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3

!@#… 아직까지도(!) 계속 연료를 공급받고 불타는 촛불시위 정국이, 도대체 뭐가 그리 급한지 오역까지 방치하며 서두른 고시 발표 강행 때문에 뭔가 또다시 전환점이 이뤄지고 있는 듯 하다. 물론 capcold에게는 더욱 분노하고 뒤집으라거나 당장 시위를 그만하라고 할 생각도 충분한 이유도 없다(결정적으로, 여기서 불타오르라고 타는 것도,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도 아니니). 다만 ‘왜’ 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 집요하게 매번 점검하고 넘어갈 필요는 항상 있다. ‘익숙해지면서’ 항상 가장 먼저 날라가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래서 한번 더, 생각의 토막들. 써놓고 보니 각 길이가 토막들이 아니다.

!@#… 토막 하나. 소통행위로서의 시위를 이야기할 때는, 실제로는 몇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시위가 아닌 다른 유효한 제도화된 메시지 전달 방법이 없는 경우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귀찮은 선택이라는 것. 둘째, 시위는 그 자체로 (쌍방향) 소통이라기보다, 막혀있는 일방향성을 뚫기 위한 도구라는 것. 마치 노조가 그 자체로 진보가 아니지만 진보를 위해서 필요하고, 페미니즘은 얼마든지 남성우월론만큼이나 막나갈 위험이 있지만 그 자체는 양성평등을 위해 필요하고, 내 반대자의 의견은 개새끼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필수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시위는 쌍방향 소통의 장을 촉구하는 것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상대가 ‘듣기’ 시작하면 이미 역할을 다한다. 유감스럽게도 시위에는 감정적 차원이 강하게 작용하기 마련이어서 상대가 듣기 시작하면 오히려 본격적으로 피치를 올려서 불타오르곤 하지만, 그때부터는 가장 중요한 것이 “어떤 명분으로 잘 휴전을 맺나”다. 승리도 굴복도 아니라, 휴전이다. 길거리의 전쟁을 휴전시키고, 냉전의 끈질기고 음흉한 협상과 외교와 조율의 차원으로 돌입해야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감시하고, 제도적 틀로 옭아매고, 여론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이번 건에서 청와대는 여하튼 시위대의 목소리에 반응을 했고, 그들이 가진 모든 카드를 썼다. 물론 그들이 내민 결과물이 얍삽하고 말장난같고 아직도 배고프고 그건 뻔한 이야기지만, 그게 애초부터 그들이 가진 모든 카드였다. 대운하 포기마저 카드로 내밀었을(!) 정도다. 국민들을 만족시킬만한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가진 – 아니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 던져줬다. 이 주장이 납득하기 힘들다면, 아직 ‘바보’라는 키워드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더 털릴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그 생난리를 다 쳐놓고 조기 고시 발표까지 해놓고도 정작 그 서둘렀다는 타이밍은 미국의 이목이 (남한은 그 과정에서 듣보잡을 자처한) 북핵 해결 건으로 모조리 쏠렸는데 그것 하나 계산에 못넣었을 정도로 외교라는 분야에서 바보거든. 한번의 강렬한 빳따질로 교정되는 꼴통은 없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집요하게 감시하고 관찰하고 가이드해야 될락말락이다. 바보를 말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그런 각오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소비자운동의 시동을 걸자, 라는 방향도 좋다. 당신들의 길지 않았던 통치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야매를 고소해주마, 라는 방향도 좋다. 유효한 소통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들을 제도화하자, 그러니까 그걸 할 의원과 그의 당을 확실하게 지지하자, 라는 방향도 가능하다. 지금 시점에서 시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승리의 잣대가 아니라 휴전의 명분과 냉전을 위한 전략이다. 매번 시위대로서가 아니라, 국민으로서 사회의 주인 노릇을 하고 싶다면 말이다. 그게 마련될 때까지는 계속 길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 토막 둘. 국민이라는 주인이 정부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채찍과 당근이다. 길거리 시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채찍이다. 그런데 채찍은 실질적 결과로서의 피해가 없으면 그냥 버텨도 무방하다. 문자 그대로 ‘비가 오면 피한다’ 정도. 게다가 채찍보다 당근이 유효하다는 것은 이미 보편적 지식이 된지 오래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듯 노무현 탄핵 당시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 것은 촛불시위가 아니라, 촛불시위로 퍼진 여론이 만들어낸 총선 결과다. 이번 촛불정국도 그나마 이명박 정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비폭력 집회의 감동이 아니라, 보궐선거 결과다. 당근을 못먹은 것을 보고, 다음 당근만큼은 먹고 싶어서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무척… 당근이 없다. 지방선거가 2년 후라서 한나라당에게도 당장의 당근 기회가 없지만, 이 분은 더하다. “나는 대통령, 당이고 정치고 이미 초월” 사고방식을 표명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한번 하면 땡이고, 그 이후를 생각해야만 하는 한나라당에게 마저도 별로 애착이 없음이 항상 새어나온다.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이 당근? 그런 거 없다. 좋은 현대건설 CEO로 기억되는 것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좋은 서울시장으로 기억되는 것을 신경쓰지 않았듯 말이다.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그를 지탱하던 유일한(?) 당근은 어찌보면 유년의 꿈(…) 한반도 대운하였는데, 그 당근을 이미 이번 정국 돌파를 위해 내놔버렸다.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대통령의 정치에 부여할 수 있는 당근의 시스템은 과연 무엇이 있는가? 대통령은 단임제, 의회나 지방자치단체 선거도 주기가 랜덤하게 돌아가서 평가의 의미가 약하지, 모든 정책 결정은 물론 정치 토론마저 선거기간을 피해서 이루어지지… 당근을 최우선 염두에 두는 당근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의 지혜를 모아야한다면, 그런 쪽이다. 장기적으로는 건전한 사회개혁, 단기적으로는 ‘미래가 없는’ 현 대통령이 급속히 (더욱) 꼴통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 토막 셋. 과정에서 벌어지기에 종종 혼동되곤 하지만, 시위와 폭력은 별개다. 시위는 소통을 위한 요구고, 폭력은 적을 부수겠다는 강제력이다. 폭력은 이길 – 즉 적을 폭력으로 완전히 굴복시킬 – 자신이 없으면, 굳이 소통효과를 방해하면서까지 동원해야할 이유가 도저히 없다(얄궂게도, 이 명제는 시위대와 진압세력 양쪽에 적용된다). 그럼 때리면 맞으란 말이냐? 그럴리가. 도망가란 말이다. 도망갔다가 또 나오라는 말이다. 강고함보다 집요함, 심지어 길거리로 못나온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지 주장을 나오게 하는 것.

