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으뜸과 버금 0503]

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늦어도 80년대에 만화를 즐겨 본 세대까지는, 명랑만화라는 장르를 기억한다. 순진발랄한 주인공들, 특히 아동들이 벌이는 유쾌한 모험담 말이다. 명랑만화는 ‘전체관람가’ 만화의 대명사격인 장르였으며, 그 내용은 이상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절반 정도, 그리고 그냥 일상적인 소시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일들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나머지 절반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차피 모험물로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후자야 말로 정말 별 것 아니면서도 친근한 폭소를 띄위줄 수 있는 명랑만화 본연의 필살기인 셈이다. 하지만 점점 자극적인 소재나 서정성 과잉의 강한 맛에 길들여져온 90년대 이후의 만화판도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감수성은 묻혀져만 갔다.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작/대원CI/3권 발매중)은 여러모로 명랑만화의 이런 발상을 떠오르게 하는 유쾌한 최근 작품이다. 주인공은 6살난 꼬마 여자아이 ‘요츠바’. ‘네잎’이라는 이름풀이 그대로 항상 머리를 4개의 꽁지로 묶고 다니고 커다란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다. 그리고 전체 줄거리는 그냥 이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동네에서 살면서 겪는 하루하루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들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별다른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설정, 감정의 미묘한 애증, 또는 반대로 (속칭 ‘에세이툰’ 계열에서 종종 드러나는 폐단인)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마저 없다. ‘요츠바’는 이런 장르에서 애용되는 위악적인 애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의미한 순진함의 상징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약간 특이한, 그냥 6살 아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그게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동물원 가서 동물들 구경하면서 장난치는 이야기가 재밌고, 축제에 놀러가서 아빠가 놀려주려고 숨어버려서 길을 잃은 줄 알고 우는 것이 재밌다.

도대체 그런 게 무슨 재미냐고 약간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니는 재미의 상당부분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요츠바랑!>의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이미 전작인 <아즈망가 대왕>에서 연애이야기도 복잡한 애증관계도 엽기감수성도 사용하지 않고, 뒤집어지게 웃기는 여자고교생 코미디를 만든 전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을 더욱 다듬어낸 것이 바로 <요츠바랑!>이다. 일부러 한 템포 슬쩍 늦게 터트리는 변박자 리듬의 개그 호흡, 과잉자극을 배제하는 단촐하고 귀여운 그림체, 칸이나 페이지 구성에서 다양한 만화적 시각연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 등이 훌륭하게 결합하고 있다(물론 의도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치 않은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도 여전히 성장중인 작가인지 점점 이야기가 능숙해지는 모습이 엿보인다). 즉, 간단히 말해서, 만화로서 최선을 다해서 강력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일본문화 일반이나 90년대 이후 일본만화 특유의 캐릭터 코드들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일본식 미소녀만화 취급을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심심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신선한 재미가 나올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꺼벙이를 즐겼고 심술통이 재밌었고 도깨비감투를 읽었다는 기억이 슬슬 돌아온다. 그렇게, <요츠바랑!>의 재미는 낮설지 않은 것이다. 

[으뜸과 버금 20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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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만화 클래식 콘서트

!@#… 난 이런 식의 아이디어 기획들을 좋아한다. 만화속 클래식 콘서트. 이번 것은 노다메 칸타빌레, KISS 피아노의 숲 등 3작품이군. 노다메 하나만 지져도 좋을텐데.

소개는 이곳: http://blog.naver.com/dfs_v/80010895985

예매는 이곳.

!@#… 음음음… 하지막 북실북실 조곡이 없으니 대략 무효.

PS> http://nodame.moo21.com/ 이곳에 가면 노다메에 등장한 곡들 전체가 정리되어있다(비클래식까지도). 게다가 계속 업데이트중. 하기야 생각해보면, 전에 노다메 스페셜 씨디도 나온 적이 있었지. 물론 지금은 절판, 초레어 상품으로 마구 가격이 뛰고 있는 중. 뭐 그런 세상이다. 

