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마케팅(3) – 정체성이라는 가치부여 [만화규장각 칼럼]

!@#… 근 1년 넘게 쉬었다가 지난 달에 재가동한 시리즈, 한국만화영상진흥원(구 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규장각 웹진에 쓰는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지난 회 원고. 편집완성본은 여기로.

 

마케팅(3) – 정체성이라는 가치부여

김낙호(만화연구가)

만화 마케팅 역시 다른 여타 상품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객으로 하여금 돈이나 그것에 해당하는 무언가를(예: 광고에 대한 열람시간, 주의력 등) 지불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무언가를 지불할 생각이 드는 것은 얻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때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효용가치는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그 효용의 양이 돈값, 혹은 시간값이나 노력값을 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효용의 방향이 하필이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방향의 것이어야 한다. 필수품에서 벗어날수록, 대안상품이 많을수록 후자가 점점 더 중요해지기 마련인데, 만화라면 확실히 필수품이 아니고(대부분의 사람들은, 안 읽는다고 죽지 않는다) 오락매체로서든 예술양식으로든 대중문화 분야에서 항상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만화에 대한 사회적 폄훼 분위기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바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마케팅에서 가치를 부여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데 돈값은 작품 자체의 퀄리티와 주로 관계되는 것이지만, 필요성의 방향은 가치부여 마케팅 전략 영역이며 특히 그 중에서도 정체성 마케팅이다.

정체성 마케팅의 중요성은 모든 업계 통틀어서 가장 장사를 잘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애플사의 사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판매하는 제품만으로 보자면 애플은 맥북과 아이폰 등 기기를 파는 하드웨어 판매사, OSX, iWorks 등 프로그램을 파는 소프트웨어 판매사다. 하지만 자신의 판매제품군을 묶어내고 그것에 가치부여를 해서 수요를 만드는 방식으로 볼 때는 애플은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회사다. 왜 애플이 화제와 인기를 끌고 다른 하드웨어사들과 다른 방식으로 인지되고 있는가, 어째서 권위주의적 엘리트주의 경영의 표본인데도 제품은 물론 회사 자체까지도 혁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와 콘텐츠유통업을 엮어내는 폐쇄적 생태계에 왜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가. 그 바탕에는 애플이 자사의 제품들에 마케팅으로 부여하는 라이프스타일로서의 가치가 개입된다. 애플은 그 사용자에 대하여, 최신기술 요소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지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 같은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낸다(미국에서는 PC 대 맥 의인화 비교 광고를 통해서 문자 그대로 그렇게 만든다). 그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완성시키기 위한 새로운 제품들을 내놓고, 그 가치에 경도된 이들이 구매한다. 만약 애플이 단지 프로세서 속도와 OS의 우수성 같은 것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한다면? 사실 애플은 이미 90년대에 그렇게 해봤고, 덕분에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휘청거렸다가 이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효용의 방향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도록 하는 정체성 부여를 만화 분야에 적용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 그 만화를 보는 독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업기획에서는 보통 시장분석 등을 통해서 타겟층을 골라서 제품을 그들의 취향에 맞춰주는데, 가치부여 마케팅은 보통 비슷한 대상을 상정하고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을 원하는 당신들은 바로 **한 이들이다, 라고 지정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생층을 대상으로 적당한 지식이 들어 있는 만화를 만든다”가 아니라, “이 만화를 보는 당신은 만화라는 형식에 대한 편견으로 좋은 작품을 놓치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를 지녔으며 이 만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사람이다” 같은 식이다. 이것은 즉각적인 실용성, 예를 들어 “이 만화를 보면 논술시험 100점” 같은 것과도 크게 다르다. 세부적으로는 특정 문화 취향이 공략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읽어봤어야 BL팬이다, 이 작품을 소장하지 않고 슈퍼히어로 장르에 심취했다고 자랑하는 것은 곤란하다 같은 식 말이다. 혹은 크게는, ‘신의 물방울’ 정도는 화제에 올릴 수 있어야 한국에서 와인 애호가 사장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인식될 수 있다 같은 것도 있다.

정체성 마케팅의 기본조건은 부여하는 정체성이 멋진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이들에게 멋진 것일 필요는 없지만, 목표로 하는 타겟 시장층이 동경할만한 멋짐의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해당층이 지니고 있는 그리고 해당층에 대해 나머지 사회가 지니고 있는 스테레오타입들을 최대한 뽑아내어 최소한 이항대립으로라도 분류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공략하고자 하는 긍정적 가치의 집합체를 조합한 후, 가급적이면 그것을 체화하는 역할모델을 선정해 내세워야 한다. “알고 보니 건프라를 즐겨 조립하는 신인 여성 탤런트”, “알고 보니 미식만화에 조예가 깊은 대기업 경영자” 등 실제 존재하는 누군가를 발굴하여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만화책을 출간할 때 추천사가 그런 역할을 해주기 좋은 방법인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책들의 추천사는 내용이 다루고 있는 분야 전문가의 감상문 위주로 흐를 뿐, 마케팅적으로 철저하게 설계하여 삽입하는 전략은 드문 편이다.

노골적으로 혹은 교묘하게 은연중에 사람 자체를 규정하는 방식의 정체성 가치부여는 다시금 ‘돈값을 하는가’ 같은 즉물적 가치에도 영향을 준다. 더 이상 단순히 물건을 사고 값어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떤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을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돈을 투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즉, 물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산 것이 된다. 팩트 오류와 좁고 낡은 이념적 지향점이 가득한 어떤 시사지식만화가 칭송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는 모습의 이면에는 이 작품을 읽으면 교양인이라는 마케팅이 있다. 물론 다행히도 같은 범주로 소비자를 규정해주는 상품들 사이에서는 다시금 수평 비교가 일어나서, 실제 품질로 판가름이 난다. 하지만 다른 더 우수한 작품들과 정면승부를 회피하고자 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세부 정체성을 살짝 틀어주는 것도 가능하다(‘경쟁’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정체성 마케팅은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하지만, 만화장르 전체에 대한 입장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화가 다른 오락거리, 다른 교양거리와 비교해서 돈을 투여할 가치 즉 어떤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로서 쓸 만한가, 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열쇠기 때문이다. 업체도, 작가도, 독자도, 지원기관도, 만화가 뭔가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면 각자의 영역에서 조금씩 거들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오랜만에 다시 시작한 김에, 이전 연재분 링크:

7.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마케팅(2) – 전염 마케팅
6. 마케팅(1): 대세 만들기와 그 어려움
5. 창작을 판매하기 (하)
4. 창작을 판매하기 (중)
3. 창작을 판매하기 (상)
2. 상품과 판촉(下)
1. 상품과 판촉(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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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Nakho Kim

    [캡콜닷넷업뎃] 만화로 돈을 벌어보자: 마케팅(3) – 정체성이라는 가치부여 [만화규장각 칼럼] http://capcold.net/blog/5556 | 지난 달에 연재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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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 마케팅(3) – 정체성이라는 가치부여 7. 마케팅(2) – 전염 마케팅 6. 마케팅(1): 대세 만들기와 그 어려움 5. 창작을 판매하기 (하) 4. 창작을 판매하기 (중) 3. 창작을 판매하기 (상) 2. 상품과 판촉(下) 1. 상품과 판촉(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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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돈을 벌어볼 수 있어야 할텐데요. 시장이 워낙에… 이궁…

  2. !@#… 뗏목지기님/ 시장이 위기라는 이야기는 훨씬 격정적으로 토로하실 분들이 많으니, 저 같은 부류는 이런 식으로나마 시장을 만들기 위한 기반부터 정리해놔야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