시위에서 폭력을 쓰는 것은 독립선언문 낭독을 하면서 옷을 홀딱 벗는 것과 같다.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했든지 간에, 당신이 어떤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어떤 폭넓은 집단의 목소리를 표현하든지 간에, 얼마나 절실한 몸짓을 했든 간에, 모든 이목은 홀라당 벗었다는 것 하나에 집중된다. 그 문제점을 이해하고 있기에 촛불시위라는 형식 자체가 탄생했던 것이고, 특히 이번 2008년의 시위는 초반부터 비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만트라처럼 되뇌였던 것. 여러 일각에서 그 전제를 벌써 망각하고 폭력불가피론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기억력’을 담보하지 않고 ‘집단지성’을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에 대한 반증이다. 길거리의 흥분으로 소통 채널 확보라는 진짜 목표를 잊고 막장 테크트리를 타기까지 학생운동은 87년 이후 97년까지 10년이 걸렸다. 그 과정을 두달 기간으로 압축 반복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기억한다면”.

!@#… 토막 넷. 시위현장에 있지 않을 때, 하지만 시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짬이 있을 때 어떤 식으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을까. 광우병 소문이나 시위 사고 풍문들을 확인도 없이 퍼나르거나, 그냥 앉아서 시위에 미지근하거나 반대하는 이들 욕만 끄적이며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순간들이다. 뭐 여러 좋은 방법들이 있겠지만, (사실 별 것 아닌) 한 가지 생각법을 소개해볼까 한다.

이번 촛불정국은 여러모로 ‘발생적‘(emergent)이다. 촛불좀비라고 단순화하는 멍청이들도, 진보의 민중이 분연히 일어났다고 착각하는 자뻑들도, 오해의 깊이만큼은 아직도 배후를 찾고 있는 어떤 곤란한 분들과 맞먹는다. 이번의 엄청난 소요사태는 이미 알려져있듯 무척 이슈가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는데, 이건 무슨 진보의 종합 콜렉션을 시도하곤 하는 민중대회의 정서와도 완전히 다르다.