지면은 살아나고 또 살아난다

!@#… 주류 프로적 감수성이 담긴 아마투어식 창작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1인 독립 애니메이션이라면 다들 프레데릭 백 같은 성향을 생각할 때 신카이 마코토가 블럭버스터형 SF <별의 목소리>를 들고 온 것 같은 그런 것. 개인적으로는 꽤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인데, 예술적 전위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류의 호소력을 즐기지 못하는 건 바보라고 생각하니까. 만화의 경우, 원래부터 두터운 동인창작문화 덕분에 더욱 간단하다. 이런 류의 작품들이 최근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역시 인터넷 등을 통해서 실제 프로 데뷔의 길이 넓어졌기 때문. 그리고 만화가 독자 대중들과 만나는 공간 역시 더욱 쉽게 다양해지고 있다.  만화 지면이 더 융통성 있어진 셈이다. 예를 들어 최근 주목하고 있는 <사룡의 무녀> 같은 경우만 해도, 비디오 게임 전문 커뮤니티 룰리웹에서 연재되고 있으니까. 물론 아마투어 창작란.

(제1화)

클릭, 클릭, 클릭, 클릭

!@#… 경향신문 만화섹션 <펀>이 소멸당한지 한달 남짓. 하지만 매거진x가 매일제로 바뀌면서, 조남준의 <메모리즈>,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 최호철 외의 <위클리 스케치>, 마정원의 신작 등이 다시 지면을 획득했다. 엠파스가 만화 사업을 접으면서 붕 떳던 강도하의 <위대한 캐츠비>는 최근 미디어다음으로 이적, 활동 재개했다. 지면은 사라져도 또 만들어진다. 폐허같아보여도 그 밑에는 또 새로운 싹이 트는 것이다(나우시카냐?-_-;). 그 와중, 지면의 권력과 작품 자체의 힘 사이의 균형에서 미묘하게 후자가 힘을 더 얻어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면이 작품의 존폐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지면이 작품을, 작품이 지면을 서로 선택해가면서 융통성있게 생명력을 이어나가는 이상적인 관계를 향해서, 지금도 한발짝씩 더 가까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걸 앞당기기 위한, 다양한 지면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들인 것이다. 공모전이든 종이잡지든 웹진이든 홍보물이든 뭐든.

 

— 2005 Copyleft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그림자를 그리며 세상에 자리잡기 – <그림자 소묘>[으뜸과 버금 0502]

만화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이다. 그림과 글을 거리낌 없이 섞어 쓰며, 그것도 그런 그림들을 여러 개를 마음대로 공간 속에 분할하고 흩뿌리고 붙여넣는다. 세밀한 그림과 대충 그린 여백 넘치는 작대기 형상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조화를 이루도록 지휘감독이 행해질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 바로, 이야기의 효과적인 전달이다. 만화의 생명은 이야기로서의 재미(말하자면 길어지겠지만, 여기서는 우선 ‘독자를 끌어들여서 작품을 끝까지 만족스럽게 읽도록 만드는 힘’ 정도로 적당히 규정하고 넘어가자)이고, 그것이 확보되었을 때 비로소 그 속에 담긴 정서와 메시지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유대감을 만들어 깊은 울림을 준다. 이야기를 든든한 핵심축으로 놓고, 그것을 가장 확실하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만화의 매력이다.

<그림자 소묘>(김인/새만화책)라는 작품이 소리소문 없이 출간되었다. 홍보는 기본적으로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 문제이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이 아무런 주목도 못받고 그냥 묻혀버리는 경우는 역시 언제라도 안타깝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시골에 살던 소녀가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다. 작품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소녀가 서울에 올라와서 미술학원 강사와 친해지며 낯선 사람들이 만든 그 공간 속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이야기, 후반부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다른 소녀가 주인공과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비로소 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절묘하게 서로 연결되고 대칭되어, 세상과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그림자 소묘>는 위에서 이야기한 만화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만화다. 사람의 존재감이란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을 미술의 소묘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자 개념으로 치환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발상이 신선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 피터팬과 웬디의 그림자 소동을 모티브로 섞어넣어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돋구는 능숙한 구성 솜씨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다양한 시각기법들이 총동원된다. 사실 주류 상업만화들이 펜과 잉크로 가는 것에 비해서 콘테와 붓으로 그렸다느니 하는 것은 솔직히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화제 거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콘테 질감의 소묘, 2차원적 형상과 여백의 붓선들이  각각 정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확대시켜줄 수 있는 그 순간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밀도의 소묘 그림체로 묘사되는 인물들, 존재감을 잃었기에 하얀 여백 면과 붓선 만으로 형상화된 소녀. 현실의 거리와 그림으로 그려진 지도, 그리고 그 두가지가 섞여들어가면서 만드는 풍경. 따뜻하고 탄탄한 이야기를 돋보이게 만드는 멋진 ‘만화적’ 표현이다.

