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IS 미디어전략, 극단주의 폭력과 세련된 소통 사이 [한국일보 140922]

!@#… 살인동영상과 바이럴 캠페인에 능한 중동 테러단체 IS (=ISIS, ISIL, QSIS)의 홍보력에 관한 개요. 기존 보도된 분석 내용들을 취합한게 대부분이지만, 분류틀 등은 직접 제안하는 것이라서 논쟁/개발의 여지가 아직 많다(대체로 그렇듯). 게재본은 여기로: 극단의 폭력과 세련된 소통 사이-IS 미디어전략

 

ISIS 미디어전략, 극단주의 폭력과 세련된 소통 사이

김낙호(미디어연구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 [한겨레21/060309]

!@#… 최근, 여차저차 한겨레21의 해외통신원단에 합류(그래서 직함도 만화연구가나 미디어평론가 같은 식으로 하지 않고 ‘해외’를 강조한 것;;). 첫 기사로 좀 재밌으면서도 뼈있는 소식을 골라보고자 투고해 본 내용. 그래서 한겨레21 제600호에 “알카에다와 배트맨의 모험“(*주: 로그인 필요)이라는 제하에 게재…되었는데, 정작 해외통신원 코너가 아니라 문화면에서 픽업해 감. 여기 공개하는 버전은 늘상 그렇듯, 편집부를 거친 최종버젼이 아닌  capcold 투고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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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를 잡는 배트맨? – 유명 만화작가, 정치홍보물 제작을 선언하다

김낙호 (위스콘신대 언론학 박사과정)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라다니는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슈퍼히어로들과 맞서는 슈퍼 악당들이다. 히어로들은 설정이 그 아무리 황당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그 작품이 목표로 하는 독자 일반의 사회적 상식과 정의추구라는 가치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문화권마다 그 가치에 대한 차이는 상당하지만, 최소한의 공감대 정도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슈퍼 악당들은 다르다. 그들은 압도적인 힘과 출처가 불분명한 막강한 재력으로 동원해낸 여러 부하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지 모를 정도로 맹목적인 파괴활동을 일삼는다. 아무리 알고보면 불쌍한 사연이 있다고 할지라도, 도저히 그 질서 파괴적 행동에 공감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슈퍼 악당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속시원하게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만화,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만화와 종종 취향 층을 공유하기 마련인 공상과학 또는 환타지 영화 등을 전문으로 하는 대형 박람회 행사 ‘원더콘’이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향후 1년간 이쪽 업계를 크게 좌우할 대형 프로젝트들이 종종 베일을 벗는 공개 발표장소로 활용되곤 한다. 그런데 올해 원더콘 발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몰고 온 것 중 하나가 바로 북미 주류 만화계 최고의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중인 작가 프랭크 밀러의 신작 제작 발표 소식이었다. 책의 제목은 바로 『Holy Terror! Batman! (‘이럴 수가, 테러라니! 배트맨!’이라는 뜻인데, 초창기 배트맨 만화의 홍보문구로 자주 쓰였던 표현의 패러디)』. 이번에는 배트맨이 조커나 캣우먼, 펭귄 같은 가상의 슈퍼 악당들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무려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혼내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발표장에서 이 작품이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가져다주기 위한 본격적인 “프로파간다”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출간은 내년 정도가 될 것이며, 현재 200페이지 가운데 120페이지의 선 그림을 끝낸 상태라고 발표했다.

