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면중인 만화비평웹진 ‘두고보자'(http://www.dugoboza.net)에서 뽑은 2006년 세계두고보자대상 내역. 여기에도 백업. 기니까 살포시 접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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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성숙해지기 – 『무슈 장』[기획회의 061201]
30대, 성숙해지기 – 『무슈 장』
김낙호(만화연구가)
원래 남자라는 존재는, 성숙이 좀 늦어서 손해를 보곤 한다. 여자들보다 사춘기가 몇 년씩 늦게 오는 탓에 또래 여자들에게 업신여김 당하기 일쑤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남성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로 인하여 허세를 부리며 애써 어른인 척까지 하기란 정말 힘들다. 그러다가 서른 즈음이 되면, 도대체 인생의 목표가 뭐였는지,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제대로 정리해본 적도 없이 세상 틈바구니에서 수년 정도 끌려 다니다가 이제 그것마저 익숙해져서 다시 스스로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상이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약간의 소중한 물건들, 속 썩이는 친구, 일 관련으로 맺어졌으나 좀 더 개인적이 되어버린 다소 귀찮은 인간관계, 헤어진 여자 친구와의 우연하고도 어색한 대면, 시끄러운 이웃 같은 귀찮은 일들… 게다가 아직 미혼이라면,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압박도 슬슬 들어온다. 누군가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자신에게만큼은 인생 그 자체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무슈 장』시리즈 (뒤피 & 베베리안 / 세미콜론 / 3권 발매중)는 파리에 사는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한 독신 남자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 남자, 소설도 쓰고, 번역일도 좀 하는 그리 잘나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명도 아닌 작가다. 즉 화려한 프로도, 궁상을 떠는 가난한 예술가도 아닌 셈이다. 그다지 쿨한 독신주의자는 아니고 사랑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자학하는 낭만가도 아닌 적당한 수준의 사고방식으로 산다. 다소 구식취향이라서 빌리 할리데이의 음반을 모으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음악 수집가도 아니다. 구차하거나 비루하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어중간한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직업 자체가 조직생활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그 어중간함을 극복해볼까 하는 마음 역시 주변의 외압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 의지에서 나와 주어야 한다. 하기야 ‘장’이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으로 따지자면 철수 정도에 해당하는 평범무쌍한 이름일 만큼, 평범한 어중간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근간이다.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그냥 평범한 것들로, 성질 고약한 아파트 관리인 아주머니와 싸운다든지, 만성적인 불면증에 걸린다든지, 빈대 기질 다분한 친구가 애를 맡겨놓는다든지,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만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작가들의 실력은 무척 뛰어난 편이라서 그 평범한 사건 들 속에 담기는 다양한 인생의 아이러니들이 세심하게 배치되고, 덕분에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에피소드들이 되어주곤 한다. 장을 보러 갔다가 지갑을 잊어버리고 상품 계산이 잘못되어 음식이 너무 많아져서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연다는 소소하면서도 낙천적인 진행은 정말 작가들 스스로가 자신의 일상을 사랑해본 경험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지의 짜임새다.
그런데 단순히 평범하다고 해서 독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떤 작품 속 공감의 코드라는 것은 스스로가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기능이 있어야만 호소력이 생기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판사가 아마도 마케팅 포인트로 잡고 있는 듯 한 (즉 보도자료에서 대단히 강조를 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전문직 여성들의 독립적 생활에 대한 동경 속에서 젊은 성인 여성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에 성공한 것과는 달리, 『무슈 장』이 지니는 공감의 코드는 바로 ‘성숙의 속도’다. 작품의 주인공 ‘장’은 특별히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같은 존재가 아니라, 주변의 설레발이 없을 때 평범한 남자가 성숙해질 수 있는 보통의 속도로 성숙해져가는 존재일 뿐이다. 너무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마냥 느긋하지도 않게 말이다. 느리지만 자신의 페이스로 성숙해지고 있는 ‘장’씨의 생활을 보며, 독자들은 사회적 압박과 자신의 성숙 사이의 괴리 사이에서 자신의 내면이 지니는 진짜 성장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셈이다.
