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송채성 만화상 추모 공모전

!@#… 취중진담, 미스터 레인보우 등의 만화가 고 송채성씨. 아쉽게도 작년에, 세상에서 가장 번복불가능한 방식으로 은퇴를 했다(https://capcold.net/blog/?p=209). 그리고 보시다시피, 이제 그 이름을 계속 남기고 그 뜻이 이어지도록 하는 한 행사가 열린다.

 !@#… 송채성 만화상. 애초에 변병준 작가님에게 이 기획을 처음 들었을 때가 벌써 작년 9-10월쯤이었던 듯 하다. 고 송채성씨의 가족 측에서 제시한 아이디어인데, 가족분들이 만들고 지인들이 모이던 공간인 ‘취중진담.com’에서 논의중이라고 했다. 고 송씨가 남겨놓은 얼마간의 저축과 가족분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추모상. 그래서 당시 같이 이야기를 나눴던 러프한 조건들은 이 정도였다:

1) 고 송채성씨를 추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가 닦아놓았던 길을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을 추진하자(대중음악계의 ‘유재하 가요제’를 참조).

2) 단순히 단발성 단독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당선작을 잡지지면에 공개하고 추모작품집을 발간하는 등 진짜로 ‘만화계’에 울림을 줄 수 있는 행사. 그리고 2회, 3회 계속 지속되는 행사.

… 이 핵심 근간 위에, 수차례의 단체 또는 개별 회의 속에서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더 붙고 다듬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첫단추다. (capcold를 포함) 많은 분들이 협력을 제공 또는 표명하셨고, 어떤 분들은 아쉽게도 그렇게 하지 못하셨다. 얼렁뚱땅 색깔이 모호한 회사단위 행사 또는 애매한 공로상이라기보다는, 장르특화적이며 특정인의 이름을 딴 명확한 컨셉의 공모전.

!@#… 자신의 창작역량과 방향성이 얼추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의 뜨거운 성원이 있기를. 물론, 이 글을 여기저기 많이 많이 퍼다 나르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개작자유/영리자유 —

영어생활 (제3회)[경향신문 05/01/28]

!@#… 경향신문 만화섹션이 폐간되어버리는 바람에 공중에 떠버린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연재속도와는 상관 없이 빠른 템포로 한 100회 분량정도 만들고 해설을 붙여서 성인 대상 영어학습 수첩을 만들 계획이었음. -_-; 앞으로도 틈틈이 원고는 쌓아갈까 해보고는 있는데, 어찌될지는 잘 모르겠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뻔뻔함의 승리 – <돌격! 크로마티 고교> [기획회의 050205]

!@#… 며칠간 운나쁘게도 내 블로그 업/다운/수정이 모조리 에러로 먹통이 되어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정상가동(고객센터에 문의메일 보냈었으나 물론 답변이나 해명은 없음… 역시나 한 불친절 하는 네이버의 위력).

!@#… 지난호 기획회의 원고, 크로마티 고교. 우연히도 <두고보자> 동료이자 만담 라이벌/파트너인 김태권님도 <네트워커>에 연재중이신 칼럼 지난호에서 똑같은 작품을 다루었음. 그것도 하필이면 마찬가지로 개그의 문법에 대한 걸로…;; 음 무서운 일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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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함의 승리 – <돌격! 크로마티 고교>(노나카 에이지/서울문화사)

