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만화 제작툴 Tarquin Engine 일반발매

!@#… 작가 E-Merl이 고안해낸 웹만화 제작툴 Tarquin Engine이 드디어 일반 공개되었다. 혁신적일 정도로 직관적인 줌인-줌아웃 방식으로 무한 캔버스를 자유로이 누빌 수 있는 독서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장비. 그냥 같은 칸 크기로 한 4칸 쯤 세로 스크롤하는 방식을 취하는 웹만화의 경우는 그다지 효용성이 없지만, 여러 칸 크기와 방향을 오고가는 복합적인 독서방식을 도입하고자 할 경우 꽤 좋은 선택. 

!@#… 기본적으로는 플래시에서 구동시키는 소스파일. 음… 유료판매군. -_-; 20달러. 뭐 소프트웨어치고는 그렇게까지 헉!하고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여튼 유료군. 혹시 생각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구해보길. (혹은 ㅊ대ㅁ과 ㅂ학과장에게 졸라서 학과차원에서 단체구매?)

여기서 산다:

http://www.webcomicsnation.com/tarquin/

이걸로 이런 식의 만화를 만든다:

http://e-merl.com/pocom.htm

http://e-merl.com/form.htm

만화가 강도영, 강풀만화를 그리다 [시사저널 050130]

!@#… 시사저널 올해 설특집호에 기고한 또 하나 글 기고. 항상 그렇듯이 여기 올리는 것은 원래 보낸 오리지널 버젼, 잡지에 실리는 것은 그쪽 편집부를 거친 버젼. 예를 들어 잡지기사에는 ‘칸을 없앴다’라는 그림설명이 나오지만, 사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건 ‘경계선을 없앴다’지, 칸 구분 자체를 소멸시킨 건 아니니까. 뭐 원래 전문지가 아닌 일반 저널리즘의 차원에서는 그런 식의 미묘한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가 행여나 이 글을 퍼나른다면,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쪽 버젼이 퍼날라지는 것을 선호.

!@#… 본문에도 언급한, ‘온라인 만화 1세대‘라는 호칭의 작위성에 대한 생각. ‘세대’라는 건, 그 이후나 이전 세대와 확실한 성격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한 범주구분이다. 무슨 등수놀이니 원조 경쟁이니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한마디로, 2세대 없이 1세대를 이야기하는 건 완전한 엉터리라고. 특히 1세대, 최초 어쩌고 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하는데, 자칫하면 그 이전의 역사를 리셋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순정만화는 80년대에 생겨났다”고 하면, 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이전 순정만화의 모든 역사 – 민애니, 엄희자 등등 커다란 이름들과 그들의 독자, 문화들 – 이 그 존재 자체를 깡그리 소멸당하게 되는 것이다. 초보자나 문외한들이 그런 부주의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건 일정 정도 어쩔 수 없지만, 이쪽 판의 ‘선수'(또는 선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그러고 다니는 건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다. 뭐… 그냥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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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도영, 강풀만화를 그리다

김낙호 / 만화연구가

  작년, 한국의 수많은 온라인 사용자들은 <순정만화>라는 당혹스러운 제목의 만화를 우연히 발견했다. 아니, 작품 제목이 그냥 순정만화라니, 마치 주말 연속극 제목을 ‘멜로드라마’라고 붙이는 격 아닌가. 하지만 작품은 무척 재미있었고, 특히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결과 조회수가 하루 200만까지 올라 가고, 단행본이 출판 불황 속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일본과 1억원짜리 출판계약을 맺는 등의 성공을 보여줬다. 강도영이라는 본명보다 강풀이라는 필명이 더 잘 알려져 있고 그 이름을 딴 ‘강풀만화’라는 총칭이 어느 틈에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지금, 그 작품들이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 매력이 과연 무엇인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에 적응하는 법

  강도영의 그림체는 기존의 만화 장르관념에서 보자면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왠지 4등신스러운 인체비례를 지닌 깔끔하고 귀여운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든 캐릭터들, 그렇다고 해서 강한 개성의 스타일리쉬한 매력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도 데뷔를 위해서 여러 출판사를 전전했지만 거듭 실패했던 과거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몇몇 잡지, 그리고 한창 젊은 작가들의 짦막한 개그물을 새로 수용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스포츠신문에서 가끔 작품발표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강도영이 ‘강풀’로서 대중적 사랑을 받는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인터넷이라는 둥지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강풀만화의 첫 대중적 히트작은 고료를 받고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홈페이지인 강풀닷컴(http://www.kangfull.com)에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는 만화들이었다. ‘지치지 않을 물음표’라는 범주로 묶어서 2002년부터 그려온  이런 일련의 만화들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엽기 개그, 생활 속에서 겪은 황당한 상황을 담은 재담, 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인데, N세대니 P세대니 하면서 한참 폭발적인 성장세를 타고 있던 온라인 사용자들의 문화적 취향과 시의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다. 심지어 다소 부족해보이던 그림체마저도 그런 구수한 내용에 오히려 적합하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입소문에 힘입어 메일과 각종 개인게시판으로 활발하게 ‘펌질’ 당하고, 온라인의 강풀이 오프라인의 강도영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명성 덕분에 대형 포털 사이트의 만화코너에 영화 해설 만화를 연재하기에 이르렀고, 후속작으로 같은 공간에서 온라인 장편 연재작품인 <순정만화>를 연재하도록 해주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온라인 만화가 1세대’라는 이유 없이 작위적인 호칭은 곤란하지만, 확실히 강풀만화는 온라인 문화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좋은 사례다. 특히 온라인에서 자신의 만화를 퍼나름에 대한 공식적인 허락과 몇가지 규칙까지 공지하는 등 온라인 문화의 핵심적인 특성인 ‘커뮤니티성’을 적극 지지함을 독자들에게 증명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천성적인 붙임성을 무기로 하여 동료 작가들끼리의 커뮤니티를 적극 주도했는데, 그 결과 몇몇 온라인 만화 작가들의 친목에서 시작했다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자선 이벤트 “러브콘서툰”이 탄생하기도 했다.

