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공정성에 대한 페티쉬

!@#…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언론학회에서 발표한 <대통령 탄핵 관련 TV방송 내용분석>. 내용은 보시면 알 듯. 귀찮으신 분들은 결론만 읽고. 첨부파일 참조.

!@#… 결국, 방송이 불공정한 보도를 했다는 거다. 그걸로 논쟁이 붙었는데… 나는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는지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방송이 한민자의 탄핵처리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은 체감적으로 다들 느낀 바 아닌가. ‘편들지 않기’라는 기준에서 볼 때, 불공정한 보도를 했다는 건 완전 납득.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즉, 연구보고서 자체에는 그다지 이의도, 논란거리도 붙일 만한 필요가 없다고 생각.

…다만 문제는 그 이전에 조중동을 위시한 신문들이 그 반대방향으로 불공정한 짓거리들을 많이 했고 그것에 대한 대안적 담론이 필요한 상황에서, 방송의 그러한 불공정한 보도행태가 과연 잘못되었던 것인가…라는 것이다. 음. 이렇게 물어보고 나니까, 그래도 사실 잘못된 건 맞다. 다시 물어보자. 불공정한 보도를 하기로 한 것이 과연 잘못된 선택이었는가? 이것도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마치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되는가’ 라는 식의 도덕적 딜레마 같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뭐, 이 정도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해보자.

…(생각의 흐름… 중간 과정 생략…)…

…그러니까, 나는 저널리즘 규범론의 핵심 축은 ‘공정함’보다 ‘의도의 선명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도라는 것은 크거나 작거나 결국 불공정할 수 밖에 없다. 도덕적으로 공정함을 표방하거나 지향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하게 강조하고 요구해야 할 것은, 성향과 목표를 확실히 해달라는 것. 즉 나는 이러이러한 입장에서 저러저러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보도를 하는 것이다, 라는 전제를 명확히 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냥, 정정당당하게. 그러면 알아서 잘 감안해서 불공정한 뉴스라도 나름대로 공정하게 머리 속에서 저울질해서 받아들여줄테니까.

어차피 정보가 마구잡이 과잉으로 넘쳐나는 2000년대의 한국이라면 더더욱. 비유하자면, 가위 같은 것이다. 오른손잡이용 가위를 던져놓고 이건 그냥 가위입니다, 라고 해놓고 왼손잡이들을 괴롭히는 건 물론 곤란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기술적으로 현실성 없는 양손잡이용 가위를 만들어 줄것을 무리해서 부탁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것은 오른손잡이용 가위입니다’라고 명확하게 꼬리표를 붙여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왼손잡이는 왼손잡이용 가위를 구하거나, 없으면 그것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장을 해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필요하면 둘 다 구비할 수도 있고, 자신이 운영하는 옷가게 점원들의 특격상 왼손잡이용 가위가 더 많이 필요하다면 그쪽으로 비중을 높여도 된다. 즉, 기계적인 원칙에 따라서 소스 자체를 억지로 중간급으로 거세시키기보다는, 사람들이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정보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조선일보가 좆같은 이유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 공명정대함을 부르짖으며 나아가 정보 자체가 아예 날조된 것이 많기 때문이지, 논조가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편향되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편향되어 있지 않다고 우기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언젠간 이 논지로 연구논문을 쓰겠지…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다보면 언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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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택 만평의 한계 [인물과 사상 0406]

!@#…[인물과 사상] 2004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스크롤의 압박. (여담: 소제목은 대부분 편집부에서 뽑아주셨는데, 저보다 훨씬 감각이 좋으셨다는…)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이쪽 지면 통해서 시사만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볼 예정입니다.

(주: 도판의 만평 개재일은 인터넷판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따라서 종이신문과는 1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기분좋은 광고.

< 출처 : 도깨비 뉴스 > (클릭)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거의 꿈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다면

이 꿈은 현실이 됩니다.

중동분쟁을 끝냅시다!

!@#…라는 군요. 정말 기분좋은 광고 한편이었습니다. …역시 저는 미디어의 힘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은 어떻든 간에.

노인폄하발언… 보도할까/말까?

!@#… 다이내믹 코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총선 지지도도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농당조로 흘러나온 ‘이제 쉬세요’따위 발언이 한 당의 지지율을 십수프로 갉아먹을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널뛰기다. 널뛰기 건너편에는 대략 코끼리. 지금 막 착지하면서 나를 저 하늘의 별이 되도록 날려버릴 것만 같은 현기증.