세상에서 가장 힘든 행위가 바로 남을 웃기는 것이다. 하물며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웃기는 것이라면 더더욱 압박을 받을 일이다. 특히 상대방들의 기대수준이 높을 수록 더욱 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개그 만화는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유머 기법을 고도로 발달시켜온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이미 수많은 웃음의 공식과 코드들에 식상하리만치 익숙해져버린 독자들을 만족시키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야심찬 첫단추를 꿰었다가도 아이디어 고갈에 따라서 얄팍한 패러디에 의존하다가 결국 단명해버리는 작품들을 얼마나 많이 목격했던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확실한 반전효과를 연마하거나, 획기적인 소재를 불러내고는 한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허를 찌르기 위해, 극단적일 정도의 무의미함과 뻔한 소재를 뻔뻔하리만치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를 쓴다. 상식에서 어긋남을 극단으로 밀고가서, 완벽하게 부조리하고 황당한(매니아층에서는 흔히 ‘아스트랄’이라고 일컫어지는) 요소들이 포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일상적이고 뻔한 생활세계에 난데없이 그런 부조리한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집어넣음으로써 강렬한 대비효과와 함께 당혹스러운 악취미성 웃음을 터트리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황당한 괴리에 질려버려서 그냥 책장을 덮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벽’을 넘어서는 자에게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는 웃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돌격! 크로마티 고교>(노나카 에이지/서울문화사. 4권 출간중)는 최근 이러한 계열의 개그만화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줄거리만으로 요약한다면, 무척 단순하다. 카미야마라는 모범생이, 실수로 크로마티 고교라는 깡패 학교에 진학해서 그곳의 여러 인간군상들 틈새에서 일상적인 학창생활을 보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정과 성장의 모티브 따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불량아 집단이라는 설정 역시 양아치와 권력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단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괴짜 캐릭터들을 도입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싸움을 하고 세력다툼을 하기 위한 불량아가 아니라, 분위기는 잔뜩 잡지만 사실은 엄청난 바보인 괴짜들이라는 말이다. 그냥 성격이 괴짜라든지 하는 정도의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콧수염 아저씨, 진짜 고릴라, 로봇, 복면 레슬러가 태연하게 학생으로서 등교하고 다닌다. 학원 폭력물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끔 이쪽 학교의 누군가가 상대 학교에 납치당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깡패들이기 때문에 별로 불쌍하지도, 분노할 여지도 없다. 심지어 유일하게 ‘범생이’라고 설정되어 있는 주인공 카미야마마저도 실상 하는 짓을 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깡패보다도 더욱 악랄하다. 정작 그림체는 거친 선의 극화로 전형적인 조직폭력물을 연상시키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상식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도저히 즐길 수 없는 과격한 개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별다른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수학여행도 가고, 학교도 다니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악플에 스트레스도 받는, 그렇고 그런 일상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이 만화는 적극적으로 그 시시함을 스스로 강조하기까지 한다. 등장인물들의 실제 대화를 통해서, 사실 원래 현실이라는 것은 별 것 없고 극적인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고 작중에서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다! 막나가는 허풍을 핵심무기로 하는 개그만화라는 장르에 속해있으면서, 오히려 그 점을 스스로 지적하고 비웃어버릴 정도로 자학적인 정서가 있는 셈이다. 이런 극단적인 뻔뻔함을 처음 접할 때는 당혹감이, 두 세 번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슬슬 어이없는 웃음으로 바뀐다.

연출방식 역시 이런 패턴에 맞추어 짧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결코 복선이나 중층적인 서술을 사용하지 않고, 아무리 당혹스럽고 황당한 전개라고 할지라도 우선 벌여놓고 보는 것이다. 언제라도 갑자기 다음 칸, 다음 페이지에 외계에서 운석이 떨어져서 학교 건물을 덥치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말을 타고 학교에 달려들어와도 태연자약하다. 특별히 결정적인 개그에 앞서서 반전효과를 위해 평온하고 정상적인 정서를 강조하는 연출조차도 왠만하면 그냥 배제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도 아무리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냥 납득해버린다; 엄청난 바보들이니까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림체를 통한 시각표현 역시 조금도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막무가내 부조리 개그 분야의 최고 모범사례 작품인 <멋지다 마사루>(우스타 쿄스케 작)에서조차 결정적인 임팩트가 필요한 순간에 그림체의 밀도를 급격하게 높이거나 낮추는 등 상당히 잘 계산된 시각연출을 보여주고 있는데, <돌격!크로마티 고교>는 그것마저도 무시한다. 마치 무표정하게 사랑의 노래와 저주의 폭언을 동시에 퍼붓는 사람마냥, 이 작품은 너무나 균일하게 진행되기에 더욱 더 그 속에 담긴 부조리한 개그요소들이 더욱 돋보인다.