칸 경계선을 버리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다

  모니터를 통한 상호대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나가면서, 만화의 표현 형식 측면에서도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중에서도 칸 경계선을 버린 것과 스크롤 효과의 적극적인 채용이다. 즉 만화의 페이지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책으로 만들어진 만화를 억지로 저해상도 모니터 화면에 맞추어 넣었다는 느낌을 없애고 읽기 수월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원래 만화의 칸 경계선은 각 칸 속에 그려진 장면을 하나의 정해진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로 인지되도록 만든다. 영화의 한 장면이나 취재사진처럼, 그 순간을 목격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칸 경계선을 지우면 그것은 세상의 모습을 잡아낸 하나의 구체적인 장면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듯한 감각으로 바뀐다. 칸과 칸 사이의 연결이 훨씬 덜 명확해지고, 그 연계성을 서술하는 대사와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주관적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좋다는 것이다. 사연을 소개하는 재담이나(‘일쌍다반사’), 편안한 설명이나(‘영화야 놀자’), 혹은 주인공들의 주관적인 시점전개에 의한 줄거리 진행(‘순정만화’)에 적합한 양식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건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보게 만들어서 서스펜스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한데, 납량물 <아파트>(연재 당시는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세상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

  강풀만화가 온라인 만화의 범람 속에서도 확고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한 가지 철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세상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강풀만화의 개그는 대부분 대중문화의 장르패러디 같은 고난이도의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황당한 사건들이다. 감동적인 부분 역시 대단히 드라마틱한 만남과 헤어짐보다는, “맞아,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라고 해도 좋을 만한 일상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냉소로 충격을 주기보다는, 희망적인 시선을 던져주는 방향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대신에, 이야기가 확실히 말이 되고 흡입력이 있도록 구성하는 데에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치밀하고 놀라운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부분을 포기하고, 대신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법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촌스럽다고 치부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우직하게,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인 셈이다.

  최근 연재중인 온라인 작품은 <바보(순정만화 시즌2)>로, 무르익은 연출실력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소외층에 대한 애정이 이전보다도 더욱  농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우직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한, 강풀만화의 인기와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영리불허/동의없는 개작불허/이동자유 —

만화, 온라인, 커뮤니티 – <러브콘서툰>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그간 쌓인 원고 창고대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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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온라인, 커뮤니티 – <러브콘서툰>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뉴미디어’라는 단어만큼 진부한 것이 또 있을까. ‘뉴’미디어의 대표주자로 꼽히며 한껏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인터넷 (및 그 이전부터 있었던 컴퓨터 통신 일반)과 그것이 만들어낸 의사소통 시스템의 세계인 온라인은 이미 단순한 기술적 용어가 아닌,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쌍방향성에 기반한 참여니 원본과 카피의 경계 상실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매체 이론가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담당구역으로 넘어와 버렸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반 사용자들과 가깝게 살을 맞대고 있는 대중문화라는 분야에서, 온라인이라는 환경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향유 양식들을 진화시키고 있다.

