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짜 저력

!@#… 약간 떨어져서 보고있노니, 한국의 진정한 저력은 근면도 한도 신바람도 아닌…

“융통성”이다. 비싼 변호사들을 동반할 경우를 제외하곤 그다지 융통성이 없는 시스템의 나라에서 서식하고 있다보니 확실히 그런 사회적 기후의 차이가 느껴진다.

!@#… 나쁜 쪽으로 빠지면 얍삽이, 좋은 쪽으로 빠지면 역동성의 원동력. 중국인의 배째라와 한국인의 얍삽함과 일본인의 소심함… 뭐랄까, 동아시아의 나름대로 훌륭한 삼각편대다.

(리플보다가 약간 추가)——

!@#… 한중일의 차이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만약 다음 토익 시험의 문제가 무더기 유출된 자료가 있다고 치자. 한국에서는 아마도 비실명제 온라인 유학 커뮤니티를 위주로 좌악 퍼질 것이다. 일본에서라면, 몇몇 개인들이 쉬쉬하면서 자기만 혼자 볼 것이다. 중국에서라면, 시험장 앞에 사람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판매를 할 것이다. -_-; (거의 실화)

!@#… 융통성이란 뭘까: 융통성은, “해내야 한다”는 강한 목표지향성과, “그러기에는 시스템이 안받쳐줘! 시스템 대로 하나씩 나아가려면 시간이나 재원이나 여튼 뭐든지 부족해”라는 냉엄한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해내는 위한 하나의 기제다. 해내야 한다는 목표는 타협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가로막는 시스템을 완전히 개혁하지도 않는 선에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조금씩 시스템을 어기지만, 그 결과 목표가 훨씬 효과적으로 충족되며 또한 불상사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또는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조심성과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사고 및 행동 패턴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애매한 상태의 무언가를 놓고 뭔가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굳이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가장 편한대로  결정해버리는 것도 그런 융통성의 하나다. 속칭, “애매하면 세이프”. (어떤 학자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지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지금 지어낸 정의다).

(추가 끝)——————-

정보공유 라이센스와 Creative Commons Korea, 그리고 카피레프트.

!@#… 허무한 중복인가 건전한 경쟁인가. 정보공유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Korea. 둘 다, 저작권자가 융통성을 가지고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사용방식을 제한/장려한다는 점에 있어서 같다. 얼추, 카피레프트 개념의 진화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한 템포 먼저 출범한 정보공유 라이센스가 cc를 모델로 해서 한국식으로 응용한다고 하며 만들었으니 비슷할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 이런 때, ‘원조’ CC를 들여온 것이다. 정보공유 라이센스는 정보운동 시민단체인 정보공유연대가, 그리고 최근의 cc-korea는 사단법인 한국 정보법학회에서(원조 cc와 2003년에 협약 체결, 그리고 05년 3월 21일에 cck로 정식출범). 안그래도 진보적 저작권 인식에 대한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 노력들이 이런 식으로 이원화되어 버린 것에 대해서 좀 거시기한 마음이 들기는 한다. 까닥 잘못하면 어느 한쪽이 ‘삽질’ 취급당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 이원화되어 있는 것, 서로 차별점을 개발해서 각각의 장단점을 지닌 선택형 건전 경쟁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 capcold의 경우 이런 운동을 당연히 지지하고 있지만, 아직 특정한 라이센스를 채택해주고 있지는 않다. 카피레프트 개념의 원형이 지니는 근본적 융통성에 좀 더 기대를 걸고 지켜보는 입장이라서. GPL이니 CC니 정보공유 라이센스니 하는 규격화된(!) 라이센스류들과는 달리, 카피레프트는 비정형의 운동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카피레프트도 원래는 GNU진영에서 만든 일종의 라이센스고 그것도 꽤 극단적으로 모든 수정변형을 공개하는 쪽으로 주창된 것이기는 하지만, 워낙 애매하고 수많은 변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결과적으로 대단히 유동적이다.  일반명사화된 카피레프트는 더이상 GNU의 틀에 묶여있지 않는, 카피라이트에 대항하는 진보적 저작권 활용 시도 전반을 나타내는 개념에 가까워진 것이다. 정보공유 라이센스나 cck도, 결국 카피레프트라는 이념 아래에 있는 특정한 발현 형태다.  

다시 말해, 아직 이쪽 라이센스들이 충분히 나에게 그때그때 맞을 정도로 융통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진화할 때까지는, 여전히 이곳은 구식이고 맘대로 이거저거 가져다 붙이느라고 사실 애매하기까지 한 상위개념인 copyleft 이념을 지지하는 선에 머물고자 한다.

핵심은 무어냐 하면, 이런 라이센스 류들은 편의상 항상 ‘모 아니면 도’로 패턴을 나눌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영리 허용/불허용. 영리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한 합의도 무진장 어려울터인데, 그걸 허용하냐 마냐로 이분법 나눈다는 것은 뭐랄까, 순진한 이상론이다. 21세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카피레프트 등 운동으로서 ‘영리 목적으로 활용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규정하는 건 일종의 도의적 부탁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영리성 여부을 새로 재단하고 그때그때 융통성있게 판단/합의할 수 있다. 아니 영리성의 종류 역시도 세부적으로 나눠서 생각해줄 수 있다. 하지만 라이센스는 법적 강제력을 발휘하겠다는 발상이 들어있는 것인 이상, 도의적 융통성이 아닌 ‘법적 효력이 있는 사용계약 규정’을 수반한다. 수많은 미개발 중간영역들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는 저작권 영역에서 과연 이들 라이센스라고 해서 충분히 그 속도와 변화범위를 지속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좀 비관적이다(저작권 친고죄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핵심적 이유이기도 하다).

모 아니면 도 식 발상에 관한 또 한가지 예는 이동 자유에 관한 것. 자유로운 정보 공유를 위해서 이동 자유는 이 라이센스들에서는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공유는 원하지만 아주 맘대로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는 건 싫어할 수도 있거든. 그 경우 예를 들어 ‘어디어디의 극우 파쇼 사이트에는 가져가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제한을 걸 수 있고 싶단 말이다. 혹은 요새 한참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에 있는 공간’의 경우라면 어떨까. 인터넷의 넓은 매체적 가능성을, 개인 일기장이냐 전국방송이냐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도록 만드는 발상은 곤란하다. 물론 법적 라이센스와 도의적 부탁을 동시에 결합시키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벌써 엄청나게 복잡하고 각박해질 것이 눈에 훤하지 않은가.

!@#… 도의적 개념의 카피레프트에 대한 나름대로 성공적 모델은 사실 이미 존재한다. 학계의 학술논문들이 바로 그것이다. 공유와 인용, 혼성 발전, 영리적 활용과 비영리적 공유의 개념들이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의 오랜 관행 속에서 정착해온 것이다. 다른 분야에도 이와 같은 것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도의와 관행에 의한 해결의 힘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융통성이야말로 최고의 목표이자 원동력이다. 각종 법제나 라이센스들이 그것을 더욱 장려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목표를 향해서 정보공유 라이센스와 cck가 창의적인 경쟁을 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 써놓고 보니 꽤 어려운 글이 되어버렸군-_-; 한줄 요약:

– 내가 내 저작물을 내 꼴리는 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융통성 만땅의 제도가 최고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개작허용/영리불허 —
(… 이게 바로 현재의 ‘capcold’식 카피레프트, 즉 capcold 콘텐츠 활용에 대한 도의적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