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특정 영화배우를 좋아하는 경우가 없다시피 하다. 다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그 배역, 즉 캐릭터를 좋아할 뿐. 그런 전제조건 위에서, 어떤 배우가 그 캐릭터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표현해내면 감동한다.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는 건, 사실 꽤 복합적인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기본이고, 거기에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이 조화. 영화같은 집단 창작에서, 누구 하나에게 공을 집중해줄 생각은 절대 없다…주의자라서.
그런데, 그런 조화고 뭐고 간에 압도적으로 기가막히게 인상적인 어떤 연기가 뇌리에 남는 경우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유리가면’급 연기(뭐…만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것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AI’에서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설정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어린이의 마음을 넣은 안드로이드. 문지방 너머에서 윤곽선으로만 보이다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장면. 무심코 내딛은 그 발이 집의 바닥을…탐.색.한.다. 로봇 강아지 아이보 마냥, 묘하게 기계적인 관절 움직임과 마치 센서로 처음 새로운 공간을 학습하는 그런 이미지로 발목이 공중을 미묘하게 맴돌다가 비로소 착지. 이건… 막강하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아이보에 사람의 외피를 씌운거다. 그리고 방을 둘러다닐 때의 움직임도 감동. 우선 눈이 움직인다. 그 다음에 머리가 돌아간다. 그리고서야 몸이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보캅스럽지 않고 조금도 과장되지 않게.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죽여주는 연기’는, 반드시 전통적인 의미에서 잘 만든 영화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서 나름대로 화끈한 B급 액션영화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크리스챤 베일의 한 장면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평생 먹어온 감정을 억누르는 약을 끊고, 서서히 감정을 되찾아가는 주인공. 그런데 결국 자기 눈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려고 했던 여자가 화형을 당하고, 그와 함께 그 전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처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무표정, 무덤덤하게 형장 바깥으로 나온 주인공. 그리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런데… 그의 뒷모습이 절규하고 있다! 정말, 얼굴 이 안보여도 그 표정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 형언하지 못할 괴로움을 집중한 표정으로 바닥에 웅크리는 주인공. 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울지도 못하고, 소리지르지도 못하는 채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무너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연기를 본 다음에 든 느낌일 따름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도 전에 먼저 어헉! 하는 탄성을 지르게 만든 사진이 있었으니…
…다음 배트맨 영화인 ‘Batman Begins’의 배트맨 역, 크리스챤 베일. 뭐라고 할까, 이건 상상했던 브루스 웨인의 젊은날 그 자체다. 젊은 대기업 사장다운 거만함, 하드보일드, 타협없이 자신만의 정의를 밀고나가는 불도저… 게다가 배트맨 옷을 입고 취한 저 포즈란! 크리스챤 베일의 집 지하실에 실제로 배트맨 비밀기지가 있다고 해도 믿겠다. 아니,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Christian Bale ………. Batman / Bruce Wayne” 이라고 안나오고,
“Batman ………………. Himself” 라고 올라와도 믿겠다.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다 한보따리에 싸서 강물에 던져버려… 이제야 진짜 배트맨이 나타났다. 물론, 영화는 정작 나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각이 나오는 배트맨이 등장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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