온라인 대중문화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커뮤니티성이다. 온라인 세상의 향유자들은, 온라인을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에 열심히 퍼나른다. 메일로 보내고,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고, 블로그에 올린다. 그리고 올라온 것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감상을 올리거나, 아니면 올린 사람에 대한 창찬/비난을 하면서 더욱 커뮤니티의 내적 소통이 강화된다. 창작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온라인 동호회 결성을 통한 정보 및 노하우 교환, 공동 프로젝트 진행 등이 프로와 아마투어의 경계선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이라는 공간과 여러모로 상성이 상당히 좋은 매체인 만화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2003년에 시작된 ‘러브콘서툰’(http://www.lovetoon.co.kr)라는 자선 콘서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인데, 온라인에서 만화연재를 하거나, 그리고 비록 스포츠 신문 등 종이지면에서 연재를 하고 있지만 (언론사 홈페이지를 거치면서) 사실상 온라인에서 더욱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며 시작했다. 러브콘서툰은 사실 원래는  젊은 작가 몇 명이 한바탕 유쾌한 음악 공연을 펼치면서 불우이웃 돕기 같은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런데, 온라인 입소문 등에 힘입어 독자와 작가 양쪽으로 모두 높은 호응을 얻어, 행사 직전에는 참여 멤버가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후에도 커뮤니티의 결속력은 계속 유지되어, 어느 틈에 젊은 만화가들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올해 11월 21일, 이 커뮤니티가 준비한 두 번째 행사인 <2004 러브콘서툰>이 펼쳐질 예정인데, 이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릴레이 만화와 홍보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열심히 온라인에서 ‘펌’ 당하고 있다. 이미 사전홍보 단계부터, “만화라는 것의 매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작년 행사보다 한층 발전한 모습이다.

대중문화는 창작이든 향유든, 결국 취향으로 의기투합하여 같이 즐기는 자의 몫이다.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만나면서, 그것이 좀 더 명확해진 셈이다.

 

[경향신문 04.11.19]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온라인 만화, 펌질 열풍! [한겨레21/534호/041111]

!@#… 이번주 한겨레21 기고글. 다행히도 3면이나 할애해줘서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까지는 할 수 있었음.  하지만 독자층을 고려해서, 마지막에 작품 소개 파트는 무척이나 일반적인 것 위주로 소개. 개인적 기호가 듬뿍 담긴 매니악한 아이템을 소개하고 싶은 욕구는…그냥 참았다. 블로그에는 투고글 그대로고, 게재 버젼은 여기에 (아마 로그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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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인터넷에 자리잡다
 – 만화는 어떻게 온라인에서 새로운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대중문화의 각 장르 가운데, 온라인이라는 환경의 수혜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온라인 영화관의 붐은 일어나기도 전에 져버렸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분쟁의 와중에서 지지부진한 고착상태에 빠졌다. 온라인에서는 “자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독립 아티스트들이 향유자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유로운 발표의 장이 펼쳐진다”는 옛 희망들은 이제는 좀처럼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움직임을 볼 때, 아직도 예의주시할 만한 분야로 꼽히고 있는 것은 바로 ‘만화’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계 전반의 불황, 특히 애초부터 제작 유통망이 부실했던 만화 분야에 대해서 들려오는 여러 암울한 전망들은 온라인 세계에서 만큼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수많은 커뮤니티와 개인 홈페이지에서 너도나도 유명 만화를 돌려보고 있으며, 대형 포털 사이트들은 만화 연재 지면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된 강도영의 <순정만화>가 매회 연재가 갱신될 때마다 1일 200만회라는 기록적인 조회수를 올렸다는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온라인 만화는, 고작 수천부의 판매고를 올려도 안도의 한숨을 쉬는 현 출판만화 업계의 현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호황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온라인 만화의 인기는 단지 온라인에 머물지 않고 만화계 전체로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다. 이미 작년에, 인터넷 연재 만화인 <마린블루스>이 독자만화 대상과 대한민국 만화대상을 동시에 석권한 바 있다. 또는 고우영의 <삼국지> 무삭제 복간본이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처럼 온라인 연재를 통한 인기몰이를 바탕으로 단행본을 출판하여 히트하는 경우도 이제 전혀 낮설지 않다. 더욱 주목할 만한 현상은, 온라인이 전통적인 종이만화까지도 흡수해 나아가는 경향이다. 현재 가장 널리 ‘펌’(또는 ‘펌질’. 특정 사이트의 그림이나 글을 다른 홈페이지로 ‘퍼 나르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 당하는 작품인 <츄리닝>이나 <트라우마> 등은 원래 스포츠 신문의 일간 연재물이지만 온라인 상에서 더 큰 독자층을 누리고 있다.

만화, 온라인에서 인기몰이를 하다

  만화가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시도는 비교적 일찍부터 있었다. PC통신의 온라인 만화방 서비스를 필두로, 인터넷 보편화가 막 이루어지고 있던 99년에 이미 ‘이코믹스’, ‘N4′, ’코믹스투데이‘ 등 대형 만화 포털 사이트가 독자몰이에 나섰다. 하지만 만화방이라는 표어대로 해당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고 유료결제를 하면 기존 종이만화의 스캔본을 볼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방식에 그쳤고, 그 결과 일부 성인 에로 만화를 제외하고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인쇄를 전제로 하는 장편 만화 작품들을 모니터 화면으로 온전히 즐기기에는 해상도 문제, 독서 자세의 불편함 등 기술적 난맥상이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로 만화를 본다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 소리를 넣거나, 작은 움직임을 부여하는 식의 시도도 일부 있었지만, 만화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온라인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고 키워준 것은 바로 독자 자신들이었다. 인터넷 메일과 게시판을 통한 소통이 생활화되면서 서로 온라인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만화 작품을 1-2개짜리 첨부 파일로 올려주는 새로운 유행이 생겨난 것이었다. ‘N4’에서 연재되었던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품인 <마시마로 숲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엽기토끼‘라는 별명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오는 카툰 연재물 역시 각광받았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스노우캣>을 필두로 하는 인터넷 상의 일기체 만화들이 특히 주목을 모았다.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짦막한 이야기를 며칠 간격으로 올리는 방식을 통해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독자층에게 거의 중독적인 흡입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아마추어 만화 작가들이 유사한 작업을 시도했고, 하나의 장르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듯 ‘펌’과 취향 공유에 기반을 둔 자발적인 확산에 의해서 온라인 만화는 삽시간에 거대한 독자층을 확보해 나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나 돌아다니는 폭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서, 온라인 만화 역시 한층 깊숙하게 독자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온라인 환경에 적응하다