작품의 내용은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고담 시티(뉴욕시를 모델로 하고 있는 가상도시)에 알카에다가 주모한 테러가 일어나고, 배트맨이 그것을 막아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왜 자신의 작품세계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정치적 선전물을 자처하고 나서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인지, 작가의 대답은 분명하다: “슈퍼맨은 히틀러를 두들겨줬어요. 캡틴 아메리카도 그랬죠. 그게 그들의 당초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죠. 그들은 우리 국민, 우리 나라의 상징입니다. 민속 영웅이라구요. 알카에다가 활보하고 다니는데 ‘리들러’나 뒤쫒고 있는 것은 너무 바보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랭크 밀러라는 작가는 87년 『어둠의 기사의 귀환』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정체기에 빠져있던 배트맨 시리즈에 완전히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인물이다. 당시 이 작품에서 그는 당대의 미국 현실을 살아가는 완고하고 어두운 성격의 중년 배트맨을 창조해냈고, 이 작품의 히트는 이후 90년대에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현실적인 재해석을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밀러는 레이건 시대의 비합리적인 보수성과 관료적 국가 통제를 비판하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연방 정부 기관의 하수인이 되어 있는 슈퍼맨과의 대결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패한 관료 시스템이 제대로 통제해주지 못하는 악의 세력이 뒷골목에 넘치는데, 강고한 완력을 지닌 히어로가 그 상황을 직접 하나씩 타파해 나간다는 ‘자경단’ 정신은 이후 『신시티』 연작 등을 통해서도 더욱 공고하게 다져진 프랭크 밀러의 핵심 정서다. 특히 전 세계와 나아가 우주까지도 보호하는 절대적인 영웅인 슈퍼맨과는 달리, 배트맨은 고담시티라는 ‘자신의 동네’를 지키는 존재이기에 자경단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테러가 어디에서나 일어나서 당신의 일상을 덮칠 수 있고, 정부는 그것을 제대로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는 불안감이 꿈틀대고 있는 9/11 이후의 미국에서, 이러한 정서는 더욱 많은 공감대를 자아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사실 슈퍼히어로가 현실세계의 악당을 혼내준다는 내용의 작품들은 그리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차대전 당시 여러 슈퍼히어로들이 히틀러와 일본군을 열심히 문자 그대로 두들겨 패 주었다. 뿐만 아니라 만화책을 좋아하는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전쟁 후원금 모금운동까지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기본적인 구도는 압도적인 초능력과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가 왜소하고 사악하게 묘사된 히틀러와 일본군들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굳이 분석적으로 들어갈 것도 없이 너무나 극명한 상징을 보여주고자 한 프로파간다였다. 사실 영화나 여타 대중 매체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넘쳐나지만 그 중 특히 만화는 희화화와 과장에 있어서 워낙 자유로운 표현력을 발휘하며, 나아가 당시 가장 ‘대중적인 대중오락’이었기 때문에 유난히 돋보였던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력과 대중성이라는 만화의 장점이, 오히려 만화가 선전도구로 악용되도록 하는 요소로 작용한 셈이다.

또한, 2차대전 당시의 정치 홍보성 슈퍼히어로 만화들의 사례에서는, 선악 구도를 최대화하기 위해서 극도의 인종 차별적 희화화가 성행했다. ‘우리’의 결속을 위하여, ‘남’들의 존엄은 가볍게 무시되고 대상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고 오는 여러 문제점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당시 사회의 일방적 잣대를 적용한, 표현의 자유라는 덕목으로 가볍게 덮어버리곤 했다. 비록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일간의 『혐한류』, 『혐일류』 만화책 출간이라든지, 점점 더 파국을 향해 확대되고 있는 마호메트 만화 파문 역시 같은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가 ‘타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을 과연 진지하게 책임질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이 부족한 것인지에 대한 극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프랭크 밀러가 그려내는, 알카에다를 혼내주는 배트맨의 모험이 과연 어느 정도의 표현수위를 지니고 있을지 아직 예단하기는 섣부르다. 혹시 정치적 공정성이 사려 깊게 배치되어 있으면서, 슈퍼히어로 장르의 현실성을 또 한번 재발명하는 걸작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미국 보수층이 지니고 있는 타문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무지를 고려해볼 때,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내년 이맘 때, 이 작품이 제2의 마호메트 만화 사건으로 비화되지 않기만을 희망할 뿐이다.

—박스—
2차 대전 당시, 만화 속 슈퍼히어로들은 나치와 일본군을 혼내주며, 동시에 전쟁 모금도 모아주느라 바빴다. 그들의 분주한 활동상을 몇가지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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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첫 시리즈가 시작한 바람에, 캡틴 아메리카는 원래부터 나치와 연관이 많았다. 붉은 해골머리의 숙적 ‘레드스컬’이 바로 나치 테러리즘 부대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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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평범한 나치 병사와 싸우면 싸움이 시시하게 끝나므로, 종종 강력한 힘을 지닌 괴물로 변모하기도 했다. 장르적 즐거움과 정치선전의 효과를 겸비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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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에 의지하며 어쩔 줄 모르는 칙칙한 녹색의 나치 적들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화사한 슈퍼맨의 대비는 특히 전형적인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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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강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들은 때로는 압도적으로 약해진다. 정의의 슈퍼히어로가 전형적인 외계 침략자의 구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역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PS. 영미권 만화에 대해서 항상 주옥같은 덧글을 달아주시는 Dreamlord님의 추가 정보+지적. 행여나 퍼가실 분이 있으면 같이 묶어서 읽으십사 본 포스트에 같이 묶어넣음.

Dreamlord: “Holy ***, Batman!”이라는 표현은 배트맨 만화책이 아니라 1960년대의 배트맨 TV시리즈에서 유래된 구절이죠.