우선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개별 ‘사건‘들이다. 살수차가 떴다, 고시를 했다, 대운하팀이 들통났다, 대변인이 술쳐먹고 브리핑했다… 구체적인 분노와 전환점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사건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 즉 시위현장에서 구호로서 외치게 되는 것은 ‘이슈‘다. 광우병 공포, 대운하 반대, 민영화 반대, 조중동 불만, 경기하강 불만, 언론장악 반대, 폭력진압 반대, 못생겨서 반대… 이슈들은 모두 각각이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각각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불만, 건강에 대한 불안, 민주적 소통 지향, 독립국가의 주권 등 ‘가치‘에 기반한다. 즉 사건, 불만의 이슈, 가치체계라는 3가지 차원이 서로 맞물려 있다. 사건에 대한 분노는 같은데 이슈도 그 하부의 가치체계도 전혀 다른 경우가 많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그런데 하필이면 이 모든 것이 우연히 한꺼번에 맞물린 지점이 “광우병 쇠고기를 개방한 이명박 반대”(유감스럽게도, 언급하기도 귀찮지만 광우병 담론에 종종 붙어다니는 비과학적 불안과 어거지 위험 근거의 끈질김은 전설의 프리온급이다)라는 최대공약수였을 뿐이다. 그 결집이 사라지면 – 명박산성에서 사죄의 큰절을 하는 쇼킹한 굴복 퍼포먼스라든지 – 다시 산산히 흩어진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이해할만한 덩어리 만들기다. 닥치고 세상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니까 진보 혁명으로 뒤집자 그런 거 말고, 과연 자신이 어떤 것에 찬성하고 어떤 것을 반대하고 그런 것들이 어떤 차원에서 서로 엮이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우선은 사안들을 자기 블로그라든지 한 자리에 펼치고, 각각에 대해서 자신의 현재 생각을 나열해보는 것도 좋다. 큰 세계관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말고, 한번 개별 사건 부터 이슈를, 가치관을 하나씩 거슬러올라가 보시길. 사안으로부터 자신의 성향의 덩어리를 ‘발생’시키는 실험을 권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각자가 자신의 지향적 위치를 알게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기초이자, 필요에 따른 연대의 첫걸음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하면 되겠지만, 몇 가지 참조사례를 추천한다: 예1, 예2.

!@#… 토막 다섯. 그건 그렇고, 한나라당의 현 지지율로는 견제고 반대고 자시고 택도 없다. 한자리수로 떨어져야 하는 것은 한자리수로 떨어지면 정말 위기감을 느낄 세력이어야 효과가 있고, 그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아니라 정당의 지지도다. 그런데 여러 정당들이 같이 지지율이 낮으면 더욱더 효과가 없다. 정당의 순위가 크게 바뀔 위험이 없다면 그 어떤 당근도 채찍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에너지의 절반만 할애해서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떨어트리고, 그 한나라당을 싫어한다는 에너지의 절반만 할애해서 정말로 당신의 이해관계를 가장 가깝게 반영하는 당을 지지하라. 선거때만 후보 보고 한번 반짝 그런거 말고, 당원으로 가입하고 당비를 내고 내 당비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라(월드컵의 반짝 축구열풍과 대중적 무관심속 지지부진 유소년 축구와 K-리그를 보면 뭔가 느껴지는 바가 있지 않나). 그게 가장 간단하고도 상식적인 진짜 당근이자 채찍이다.