  온라인이라는 환경은, 그것에 잘 어울리는 특정한 양식의 만화들을 선호하도록 만들었다. 우선, 펌질을 중심으로 확산되다 보니 수십 수백 페이지로 이루어진 장편 보다는 짧은 호흡으로 끊어지는 만화들이 쉽게 주류로 부상했다. 또한 단행본으로 출간된 만화의 스캔본 보다는, 개인이나 포탈, 언론사 사이트 등을 통해서 온라인 연재 중인 작품들이 선호된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만화 작품들 역시 온라인에서 효과적으로 감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종이의 페이지 넘김에 해당되는, 스크롤이라는 화면 이동 기능이 온라인 만화에서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자리잡았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양영순의 <1001>의 한 화에서는 주인공들이 물 속에서 재회하는 모습을 긴 세로 칸 한 개로 그려냈는데, 이것을 위아래 크기의 제한이 있는 컴퓨터 화면 창 속에서 스크롤해서 내리면 자연스럽게 바다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느낌과 함께 장면이 전환되는 효과가 만들어지도록 연출했다. 물론 이것은 기존의 종이만화에서는 구현할 수 없었을 연출방식이지만, 온라인으로 만화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위 ‘무한 캔버스’라고 불리우는 이러한 창틀 효과 이외에도 하이퍼링크 기능이라든지, 선택형 스토리, 다방향 만화 등 다양한 온라인 특유의 표현방식들이 이미 독자들에게 자연스러운 독서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온라인 만화에서 가장 특기할만한 현상은, 전자게시판의 활성화 덕분에 독자와 작가 사이에 다양한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편집부를 거쳐야 했던 독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전혀 걸러지지 않고 매 연재분량마다 덧글로 달리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즉 독자의 취향에 한층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독자-작가 간 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 온라인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젊은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하는 연례 자선 콘서트 ‘러브콘서툰’ (http://www.lovetoon.co.kr)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올해 초에 여러 온라인 작가들이 서로 돌아가며 한 화씩 그려나간 <탄핵반대 릴레이 만화> 역시 이러한 커뮤니티적인 결집력의 결과물이었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만화 창작 동호회, 취향 공유 만화 동호회들이 온라인 상에 수도 없이 많이 활동중이다.

온라인 만화의 향후 전망

  하지만 온라인 만화의 앞날이 현재의 액면 인기만큼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수익성이다. 대부분의 온라인 콘텐츠가 무료 공개 서비스 위주로 배치되어 있는 국내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수십 수백만 번의 열람이나 펌질은 수익증대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온라인 만화 작품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현재는 포탈 사이트나 언론사에 연재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원고료, 그리고 만약 종이책으로 출판했을 경우 얻는 인세가 전부다. 유명세에 비해서 실익이 적은 셈인데, 대중문화라는 영역에서 이 점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대중문화는 재능 있는 인재의 신규 진입이나 활동 중인 창작인력의 유지, 다양한 장르의 실험과 발전에 대한 동기부여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산업적 성공과 문화적 활력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만화의 인기를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익모델을 고안해내지 못할 경우, 온라인 만화의 대중적 인기는 물론 질적인 발전 역시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일상화된 조급증이다. 일일 또는 격일 단위로 신작 연재분량이 나오는 짧은 호흡의 일기 만화나 일간지 사이트 연재물에 익숙해진 온라인 만화 독자들에게, 종이로 된 기존의 월간 잡지 마냥 다음 화를 위해서는 다음 달까지 기다리라고 부탁하는 것은 이미 무리가 되어버렸다. 창작의 측면에서는 장기적인 사전 준비라든지 연재 진행 과정 중에 성찰이 필요한 작품을 시도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이며, 특히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은 개인 홈페이지 연재물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 결과 다양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못해서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다시금 독자들 자신이다. 이미 현재 <1001> 같은 극히 소수의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온라인 만화들이 짦막한 에피소드 방식의 개그물로 수렴되고 있는 불길한 징조가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만화의 향후전망을 종합해보자면 적어도 한동안은 계속 양적, 질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설득력 있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이 온라인의 세계를 떠돌아다닐 것이고, 그림들과 글들이 효율적으로 결합한 표현 방식인 만화는 그곳에서 무척 효과적인 장르다. 게다가 출판시장의 장기적인 불황 덕분에, 작가와 기획자들은 온라인에서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종이만화를 완전히 대체해 줄 것이라든지, 온라인에 한국만화계의 미래가 달려있다든지 하는 근거 없는 과도한 희망을 걸지만 않는다면, 온라인 만화는 앞으로도 충분히 기대해볼만한 영역인 셈이다.