그래서… 여기 하나의 화두가 있다. “대학생 아마투어 기자 박하린은, 과연 속칭 정동영 노인폄하발언을 보도했어야 했을까, 말아야 했을까?” … 공당의 대표가 아무리 지나치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꼬투리 잡힐 수 밖에 없는 가벼운 비유를 코멘트로 던진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 왜 없겠나. 그게 솔직한 모습인가보구나, 하고 나름대로 의욕도 불타올랐을꺼다, 안그래도 의욕만땅일 대학생 기자니까. 그런데, 아무리 아마투어든 뭐든, 기자라는 역할에 나름대로 자신을 위치시켜보고 싶다면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생각했어야 했다.

1. 기자는 중립적이지 않다

– 언론의 중립성?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20년전, 지나가던 동네 꼬마들이나 신봉했을 법한 소리다. 언론은 중립적이지 않고, 중립적일 수도 없고, 중립적일 이유도 없다. 다만 얼마나 사실에 기반한 확실한 보도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조선일보고 뭐고가 지랄스러운 것은 논조가 개판이라기 보다는(물론 개판이기도 하지만), 비열하게 사실을 끼워맞추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마구마구.

당연히, 그 언론을 만드는 기자도 중립적일 수 없다. 중립적인 기자가 필요하다면, 저기 명동 옷가게의 마네킹군을 추천한다. 중립을 지향한다는 주장 자체도,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당연히 의식하든 말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고, 그 주장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를 자신이 조사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보도조직 내에서 뭉쳐지고 또한번 의도에 따라서 걸려져서 짜잔! 완성품. 게이트키핑이고 어젠다세팅이고 하는 저널리즘 이론들이 왜 있을 것 같은가.

즉. 대학생 기자든 프로든, 의도한 방향이었든 아니었든, 결국 자신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실천행위를 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나는 그냥 썼는데 다른 언론들이 왜곡해서 확대시켰다”는 것은 변명 축에도 못든다.

2. 보도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 이번 보도를 하면 된거다… 되긴 뭐가 되나. 죽도밥도 안되지. 보도는 시작이다. 담론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보도라는 것은 논의와 토론의 시작점, 혹은 중간에 재점화의 근거자료를 주는 것이다. 만약 어떤 보도가 의도하지 않은 효과로 번진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1) 의도하지 않은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냥 방치한다. (2)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음을 알리고 원래의 의도를 주장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력한다. (1)번을 선택했다면, 혹은 매우 소극적인 정도로만 (1)번을 벗어나겠답시고 끄적거린다면, 원래부터 그 결과대로 의도했던 것이나 사실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보도를 하면서, 자신이 담론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만약 아예 자각을 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나는 단지 사실을 보도할 뿐이야’ 같은 꿈같은 소리를 지껄인다면? 대략 낭패다. 희망없는 바보인거다.

정동영이 노인투표 어쩌고 발언한 것을 보도하는 그 순간에는, 이 보도를 보고 사람들이 정동영, 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더 부정적인 이미지, 나아가 실제로 표를 그쪽으로 행사하지 말아달라는 분명한 의도가 개입된다. 스스로 의식하든 말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말이다. 그것이 원래 의식하고 있던 의도 이상으로 엉뚱하게 부풀려지는 것은 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후일담’이 아닌 ‘허위/과장 보도 및 명예훼손 고소’로 맞서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보도로 인하여 만들어진 그 소동 속에서, 자신이 계속 능동적으로 담론 형성에 개입하고 있어야 했다. 보도는 담론의 과.정. 일 뿐이니까.

!@#… 그래서, 아마투어든 뭐든 내가 생각할 때 기자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이다. 자신의 주장,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 열린우리당 표가 떨어지는 것을 원했던 것이면, 그냥 적극적으로 ‘그래, 나는 원래 그런 생각이었다’라고 하든지, 정말로 아무 생각 없는 행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간 것이라면 언론사들을 고소라도 하든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고 수면 밑으로 사라지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기자가 정동영 노인폄하발언을 보도한 것 자체는 하등 잘못된 것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해당 기자 자신, 나아가 방송국과 신문들이 그 여파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려고 하지 않는 – ‘우리는 단지 보도했을 뿐이다’ 라는 자세는 참으로 씁쓸하다. 아니 구역질난다. 언론은 저기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면서 훈수를 두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기 땅위에 발을 딛고, 여기서 이 짐 저 짐을 옮겨주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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