영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속칭 ‘하루히즘’이라고 불리는 패러디 영상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팬들이 시리즈의 1권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엔딩의 ‘하루히 댄스’를 따라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붐은 일본은 물론 한국, 나아가 북미나 유럽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각종 대중문화 관련 블로그와 포럼에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오르내려서, 이른바 “하루히는 세계 대세”라는 장난 섞인 말이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다.

각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적 인기

그 이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스타일의 감성적 현대소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히는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원작소설은 다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토 노이지 일러스트, 대원씨아이 펴냄)의 주역인 미소녀 여고생 캐릭터를 칭한다. 하루히는 자기소개 시간에 “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게 오십시오. 이상”이라고 ‘뒤집어지는’ 인사를 하는 괴짜. 소설의 내용은 지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이 괴짜 미소녀 여고생이 SOS단이라는 온갖 특이한 활동을 추구하는 동아리를 만든 뒤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다. 이 황당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내레이션을 하는 남학생 ‘’. 하루히의 앞자리에 배치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는 죄로 동아리의 창립에 관여하는 은, 하루히에게 ‘반강제로’ 끌려온 ‘평범한’(이상하긴 하나 현실 수준에서 수용 가능한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음) 학우들과 함께 부조리한 코미디의 세계로 빠져든다. 알고 보니 실제로 주변에는 외계인과 초능력자 등 기이한 존재들이 우글거렸으며 또한 우주는 하루히가 지루하면 지루한 데 맞춰, 재밌어하면 재밌어하는 데 맞춰 재편되는 ‘하루히의 매트릭스’였다. 이렇게 일면 엄청난 스케일로 발전해나가지만 여전히 작품은 가벼운 학원 코미디물의 외향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기에, 묘한 불균형의 즐거움이 쏠쏠하다. 이런 지극히 장르 대중오락 성향, 그것도 이른바 ‘오타쿠’ 취향의 소설이 그 정도까지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히 시리즈’는 속칭 라이트 노블로 분류된다. 거칠게 정의내리자면, 라이트 노블은 만화·애니·게임 등 일본에서 흔히 ‘서브 컬처’라고 부르는 대중문화 장르들과 감수성이 연동돼 있는 장르소설을 칭한다. 하지만 장르라고는 해서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SF)처럼 특정 소재와 사건들을 다룬다는 개념으로 묶이는 것은 아니고,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매체의 주류 대중문화 영역을 장르문화라고 부를 때의 그런 의미다. 라이트 노블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대본을 소설화한 것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만큼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감수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커서, 매체 이식이 쉽게 일어나기도 한다.

‘하루히 시리즈’는 라이트 노블 계열의 정점에서 탄생한 성공작이다. 이 작품은 당대의 여타 소설 문학의 성과에서 자양분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라이트 노블로서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만화·애니·게임 쪽의 장르적 규칙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괴짜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클럽을 만들어 평범한 학우들을 엽기적 유머의 세계로 물들인다는 구성은 순수문학이나 영화보다는, 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르 규칙이다. 알고 보니 평범한 일상의 주변이 사실은 우주적 음모의 소용돌이였다는 식의 과장 역시 SF 애니메이션에서는 친숙하다. 또한 미소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특정한 구성 요소- 메이드복, 고양이귀, 유아 취향 얼굴과 큰 가슴의 결합, 무표정 등- 들을 분류, 각각의 항목 단위로 열광하는 현상인 속칭 ‘모에’ 취향에 대한 집착은 90년대 중반 이래로 그쪽 계열에서 폭발적으로 발달시켜온 것이다.

장르의 힘, 취향의 힘!

라이트 노블이기에 ‘하루히 시리즈’는 단순히 소설 애호가들을 불러모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 즐거움에 대한 총합으로서 만화·애니·게임 분야의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규합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인기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장르의 힘이다.

그리고 ‘하루히 시리즈’가 히트한 두 번째 이유는 취향의 힘이다. 이것이 진짜 핵심이다. 양적 과잉으로 규정되는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즐기는 것은, 매체나 작품에 대한 집착이 아닌 특정 취향의 묶음이다. 말하자면 ‘취향 클러스터’다. 예를 들어 만화를 즐긴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만화의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세부 취향을 즐긴다. 그리고 그 선호하는 취향의 정체성이 선명할수록, 취향과 연동되는 다른 매체, 작품, 상품으로 자연스럽게 향유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미소녀 연애물 만화에 심취하게 되면 다른 만화인 예술만화와 학습만화로 애정을 키워나가기보다는, 애니메이션·게임·모형 등 여러 인접 분야에서 미소녀 연애물의 취향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취향을 깊게 파고들수록, 여러 매체와 향유 방식을 포괄하는 취향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하루히 시리즈’의 히트는 이런 취향 클러스터의 대표적 성과다.