!@#… 토막 여섯. 백날 조중동 본사에 스티커 스팸질을 하든 덩을 뿌리든 아무 소용없어요. 미화원분들, 경비용역 청년들만 고생하고. 광고중단운동은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발상이지만, 많은 이들의 풀뿌리 움직임일 경우는 정당한 소비자 운동과 악질적 협박(황우석 사기 사건 당시 PD수첩 광고 취소 사태 기억하시는 분?) 사이의 미묘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절하기가 무척 힘들답니다. 그러니까 그 에너지의 절반은 여러분이 읽고 싶으신 언론매체에 투자하시고, 나머지 절반은 권언유착을 위한 최강의 교두보 최시중 방통위원장 경질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할애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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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thoughts on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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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ingback by 인형사님의 이글루

    capcold님의 촛불시위 휴전제안에 대한 반론…

    capcold님이 이제는 촛불시위를 멈추고 휴전과 제도적 개혁의 공간을 생각할 때라는 의견을 내주셨습니다.이에 대해 반론합니다.http://capcold.net/blog/?p=1188사람들은 타협할 수 있는 목표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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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조가 적잖이 기대 이하로 나와준(예를 들어 전에도 이야기했듯 체계적인 기억력 기제 없이 토론만으로 집단’지성’을 꿈꾸는 것은 완벽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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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중, 생각의 토막들 (2008. 06. 05.) –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2 (2008. 06. 09.) – 촛불 정국 생각 토막들 3 (2008. 06. […]

Comments


  1. – 한 1달전에 그냥 불매운동하면 되지 않나? 라는 블로그를 본 적이 있죠. 그 때는 좋은 방안이지만 국민에게 제대로 정책홍보나 설득을 안하는 정부의 모습을 생각할 때 나중에 나와야 할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요즘 돌아가는 걸 보니 시위대도 목표가 없고 소통을 못하니 문제에요. 추가협상 등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실제적으로 정부와 토론해보는 공간을 마련하고 밀리면 맹목적으로 시위하기 보다 소비자운동으로 가는 방법도 있겠죠. 확실히 어떤 설득을 못한다면 일정부분 타협이나 진지전으로 가는 생각도 해봐야 할텐데..

  2. !@#… 지나가던이님/ 말씀하신 그대로, 한 달 전의 맥락에서는 불매운동의 타이밍이 아니었죠(아예 안들었으니 -_-;). 여튼, ‘발생적’ 시위대가 어느 순간 짜잔하고 고스란히 소비자운동으로 스위치할 방법은 없습니다. 소비자운동 방법들을 확립시켜놓는 등 꼭 길거리에 나오지 않고도 충분히 효과적인 방법들이 널리 퍼지면 자연스럽게 흘러갈 따름이죠.

    dcdc님/ 얼마든지 업어가시길 :-)

  3. 지금 상황에서의 휴전은 공안정국만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것도 해답이 아닙니다.

    조금 있다가 트랙백 하나 하겠습니다.

  4. 언제나처럼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다만 세번째 토막에 대해서는 조금 정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위는 요구가 아니라, 표현입니다. 시위의 목적은 소통이 아니라, 선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시위가 소통에의 요구라면, 소통을 안 해주니까 폭력을 쓴다는 논리가 가능하겠죠. 그러나 시위가 선언일 때, 소통과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정부가 될 것입니다. 학생운동이 사라진 이유는, 소통채널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벌거벗어 선언할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지 못 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치지도, 절실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5. 생각은 당분간 캡선생 외 다수께 맡기고 전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책이 나왔답니다.

  6. !@#… 모과님/ 가는데까지 가신 다음에도 막다른 골목이 나오지 않도록, 경로를 계속 궁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도 썼지만, 때릴려고 하면 도망가는 것을 잊지 마시고;;; 책은 나온거 확인하고 바구니에 바로 넣었는데, 배송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군요. (그 때까지 한겨레21 연재분이나 복습을… 하려고 했으나 너무 글자가 작아!)

    yicj님/ 좋은 지적입니다. 촛불 정국 토막 4를 써야만 하게 된다면, 흡수하도록 하겠습니다 :-)

    인형사님/ 음, 보내주시는 트랙백이 자꾸 자동스팸분류되는군요. 뭔가 규칙이 있는 듯. 그리고 본문에서 살짝 다시 따옵니다: “그게 마련될 때까지는 계속 길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하지만.”

  7. !@#… 미고자라드님/ 여튼, 저같은 류의 사고방식을 지닌 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 관두자! 또는 불타자! 그런 식으로 쉽게 단언하지 않도록 항상 신경쓸 수 밖에 없습니다(어떻게 하든 그렇게 읽고 마시는 분들은 나오기 마련이지만). 하찮은 술자리조차 국면을 전환하면서도 에너지는 유지되도록 2차를 어디로 갈지 내적 외적 상황 추이를 고려하며 생각하고 미리 자리를 예약하기 마련인데, 이 정도 중차대한 일에서 궁리가 부족하다면 큰일이죠.

