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다음 아고라 상에서 만들어지는 통찰력 있는 예언은 아고라라는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다. 또한 아고라의 익명 발언이라는 맥락에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인정할 수 있다. 아고라는 특성상 철없는 투정과 쌍욕부터 의외의 심도 깊은 통찰까지 수비범위가 넓은 곳이다. 왜냐하면, 별다른 검증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이 말이 그냥 거친 넘겨짚기일 가능성을 바탕에 깔고 어쩌면 쓸만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도로 접근하는 것이 기본이다(그게 안되는 순박한/멍청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걱정거리다). 하지만 그 맥락을 넘어설 때는, 예를 들어 아고라에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주류 시사잡지에 글을 쓴다거나 하면 당연히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 학회지 논문만큼의 엄밀함은 아니라도, 저널리즘적 사실성과 논거는 갖춰야 한다. 혹은 그 글 자체가 그것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런 기준에 의해서 까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 물론, ‘미네르바 현상’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미네르바는 증권 실무자의 시야로 움직이는 사람이고(‘노란 토끼’ 같은 화법이라든지), 그가 이전부터 내린 전망들은 철저하게 투자판단을 위한 배경지식의 틀을 지니고 있었다. 부정적 전망 전문이었는데, 결과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 전망이 실현되자 독자들은 그의 예언력을 찬양하고. 여기까지는 오케이.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나름대로 충실한 가장이고 알고보면 착한 인격적 면모도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직업 실무적 차원에서는 조낸 국가적 차원으로 병맛나는 민폐질을 거듭하고 있는 분들이 미네르바의 뒷조사를 하고 허위사실 유포로 옭죄겠다며 으름짱. 시련 속에서 인기논객은 신화로 부활한다. 증권맨의 직관은 경제학적 예언으로 포장되기 시작한다. 독자들의 마음 속에서, 그리고 그것이 피드백되다보면 필자 자신의 자세까지 말이다. 그리고 경제학적 모델과 수치같은 “자신의 실제 전문분야 바깥이지만 지금 가장 호응이 좋을” 것들을 사후 동원해가면서 자꾸 판을 키워 신화를 공고히 한다(이 대목에서 ‘황’이라는 이름이 떠오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예언을 맥락화시켜주었던 판 바깥까지 들고가서, 급하게 동원한 경제학 논리에 수많은 결함과 비약을 노출시킨다 – 실제 추후 정책에 반영하기에는 도저히 곤란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신동아’는 제로존 이론을 두둔하는 실로 한심한 잡지로 커밍아웃하기는 했지만, 여하튼 주류(!) 시사월간지인 만큼 나름의 증명 가능한 근거가 필요하다. 경제학 쪽 논리에 서있는 이들은 당연히 아연실색하지만, 비판해봤자 까인다 – 미네르바의 발언을 막은 자들과 한패로 몰리는 것도 시간 문제다.
!@#… 냉정하게, 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내용을 긍정하는 것은 별개다. 또한 내용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참조하는 것과 족집게 만병통치 경제대통령으로 숭배하는 것도 별개다. 예를 들어 증권가 특유의 직관으로 가득찬 그의 절필선언 즈음의 글들은 실제 시중에 돌아다니는 공포의 총합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참조해서 확실하게 반박해내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는 것에 큰 힘이 된다. 담론의 장에 공식적으로 끌고 와서 부정할 것은 부정하고 긍정할 것은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판단에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이 바로 아니라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는 것(falsifiability)이듯 말이다. 아고라 특유의 막말도 통찰도 자유로운 발언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폭’이 낳은 소중한 결실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해내고 싶다면, 그에 걸맞는 조건이 필요하다… 자꾸 추가해서 덧붙이고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라든지. 그리고 무엇보다, 틀린 부분에 대해서 까여야 한다. 까인다고 해서 그의 말을 틀어막은 개새들이 옳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아고라 익명논객으로서 제공한 카타르시스 – “높은 지위의 무능한 장차관들보다 일개 낭인이 더 상황을 똑바로 예측했더라” – 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정책을 제시하고 앞으로의 대처를 하려면 최대한 엄밀하게 제대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러려면 전문분야의 기반을 무시하고 가로지르는 것은 곤란하다. 가로질러줬으면 하고 바라면서 숭배하는 것은 더욱 더 문제가 있다.
!@#… 모든 것은 하나로 요약된다. “사회적 사고를 만들어 나가는 담론의 장에서, 오바하지 말자” (만약 민주주의를 위해서 “가꿔야 할” 시민적 덕성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것을 말하겠다). 오바질은 자신도, 숭배의 대상도, 실제 전문성을 통한 문제 해결도 망친다. 오바질은 이성이라는 휘발성 물질을 삽시간에 날려버리며, 여러가지 이유에서 각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든 이들을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묶어버림으로써 애초에 진짜 문제를 일으킨 이들만 무척 해피하게 만든다. 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싸워라. 그가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는, 검증하라 (혹은 전문적 검증의 과정을 응원하고 기회가 되면 조금이라도 학습하며, 더 훌륭한 수준의 이야기가 생성되면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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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는, 싸워라. 그가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는, 검증하라.” – capc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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