물론, 그림 질감의 밀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서 주류 만화에만 너무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약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중문화로서 즐기려는 작품에 대해서는 항상 작품으로 들어갈 진입장벽이 무척 낮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이런 경향을 비웃기 위해서,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첫 챕터를 일부러 집요할 정도로 난해하게 썼다). 특히 만화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생명력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언젠가는 결국 독자에게 도달하고 만다. <그림자 소묘>가 그런 작품이 되어줘야 한다고 믿는다.

[으뜸과 버금 2005. 02.]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성인과 어른의 간극에서 하는 재담 – <다르면서 같은> [기획회의0502]

꼭 자서전 차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작품의 생동감 확보라는 측면에서 참 편리하다. 특히 성장이라는 모티브를 가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자칫 잘못하면 자아성찰이라는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서 지나친 자기연민의 어두운 나락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장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 무척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 작가인 데릭 커크 킴(한국명 김지훈)의 작품집 <다르면서 같은>을 읽다보면, 그런 어려움이 전혀 실감이 가지 않는다. 그가 풀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쫒아가다 보면, 유머감각과 자기연민은 애초부터 너무나도 친한 파트너처럼 느껴진다.

<다르면서 같은>은 원래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한 같은 제목의 중편과, 기타 짦막한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개인 출판으로 처음 발간되었다가, 대형 출판사에 발탁되어 다시 출간된 후 그 해 북미지역의 대표적인 3대 만화상인 하비, 아이스너, 이그나츠에서 신인상을 모조리 휩쓴 화려한 데뷔를 거두었다. 이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표제작인 ‘다르면서 같은’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 작품은 20대 후반을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 사이먼과 그의 친한 친구이자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인 낸시가 어느 주말에 한 낯선 남자를 찾기 위해 벌이는 작은 모험(?)담이 줄거리인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섬세한 집착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어떤 순간에도 낙천주의에 빠지지도, 유머감각을 잃어버리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이 이 모든 것의 척추를 이루어주고 있다.

한국계라고 해서 왠지 뻔한 기대를 가지고 있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옛 TV시리즈물 의 이상한 이국 공간이 아니라 그냥 미국이다.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민족주의의 차원이 아니라 인종적 출신 성분의 문제다. 이들의 생활은 ‘교포’가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인 것이다. 좋은 예는 사이먼과 낸시가 슈퍼마켓에서 오리엔탈 맛이라고 쓰여진 라면을 놓고 펼치는 짧은 만담대화인데, 미국사회가 아시아계에 대해서 가지는 생활화된 편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무척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여하튼, 결국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성장은 추상적인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애매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아나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는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철없이 방황할 시기는 이미 지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활에 찌들고 굳어버리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이기 때문이다. 법적인 성인이지만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는 않은 시기. 장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지는 않지만 직장은 있고, 결혼에 진지하게 목매이기는 아직 싫지만 고등학교 동창 녀석 가운데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시기인 것이다.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조금씩 성장을 이루어내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장통과 자기연민적 성찰은 결코 과잉된 낭만으로 무겁게 짓누르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일하며 취미로 만화나 그리는(!)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주인공일지라도 삶의 무게에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이유는, 바로 수다다. 혼자 독백으로 중얼거리는 일방향 뱉어내기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고민은 바로 그 속에서 수정되거나 부정되고, 때로는 북돋아진다. 시시한 고민, 깊은 성찰, 실없는 농담 그 모든 것이 박진감 넘치는 수다 속에서 펼쳐진다. 마치 우디 앨런의 코미디 영화를 연상시키는 자아몰입형 주인공과 주변 캐릭터들의 화려한 재담이 촘촘히 수놓아지면서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모티브들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만화의 표현적인 속성들을 120%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대화가 아닌 ‘수다’의 박진감 넘치는 과정을 이토록 명쾌하게 표현하는 것의 일등공신은 칸 안팎을 넘실대며 서로 꼬이고 연결되어 있는 말풍선들이다. 대화하는 주인공들은 서로 말허리를 끊으며, 서로의 말꼬리를 부여잡고 비꼬고, 그 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 과정이 말풍선이라는 장치 속에서 완전히 시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급격한 시점 전환과 긴 응시를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안정감 있는 칸 연출이 결합하여, 더욱 대화의 박진감이 깊이를 더한다. 그림체 역시 인종적 차이나 개별적인 표정을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는 세밀함과, 만화적 여유를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약호화된 그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내고 있다. 4칸 이상 가는 미국만화를 볼 때 한국의 독자들이 흔히 느끼곤 했던 필체나 문법에 대한 거부감은 적어도 이 작품을 읽을 때는 벗어던져도 좋다.

