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시작하는 풍경에 관하여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041231]

!@#… 이번회부터는 좀 더 형식을 자유롭게 가려고 시도. 특정 작품 하나 찍고 가는 게 아니라 폭넓게 잡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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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시작하는 풍경에 관하여

  일본 만화, 그 중에도 현대 일본을 배경을 하고 장기연재 중이며 에피소드 방식의 전개를 지니는 작품들을 보면, 이맘때면 소위 ‘연말/정월 이벤트’라는 것이 종종 있다. 주인공들이 모여서 기모노를 입고 신사에 새해소원을 빈다든지, 깃털치기 놀이를 하며 정월 도시락을 먹는다든지 하는 기초설정을 우선 놓고 그 위에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 것은 일종의 장르적 규칙인데, 발렌타인 데이 즈음에 괜히 쵸콜렛 선물을 놓고 남녀주인공들이 고민스러운 연애모드로 돌입하는 것과 함께 명절 이벤트의 양대산맥이다. <유리가면> 같은 고전이든, <아즈망가 대왕> 같은 최근의 4칸 개그 드라마물이든 말이다.

  민족감정이라는 애매모호한 가치를 내걸면서 일본 만화를 애써 마치 한국만화인양 억지로 번안(?)해서 들여오는 것이 당연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작품들의 경우, 이 신년 이벤트는 항상 애물단지 신세였다. 주요 캐릭터들이 난데없이 기모노를 입고 일본 전통 풍습을 따르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아예 에피소드를 통째로 빼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전개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엄청난 수정신공, 즉 장면 위에 덧칠을 해서 다른 내용으로 바꾸어버리는 편집기술으로 기모노를 한복으로 개조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 경우 무려 한복을 입고 깃털치기 놀이를 하고, 일본의 끈적 쫄깃한 스타일의 떡을 먹는 엽기적인 문화 퓨전 현상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한번 물어봄직한 질문은, 과연 현재의 한국만화에서는 한국의 설 풍경을 어떻게 소재로 활용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거의 써먹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에 대해서 패배주의적인 시각의 소유자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설 전통이 미미해졌기 때문이다”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본이라 할지라도 만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다들 기모노 입고 돌아다니는 일은 그다지 없다. 다만 하나의 장르적 규칙으로 승화를 시킨 것 뿐이다. 한국만화에서 그 소재를 제대로 못다루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현실, 스스로의 생활을 효과적으로 작품 속에 반영해내는 것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가족친지들이 모여서 차례 지내는 풍경, 설 귀향으로 쓸쓸해진 도심에서 호호 불어가며 떡국을 먹는 궁상 같은 훌륭한 이벤트 소재를, 개발도 안해보고 그냥 날려버리면 너무도 아깝다. <우주인>(이향우 작) [주: http://www.uzuin.com 의 ‘우주인’ 연재 또는 단행본으로 1권 14화를 찾아보시길] 의 신년 에피소드 같은 멋진 이벤트로 한국적인 장르 컨벤션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희망을 품어본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경향신문 04.12.31]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윌 아이스너 타계. (1917-2005)

!@#… 미국만화…아니, 만화라는 양식 자체의 거장, 윌 아이스너 타계. 2005년 1월 3일, 심장수술 중 운명. 장수를 누리면서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은 노 작가의 명복을 빈다.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소설가(이자 운동가…아니 운동가이자 소설가?) 수전 손탁도 타계. 음음음…

!@#… 윌 아이스너는 한국에서는 스콧 맥클루드의 만화이론서 <만화의 이해>를 통해서 주로 알려졌다. 사실 <만화의 이해>는 핵심논리의 상당 부분을 아이스너의 <만화와 연속예술>(국내 출간명은 생뚱맞게도 “그림을 잘 엮으면 만화가 된다”)에 빚지고 있고, 스콧을 포함한 대부분의 의식있는 미국작가들은 아이스너라는 영웅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항상 안달이다.

!@#… 하기야 그럴만하기도 한 것이, 이 사람은 한 평생 미국 만화 발전의 최전방에서 뛰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수많은 주류/비주류 작가와 작품들이 아이스너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서 자라났다. 그럼에도 과거의 명예에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 후배들이 활동하도록 판을 짜주고, 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인식 개발을 위한 캠페인과 교육을 벌였다. 정말, 만화 그 자체를 사랑한 작가.

!@#… 간단히 약력을 요약하자면:

1936 잡지에 정식 데뷔.  해적 모험만화 Hawk of the Seas 연재.