열린 선 위주의 둥근 그림체, 부담스럽지 않은 색상, 남용되지 않는 대사는 작품 내용의 매력과 만화적 표현의 우수함 사이에 좋은 조화를 이루게 한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예술적 자의식 가득한 표현으로 가득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었던 여느 유럽 예술 지향 만화들이나 장르에 대한 거부감을 주기 십상인 딱딱한 유럽식 극화체와 달리,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는 편한 그림체를 구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장 자크 쌍페의 작품들에서 검증되었다시피, 도시 공간을 차가운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 도회적이면서도 어딘가 여유로운 매력이 있는 사람 사는 공간으로 묘사하는 접근 역시 이러한 필치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형식이 주가 되는 작품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무리겠지만, 형식과 내용의 이러한 조화가 있기에 지금의 매력을 지니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매력을 잘 살려주기 위해서 국내판의 출판 품질 역시 선도 색상도 뭉개지지 않은 성의가 돋보이는 편이다. 나아가 번역도 다소의 번역체가 눈에 들어오기는 해도, 크게 독서에 방해되지 않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주석들이 돋보이는 성의 있는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는 한 번에 책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한국에 출판된 분량이 프랑스에서 나온 것은 약 10여년에 걸쳐서 천천히 진행되었다. 한마디로, 독자들 역시 장과 같은 속도로 성숙해간 셈이다. 한꺼번에 봐도 성숙의 속도가 아주 느긋한 정도인데,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면 오죽할까. 사랑을 고민하고, 옛 애인과 재결합하기도 하고, 애도 낳고. 그 모든 과정이 천천히, 실시간으로 독자의 성숙 속도와 발맞추어 진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데없이 커다란 깨달음이 생기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젊은 방황과 지금의 무력함이 대비되는 것도 아니다. 즉 이 작품은 현재 자신으로 이어져오는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식의 성장물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현재진행형으로 조금씩 성숙해지는 식이다. 커다란 스케일의 세상사들을 밀린 숙제 풀듯이 압축해서 한꺼번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즐거운 작품들도 물론 많지만, 가끔은 이렇게 딱 같은 속도의 걸음걸이를 걸어주는 작품을 읽는 것이 무척 즐겁다. 저 위 어딘가에 놓여있을 위대한 걸작이 반열이 아닌, 날마다 한 번씩 쳐다보면서 미소를 한번 지어볼 수 있는 수작, 바로 욕실에 걸어놓은 거울 같은 존재로 말이다. 일상 속, 천천히 진행되는 성숙의 과정은 소중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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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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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슈 장 1 필립 뒤피 외 지음, 황혜영 옮김/세미콜론 |
한나-바베라 스튜디오의 조 바베라 서거
!@#… 한나-바베라 스튜디오의 창업자, 조 바베라가 향년 95세로 별세. 인생의 전반부에 본 애니메이션의 절반 정도는 이 스튜디오 것이었는데… 톰과 제리, 스머프, 플린스톤 가족, 젯슨 가족, 스쿠비 두, 뭐 등등 특유의 캐릭터성 만빵 뱅크샷 만빵의 미국 애니 장편 시리즈들. 톰과 제리로 아카데미도 7개나 탔었군, 그러고보니. 30년대 후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미국에서 TV 전용 시리즈들을 만들어낸 최초(1957)의 독립 스튜디오 가운데 하나였기도 하고… 뭐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명실상부한 거장 가운데 하나.
!@#… 여하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뉴시스인가하는 뉴스통신사에는, 무려 톰과 제리의 ‘만화가’로 올라왔던데… 어떤 의미로, 굉장한 기자라고나. 아니, 사실 꽤 웃었으니 나름대로 공로 인정.
(capcold블로그는 요새 한창 기말 + 연말 마감중이라 좀 뜸한 와중입니다… 사실은 또다른 담론 쌩쑈든 부동산 광풍이든 문화콘텐츠의 소비문화든 최근의 만화창작 경향이든 마이크로소프트의 Zune 삽질이든 그냥 평이한 잡생각이든 하고 싶은 쌓인 말은 한 다스지만, 잠시 양해를.)
사라진 아이
!@#… 뿌리고 간 씨앗은 비록 피치못할 사정으로 직접 추수하지는 못하게 되었으나,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서 또다른 결실로 이어지기를. 스스로 자신의 작품 사라지는 아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주목하고 있던 한 예비작가를 기억하며. 2007년에도, 그 이후에도, 신년축하 받고 싶었는데… 세상 일이란. 롬고기양의 명복을.