이런 취향 클러스터가 작동했기에 올 4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소설로 피드백되고 그 인기가 증폭되었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80, 90년대의 혁신적 작품들에 비하면 전복적 에너지를 연성화한 정도에 불과하고, <멋지다 마사루>만큼 마음먹고 막 나가지도 않으며,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큼 그럴듯하게 우주적 음모론을 전개하지도 않지만 폭발적인 힘을 얻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뿌려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다른 경쟁 작품들보다 높은 품질의 미소녀 영상을 제공했으며, 줄거리에서도 원작 이상으로 모에 취향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던지면서 팬들을 감동시켰다.

또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원작의 사건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내용상으로는 5화의 외전 정도에 해당할 에피소드를 아무 설명 없이 1화로 편성해 방영하는 등 파격적 연출을 사용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팬들의 참여의식에 더욱 불을 붙였다. 팬들은 패러디 동영상 공유는 물론, 소설의 설정에 대한 각종 정보 교류와 아마추어 동인지 창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발적인 붐을 조성하고 있다. 즉 ‘하루히 시리즈’는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기보다, 여러 향유 양식을 효과적으로 혼용해 성공한 셈이다.

당신의 ‘모에’는 무엇입니까

장르와 취향의 힘은 작품 자체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취향을 가진 자신의 향유자들과 얼마나 가깝게 동조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히 시리즈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의 현재 향유자들과 눈높이와 입장을 맞춰주고 있음을 밝힌다. “모에 요소가 더 필요하니까”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특정 미소녀 캐릭터를 동아리에 강제 가입시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작품의 향유자들이 지니는 취향과 동일시된다.

작품보다는 장르와 취향을 향유하고자 하는 시대에, 하나의 작품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려면 흐름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루히’ 소설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변하는 만화·애니메이션 중심 장르문화의 미소녀·학원 코미디·우주 음모론 취향을 즐긴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적합한 대중문화론은 단순한 작품론이 아니라 장르와 취향을 수용하는 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한 라이트 노블의 히트로 한층 힘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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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한겨레21에 실린 글 (정간지 발표원고의 경우 다음 호가 배포 또는 마감되어갈 즈음 – 즉 해당 지면이 충분한 유통을 마칠까지 기다린 후 블로그에서도 공개한다는 개인적 원칙). 원래는 생활면에 들어갈 가벼운 흥미성 기사였는데, 여차저차 쓰다보니 의도보다 하드해져서 결국 또 문화면으로 배치되었다. OTL 그런데 역시 한참 이쪽 계열 사람들의 대세라서 그런지, 무려 잡지 기사 페이지가 스캔되어 올라오는 상황까지 발생. 이번 건을 담당하신 구** 기자님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계실 듯.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언급한 ‘취향 클러스터’라는 개념을 다른 기회에 좀 더 깊숙하게 개념화시켜볼 욕심이 있음. 나머지 사족은 수시아님 블로그에 남긴 것으로 대신한다.

“…주인장님 말씀대로, 한겨레21과 뉴타잎 독자들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니까요. ‘팬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그 팬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글’.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루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마치 일년전쟁 팬이 시드를 바라볼 때 느끼는 부족함 같은 것이죠.”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키덜트: 유아회귀? 새로운 성장! [연합르페르 0509]

!@#… 연합뉴스 사내잡지(사내들의 뜨거운 땀과 불끈대는 근육과 열정!!! …이 아니라, 社內. 같은 계열 개그로는, ‘사내 동호회’ 등이 있다)  <연합르페르> 9월호 특집에 들어가는 글. 오랜만에, 나름대로 심리학적인 기반으로 접근. 심리학, 문화, 미디어 등을 엮어내는 건 역시 capcold의 적성에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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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덜트: 유아회귀? 새로운 성장!