사실 자신이 직접 발굴해서 번역 소개한 책에 대한 리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겸연쩍은 일이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작품 자체의 우수성이 개인적 쑥스러움을 가볍게 넘어서줄 만한 힘이 있다. 물론 신인 작품 모음집이 첫술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실제로 표제작인 ‘다르면서 같은’ 이외의 단편들의 수준은 고르다고 하기 힘들다. 성찰의 무게감에 짓눌린 자전적 초기 작품들도 있고, 너무나 날 것 그대로의 거친 풍자 때문에 김이 빠지는 것도 있다. 그에 비해서 작가가 겪은 한국에서의 일화를 소개한 단편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주는 은근한 미소는 아마도 각별할 것이고, ‘올리버 픽’ 같은 짜증날 정도로 자기연민의 극단을 달리는 이야기들에 매니악한 재미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인의 첫 단편모음집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볼 때 그 정도의 들쑥날쑥함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르면서 같은>은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자기연민에 관한 재담이다. 그것을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 표제작, 또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하고 있는 여타 단편들이 어울려서 각각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르고도 같은, 다르기에 같은, 다르다는 점이 바로 같은 사람들의 관계맺음 – 사실 그것이 우리들의 삶 그 자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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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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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줌의 신인만화작가 계약서… 혹시 개그?

!@#… ‘만화전문’ 무가지 데일리줌. 지난호 <우리만화>에서 그곳의 신인 작가 계약서에 대한 기사가 나갔다. 더헉…;;; 만담난무에 봉한다.

!@#… 이런 엄청난 발상의 계약서를 내민다는 것도 개그고, 이런 걸 덥석 싸인하고 앉아 있다는 것도 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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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화 05년 1월호] 동향 – ‘ㄷ’신문의 불공정한 신인 연재 계약서 유감 
 
‘노비문서’인가, ‘신체포기 각서’인가?
신인만화가를 날품팔이 취급 말라!
– ‘ㄷ’신문의 불공정한 신인 연재 계약서 유감

편집부

“대~한~만~화 대단한 문화가 되겠습니다.”

지난해부터 무료 만화신문이란 새로운 형태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는 ‘ㄷ’신문의 웹사이트 초기 화면에 떠있는 문구이다. 이 문구의 의지처럼 ‘ㄷ’신문은 그동안 위축되어가고 있는 한국만화시장에서 만화무가지라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 독자에겐 만화를 접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작가에겐 원고를 실을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속에서 ‘ㄷ’신문은 지난 2004년 12월 제1회 신인공모전을 실시하였다. 12월 4일이 마감이었던 이 공모전은 예전 만화잡지사들의 공모전과 달리 상금 없이 ‘일정기간의 연재자격 부여 및 그에 따른 원고료 지급’이라는,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반영한 듯한 시상내역으로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최근 확인된 이 공모전 당선자들에 대한 연재 계약서의 내용이 작가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되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ㄷ’신문이 계약의 주체인 “갑”으로 되어 있고 작가가 “을”로 되어있는 이 계약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연재원고료’와 ‘저작권’ 부분 등이다.

저작권 양도 대가가 고작 원고료 3만5천원

먼저 이 신인 공모전에서 중심 되는 시상 내역이었던 ‘연재권과 원고료’ 부분을 살펴보자. 이 계약서의 ‘제1조 기본조항’을 보면 작품명과 작품 내용, 연재기간은 시상자에 따라 상이하지만 연재방법 일일연재에 연재료가 ‘1일 3만5천원’으로 되어 있다. 이는 보통 원고 매수 당 계산되던 기존의 원고료와 다른 계산법으로, 1일이라는 단위는 그 일일에 게재하는 원고의 수와 상관없이 하루의 일당으로 3만5천원을 지급하는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ㄷ’신문 측에서는 이 계약서를 제의받은 작가에게 하루 2페이지씩 원고를 게재하라고 했다고 한다. 극화도 아닌 카툰작가였던 이 작가의 원고료는 작품 1점당 1만7천5백원이 되는 것이다. 10년 동안 인상되지 않고 있는 일반적인 만화잡지의 신인 극화 원고료 1페이지 당 4만원 선에도 한 참 못 미치는 액수다. 더군다나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서 통상 극화 1페이지보다 높은 금액이 책정되는 카툰 작품 이란 걸 감안하면 더욱 더 박한 원고료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으로 더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런 원고료의 대가로 작가가 넘겨줘야 하는 저작권과 관련한 부분들이다. 사실 원고료는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작가와 신문사가 협의하여 조정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저작권 부분은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제4조 이용관계’의 내용을 보자.