(박스처리 또는 주석 처리)======================
2004년 특기할 만한 국내 온라인 만화 5선

– 1001 (양영순) : ‘아라비안 나이트’의 독창적인 재해석. 장편의 호흡으로 연재중.
http://news.paran.com/scartoon
– 순정만화 (강도영/완결) : 이야기성과 온라인 만화로서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연애드라마.
 http://cartoon.media.daum.net
– 츄리닝 (이상신, 국중록) : 온라인 상에서 더 지명도가 높은 스포츠 신문 연재 개그만화.
http://cartoon.stoo.com
– 스노우캣 (권윤주) : ‘귀차니즘’, ‘혼자놀기’ 등 일련의 트렌드를 촉발한 작품.
http://www.snowcat.co.kr
– 마린블루스 (정철연) : 작가 자신의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의인화-해물-개그만화.
http://www.marineblues.net

 

—- 2004. Copyleft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온라인 만화와 창작환경의 변화 [계간만화 04봄]

!@#… 원 출처는 <계간만화 2004년 봄호 (통산3호)>. 이건 뭐랄까, 맨 처음에 쓴 오리지널 버젼. 잡지상에는 지면 한계로 축약. 물론 오리지널이라고 해서 꼭 더 좋은 건 아니지만.

!@#… http://manhwaiyagi.com/bb/zerotb.php?id=mhhh&no=3 에 가면 이 특집기획의 다른 꼭지 중 하나인 ‘만화판의 주체들’을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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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만화와 창작환경의 변화

김낙호 (만화연구자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오래 지나지 않은 한 때, 온라인과 만화의 만남이 갖은 장밋빛 희망으로 포장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출판만화의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이니,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니 하는 훌륭한 이야기들이 온 주변에 파다했다. 그리고 수년간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어져왔고 때로는 예상대로, 때로는 예상외로 현재의 판도에 이르렀다. 시장유통에서의 여러 실패담과 희망은 다른 지면에서 다루어보도록 하고, 본 지면에서는 창작이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그 현황과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해보자: 온라인은 만화 창작환경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주었는가? 대답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 있던 몇가지 가능성들을 좀 더 표면화시켜 주었다”.

1) 표현의 확장 가능성

((도판: I can’t stop thinking 중 아무 장면이나))
((도판: e-merl 의 PoCom의 전체 회로도 또는 확대된 장면 하나))

우선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는 것은 바로 표현적 측면인데, 기존의 종이 만화들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만화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세계적으로 전파하고 다니는 선구자는 <만화의 이해>의 저자인 스콧 맥클루드인데, 온라인을 통해서 만화의 표현적 가능성을 넓혀나간다는 것, 새로운 방식의 만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의 즐거움을 역설하고 있다. 온라인 만화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온라인 만화의 형식으로 직접 제안하고 있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요I can't stop thinking> (http://www.scottmccloud.com에 원문이, http://www.kcomics.net에 한국어판이 있다)에서 제안한 연결선 위주 칸 이동 방식, 하이퍼링크의 적극적인 활용, 그리고 무엇보다 속칭 ‘무한캔버스’의 도입 등이 그런 취지하에서 발명되었다. 단순히 동영상과 음악 등을 입히는 초보적인 멀티미디어가 아닌, 만화 특유의 공간적 매력을 살린 시각적 실험의 향연은 수많은 국내 및 해외의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페이지 넘기기의 전형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만화 독서방법을 제안하는데, 톰 스택폴은 <보이지 않는 힘Invisible Forces> (http://www.pvcomics.com/free/invisibleforces/)에서 사용자의 조작에 따라서 하나의 페이지내부에서 일부분만을 보여주며 조금씩 변형시켜나가는 방식이 좋은 예다.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새로운 독법에 대한 실험정신은, 18명의 작가들이 함께한 프로젝트인 ‘PoCom UK 001’ (http://www.e-merl.com/pocom.htm)에 이르러서는 전통적 독법에 익숙한 독자들과의 한판승부를 벌이다시피 한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난돌 스튜디오의 ‘디지털 카툰’을 위시한 수많은 작가들이 모니터 속에서 놀랄만큼 효과적인 새로운 표현들을 시도하고 있다.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온라인은 다양한 새로운 실험과 놀이의 장을 마련해주었고, 기존 종이지면에서 할 수 있었던 것도 대부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창작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표현적 측면이라는 것은 결국 창작자의 상상력과 기술소화 능력의 문제다. 이야기를 계속하기 앞서 ‘디지털’과 ‘온라인’ 사이의 혼동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은 만화작품을 전산정보로 만들어서 작업하고 보관한다는 지극히 도구적인 개념이지만, 온라인은 디지털화시킨 작품을 소통시키는 과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품의 발표공간이 종이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이야기를 짜고 그것을 칸 속에 그림과 글의 형태로 치환하여 표현해낸다는 본질적인 작업성격에는 변하는 것이 없다. 온라인에서의 발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디지털 도구(즉, 컴퓨터)의 사용이 더욱 보편적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차피 종이만화라 할지라도 도구의 발전에 따른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여전히 만화는 가내수공업에 더 가까운 창작활동이며, 그것이 계속 장점이자 한계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원고를 디지털로 스캔해서 전자우편으로 잡지 편집부에 보낸다든지 하는 도구적인 효용도 물론 있지만(물론 벽지 또는 해외에서 작가의 창작 활동이 수월해지는 등, 이 자체로서도 상당한 창작환경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의 이러한 속성이 창작환경에 미친 영향은 좀 더 미묘하다.