모든 개그만화의 숙명인 ‘독자의 익숙해짐’이다. 독자라는 존재들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서, 어떤 새롭고 과격한 개그라고 할지라도 어느 틈에 익숙해져서 더 새롭고 강한 자극을 찾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식상해지는 것이다. <돌격!크로마티 고교>는 오히려 처음부터 반복과 지리멸렬, 황당함과 충격효과를 마구 남발함으로써 뻔뻔하게 그 점을 정면돌파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결과 2002년 고단샤 만화상 수상을 통해서 대중과 업계의 높은 평가를 증명 받았고, 애니메이션 시리즈 방영에 이어 심지어 최근 실사영화까지 제작되었다. 남을 웃음으로 인도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지만, 결국 개성과 뚝심으로 성공에 도달하는 이런 작품들이 나와주고 있기에 여전히 개그만화는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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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만화가 강도영, 강풀만화를 그리다 [시사저널 050130]

!@#… 시사저널 올해 설특집호에 기고한 또 하나 글 기고. 항상 그렇듯이 여기 올리는 것은 원래 보낸 오리지널 버젼, 잡지에 실리는 것은 그쪽 편집부를 거친 버젼. 예를 들어 잡지기사에는 ‘칸을 없앴다’라는 그림설명이 나오지만, 사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건 ‘경계선을 없앴다’지, 칸 구분 자체를 소멸시킨 건 아니니까. 뭐 원래 전문지가 아닌 일반 저널리즘의 차원에서는 그런 식의 미묘한 문제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가 행여나 이 글을 퍼나른다면, 개인적으로는 역시 이쪽 버젼이 퍼날라지는 것을 선호.

!@#… 본문에도 언급한, ‘온라인 만화 1세대‘라는 호칭의 작위성에 대한 생각. ‘세대’라는 건, 그 이후나 이전 세대와 확실한 성격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경향성을 파악하기 위한 범주구분이다. 무슨 등수놀이니 원조 경쟁이니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한마디로, 2세대 없이 1세대를 이야기하는 건 완전한 엉터리라고. 특히 1세대, 최초 어쩌고 하는 것은 훨씬 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하는데, 자칫하면 그 이전의 역사를 리셋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순정만화는 80년대에 생겨났다”고 하면, 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이전 순정만화의 모든 역사 – 민애니, 엄희자 등등 커다란 이름들과 그들의 독자, 문화들 – 이 그 존재 자체를 깡그리 소멸당하게 되는 것이다. 초보자나 문외한들이 그런 부주의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건 일정 정도 어쩔 수 없지만, 이쪽 판의 ‘선수'(또는 선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그러고 다니는 건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다. 뭐… 그냥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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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도영, 강풀만화를 그리다

김낙호 / 만화연구가

  작년, 한국의 수많은 온라인 사용자들은 <순정만화>라는 당혹스러운 제목의 만화를 우연히 발견했다. 아니, 작품 제목이 그냥 순정만화라니, 마치 주말 연속극 제목을 ‘멜로드라마’라고 붙이는 격 아닌가. 하지만 작품은 무척 재미있었고, 특히 온라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결과 조회수가 하루 200만까지 올라 가고, 단행본이 출판 불황 속에서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일본과 1억원짜리 출판계약을 맺는 등의 성공을 보여줬다. 강도영이라는 본명보다 강풀이라는 필명이 더 잘 알려져 있고 그 이름을 딴 ‘강풀만화’라는 총칭이 어느 틈에 마치 하나의 장르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 지금, 그 작품들이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 매력이 과연 무엇인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에 적응하는 법

