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스도의 정열’? 그럴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이지. 여튼, 말많고 성공도 많았던 영화, 결국 보게 되었다. 짧은 인상들.

1. 브레이브하트.

…뭐 다들 알다시피, 이 영화는 멜 깁슨의 원맨쇼다. 유대계 자본(한마디로, 주류 헐리웃, 미국 금융 그 자체)들이 투자를 꺼리고, 또는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투자를 꺼려서 결국 멜깁슨 호주머니에서 돈 3천만달러를 털어 만든 “독립 블록버스터 영화”. 나도 호주머니가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 제작 투자 각본 감독 다 멜깁슨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러다보니, 멜깁슨이 원맨쇼를 했던 또다른 과거의 영화 한편과 이미지가 많이 겹친다. <브레이브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브레이브하트의 마지막 30분(그러니까, 마지막 전투 끝나고 고문받다가 장렬하게 죽는 부분)의 두시간 버젼이다. 얻어맞고 고문당해서 육체가 문드러지면서도, 눈빛만은 잃지 않고 버티기. 그러다가 마지막에 장렬하게 한마디 외치고 끝. 그리고 에필로그. 간단명료 그 자체이면서, 완전한 복사판이다. 그러니까 그 때 그걸 보고 재밌었던 사람들은 이번 영화도 재밌게 보겠지.

2. 말초.

…이 영화, 말초적이다. 엄청 말초적이다. 고매한 종교적 영적 영감이니 뭐니, 깡그리 배제했다. 그냥, “예수는 이렇게 졸라 맞아가면서도 니네를 사랑하고 용서했다; 그러니까 니네도 이제부터 교회 다녀라”. 영화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로서 겪는 정신적 갈등은 대략 5분 정도로 축약해버린다. 나머지는, 그냥 호쾌하게 두들겨 맞는거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말콤 맥도웰이 생각났다. 그 인간은, 성서를 읽으며 예수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뒤에서 채찍질하는 로마병사에 이입하고 즐거워했다. 뭐… 이 영화라면 그게 좀 어려웠을꺼다; 로마병사들이 라틴어로 말하니까. 하지만 어떤 SM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신체폭력의 말초적 자극은 대단한 임팩트를 준다. 중세의 수도원 가운데 어떤어떤 일파들은 스스로 등에 채찍질을 하면서 신앙을 다졌다지 아마? 대략 그런 컨셉이다. 그래도 종교적 가르침에 관한 것인데, 너무 말초적으로 단순화시켰다고? 여튼, 어차피 생명유지 기능에 필요한 최소한의뇌세포만 남겨놓고는 나머지는 다 퇴화해버린 현대의 주류 영화관객들에게 딱 맞는 수준의 접근법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박스 오피스에서. 아마 한국에서도.

3. 언어.

…아람어와 라틴어로 된 영화. 영어로 안하고 당시 현지어를 사용한 것은 충실한 사실재현을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로 그런 식의 어감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이 가상하다. 아람어…는 내가 중동의 언어들을 전혀 모르니까 생략하지만, 라틴어의 재현은 정말 감동이다. 여기서 로마 병사들이 구사하는 라틴어는 바티칸식의 딱딱한 기도문의 어감이 아니라, 현재 이탈리아어의 어감(그렇다고 내가 이태리어를 한다는게 아니라… 들리는 ‘느낌’ 말이다)을 상당부분 품고 있는 살아있는 생활 언어 그 자체였다. 이 황당한 시도에 우선 박수. 재밌는 건, 유대 사제들과 빌라도가 대화할때는 아람어, 예수와 빌라도가 대화할때는 라틴어라는 것이다. 즉 예수는 당시 지배민족이었던 로마인들의 언어이자, 더 교양있고 깊이있는 언어로 취급받은 라틴어도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훌륭한 인텔리로 묘사된 셈이다.

4. 유대.

…알려져있다시피, 이 영화는 “유대인에 대한 악한 묘사로 인하여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자본 투자를 못만났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유대계가 잡고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유대인의 모습은 이미 2000년 전에 묘사된 것에서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유대인이라서가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지 우매하고 나약하고 따라서 한없이 잔인한 군중들의 모습이었을 뿐이다(물론, 여기 한국에서도). 정말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영화속의 사제들이 아니라, 현실의 그런 인간들이다. 배타적이고,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십분 이용해서 다른 삶의 방식들을 철저하게 박해하고 억압하는 잘난 족속들… 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를 헬기로 사살해보렸다고 하는군. 또 (‘유대인들의’) 미국은 비난성명 한번 안하고 침묵을 지키는군. 이 이미지, 편견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5. 마무리: 그래서 감동은?

…종교적 헌신과 진정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뚜렷하게 보인다. 멜깁슨씨,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헌신과 진정성이라면, <삼손과 데릴라>를 위시한 김청기 감독의 수많은 성경 애니메이션들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안바라고 사비로 만들다시피 한 것도 그렇다. 내게 있어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누군가의 진심이 담겨있구나, 라는 것이 줄 수 있는 감동 뿐이다. 그것이 결코 적은 것이라거나 폄하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딱 그 정도까지라는 것이다. 시각적 쾌감으로 즐기거나(멜깁슨은 팀버튼이 아니란 말이다), 이야기의 매력(워낙 많이 보고 들은 스토리라서…)으로 즐기기에는 사실 좀 턱없다. 그냥, 영상으로 보는 기독교 성서 + 한 호주출신 미국 영화인의 신앙에 대한 절절한 의지. 나에게 영화적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럭저럭 가능하지만, 나를 다시 일요일마다 교회로 직행하게 만들만한 영화에는 39.304% 쯤 부족하다. 하기야, 아람어와 라틴어로 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원래 이 영화의 의도가 포교활동보다는 기독교 신자들을 위한 컬트영화에 가까웠을 수 밖에 없지만. 여튼, 볼 만 하다.

PS: 하지만 가능하면 보기 전에 성경 4대복음 중 아무거나 하나를 한번 더 읽고 가거나(기독교 신자라면), 성경의 내용을 어느정도 꿰고 있는 친구를 데려갈 것(신자가 아니라면)을 권한다. 워낙 성서의 wndy 이벤트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물흐르듯 플래시백 이벤트로 주욱주욱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PS2: 눈썹을 홀라당 밀어버린 사탄 아저씨, 당신의 묵직한 카리스마는 가히 대천사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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