1936-39 Eisner & Iger Studio 를 통해서 미국만화의 중추를 이룰 수많은 인재 양성. 미국식 히어로물의 비주얼을 완성시킨 잭 커비, 배트맨의 밥 케인, 작가주의 쥴 파이퍼…

1940  연재 시작. 사상최초로, 일요일자 신문에 16페이지 별책부록으로 수록. 이 작품은 가면을 쓴 탐정이 등장하는 수사물인데, 나중에는 인간사 전반을 다루고 만화의 형식적 연출실험의 장도 되는, 아이스너의 라이프워크이자 최대 베스트셀러.

1942-45 펜타곤에서 준사관으로 복무. 교육/홍보 만화의 문법과 활용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킴.

1945-52  연재 재개. 이 후기 시리즈의 원숙미는 지금봐도 가히 발군.

1978 이런저런 작은 시리즈물과 홍보에 전념하는 듯 하다가, 이 때 큰 건을 하나 터트림. 바로, Graphic Novel 이라는 개념의 발명. . 연재 시리즈물이 아닌 완성된 단행본으로 발행하고, 시각 연출과 문학적 깊이에 초점. 이후 1년에 한 권 꼴로 이런 류의 작품 발표. 부지런하기도 하지. 이후 New York School of Visual Arts 에서 만화 강의. 후에, 이를 기반으로 이 분야의 고전격인 교과서 출시.

1988 샌디에고 코미콘에서 수여하는 대상에 Eisner Award 라는 명칭 부여. 그런데 이 사람, 여전히 유능한 현역이어서 자기 이름으로 된 상을 여러번 수상. -_-;

…이후에도 계속 작품 발표하고, 상타고, 공로상 부여받고, 교육하고… 그런 것들의 연속. 5월에 출간 예정인 유작 THE PLOT: The Secret Story of 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 의 설명을 읽어보니, 이 사람은 정말 젊은 작가의 패기와 노 작가의 원숙미를 겸비한 괴인이었다는 느낌이 마구 든다. 100년전 러시아의 유태계 지오니즘과 관련된 음모론의 발생과정을 통해서 시대와 사회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하니… 서문은 움베르토 에코.

!@#… 꼭 한번 한국으로 초빙해서 세미나/강좌 테이블로 끌고 나오고 싶었던 인물이었는데… 타이밍을 영원히 놓쳐버리고 말았다. 만화인생 70년, 평생 현역. 작가로서도 활동가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솔선수범 진두지휘. 이제는 평안하게 휴식을 취하시기를. 

– 작가 소개 (영어의 압박): http://deniskitchen.com/docs/bios/bio_will_eisner.html

– 윌 아이스너 공식 홈페이지: http://www.willeisner.com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만화 담론의 역사를 리셋시키지 말란 말이다.

!@#… 신문을 읽다가 푸념 한가지. 사람들이 멋대로 한국에서 만화 담론의 역사를 리셋시키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만화 자체를 깔보니까 만화에 관한 담론도 그렇게 우습게 보는 거라고.

…뭐냐, 이 찌라시스러운 기사는. 최초, 1호, 오오!박사!! 뭐 그런 느낌을 위해서 적당히 사실을 날조하고 혼자 좋아하고 싶은건가. 만화학박사? 저기… 신방과에서 만화를 소재로 한 논문이 통과되면 그건 여전히 신방과 박사라는 기본 상식을 기대하는 건 좀 무리일까(실제로, 박사과정이 있는 만화학과는 공주대에 있다…올해 생겼지). 신방과든 교육 관련이든, 지금까지 만화를 소재로 한 논문을 쓰면 다 만화학 전공자가 된다는 건가. 1호 박사? 공주대 임청산 교수는 그럼 0호구나. 1호 평론가? 아니 그럼  7말8초에 활동한 오규원이나 김현 등은 선사시대로 치는 건가 (그 이전 세대들은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면 신문 공모전으로 등단해야만 ‘공식’ 평론가 직함을 부여할 수 있다는 황당한 오만인가? ‘스타’를 만들어내서 야한 기사를 쓰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최소한의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이쪽 분야를 그렇게 맘대로 폄하해 버리면 섭하지 않은가.