  강도영의 그림체는 기존의 만화 장르관념에서 보자면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왠지 4등신스러운 인체비례를 지닌 깔끔하고 귀여운 모습이라고 보기는 힘든 캐릭터들, 그렇다고 해서 강한 개성의 스타일리쉬한 매력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도 데뷔를 위해서 여러 출판사를 전전했지만 거듭 실패했던 과거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몇몇 잡지, 그리고 한창 젊은 작가들의 짦막한 개그물을 새로 수용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스포츠신문에서 가끔 작품발표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강도영이 ‘강풀’로서 대중적 사랑을 받는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인터넷이라는 둥지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강풀만화의 첫 대중적 히트작은 고료를 받고 잡지에 연재했던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홈페이지인 강풀닷컴(http://www.kangfull.com)에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렸다는 만화들이었다. ‘지치지 않을 물음표’라는 범주로 묶어서 2002년부터 그려온  이런 일련의 만화들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 거리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엽기 개그, 생활 속에서 겪은 황당한 상황을 담은 재담, 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인데, N세대니 P세대니 하면서 한참 폭발적인 성장세를 타고 있던 온라인 사용자들의 문화적 취향과 시의적절하게 맞아 떨어졌다. 심지어 다소 부족해보이던 그림체마저도 그런 구수한 내용에 오히려 적합하다고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입소문에 힘입어 메일과 각종 개인게시판으로 활발하게 ‘펌질’ 당하고, 온라인의 강풀이 오프라인의 강도영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명성 덕분에 대형 포털 사이트의 만화코너에 영화 해설 만화를 연재하기에 이르렀고, 후속작으로 같은 공간에서 온라인 장편 연재작품인 <순정만화>를 연재하도록 해주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온라인 만화가 1세대’라는 이유 없이 작위적인 호칭은 곤란하지만, 확실히 강풀만화는 온라인 문화의 특성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좋은 사례다. 특히 온라인에서 자신의 만화를 퍼나름에 대한 공식적인 허락과 몇가지 규칙까지 공지하는 등 온라인 문화의 핵심적인 특성인 ‘커뮤니티성’을 적극 지지함을 독자들에게 증명하기까지 했다. 나아가 천성적인 붙임성을 무기로 하여 동료 작가들끼리의 커뮤니티를 적극 주도했는데, 그 결과 몇몇 온라인 만화 작가들의 친목에서 시작했다가 점점 규모가 커지고 있는 자선 이벤트 “러브콘서툰”이 탄생하기도 했다.

칸 경계선을 버리고 독자에게 말을 건네다

  모니터를 통한 상호대화로 특징지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적극적으로 적응해 나가면서, 만화의 표현 형식 측면에서도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중에서도 칸 경계선을 버린 것과 스크롤 효과의 적극적인 채용이다. 즉 만화의 페이지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책으로 만들어진 만화를 억지로 저해상도 모니터 화면에 맞추어 넣었다는 느낌을 없애고 읽기 수월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원래 만화의 칸 경계선은 각 칸 속에 그려진 장면을 하나의 정해진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로 인지되도록 만든다. 영화의 한 장면이나 취재사진처럼, 그 순간을 목격한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칸 경계선을 지우면 그것은 세상의 모습을 잡아낸 하나의 구체적인 장면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듯한 감각으로 바뀐다. 칸과 칸 사이의 연결이 훨씬 덜 명확해지고, 그 연계성을 서술하는 대사와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주관적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하기 좋다는 것이다. 사연을 소개하는 재담이나(‘일쌍다반사’), 편안한 설명이나(‘영화야 놀자’), 혹은 주인공들의 주관적인 시점전개에 의한 줄거리 진행(‘순정만화’)에 적합한 양식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건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보게 만들어서 서스펜스의 집중력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한데, 납량물 <아파트>(연재 당시는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세상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