2) 타이밍의 문제

((도판: 스노우캣 다이어리 중 아무거나))

창작물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온라인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개재 타이밍을 들 수 있다. 종이지면의 경우 잡지의 발간시기라든지, 책의 제작기간 등 다양한 물리적 제한에 따라서 작품의 창작이 이루어졌지만, 온라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그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수시 업데이트’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 홈페이지 방식의 공간은 물론, 종이잡지의 운영형식을 그대로 옮겨온 웹진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다. 잡지의 발간 스케쥴에 따른 것이 아닌, 작가 자신의 창작 페이스에 따른 창작 연재가 주는 창작여건 개선의 가능성은 그 자체로서는 분명히 희망적이다. 예를 들어 개인 홈페이지 방식으로 운영되는 <스노우캣>의 경우 작가 자신의 페이스에 따라서 매일 또는 띄엄띄엄 한 화씩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작품 전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귀차니즘’과 ‘하고 싶을 때에나 한다’는 정서에 알맞은 소통방식이다. 수익모델의 다변화 가능성은 또 어떤가. 라이센싱이 아닌 만화 자체의 수익모델이 잡지고료 및 단행본 인세에 한정되었던 것이 전통적 모델이었다면, 기존의 모델에 더하여 사이트 유료 회원제라든지, 클릭 수 기반 수익 등 다양한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코믹플러스>등 대형 온라인 만화포털은 물론, 개인 사이트에서도 소액결제를 통한 유료 서비스를 시도해왔다. 이외에도 독자와 창작자 간의 직접적이고 동시적인 의견교환, 커뮤니티 활성화 등의 기능들이 온라인 만화의 긍정적인 새로운 창작환경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의 경험은, 가능성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누구나 작가가 작품을 직접 쥐고 독자들과 직접 만나며 소통을 하고 풍부한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창작환경의 혜택을 볼 수 있을 듯 하였지만, 생각보다 이상은 먼 곳에 있었다. 예를 들어, 전통적 연재만화 시스템의 기반인 정기적인 마감 압력의 감소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하나의 줄거리로 긴 호흡을 구사하는 작품의 온라인 연재는 속속들이 중도 하차하고,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를 끊는 단편들, 또는 에피소드 방식의 전개가 결국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언제 고조될지 불분명한 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은 원래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긴 호흡의 이야기일수록 일정한 속도의 업데이트에 의한 안정된 전개가 더욱 필요하다. 작품 연재의 페이스 자체가 안정되어 있어야, 독자들의 몰입도를 해치지 않고 다양한 드라마 투르기를 통해서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다음 회가 다음 주말에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작품에 대한 몰입이나 관심을 시청자가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 화가 언제 하는지 일정하지 않다면? 관심의 패턴은 불규칙해지고, 많은 경우 아예 흥미 자체를 잃어버릴 수 있다. 온라인 만화 연재의 경우, 정기적 마감의 압박이 줄어들었을 때 작가가 결국 스스로 그 페이스를 놓쳐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잡지지면에서의 활동에 익숙한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작품연재를 의욕적으로 새로 시작한 경우,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경우가 다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전용 홈페이지를 통해서 서비스된 김준범의 의 경우를 상기해볼 수 있는데, 수익성 부족이라는 문제와 결합하여 결국 의욕적인 시작에 걸맞지 않은 이른 실질적 연재중단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많은 수의 온라인 만화들은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 방식으로 승부하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한 화가 그 자체로서 완결적이기 때문에 비정기적인 수시 업데이트를 하더라도 이야기 전체의 페이스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이다. 물론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업데이트 일정을 고정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 역시 많은 경우 짧은 호흡의 완결성 있는 에피소드를 선호하고 있다. 한번에 많은 이야기를 구상하거나, 전체 작품의 커다란 형상을 계속 고민하지 않고 각 화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창작의 부담 자체가 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속칭 ‘감성 에세이툰’과 짦막한 ‘개그물’, 혹은 두 가지의 감수성을 엮어넣은 일기형식의 만화들이 온라인 만화의 절대적인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3) 수익성의 문제