키덜트라는 용어가 있다. 아이(Kid)와 어른(Adult)를 기계적으로 합성한 말인데, 흔히 대중문화의 취향에서 “어른들이 어린이가 되고 싶어하는 환상을 담은 문화 형식들”을 지칭한다고 한다. 약간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분명히 ‘아직도’ 프라모델을 만들고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놓는 이상한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남사스럽게도 커다란 아톰이나 둘리 얼굴이 그려진 티를, 다 큰 처자가 스스럼없이 입고 다니는 모습도 흔하다. 이 세상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인가?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심리학적 설명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 가지는 키덜트 문화가 소비문화 마케팅이라는 점에 착안하는 것인데, 워싱턴대 심리학교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말을 인용하자면 “생산자들이 성인 소비자들에게 어린 시절이 얼마나 좋았는가 하는 허위 기억들을 창조하도록 만들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향수 이미지를 상품 형식으로 사용한다”. 좀 더 키덜트 족 자신의 심리를 듣고 싶다면,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의 발언도 있다: “청소년기의 취향을 서른이 넘어서까지 유지하는 것은 성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며, 현대인들이 피폐해져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순수했던 시절을 기억함으로써 활력소를 얻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하, 그렇군요. 즉 키덜트는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절어 사는 사람들이며, 유년으로 회귀하고 싶은 심리의 일환, 그리고 그것을 공략하는 자본의 마케팅에 휘둘려버린 것이군요.

심히 곤란하다. 이런 인식들은, 만화를 좋아한다, 오락성 모험물을 좋아한다, 모형을 만든다, 귀여운 것을 즐긴다… 이런 취향들을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규정하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다시금 어린이/성인 사이에는 패러다임적 경계선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사람의 심리적 성장과정 모델을 분절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오는 오류다. 한 마디로 아이와 어른이 당연히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편의주의적 세계관, 마치 만 18세 이상은 에로영화를 봐도 좋다는 사회적 규정 같은 것이다. 사실은 18번째 생일이 지나는 그 순간 갑자기 사람들의 심리발달 상태가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대변신을 할 리가 없는데 말이다. 성장을 마치 땅강아지에서 번데기를 거쳐서 매미로 변신하는 ‘변태 모델’로 보는 셈이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성인’이라는 막연한 기준에 의해서 미련 없이 버려버린 취향을 계속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자신들은 그것을 이미 버려버린 이유를 심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미성숙한 종족으로 폄하할 것이다. 심리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인지부조화’라는 현상이다. 이해불가능한 현상을 보면서 느끼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인지구조를 살짝 틀어버리는 것이다.

성장단계의 모델은 편의적 구분일 뿐, 사실 심리적 성장은 연속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어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오늘부터 나는 만화를 싫어할래!” 라기보다, 그 나이와 성장단계에 맞는 만화를 골라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만약 그 나이대의 소비수준과 사회적 인식능력에 적합한 작품을 찾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분야로부터 취향이 멀어지는 것 뿐이다. 적합한 작품을 찾는다면? 어차피 좋아하던 취향이니, 계속 추구한다.

키덜트 현상은, 취향이라는 심리적 인지구조가 만18세니 20세니 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서 정해지고 일탈이 허용되지 않았던 이상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대해서,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가/영리불가 —

‘모에’를 통해서 기자의 전문성을 생각하다

!@#… 뭐! ‘모에’가 이렇게 건전무쌍한 개념인 줄, 처음 알았다.

건전한 뉴스 읽기(클릭)

…이왕 모에를 소재로 기사를 쓴다면, 아무리 마감이 바쁘더라도 최소한 모에가 뭔지 한번 제대로 알아보는 정도는 했으면 좋겠는데. ( 단지 신문기사라는 이유만으로 이 설명이 ‘모에가 뭐에요? 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표준 대답으로 스크랩되고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면, 참 세상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 기자에게 있어서, 속보와 흥행이라는 공명심의 불길 속에서 가장 먼저 증발하는 것은 바로 전문성. 하기야 기자 뿐만이 아니겠지만.

—(3번째 리플까지 보고 보충설명 추가)—

!@#… 그럼 모에가 뭐냐고?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히로스에 료코가 귀여워서 좋아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좋아하는 것일 뿐. 하지만 히로스에 료코라는 인물보다, 영화 <철도원>에서 커다란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있는 미소녀의 이미지가 눈앞에  집착한다면 뭔가 좀 다른 경지다. 아니 한발 나아가서 철도원이고 료코고 뭐고 간에, 아예 “단발머리의 귀여운 소녀가 커다란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집착적으로 불타오른다면 어떨까? 그것이 바로 모에. 모에는 특정 요소들에 대한 , 그리고 그 요소들의 조합에 대한 애정적 집착. 그 과정에서 개개 인격체나 캐릭터 자체는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날수도 있고. 그리고 그건 세부 요소로 환원될수록 확실해진다. 예를 들어서 미소년모에라고 한다면, 그다지 모에라고 명함 내밀기도 뭣하다. 안경모에, 고양이귀모에, 방울모에… 이 정도는 되야 좀 체면(?)이 산다. 위에서 어설픈 기자양반이 대충 쓴 것 마냥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에인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귀여운 것이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어떤 특정한 요소(세라복이라든지, 안테나 머리라든지, 뾰족한 덧니라든지)에 집착을 하는 것이 모에다.  