!@#… 여담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기자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다”라는 말도 안되는 뻥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아 물론 직업 특성상 정보를 많이 접할 기회가 있고, 노력여하에 따라서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전문가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차일 뿐.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독자의 사랑에 보답하다 – <슬램덩크> 후일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041217]

지난주, 일본 카나가와 현에 있는 한 폐교가 갑자기 다시 학생들로 붐볐다. 이 동네를 배경으로 하는, 스포츠 속에서 우정과 성장을 나누던 멋진 학생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만화 작품 한편을 기리기 위한 이벤트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작품은 한국에서도 엄청난 붐을 몰고 온 바 있는 농구만화 <슬램덩크>(이노우에 타케히코)고, 이번 이벤트는 1억권 판매 돌파를 자축하기 위한 팬서비스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작품, 자기 작품과 그 속의 주인공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어낸 작가. 여하튼 30여권의 시리즈로 단행본 1억권을 돌파한 것은 만화시장이 거대한 일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척도인 셈이다.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작가가 시작한 작전의 첫번째는 바로 일간지 전면광고였다. 어느날, 일본의 주요 종합일간지에 주요 캐릭터들이 각각 한 명씩 신문 한면을 통째로 채우며 멋진 모습의 스케치로 등장해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의 통 큰 팬사랑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 두번째 이벤트는 온라인에서 벌어졌다. 주인공들의 농구경기 장면이 펼쳐지고, 관중석에는 관중이 가득하다. 그리고 팬들은 사이트에 등록해서, 자신만이 아바타를 관중석에 앉히고 응원 메시지를 띄울 수 있도록 했다. 즉 북산(쇼호쿠) 고교 농구부 경기의 하이라이트에 직접 가서 응원을 하는 기분을 만끽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지난주의 폐교 이벤트였다. 폐교에 들어가서, 23개 학급의 칠판에 만화를 그린 것이다! 작품에 등장한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23개의 짦은 에피소드로 칠판위에 분필로 그려냈다. 그것도 작품의 배경이 되었던 그 동네에서 말이다. ‘마지막’이라는 이미지, 학교라는 공간, 그리고 나아가 칠판위의 분필 낙서가 가지고 있는 그 자유분방한 에너지까지. 뭐랄까, <슬램덩크>라는 작품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이벤트를 펼친 것이다(공식 사이트에서 제작 동영상을 볼 수 있으며, 만화 내용은 칠판색 그대로 편집한 특별 한정판 엽서세트로 소량 상품화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며칠간의 ‘꿈 같은’ 시간이 흐른 뒤, 칠판을 지우는 마무리까지. 작품 자체의 분위기와 주제의식과도 자연스럽게 일맥상통한다.

만화라는 장르가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필살기라면 바로 독자와의 긴밀한 호흡이다. 이번 슬램덩크 이벤트는 그 점을 명확하게 짚어준 최고의 사례다. “1억권 팔렸으니 이런 이벤트도 하지” 라고 푸념할 것이 아니라, 이런 이벤트를 할 정도의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1억권 팔린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독자들과 작품에 대한 사랑으로 따지자면 10억권이라도 부족할 한 만화 작가의 성의에 박수를 보낸다.
[경향신문 04.12.17]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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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본질 – <루쿠루쿠>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악의 본질 – <루쿠루쿠>

정의의 주인공이 사악한 악당을 물리친다는 설정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선과 악이 명백하게 잘 나누어져 있고 그 중 결국 선이 승리하기를 바라며, 그 ‘선’이 하필이면 자신들을 위해주는 자들이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런 선악 구도를 가장 확실하게 상징화시킨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 천사와 악마, 각각의 군단의 대격돌, 그리고 예언되어 있는 천사군의 승리. 이야기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동안 사랑받아온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의 궁극적인 구현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풍속도는 이런 명쾌한 이야기와는 꽤 거리가 멀다. 선악의 경계선은 어디며, 선은 과연 어떤 경우라도 선인가? 뭐, 꼭 머리를 쥐어뜯으며 엄청나게 철학적으로 접근해야할 필요는 없다. 위트와 풍자, 뼈있는 농담으로 이런 지점들을 꼬집어내는 것이 더 핵심을 짚어낼 가능성이 크니까 말이다. 일본 작가 아사리 요시토의 <루쿠루쿠>(3권 발행중 / 북박스)가 좋은 사례인데, 여기서는 ‘지옥의 공주’로 불리우는 강력한 악마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을 하고 남자주인공의 집안일을 해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지옥이 너무나 과밀인구가 되어버려서, 악마들이 나서서 인간들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선도해주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저의를 수상하게 여기는 천사들 역시 인간계로 내려와서 이들과 맞서려고 하는데, 스님의 몸에  빙의되어 인간계로 내려온다든지 하는 등 좌충우돌 투성이다. 악마들이 쓰레기를 줍고 할머니가 길 건너는 것을 도와주는데 천사들이 악마의 ‘계략’을 막으려면? “쓰레기를 버리고 할머니를 넘어트려야지! 에에…자, 잠깐만!” 이런 식으로 말문이 막히는 천사의 모습이 주는 촌철살인의 블랙유머가 일품이다. 학원 코미디물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할 법한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그림체와 연출 속에 담겨져 있기에 그 울림은 더욱 크다.