((도판: WE6 메인화면))

‘수익성’이라는 현실적 과제 앞에서, 온라인 만화는 몇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만화 연재 자체를 통한 직접적 수익은 염두에 두지 않는 개인 홈페이지형 모델과, 웹진 연재-고료지급형 모델이다. 개인 홈페이지형 모델은 만화 연재 자체에서 창작자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부분이 없는, 자발적 업로드를 특징으로 한다. 이 경우 수익은 단행본화나 관련 라이센싱 사업 등에서만 가능하다. 이 경우 연재는 작품의 인지도/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이며, 출판사에 의하여 발탁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예 표현욕구 또는 소통욕구로 인하여 연재하는 아마추어 정신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은 모델이다. 웹진 모델의 경우, 실제로 작품을 연재하면서 그에 대한 고료를 지급받는 방식으로, 기존의 종이잡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물론 고정 고료를 받는 경우와 클릭수에 기반한 인세를 제공받는 방식 등 다양한 세부 모델이 가능하지만, 연재 자체가 수익을 낸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물론 이 경우도 단행본 발간과 라이센싱이라는 선택은 가지고 있다.

혹은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시키고자 한 시도도 있다. 여러 중견 작가들이 온라인에서 자신들의 둥지를 튼 ‘WE6’의 경우, 작가들이 직접 나서서 웹진 형태로 운영하며 자유로운 창작 업데이트를 하도록 하며, 유료회원을 통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온라인 업데이트 특유의 ‘마감 압박 부족’으로 인하여, 개별 작품들의 연재 페이스가 불규칙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여하튼, 유료회원을 통한 수익모델 창출은 일부 성인만화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아직은 그다지 확실한 해결책이 아니며, 많은 경우 중도에 좌절을 맛보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광고를 기반으로 하는 확실한 수익모델을 지니고 있는 포털 사이트(다음, 네이버 등)의 만화코너가 각광받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결과다. 분명히, 앞으로의 과제는 개인 홈페이지형의 창작 활동에서도 수익성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소액결재 방법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창작 환경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자면, 작가가 자신의 수익모델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고료를 받고 연재를 하거나, 곧바로 단행본으로 내고 인세를 챙기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더욱 다양해진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3) 독자와의 정면승부

((도판: http://www.dcinside.com 카툰 연재 갤러리 중, 독자리플 쌓여있는 모습 아무거나))

독자와의 만남이라는 것도, 당초에 예상한 만큼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만화가 창작 환경에 소통과 피드백을 주는 방식은 이전의 팬레터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었다. 연재되는 한화 마다 곧바로 직접적으로 독자들이 반응을 할 수 있으며, 많은 의견을 실시간으로 내놓기가 더 쉬워진 온라인에서 그것은 종종 날 것 그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전이라면 좋아하든 싫어하든 일정정도 이상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소통을 시도했겠지만, 온라인에서는 누구나 지나가면서 한마디 던지기가 용이한 것이다. 덕분에 정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들이 난무하여, 여린 마음의 작가라면 큰 상처를 받고 칩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의견들도 많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팬레터의 시절과는 달리 그러한 의견들을 중간에서 필터링해주는 편집부가 없이 직접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며, 심지어 전자게시판으로 공개되어 의견들이 계속 축적되는 경우도 많다. 작가가 자신의 독자들과 얼마나 동시대적으로 호흡을 하고 있는가가 작품의 생명력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은 이전부터도 하나의 진리였지만, 온라인의 소통기능 덕분에 그 명제는 더욱 더 절실해진 것이다. 작가가 자신의 독자들과 매순간 정면승부를 해야하는 창작환경이 도래한 것이다.

4) 무엇보다 중요한 것

((도판: 강풀 <순정만화> 중 아무 장면이나…))