  8. 도망치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전경에게 끌려갔다 도망쳐 나오니 앞에 서는 것도 두렵습니다(물론 경이적 위기대처능력으로 맞진 않았지만).
    가슴이 터져서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무더기입니다.

  9. !@#… 모과님/ 현장의 심경들을 제가 논할 바는 아니지만, 그럴수록 도망치는 것을 절대 부끄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적잖이 이루어낸 모든 것들은, 하얗게 모두 다 태워버리기보다 끈질기게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고 이슈화를 시켜온 여러 분들의 행보 덕분이니까요.

  10. capcold님도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과장되어 있고, 따라서 허깨비이슈이고, 그러므로 가능한 한 빨리 실질적인 이슈로 이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광우병문제를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은 이미 밝혔지요.

    그러므로 광우병문제에 계속 집중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수많은 이슈들이 여기에 딸려 나올 것입니다.

    계속 촛불을 들고 소통을 시도하는 것도 이제는 무의미하고, 정권타도를 외치며 정권과 계속 정면충돌하는 것도 위험하고, 대신 미국쇠고기 유통봉쇄로 방향전환하는 것이 광우병이라는 이슈에 대한 집중도 유지하면서 파국도 일정하게 연기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진짜 서울 불고기 파티를 해야할 때가 아닐까요?

  11. !@#… 인형사님/ 공포에 질려가며 광우병 자체에 매달리는 것은 허망하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도출되는 이슈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은 두 달도 전에 첫 광우병 관련 글을 남겼을 때(클릭) 이래로 제 일관된 입장입니다. 유통봉쇄 운동에 대해서는… (제발) 닥치고 창고에 불지르고 다니는 식만 아니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소비자운동도 최종단계에서의 유통봉쇄의 일종이고.

  12. “근거를 과장해가면서까지 광우병 떡밥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외교력과 무대책 축산정책에 대해서 산적한 문제제기를 꺼내는 것이 낫다.”

    이것이 capcold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유사한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와 capcold님의 의견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capcold님은 대중에 의한 공포의 비합리적인 과장이라고 보시는 것에 대해 저는 식품안전이라는 공공재를 박탈 당함에 따른 자연적인 반응이라고 봅니다.

    그러하기에 광우병에 따른 모든 과장과 부정확이 제거되어도 실체가 있는 정치적 내용은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공공성의 영역을 희생시켜 시장에서 얻는 사적 이익을 극대화시키자는 논리이고 이것은 이명박 정부 통치철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현정권 문제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연결된 이슈인데 충분히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없이 공포를 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체로 충분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한 많은 과장과 부정확성 때문에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 입장을 부분적으로나마 정리한 글을 링크합니다.
    http://puppetmstr.egloos.com/505377

    불고기 파티 이야기는 전에 제가 했을 때는 재미있어 하시더니 더 이상 그렇지 않는 모양이군요.

    제 입장은 다시 미국쇠고기수입 문제로 집중하여 재협상까지 얻어내는 것이 그 나마 파국도, 공안정국도 막아낼 최소한의 조건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끌고온 다음에 재협상을 받아들이면 정부가 이제 식물정부가 될 것이니 이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도 식물정부가 파국이나 공안정국보다는 낫겠지요.

  13. 인형사님/ 문제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식물정부보다 파국이나 공안정국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14. !@#… 토막 둘에서 살짝 언급하긴 했지만, 현재 집회 상황의 문제를 좀 더 명쾌하게 요약했다고 보는 문구를 하나 인용하겠습니다: “청와대의 행동은 시위대에게 인센티브가 못되고, 반대로 시위대의 행동은 청와대에게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이냐’ 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파국이나 공안정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국면전환의 현실적 조건들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죠.

  15. 어제 시청에 있다가
    맞기도 싫고 때리게 하기도 싫은 마음 공유한 두 친구랑 함께,
    명동 번화가로 이동하여 게릴라 시위하다 왔습니다.
    명동성당 앞에 합류할까하다 너무 외지고 고럼 또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선택한 절충안^^;
    종각으로 힘을 모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도 크지만
    (그리고 그 용기에 감사드리지만)
    그냥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고 왔습니다.
    생각이 좀 정리가 안 되어 있었는데
    캡콜드님 글 읽고 가닥 좀 잡고 갑니다. 계속 건필해주세요~!
    (참, 링크 신고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수정도 자유라니…의도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copyleft
    클릭하면 뜨는군요;여튼 감사!)

