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어짐과 희망 사이 – 포로수용소 [기획회의 379호]

!@#… 마침내 타르디 작품들이 국내에 들어온다는 것에 먼저 쾌재. 정식 제목은 좀 길다.

 

무디어짐과 희망 사이 – [포로수용소 : 내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 수용소의 전쟁 포로였다]

김낙호(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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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만든 환경을 기억하다 – 『재미난 집』[기획회의 221호]

!@#… 재미난 집Fun Home에 대해서는, 고백할 것이 하나 있다(뭔가 커밍아웃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쪽 리뷰에서는 물론, 심지어 책내 서평에서도 왜 그랬는지 이해못할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아버지의 커밍아웃이 죽음 ‘직후’라고 썼는데, 첫째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비로소 아버지에 관한 여러가지 것들을 새로이 발견해나간다는 비유적 의미, 둘째는 어머니가 사실을 폭로했고 아버지는 딸에게 직접 대놓고 고백하지 않았다는 미묘함을 포함하려 한 것. 하지만 다시 읽다보니, 마지막 자동차에서의 대화장면이 충분히 직접적인 커밍아웃 아닌가. 여전히 뒤늦었고 ‘어긋난 타이밍’이라는 문맥은 그대로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운 팩트 실수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무척 쪽팔리는 실수. 출간된지 얼마 되지 않는 책이기는 하지만, 2쇄를 찍을 때 반드시 수정 필요. 그런 의미에서, 빨리 다들 책을 사서 초판을 소진시켜주셈. (핫핫)

 

자신을 만든 환경을 기억하다 – 『재미난 집』

김낙호(만화연구가)

가족의 기억을 다루는 작품은 흔히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채워줘야 한다. 한쪽으로는 굳이 작품으로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 만큼 나름대로 특이한 측면이 있는 가족이어야 하고, 다른 쪽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으로서의 특징을 담아줘야 하는 것이다. 전자가 미비하면 그냥 일기장에 불과해지고, 후자가 미비하면 애초에 가족물로서 성립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소재면의 균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의 기억을 애초에 왜 다루고 있는지 그 자체다. 가족의 모습을 통해서 일종의 사회 풍자나 민속지 기록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굳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그보다 좀 더 담아내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현재의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 환경을 되짚어보는 것 말이다. 어쩌다가 내가 나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자신이 가장 밀접하게 같이 살아온 인연인 가족의 이야기로 가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회한일 수도, 애정일 수도, 그 모두일 수도 있다.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향수로 풀어내는 것도 좋겠지만, 진정한 사색은 과거의 가족 관계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현재의 내가 그 당시의 모습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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