[광고] 독자만화대상 2006 시작했습니다
!@#… 캡콜닷넷에 어울리지 않게, 무려 배너(!)까지 달아주는 행사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독자만화대상’ (http://www.comicreader.org). 2006년으로 벌써 5회째를 맞이하는 행사. 여기까지 오시는 분들이라면 당연히 대부분 아시겠지만, 독자들의 일반 투표를 통해서 부문별로 2006년 한 해 나온 만화 가운데 가장 넓은 지지를 받은 작품을 뽑아내는 행사. 한국만화대상의 인기상 부문이 이 형식을 참조해간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주목받아 마땅한 좋은 행사다. 뭐, 상금은 없지만. -_-; 여튼 capcold로서도 처음 설립을 위한 기획 단계에서 이리저리 고개를 들이밀었던 개인적 인연도 있기까지 하니, 이리저리 홍보하고 다닐 만한 행사.
!@#… 여하튼, 올해 행사가 지난주부터 시작되었으니 만화에 관심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너도나도 달려가서 투표인단으로 참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기를. 투표할 만큼 많은 올 한해 나온 한국 만화 작품을 읽어본 적 없다고 할지라도, 어떤 것들이 나와있고 내가 놓친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사이트 운영 및 자료집 발간 등 행사 진행 전반을 위한 후원금 모금도 하고 있으니 그것도 도와주면 좋고.
지금까지의 역대 대상 수상작:
2002년 서문다미 | 그들도 사랑을 한다
2003년 정철연 | 마린블루스
2004년 강풀 | 순정만화
2005년 강도하 | 위대한 캣츠비
…자세한 설명 및 부문별 수상작 등은 공식사이트에 가보면 다 나와있으니, 클릭은 필수.
영웅을 바라보며 성장하기 -『핑퐁』[기획회의 061102]
영웅을 바라보며 성장하기 -『핑퐁』
김낙호(만화연구가)
소년은 히어로를 동경한다. 미디어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라난 현대 세계의 소년들은 확실히 그렇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오래전의 소년들도 나름대로의 히어로를 동경하며 자라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히어로의 양상은 고대의 영웅과 아버지에서 현대의 슈퍼영웅과 멋진 또래 친구로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기본 속성은 여전히 하나다. 바로 감정 이입 가능하면서도 압도적으로 강하고, 자기 세계의 기준에서 최상의 ‘멋’을 구현해주고 있는 커다란 존재. 히어로는 자신이 동경하고 추종하는 대상이자, 자신이 언젠가 되어보고 싶고 뛰어넘고 싶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강함을 추구하는 성장을 사회적으로 저지당하곤 하는 ‘소녀들’은 히어로에 대한 동경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그런데 그렇듯 히어로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성장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겪는 통과의례가 있다. 스스로도 성장하고 더 강해지다 보니 자신이 쫒아 다니던 히어로가 사실 생각만큼 압도적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성장통이 시작된다. 나의 지금까지의 동경, 즉 목표로 삼아온 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연 내 히어로를 뛰어넘어도 되는 것일까. 따라잡힌 히어로 입장도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나는 이제 히어로가 아닌 그냥 아무나인 것일까. 나는 그에게 따라잡혀도 괜찮은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패턴이며, 친한 친구들끼리도 나타날 법한 패턴이다. 구식으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청춘의 고민이다. 연애 말고, 성장의 청춘.