  16. erte / 그러나 반대측에서 공안정국으로 가느니 차라리 파국이 낫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요. 대중동원은 한번 발동이 걸리면 사람의 손을 떠나 자기고유의 논리로 움직이지요.

    정권은 파국으로 가느니 식물정권이 낫다고 생각할까요? 식물정권으로 가느니 파국이 낫다고 생각할까요? 파국의 가능성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면 알 수 있게 되겠지요.

    단기적으로 최적값은 식물정부일텐데, 그쪽으로 갈 수 있을지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중동원이 발동 걸린 순간부터는 시한폭탄은 작동을 시작했고 그 신관을 해체할 열쇠는 항상 정권측에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제 정의구현사제단이 나와서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리셋해주셨군요.

    87년에 이어 또 다시 그분들에게 큰 신세를 지는군요.

    사제단도 정권과의 대립에서 강조점을 빼고 쇠고기 문제에 다시 집중하시는 것 같더군요.

    capcold/ 결국 광우병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저도 국면전환의 필요를 인정하지만 광우병문제와의 접점을 유지하면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이냐는 소리가 나온다는 건 저번에도 제가 말했듯이 그들이 자신이 왜 보복 당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머리 나쁜 사람들이랑 게임하기가 참 힘듭니다.

  17. capcold/ 링크해 주신 글의 댓글까지 읽고 나니 좀 충격이군요.

    비합리적인 대중에게 공안정국으로 길을 들이자는 이야기로 읽었다면 저의 과장일까요? 설마 저 입장까지 동의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capcold님은 다크사이드를 선택하시는 게 되는 것 아닙니까?

  18. 인형사 / 공안정국이라. 공안정국이라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이신지? 노무현정부때도 강경진압은 많았지만 ‘공안정국’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죠. 만일 노무현 정부때도 ‘공안정국’이라고 부르신다면, 저는 ‘그정도의 공안 정국’은 감수하고 넘어갈 생각입니다만.

  19. 공안정국은 강경진압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노무현 때의 강경진압이 국지적 사태였다면 이번 사태는 정권을 위협한 사건입니다.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겁니다.

    피디수첩에 대한 검찰수사, 우희종 교수에 대한 연구노트 제출여부, 광우병 대책본부 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 및 압수수색, 한겨레 경향에 대한 폭력선동비판등이 이미 전조를 보여주고 있지요.

    광우병 사태를 일부세력의 선동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촛불집회가 사그러들면 대대적으로 그런 선동세력 색출과 보복에 나서겠지요. 그들로서는 똑같은 일을 다시 격고싶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조직이나 지도부 없이 시작된 사태이니 누구라도 그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20. 아항, 그러니까 ‘벌어지지 않은’일을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요? 조심하자는 이야기는 좋죠. 그렇지만 말은 제대로 하셔야 하겠지요?

    참고로 ‘조중동’에 대한 비판이 매우 많았던 것이 지난 정부였고, 노조 탄압도 약하지 않았지요. 황박 사태에서는 웃기게도 ‘연구노트 제출을 안’받아서 문제였구요.

    현 정부가 문제가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을 까면 될 일이지만, 공안정국으로 ‘정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아닐까 싶군요.

  21. 기린아 /강경진압과 공안정국을 구별하지 않으시는데 그럼 강경진압만 가지고 이야기해볼까요?
    어느 정도의 강경진압이면 춧불집회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몇 명이 구속되고, 몇 명이 다치고, 몇 명이 죽으면 진압될까요?
    스스로에게 한번 진지하게 물어보십시요.
    그것이 노무현정부 때의 강경진압과 비슷한 수준일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랬다면 MB정부는 이미 옛날에 강경진압했을겁니다.

  22. 남의 블로그에서 일일히 다 답글달고 오히려 주인장을 압도해나가는 누군가를 보는 건 두려운 일이다.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본인이 입다물기 전엔. 여긴 관대한 사람들 뿐.