에반게리온의 ‘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냥 팬일 뿐. 하지만 붕대를 맨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고, 하필이면 레이가 그 결정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어엿한 ‘붕대소녀모에’. 이 사람은 아마도 수많은 만화, 애니, 게임 등 장르 대중오락문화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그 중 붕대를 맨 소녀 캐릭터를 찾아내며 애착을 보낼 것이다. 아마 그리고 붕대소녀는 자고로 이래야해(3분에 한번씩 아픔으로 얼굴을 찌푸려야 하며,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활약을 벌이려다가 아픔으로 한번 넘어져 줘야 하며, 머리에 붕대를 맬 경우 머리카락 전체를 뒤덮어서는 안되고 이마와 한쪽 눈 정도까지만 덮어야 한다는 등…), 하는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당연히 붕대소녀를 묘사한 각종 피겨와 게임, 만화책들을 긁어모으고 (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용어를 빌자면, ‘데이타베이스적 소비’). 만화/애니/게임이라는 서브컬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으로 비대해진, 기호와 상징의 홍수인 일본이기에 나올 수 있었던 현상. 페티시즘적 쾌락과 집착적 대중문화 소비의 화려한 만남.

설명이 어렵다면, 이렇게 쉽게 요약할수도: 80년대의 애니광들은 <오렌지로드> 마도카의 ‘팬’이었지만, 2000년대의 오타쿠들은 <오네가이 티쳐> 미즈호를 보며 ‘누님 모에’를 한다

나중에 또 덤으로 추가:

1) ‘모에’라는 단어를 감탄사로 쓰면, “나는 지금 맹렬히 모에하고 있는 중이다”라는 뜻의 약칭이 된다. 왠 오타쿠 캐릭터가 아이돌 콘서트장에 가서, “모에~!!!”하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모에의 대상이 되는 캐릭터가 “모에~?”라고 귀엽게 한마디 불러준다면? 그건 “나에게 모에해주시지 않을래요?” 라는 말의 약칭이 된다. -_-;

2) 리플에서 pseudorandom님이 지적하셨다시피, ‘모에’ 행태는 실체를 획득할 수 없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면 가서 얻어내면 되는 것이지, 관련 굿즈를 사모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냥 팬으로서 상대의 전체를 동경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특정 요소 단위로 집착할 필요도 없고. 만화, 애니의 2차원 캐릭터(의 특정 요소들)에 모에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 하지만 인기 없는 오타쿠들에게 있어서는, 3차원 물질계의 여성들도 이미 실체를 획득할 수 없는 먼 세상 신비의 대상이다.

3) 참고로, ‘모에’라는 단어는 “싹트다, 움트다” 라는 용어와 “불타오르다”라는 용어의 동음이의어 말장난이다. 오타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한다. 의미상으로는 불타오른다 쪽이 훨씬 적합.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땅’ 문화의 결정판

!@#… (좀 과장하자면) 00년대식 오타쿠문화인 <모에>의 정점 ‘**땅’. 귀여운 아가씨에게 종종 붙이는(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쨩” 정도로도 부족해서 더욱 더 로리로리화 시켜서 발음을 혀짧게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땅” 되겠다. 특히 이것은 미소녀형 의인화 작업이나 연상작용에 압도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되어, 컴퓨터용 OS를 미소녀 캐릭터들로 의인화시킨 OS땅이라든지, 숯을 머리에 이고 있는 빈쵸땅이라든지, 오타쿠 취향 영어단어집의 모에땅이라든지 하는 괴이한 녀석들을 만들어내고 있다(추가: 물론 상당부분 말장난입니다만). 각종 미소녀 공식과 모에요소들의 현란한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캐릭터들에 열광하기. 이야기의 재미에 아무래도 더 끌리는 capcold로서는 그다지 좋아하는 현상은 아니다. 간혹 즐기기는 하지만.

!@#… 하지만 이 녀석 앞에서는, 아무런 할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옛 말이 다시금 증명. 바로 이것 … “아프가니스땅” !!! 대략, 국제정치 모에만화!

http://www.yukai.jp/~timaking/afgan/index-afgan.htm  (일어)

(추가: 2006.4월부로 홈피 접속불가. 이곳에서 다른 정보를…)

!@#… 이왕 취향문화를 밀고간다면,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