『핑퐁』(마츠모토 타이요 / 전5권 중 제2권 발행중 / 애니북스)은 탁구를 매개로 한 멋진 성장만화다. 사실 스포츠물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거의 모두 성장물일 수 밖에 없지만, 스포츠 경기 자체와 운동능력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있고 스포츠를 주요 소재로 하되 그 속에서 각각 주인공들이 겪는 인간사의 갈등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있다. 전자의 경우 경기의 승부에서 나오는 재미가 강점이고 인간사의 상대적 등한시가 약점이라면, 후자는 풍부한 인간이야기가 강점이고 박진감의 저하가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명작 스포츠물로 기억이 되는 것은 항상 인간사를 중심에 놓으면서 그 위에 박진감 넘치는 승부를 얹어놓은 형식의 작품이지, 경기 자체에만 집중하느라고 물리법칙을 한참 벗어나는 온갖 초월적인 기술들이 무한 상승 난무하는 설익은 사이비 무협물이 아니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핑퐁』은 명작 스포츠물이자 소년 성장물의 교과서적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동네 친구 페코와 스마일이 있다. 페코는 재능과 함께 쾌활한 성격, 그리고 탁구에 노력과 목숨을 걸지 않고 그저 즐기는 쪽을 선택하는 쿨한 자세를 지녔다. 그렇기에 스마일에게 있어서 페코는 히어로이며, 페코는 자만하지 않으면서 히어로의 지위를 즐기는 관계다. 그러나 성장의 시련은 다가오기 마련. 페코는 더 강한 천재와 노력으로 실력을 얻은 다른 친구에게 지고 만다. 히어로는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무뚝뚝한 스마일도 재능을 발굴당해서, 실력이 성장한다. 페코에게는 히어로로서의 모습을 회복하면서도 난데없이 모든 것을 탁구에 걸고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는다는 과제가 주어지고, 스마일에게는 스스로 실력이 자꾸 늘어나면서도 굳이 승부욕에 휩쌓이지 않으며 그 낙천적인 히어로를 여전히 동경하고 싶다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를 각자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 둘에게 한 단계 성장한 우정은 커녕 자신들의 삶의 자세에 마저 금이 갈 것이다. 여기서는 탁구의 실력이 국가 대표급으로 우주 대표급으로 마구 치솟는 것이 성장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깊이를 키우는 것이 성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해서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해답이다. 비록 맨 마지막에 완전히 밝혀지기는 하지만, 내내 복선으로 깔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지금 순간을 즐겨가면서 스스로의 성장을 하나씩 받아들이며 살아라, 라는 것. 사실 국내에 아직 소개가 되지 않았지만 만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동 작가의 여러 청춘 관련 작품들에서 비슷하게 강조되고 있는 메시지이기도 한데, 청춘의 성장통을 외면하지도, 그것에 매몰되지도 않으며 여하튼 계속 성장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담담하게 던져주는 방식이다. 두 주인공은 서로 대비되는 속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적이고, 사이가 좋으면서도 서로 각자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고고몬스터』같이 직접적인 방식으로 주거나 『철콘 근크리트』같이 추상적인 방식으로 주는 경우도 있지만, 『핑퐁』은 이 메시지를 장르 스포츠물의 줄거리 형식 속에서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구사해내는 중용을 발휘하고 있다. 뚜렷한 해결보다는 무언가 모자라지만 계속 다음 단계를 살아나가는 모습이 갑갑하게 느껴질 독자들도 있겠지만, 바로 그것이 이 작가의 작품세계의 매력이다.
스포츠물로서의 재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마츠모토 타이요 특유의 시각연출의 공이 크다. 광각과 다양한 시점변화로 점철된 칸연출은 탁구라는 좁은 공간의 스포츠가 지니는 격렬함을 역동적으로 강조해준다. 그리고 공이 공중에 멈출 수 밖에 없는 만화의 속성을 역이용, 빠른 속도와 한없이 시간이 정지한 듯한 틈새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색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또한 작가 특유의 대담하게 거칠면서도 세밀한 데생은 성장하는 소년들의 장난끼와 무정형성, 뻗어나가는 성장과 동시에 현실적인 세상의 다중성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마츠모토 타이요풍 그림에 담겨 있는 ‘쿨함’은 멋진 패션 모델들의 ‘쿨함’이 아니라, 불안과 낙관, 여하튼 질러보자는 도발성에서 나오는 그것이다. 타이요의 그림체가 주는 정서는 『GO』로 유명한 소설가 가네시로 카츠키의 문장이 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행히도 출판사는 작가의 매력을 제대로 살려주기 위한 좋은 품질의 도서를 만들어냈다. ‘애장판’이라는 이름표에 안주한 것이 아니라, 성의 있는 번역과 인쇄, 멋진 표지디자인, 컬러 페이지 복원 등 이전 출판사의 판본이 지난 세기에 절판되었던 이래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독자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주고도 남는다. DVD로 출시되는 영화판과 공동 판촉이벤트를 하는 등의 마케팅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좋은 작품을 좋은 품질로 만들어내면 좋은 결과가 뒤따른다는 또다른 사례를 남겨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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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본문에서는 좀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황당한 초월적 기술의 경연장인 아스트랄 스포츠물도 만약 정말 안면몰수하고 끝까지 가주기만 한다면 충분히 나름대로 명작(괴작?)의 반열까지 오를 수 있다. 게다가 얼마나 재밌는데… 아, 그리고 하나오에 이어서, 열심히 마츠모토 타이요 작품들을 좋은 품질로 내주고 있는 애니북스 출판사 만세.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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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1 마츠모토 타이요 지음, 김완 옮김/애니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