    벽보고 소리를 지르든, 아무도 안들어준다고 울던 자기 방에서만 하면 그렇게 추하진 않을텐데, 아무래도 답변하나당 몇백원이라도 받는다면 좋을 것 같구만.

    지나갑니다.

    -지나가는 이들의 모임

  23. !@#… 물하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있어서, 외진 곳이란 없습니다. 여러 곳으로 널리 퍼지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으니, 게릴라 시위 건투를 빕니다.

    인형사님/ 공안정국이 오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는, 안그래도 스스로 선택권을 좁혀버리기 좋아하는 현 정부가 무려 공안정국이라는 극단적인 수를 쓰도록 빌미를 주지 않는 것도 전략적으로 필요하죠. 현재의 발생적 시위가 ‘전략’ 같은 것으로 움직이는 상황은 물론 아니지만.

    기린아님/ 얄궂게도, 저들은 강경진압이 ‘통해서’ 의기양양해지면 아하 그러쿠나 하면서 진짜로 공안정국을 선택할지 모르는 사고회로의 소유자들이니까요. 광우병 발병 확률보다는 훨씬 높을지도.

    기불이님/ 가끔, 맞춤법 검사기처럼 ‘용어정의 검사기’가 하나 있으면 좋겠어요.

    some님/ 음… 여긴, 주인장을 압도하는 건 상관없습니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모를까.

  24. 인형사 / 이제는 난독증에 이르르는군요. 저야 말로 ‘강경진압’과 ‘공안정국’을 구분하자는 의미에서 쓰고 있는것이고, 지금의 상황은 과거의 ‘강경진압’과의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왜 노무현때를 당시에 ‘공안정국’으로 정의한 사람들이 없건만(있다고 해도 매우 소수겠죠.) 지금에 와서 ‘공안정국’을 논하느냐, 가 제 논점인데요. 그리고 저는 ‘공안정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니, 그 용어를 쓰신 인형사님께서 ‘공안정국’을 정의해 주셔야지요.

    용어 정의를 기다리겠습니다. 남에게 ‘곰곰히 생각해 보라’라고 하기 전에 본인이 쓴 용어정도는 ‘하례와 같은 은혜’로 남에게 던져주시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군요.

    capcold / 저도 그런 걱정은 확실히 드네요. 확실히 광우병 발병 확률보다는 높을지도. 어찌된 인간들이 조울증 투성이인지.-_-;;

  25. 1. 블로깅에서 스팸만큼이나 지루하고 신경쓰이는
    정의논쟁, 해석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같아 쪼금만 끼어들자면,
    우선 인형사님이 ‘현재상황=공안정국’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어보입니다.
    인형사님에 의해 공안정국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된 댓글만 봐도 ‘지금 상황에서의 휴전은 공안정국만을 불/러/올/ 것’이라 표현했고, 그 이후의 용례들을 살펴봐도 현재상황을 공안정국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단정키는 어려워 보입니다.

    또, 노무현의 강경진압을 보고 공안정국으로의 전환을 예측하지 않았는데, 왜 이명박의 그것을 보고는 예측을 하려하느냐는. ‘노무현은 이명박이 아니니까. 이명박은 그럴수 있는 사람이니까’라는 신념만 받아들여진다면 주장되어 질 수 있는 하나의 (신념내에서)합당한 논리전개일 수 있어 보입니다.
    아직 정의-해석논쟁으로까지 넘어갈 정도로 논쟁이 무르익은 단계는 아닌것 같아 이렇게 몇자 남겨봅니다.

    2. 저도 주인장을 압도하는 댓글보기가 좋지만은 않은 독자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재미있을 때도 있더군요, 가끔씩 필요이상으로 현란해 의미전달이 잘 안되는 ‘조합성 댓글’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짧은 대화(1-2회의 서너문장 주고받음)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표현및 말투를 사용하는 댓글도 보기 좋지만은 않더군요.

  26. 가끔 들러서 포스팅하신 글들을 읽어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올때마다 캡콜드선생님과 댓글러분들의 논의에서 여러가지 배우고 갑니다.