  강풀만화가 온라인 만화의 범람 속에서도 확고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 한 가지 철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세상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강풀만화의 개그는 대부분 대중문화의 장르패러디 같은 고난이도의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황당한 사건들이다. 감동적인 부분 역시 대단히 드라마틱한 만남과 헤어짐보다는, “맞아,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라고 해도 좋을 만한 일상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냉소로 충격을 주기보다는, 희망적인 시선을 던져주는 방향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대신에, 이야기가 확실히 말이 되고 흡입력이 있도록 구성하는 데에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치밀하고 놀라운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부분을 포기하고, 대신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법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촌스럽다고 치부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우직하게, 확실히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인 셈이다.

  최근 연재중인 온라인 작품은 <바보(순정만화 시즌2)>로, 무르익은 연출실력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그리고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소외층에 대한 애정이 이전보다도 더욱  농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우직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한, 강풀만화의 인기와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영리불허/동의없는 개작불허/이동자유 —

연휴 만화 추천… [시사저널 050130]

!@#… 시사저널 올해 설특집호에 기고한 글. 주간지 문화면의 의례적인 연휴 특집, 연휴 문화 가이드…의 하나가 될 줄 알았는데, 여차저차 만화만 들어간 특이한 케이스. 항상 그렇듯이 여기 올리는 것은 원래 보낸 오리지널 버젼, 잡지에 실리는 것은 그쪽 편집부를 거친 버젼 (특히 도판 설명 같은 것은 대부분 완전히 편집부의 창작인 경우가 대부분… 본문 내용과 미묘하게 어긋나서 이상하게 생각된다면 100%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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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와 만화책의 행복한 상관관계

명절이다. 연휴다. 그리고 우리들은 굳이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이런 시기에 최고의 동반자가 만화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귀경귀성길의 차량 행렬 속에서, 분주한 순간들이 정신없이 끝나버리고 나면 사실 별로 다른 할 일이 없는 고향집에서, 남들은 다 어딘가 놀러갔다고 하는데 별다른 계획 없이 집에서 굴러다니는 행복한 게으름 속에서, 만화책은 필수 아이템이다. 시각적 성찬을 주면서도 텔레비전처럼 강제적이지 않고, 들고 다니며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활자서적처럼 딱딱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유쾌한 경박함이든 깊은 감동이든, 잘 고른 몇 권의 만화책은 연휴의 주인공인 당신에게 충직한 파트너가 되어줄 것이다.

우선, 시간이 좀 생겼으니 선 굵은 이야기들의 세계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격정적인 시대 속의 다양한 주인공들이 펼치는 그보다도 더욱 격정적인 삶을 지켜보다보면 어느 틈에 다음 권, 그 다음권을 펼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된다. 오랜 연재 끝에 최근 마지막 권이 발간된 <불의검>(김혜린/대원 CI)부터 한번 시작해보자. 종교와 정치, 청동과 철, 주술과 전쟁이 공존하던 고대 부족사회에서 벌어지는 장대한 드라마가 펼쳐진다. 커다란 세상의 흐름 속에 던져진 사람들의 만남과 엇갈림이 일품이다. “순정만화는 **해서 도저히 못보겠어”라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한 특효약이기도 하다. 작년 영화로도 제작된 <바람의 파이터>(방학기/길찾기)는 강함의 진리를 찾아나선 한 구도자의 이야기다. 최배달, 또는 오오야마 마츠다쓰, 또는 실전 극진가라데의 창시자가 걸어온 길을 자서전처럼 독백하는 작품으로, 굵고 간결한 화풍 속에 역동적으로 녹아들어가 있다. 좀 더 고전적인 느낌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일지매>(고우영/애니북스)가 있다. 구수한 민담을 늘어놓듯이 해학과 모험이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간 고우영 특유의 만화연출만으로도 이미 확실한 재미보증수표인데, 작가 스스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자신할 정도면 굳이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난세를 평정하기 위해서 힘보다 화합과 실용주의를 펼친 특이한 영웅을 다룬 작품 <어이, 료마!>(타케다 테츠야,코야마 유우/삼양출판사)도 필견이다. 일본근대화의 분기점이었던 메이지 유신을 만들어낸 명 정치가 사카모토 료마의 일대기다. 안타깝게도 아직 정식 한글판이 완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약점인데, 성미 급한 사람들은 십여년 전 조악한 번역으로 완간된 바 있는 해적판이라도 찾아나서리라.