“Holy Terror, Batman!”은 사실 새로운 소식은 아닙니다. 만화계에서는 밀러의 The Dark Knight Strikes Again이 종결되었던 2002년경에 처음 이 만화의 소식이 나왔었는데, 이번에 주류언론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진것 뿐이죠. 작년까지만 해도 “Batman Vs. The Terrorists”라는 제목으로 알려졌었고, 작년 7월에 All Star Batman And Robin The Boy Wonder와 관련해서 나온 인터뷰에서도 200페이지중 120페이지를 그렸다고 말했었는데, 설마 그후 지금까지 한페이지도 더 그린게 없다는 말인지 궁금하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프랭크 밀러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다룬 만화 300 이후 맛이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300 이후에 나온 Sin City 미니시리즈 Hell And Back, DKSA, ASBARTBW 등등의 만화들은 그림이나 대본면에서 모두 예전의 밀러 작품보다 훨씬 더 퇴보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대본만 맡은 ASBARTBW의 경우 인터넷 팬들의 반응을 보면 “끔찍한 교통사고 현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는 것처럼, 한때 훌륭한 만화를 내놓던 밀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배트맨의 캐릭터를 망쳐놓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봐야 하기 때문에 사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밀러의 황당한 대본을 충실하게 만화로 옮기고 있는 이용철씨의 그림이 없었다면 읽지 않을 만화입니다.)

밀러가 2차대전 당시의 만화에 대해 상당히 잘못 알고 있다는 것도 말하지 않을수 없군요.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Timely/Marvel 캐릭터들은 만화책 안에서도 적국 군인들과 싸우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 맞지만, 수퍼맨과 배트맨 등의 National/DC 캐릭터들은 만화책 표지에서만 전쟁노력을 독려했었고, 만화책 줄거리에서는 전쟁에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었죠. 기껏해야 클라크 켄트가 잠깐 종군기자로 활동한다는 정도의 내용만 있었고, 수퍼히어로들이 초능력을 사용해서 전장에서 적군과 싸우는 만화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클라크 켄트가 징병검사를 받는데, 시력검사를 할때 벽을 뚫어볼수 있는 엑스레이 눈을 지닌 클라크 켄트가 실수로 옆방 방 벽에 붙어있는 시력검사표를 읽어서 면제판정을 받는다는 내용의 만화도 있었을 정도로, National/DC 만화책의 내용에서는 자사의 캐릭터들을 2차대전과 멀리하려고 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에 나온 만화 All-Star Squadron에서는 2차대전동안 히틀러가 운명의 창을 발견하고, 일본의 군사지도자 Dragon King이 성배를 발견해서, 이들이 이 2개의 강력한 도구를 사용해서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지대를 감싸는 일종의 보호막을 펼쳤다는 설정을 함으로써 왜 수퍼맨이 2차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는지를 해명했습니다. 본래 수퍼맨의 약점중 하나가 마법에 약하다는 것인데, 수퍼맨이 이 보호막 안에 들어가면 정신이 이상해져서 자기편을 공격하기 때문에, 수퍼맨을 비롯한 National/DC의 대표적인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은 전쟁지대에서 멀리 떨어져있어야만 했고, 2차대전은 Sgt. Rock처럼 초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이 싸워야만 했다는 설정입니다.) 2차대전중의 만화책에서 수퍼맨과 배트맨은 밀러가 말한것처럼 리들러나 뒤쫓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가지 간과할수 없는 것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당시 미국 만화계에서 활동하던 상당수의 만화가들은 이민 1.5세대나 2세대 유태인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2차대전 당시 만화 표지 그림들의 상당수는, 유럽에 남아있는 자신들의 친척들이 나치수용소에 감금되어서 죽어가고 있는데도 미국정부는 참전을 주저하고 있는 현실에 참지못한 이들 만화가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표현한 것이죠. 유태인인 조 사이먼과 잭 커비가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해낸 직접적인 이유도, 유럽전쟁의 참상에 관한 소식을 그냥 듣고만 있을수 없어서였죠. 미국정부가 9/11 테러를 구실로 삼아서 자국을 공격한적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다니는 오늘날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일부에서는 밀러가 과거에도 독자들의 반응을 자아내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상당히 의도적으로 독자들의 예민한 부분을 자극하는 요소를 집어넣은 경우가 많았고 (Give Me Liberty에 나왔던 “남자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백인 우월주의 집단” Aryan Thrust, 영화 RoboCop 2에 나왔던 어른들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어린 소년 범죄자), DKSA와 ASBARTBW 등은 사실 패러디인데 독자들이 잘못 해석했다는 변호를 하면서, “Holy Terror, Batman!” 역시 테러전의 승리를 독려하는 프로파간다를 가장했지만 사실은 패러디가 될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만, 제 머리속에는 독립만화가 크리스 웨어가 최근 강연회에서 했다는 말만 생각나는군요. “모든 만화가들은 결국은 미쳐버리고, 화판 앞에 앉아서 죽는다.”  (200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