    저는, 촛불시위를 둘러싼 논란중에 시위에서 나타나는 어떤 문제점들이 ‘대중성’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구체적인 권리와 요구를 가진 시민이 아닌, 선동의 대상이며 실체를 알기어려운 대중말이죠. (그리고 이것이 단지 보수논객들의 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캡콜드님이 네번째 토막에서 제시하신 것처럼 구체적인 사안과 개별적인 국면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레토릭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민이 군중내지 대중으로서 인식될때, 캡콜드님이 강조하시는 소통은 이미 그 기반을 잃어버리는 것이 될테지요.

    좋은 글 포스팅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27. some님/ 이곳에서 가끔씩 댓글 논의가 감정적을 진행될때가 없지는 않지만, 저는 이곳의 댓글 문화에 대해서는 사실 굉장히 감탄하고 가곤 합니다. “남의 블로그”에 이렇게 댓글을 열심히 다는 것이 정치하기, 시민되기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포스팅글 뿐만이 아니라 댓글을 읽는 즐거움때문에 이곳에 종종 들립니다. 그것을 추하다고 하셔서 제 생각을 몇자 적습니다.

    조금 불편한 느낌으로 읽히는 글이 있을때도, 지켜봐주실 수 있고 동참하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주인장님은 지금까지 써오신 글들을 볼때, 그런 부분에 대해 압도된다고 느끼실 분은 아닐것 같습니다. 그리고 논의가 감정적이 되거나 조금 불편한 상황이 있을때도, 우리가 인간이고 정치는 이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신념과 passion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하지만 않다면 이곳은 그런 순간들을 수용할 수 있고 그런 순간들에서도 새로운 논의를 함께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토론문화를 이곳에서 보기때문에, 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28. 시위자가 스스로를 무엇이라 정의하든, 정부가 그들을 폭도로 규정하는 순간 공안정국이 됩니다. 이명박정부가 지금의 촛불을 든 시위대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에 따라서, 공안정국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29. !@#… 기린아님/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이명박 정부가 공안정국(혹은 그것에 준하는 뭐라도) 이라는 카드를 스스로 깨끗하게 포기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아직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미국마냥 법정 만능주의로 정부에 소송 폭탄을 먹여야 할지도.

    advantages님/ 개인적으로는, 공안정국이라는 말이 파시즘이라는 말 만큼이나 광범위하게 막쓰이기 쉬운 말이고, 그래서 오히려 원래 그 말을 통해서 담아내고자 했을 진짜 우려를 희석시킬 수 있기에 별로 달갑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널리 동의할만한 좀 더 나은 개념들을 좀 궁리해봐야할텐데, 머리가 잘 안돌아가는군요.

    anna님/ 그건 아직 이 동네가 만성적 본격 악플 폭탄에 시달릴 정도로 메이저하지 않다 보니… :-)

    yicj님/ 저는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바로 정부가 폭도로 규정하는 그 틀에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할 때 그렇게 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두 달동안의 상황 속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얻어낸 것들은, 그들의 인식 능력을 완연히 넘어섰던 부분에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죠(예를 들어, 촛불여론으로 한나라당의 보선불패 신화를 부숴준 것이라든지). 개인적으로는, ‘스마트몹’의 라인골드의 최근 발언이 흥미롭더군요(클릭).

  30. 링크해 주신 페이지 읽어 보았습니다.

    제가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부분은, 테크놀로지가 시민들에게 동시성(simutaneity, synchronization)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이곳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의 동시성이, 시위를 즉각적(immediate)이거나 즉흥적(spontaneous)일뿐 아닌, 복수적(plural)이고 상대적(relative)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제가 링크해주신 페이지가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까닭입니다. 동시성이 기존의 군중이라는 정의의 조건들을 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1. !@#… yicj님/ 고리타분한 면이 있지만, 특히 한국의 시민저널리즘 담론에서 가장 쉽게 잊혀지곤 하는 가장 근간이 되는 이야기를 다시 상기할 수 있어서 주목했습니다. 정보의 양이야 이미 차고 넘치게 확보했으나,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서 최소한 현재의 단순한 ‘바자회 모델’보다는 더 세련된 기제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야기하신 복수성/상대성은 대단히 중요한 경향이고, 그것을 같이 기반으로 삼아서 궁리를 해야겠죠.

  32. !@#… 급시우님/ 당시 그 정도 컸던 사안에 대해 그 정도 고민조차 안했고 나아가 이제와서 익명 악플이나 남기는 것이 더 얼빠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생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