굵은 모험담보다는 성찰의 시간을 원하는 성격의 소유자라도, 만화책을 펼쳐들 필요가 있다. 가장 스트레이트한 이야기라도 가장 친근한 형태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매체가 달리 또 있겠는가. <너 좋아한 적 없어>(체스터 브라운/열린책들)은 한 평범한 소년의 사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중에 어떻게 미화하든지간에, 사실 사춘기는 바깥으로 터트리는 격정보다는 변화 와중에서 생겨나는 외로움의 시간에 더 가깝다. 담백한 그림체와 기복 없는 여백이 그 정서를 극대화해주는 작품. 좀 더 직접적인 성찰을 원한다면, 패권주의와 폭력의 본질을 파헤치는 <십자군 이야기>(김태권/길찾기)가 어떨까. 십자군 전쟁의 형성과 진행과정을 통해서 무지와 폭력 위에 세워진 우리들의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대단히 해학적인 재미가 넘친다. 성찰이라면 자고로 뭔가 커다란 스케일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아예 우주를 바라보시면 될 듯 하다. <플라네테스>(유키무라 마코토/삼양출판사)가 제격이다. 달에는 사람이 살고, 화성이 개발 중인 과학적인 근미래 세계, 우주 쓰레기 청소부인 주인공이 목성이라는 신세계를 개척할 탐사선 승무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우주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를 주인공과 함께 조금씩 느낄 수 있도록 무겁지 않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하드SF 팬이 아니라도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만화라면 역시 유쾌함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도 당연히 만화책이 있어야 한다. 우선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김민희/서울문화사)부터 펼쳐보자. 중세유럽풍의 모험담일듯한 표지를 넘어가면, 왕국을 잃고 전전하는 ‘왕자스러운’ 왕자와 마법으로 꼬마가 되어버린 사상가, 가녀린 외모와 괴력을 겸비한 시녀 등 범상치 않은 인간들의 개그의 향연이 펼쳐진다. 매니아 성향의 고난이도 개그를 바라는 분들에게는 좀 성이 차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얼렁뚱땅 개그 속에서도 미묘하게 성장해 나아가는 캐릭터들에게 정들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천진난만한 6살 배기의 생활모험담인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대원 CI)도 유쾌함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위악적인 엽기아동, 또는 어른스러운 고뇌로 어른 독자의 이입을 바라는 껍데기 아동이 아닌, 마냥 모든 것이 궁금하고 또 즐거운 해맑은 아이가 온 동네를 해맑게 물들이는 이야기다. 공원에 그림을 그리러 간다든지 하는 참 시시하고 소소한 생활 속 작은 사건들이 커다란 모험이 되는 즐거움을 되찾아보자. 유머는 유행에 민감하다고들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김수정/키딕키딕)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 하다. 국민캐릭터라는 명칭으로 포장되기 이전에, 아기공룡 둘리는 무엇보다 재미있고 유쾌한 만화책이었던 것이다. 동네 이야기와 모험여행이라는 명랑만화 특유의 공식이 얼마나 막강한 재미를 주는지 다시한번 기억나게 해 줄 것이다. 오징어와 라면박스로 만든 싼타 썰매가 눈내리는 하늘을 날아다닐 때 그 순박한 상상력, 서민적 즐거움에 미소 짓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자, 그럼 연휴채비를 위해서 서점에 잠시 들려야 할 시간이다. 당연히도 이런 작품들은 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작품들을 스스로 골라보는 재미는 이제 시작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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