길게 이야기했지만, 여하튼 결국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이미 주어진 조건이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창작환경에 적응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주장일 뿐이다. 유동적인 변화과정에 있는 이런 상태에서 모범답안이 있을 수야 없겠지만, 최근의 사례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원래 오프라인으로 데뷔했었던 ‘파페포포’ 시리즈는 논외로 하자면, 최근 온라인 만화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사례는 강도영의 <순정만화>다. <순정만화>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국내 최대 규모의 포털사이트인 ‘다음’에 연재중인 만화로, 이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20여 화가 문학세계사에서 최근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인터넷 포탈의 힘이 아니더라도, <순정만화>는 어차피 히트를 기록했을 법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서 커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솔로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떻게’라는 과정은 다양하게 펼쳐놓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이런 큰 원칙을 좋은 작품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역시 작가 자신의 능력이다. 자신의 사이트 강풀닷컴을 비롯해서 여러 온라인 만화지면을 통해서 수련된 연출호흡은 모니터 친화적이며, 동시에 인터넷 독자들의 독서 및 반응 패턴을 정확하게 맞추어주고 있다. 한 회의 연재분량은 하나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식으로 끊어나가며, 그 속에서 자기 완결적인 기승전결으로 사람이 만나고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결코 지나치게 장황하게 나아가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방식 보다는 한 페이지 안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롤’해도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길이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단지 수평적인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패턴에 함몰되지 않고 연속극 방식의 내용연결로 이야기의 전개를 축적하여 점점 몰입도를 높여나가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짧은 호흡을 보완해나가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말하다 보니 대단히 어려운 개념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을 잘 다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 연재시에 <순정만화>를 수작의 반열에 올려주었던 여러 장점들이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올 때 과연 살아있을 것인가.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힘이 다음 페이지면 다음 이야기가 있는 단행본에서도 통할 것인가. 또한 마치 가려진 부분들을 조금씩 펼쳐보는 듯한 재미를 주던 한 페이지 내에서의 스크롤 방식이, 여러 페이지로 분절된 책 속에서 과연 매력을 발할 것인가. 나아가, 모니터 화면의 저해상도 불빛에 맞추어 놓은 여유로운 컬러 그림과 경계없는 칸의 매력이 종이 위에 빽빽하게 박혀서도 그 투박한 멋을 발휘할까.

출간된 책을 펼쳐본 결과,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재미있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의 기술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의 힘이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만화의 진정한 힘,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온라인이라는 창작환경 이전에, ‘만화’를 만들어 나가는 힘 자체가 더 결정적이다.

  좋은 만화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환경은, 그 탁월한 이야기꾼이 자신의 작품이 창작되고 수익을 창출하고 독자들과 소통되는 각 단계에 좀 더 깊숙하게 직접 관여하도록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러모로, 온라인을 통해서 창작자의 작품에 대한 책임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 강풀의 <순정만화> [으뜸과 버금 0403]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 강풀의 <순정만화>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모르겠다. 아마도 피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기만이 가능할만한, 엄청나고도 무의미한 질문이다. 하지만 질문을 살짝 바꾸어보면, 모두의 관심사로 탈바꿈한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강풀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 강도영의 <순정만화>는 바로 이것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다. 

  <순정만화>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디어 다음>에 연재중인 만화로, 이 가운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20여 화가 문학세계사에서 최근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미디어다음이라는 막강한 인터넷 포탈의 힘이 아니더라도, <순정만화>는 어차피 히트를 기록했을 법하도록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서 커플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솔로들의 저주를 한몸에 받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 ‘어떻게’라는 과정은 다양하게 펼쳐놓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재미를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우여곡절, 여러 인연과 사연들이 서로 연결되고 흩어지는 흐름이 결국 큰 맥락에서는 사랑이라는 큰 차원으로 공통점을 지닌다는 것을 독자들이 깨닳을 때, 더 이상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고는 못배긴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이런 큰 원칙을 좋은 작품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역시 작가 자신의 능력이다. 자신의 사이트 강풀닷컴을 비롯해서 여러 온라인 만화지면을 통해서 수련된 연출호흡은 모니터 친화적이며, 동시에 인터넷 독자들의 독서 및 반응 패턴을 정확하게 맞추어주고 있다. 한 회의 연재분량은 하나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식으로 끊어나가며, 그 속에서 자기 완결적인 기승전결으로 사람이 만나고 사랑이 깊어지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 이야기는 결코 지나치게 장황하게 나아가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방식 보다는 한 페이지 안에서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롤’해도 짜증나지 않을 정도의 길이를 취하고 있다. 나아가 작가는 단지 수평적인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늘어놓는 패턴에 함몰되지 않고 연속극 방식의 내용연결로 이야기의 전개를 축적하여 점점 몰입도를 높여나가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온라인 만화 특유의 짧은 호흡을 보완해나가는 매우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말하다 보니 대단히 어려운 개념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힘을 잘 다루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능숙하고 잘 만든 만화라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과연 온라인 연재시에 <순정만화>를 수작의 반열에 올려주었던 여러 장점들이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올 때 과연 살아있을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게 만드는 이야기꾼의 힘이 다음 페이지면 다음 이야기가 있는 단행본에서도 통할 것인가. 또한 마치 가려진 부분들을 조금씩 펼쳐보는 듯한 재미를 주던 한 페이지 내에서의 스크롤 방식이, 여러 페이지로 분절된 책 속에서 과연 매력을 발할 것인가. 나아가, 모니터 화면의 저해상도 불빛에 맞추어 놓은 여유로운 컬러 그림과 경계없는 칸의 매력이 종이 위에 빽빽하게 박혀서도 그 투박한 멋을 발휘할까.
  책을 펼쳐본 결과,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재미있었다. 이때, 필자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는가’의 기술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의 힘이 강력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좋은 만화의 진정한 힘,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덕분에 필자도 이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사랑 이야기의 다음이, 궁금해 미치겠다.
[으뜸과 버금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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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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