어이없이 웃다보면, 뜨끔해진다. “우리는 정의를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아!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지!”라는 천사의 대사가 이상하게도 낯익기 때문이다. 전쟁을 입에 물고 다니는 어떤 미국 침팬지를 떠올리든, 아직도 좌파공세 따위가 잘만 통하는 어떤 후진 사회를 떠올리든, 인터넷 게시판에서 뛰노는 악플러들을 떠올리든 말이다. 선과 악을 나누고, 하필이면 자신이 서있는 쪽이 선이라고  굳게 믿는 자들. 사실관계 확인과 토론이나 근거제시에는 인색하면서, 타인비방과 자기미화에는 놀라운 정열을 보여주는 자들.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단 하나 확실한 ‘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 이외의 모든 것들을 악으로 몰아붙이는 행위 그 자체다. 바로 그런 악이 뿌리 뽑히는 권선징악 정도는 꿈꿔 보아도 좋지 않을까.
[경향신문 04.12.03]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만화, 온라인, 커뮤니티 – <러브콘서툰>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그간 쌓인 원고 창고대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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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온라인, 커뮤니티 – <러브콘서툰>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뉴미디어’라는 단어만큼 진부한 것이 또 있을까. ‘뉴’미디어의 대표주자로 꼽히며 한껏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인터넷 (및 그 이전부터 있었던 컴퓨터 통신 일반)과 그것이 만들어낸 의사소통 시스템의 세계인 온라인은 이미 단순한 기술적 용어가 아닌, 하나의 삶의 방식이다. 쌍방향성에 기반한 참여니 원본과 카피의 경계 상실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이미 매체 이론가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담당구역으로 넘어와 버렸다. 특히 그 중에서도 일반 사용자들과 가깝게 살을 맞대고 있는 대중문화라는 분야에서, 온라인이라는 환경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향유 양식들을 진화시키고 있다.

온라인 대중문화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바로 커뮤니티성이다. 온라인 세상의 향유자들은, 온라인을 돌아다니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면 자신들이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에 열심히 퍼나른다. 메일로 보내고, 동호회 게시판에 올리고, 블로그에 올린다. 그리고 올라온 것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감상을 올리거나, 아니면 올린 사람에 대한 창찬/비난을 하면서 더욱 커뮤니티의 내적 소통이 강화된다. 창작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작가들의 온라인 동호회 결성을 통한 정보 및 노하우 교환, 공동 프로젝트 진행 등이 프로와 아마투어의 경계선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이라는 공간과 여러모로 상성이 상당히 좋은 매체인 만화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2003년에 시작된 ‘러브콘서툰’(http://www.lovetoon.co.kr)라는 자선 콘서트 프로젝트가 좋은 사례인데, 온라인에서 만화연재를 하거나, 그리고 비록 스포츠 신문 등 종이지면에서 연재를 하고 있지만 (언론사 홈페이지를 거치면서) 사실상 온라인에서 더욱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며 시작했다. 러브콘서툰은 사실 원래는  젊은 작가 몇 명이 한바탕 유쾌한 음악 공연을 펼치면서 불우이웃 돕기 같은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그런데, 온라인 입소문 등에 힘입어 독자와 작가 양쪽으로 모두 높은 호응을 얻어, 행사 직전에는 참여 멤버가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후에도 커뮤니티의 결속력은 계속 유지되어, 어느 틈에 젊은 만화가들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올해 11월 21일, 이 커뮤니티가 준비한 두 번째 행사인 <2004 러브콘서툰>이 펼쳐질 예정인데, 이 행사를 홍보하기 위한 릴레이 만화와 홍보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열심히 온라인에서 ‘펌’ 당하고 있다. 이미 사전홍보 단계부터, “만화라는 것의 매력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던 작년 행사보다 한층 발전한 모습이다.

대중문화는 창작이든 향유든, 결국 취향으로 의기투합하여 같이 즐기는 자의 몫이다. 온라인이라는 환경을 만나면서, 그것이 좀 더 명확해진 셈이다.

 

[경향신문 04.11.19]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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