2. “을”은 본 계약에도 불구하고 위 연재만화의 저작권을 보유한다.
3. “을”은 “갑”에게 위 연재만화의 복제권, 공표권, 방송권, 전송권, 배포권. 2차적 저작물 등의 작성권 등의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일체의 권한 (“갑”의 인터넷 사이트에 “을”의 원고를 연재하는 권리 포함)을 부여한다.

3항의 내용은 바로 위 2항을 무색하게 만든다. 2항에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다.”고 하고서 3항에서 바로 저작권의 핵심 알맹이를 ‘ㄷ’신문에게 부여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작가에게 저작권 일체를 포기하라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이 조항이 저작권의 내용과 그 하부 내용을 이해하고 그것을 계약관계에서 특약시의 효과를 이해하고 작성한 문건으로서, 이런 ‘사실상의 저작권 일체의 포기’에 대한 대가로 그에 상응하는 처우가 존재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대한 대가는 다음의 조항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5. 제1조의 원고료는 제3항, 제4항의 대가도 포함되어 있다.

위 3항의 ‘사실상의 저작권 일체의 포기’에 대한 대가로 제1조의 원고료만을 지급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신인이라 하더라도 한 작가의 고뇌와 노력이 들어간 작품의 저작권 일체를 1일 3만5천원의 원고료로 양도받겠다는 듣도 보도 못한 최악의 ‘노비문서’라 불리 울만한 내용인 것이다. (모 변호사는 이 계약서를 보고 “신체포기 각서 수준이네요.”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하였다.) 제5조의 계약의 해지 및 연장의 사유에 보면 작가에 대한 불평등성은 더욱 배가 된다.

제5조 계약의 해지 및 연장
1.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경우 “갑”은 “을” 에게 1주간의 기간을 정하여 최고하고 그럼에도 시정이 되지 아니하면 본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가) 위 만화의 인기도가 하락하여 계속 연재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
   나) 위 만화가 “갑”의 편집방향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
   다) “을” 이 본 계약의 각 조항에 위반한 경우
2. “갑”이 편집방향을 전환하는 등으로 위 만화의 연재중단이 결정된 경우
3. 위 연재만화의 인기가 높을 경우 “갑”은 “을”의 동의를 얻어 제 1조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연재기간을 1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다.

5조의 내용에 의하면 “갑”의 사정에 따라 임의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더욱이 3항의 내용은 신인공모의 결과로 연재되는 이 작품의 연재 기간 이후에도 이 작품의 인기가 높으면 다른 조건으로 이후 재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본 계약을 1개월 단위로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기가 올라 독자의 반응이 좋아도 1일 3만5천원에 저작권 일체의 권리를 가져간 채 이 계약을 더 지속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가 살아야 신문사도 산다

작가 “을”의 의무만이 있고 ‘ㄷ’신문 “갑”의 권리만이 존재하는 이 계약서를 보며 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한 만화작가와 작품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대해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저작권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던 예전과 달리 이 계약서는 저작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저작권에 대한 모든 권리를 거의 공짜로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시된다.

저작권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는 신인작가들에 대한 이런 행위는 가뜩이나 어려운 만화계의 현실 속에서 또 하나의 대안적인 만화매체로 자리매김한 ‘ㄷ’신문의 위치를 생각해 볼 때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계약서의 내용이 이번 공모전 당선자들만이 아니라 신인작가들에 대한 처우의 일반적인 표준으로서 ‘ㄷ’신문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한국만화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 신인작가들의 미래를 이 ‘노비문서’를 통해 꺾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ㄷ’신문 측은 지금이라도 이 계약서의 부당한 조항들을 인정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계약을 제시하고 수정하여 작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 바란다. 이는 작가만이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더 우수한 신인들이 ‘ㄷ’신문으로 모여들어 ‘ㄷ’신문의 핵심 콘텐츠인 만화작품의 질적 상승과 그로 인한 구독율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신인작가의 원고료와 저작권을 착취하는 만큼씩 ‘ㄷ’신문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ㄷ’신문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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