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둘리, 다시 만나다 –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기획회의 050418]

!@#… 뭐야, 300번째 게시물이잖아 (경악. 100개를 채우기 전에 나간다고 내심 다짐했건만) !!! 음 뭔가 좀 더 강력한 걸로 채우고 싶었던 이벤트 번호였지만, 뭐 알께뭐람.

!@#… 새삼 느끼는 바지만, 이 지면처럼 한 원고지 15매 정도는 최소한 되어야 ‘신간소개’를 하면서도 뭔가 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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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둘리, 다시 만나다 –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

‘국민캐릭터’라는 천박한 표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폭넓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덕택에 어떤 시에서 주민등록증도 부여받을 정도로 활용가치가 높은 가상적인 인기인이라면 나름대로 무언가로 불러줘야 할 법 하기는 하다. 워낙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하다 보니 여러 세대가 같이 즐길만한 공동의 무언가가 생겨나기 참 힘든 이 땅에서, 그런 국민캐릭터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보람찰까. 하다못해 부모세대가 자신들의 어린 아들딸들한테 문화적 취향을 즐겁게 자랑이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억지로라도 하나 뽑아보라면, 열중 아홉은 분명히 한 만화캐릭터를 지목할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라는 녀석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있다. 부모세대가 봤다는 아기공룡 둘리와, 지금 어린 아이들이 알고 있다는 그 아기공룡 둘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부모는 아마 82년 보물섬에서 연재된 만화를 보았을 것이고, 87년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된 스페셜을 보고 즐겼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아기공룡 둘리라는 캐릭터 이미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둘리의 배낭여행 DVD를 한번쯤 봤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둘리가 빙하타고 내려와서, 청승파 구박덩어리 더부살이로 시작했다가 점차 눈물겨운(?) 투쟁으로 하나씩 가족으로서의 위상을 얻어나간 과정을 공유하고 있을까. 집안의 가장 고길동이 애완동물 길동이 취급당하며 명랑만화식 환타지 모험길에 끌려다니고 겪는 고초에서 우러져나오는 서민적 페이소스를 같이 공감할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공감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작년 말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김수정, 키딕키딕. 현재 3권 발매중) 덕분에, 이제는 적어도 이런 작품이라고 이야기를 건네볼 수는 있게 되었다. 이전에 나왔던 여타 판본들과는 달리, 이번 애장판에서는 드디어 작품 전체를, 양호한 인쇄품질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작가와의 인터뷰 등은 반가운 보너스이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를 드디어 제대로 모아둘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풍족하다.

둘리를 동시대의 다른 명랑만화와 차별화시켰던 것들, 둘리를 둘리답게 만들어주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들춰본다. 라면 박스로 만들고, 오징어가 끌고가는 산타클로스 썰매. 은행을 건물채로 뜯어가는 엽기성. 타임코스모스를 움직이며 집주인을 애완동물로 아는 빨간 내복의 변태괴짜, 도우너의 충격적인 데뷔. 아 그래, 이런 것들이었지. 착할 겨를도, 교훈적인척하고 내숭을 떨 넉살도 없는 순수하고 직선적인 명랑함. 구석구석 찌들어 있는 생활의 무게와 그 향기까지. 기억이 돌아온다. 둘리는, 재미있는 만화였다. 귀여운 캐릭터이고 국민 어쩌고 이전에, 불온한 상상력으로 중무장한 도발적 개그였다. 둘리 만화가 완결된 이후의 90년대 이래로, 둘리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재생산된 모든 여타 둘리 프랜차이즈에서 깨끗하게 도려내졌던 바로 그 부분이다. 지금은 마치 티본 스테이크 같이 포장되어 칭송받지만, 원래는 비계가 덕지덕지 끼어있는 구수한 삼겹살이었다. 바로 그 비계맛 때문에 둘리는 특별했던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은 지나치게 멋부리지 않아서 반가운 책이다. 물론 번들거리는 은색의 하드커버 표지는 확실히 이질감이 들지만, 상품을 고급스러워 보이게 하고싶다는 의도의 그 정도 오버는 그냥 대범하게 받아들여주자. 하지만 요새 아이들의 취향에 맞춘다고 공연히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채색을 집어넣어서 풍미를 해치지도 않았고, 요즘 감수성에도 통할만하다고 자의적으로 선별한 소위 베스트 에피소드들만 골라 넣는 만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날림으로 대충 넘겨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일화들일지라도 굳이 잘라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원래대로 우직하게 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물론 작가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부족한 지점,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와서 몸둘바를 몰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독자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참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소원이 이루어져 있다. 정말 별것 아닌것처럼 그대로 내는 것이야말로 ‘별 것’이다. 유능한 작가가 젊은 날의 가장 찬란했던 때의 에너지를 쏟아넣은 작품이 얼마나 멋진 빛을 발할 수 있는지, 감탄해볼 기회이기도 하다. 어설프게 멋진 작품을 보면, 작가가 이후의 이야기를 계속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완성된 재미의 작품을 본다면, 작가가 제발 절대 이 작품에 화사첨족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물론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한다. 우선 원래대로 나왔음에 반가워할만한 독자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둘리는, 추억상품으로 포장하고 향수를 자극해서 어른 매니아들을 노리기에는 너무 지금까지도 이미지가 대중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좀 더 최신 유행을 따라 다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취향 속에 캐릭터 이미지로서의 귀여운 둘리는 있지만, 구박받고 청승맞으며, 동시에 기발한 역전의 칼날을 가는 80년대 정서 가득한 서민 둘리는 없다. 아니 그런 둘리는 아예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책을 사랑해준다는 말인가?

이 책을 사랑해 주어야할 사람들은, 좋은 만화를 보고 즐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지를 잊어버리지 않은 – 혹은 않았다고 자부하는 – 모든 이들이다. 좋은 만화는 취향은 탈 수 있지만 원형적인 재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현실세계의 시간의 오랜 흐름에 따라서 시대적 맥락의 효과가 사라질 수는 있지만, 좋은 만화를 보다보면 그 맥락들이 다시 하나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진정한 만화 즐김이들 말이다.  국민캐릭터 둘리가 아닌, 즐거운 만화 둘리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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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게임에 묻힌 만화, 게임을 넘어서는 만화 [계간만화 05 봄]

!@#… 하드하고 긴 글의 연타. 하기야 나중에 내 개인페이지 capcold.net으로 블로그를 이전하면, 네이버분점은 주로 하드한 글 백업용으로만 쓰게 될터이지만. 그게 언젠지는 나도 모른다니깐.

!@#… 여튼. 지난달에 발간된 계간만화 2005 봄호에 실린 글이다. 이로써 다섯계절째 계간만화 커버스토리 개근. 종종 해왔듯이, 이번에도 “지면상 다 못한 이야기들이 담긴 풀버젼”. 단, 제목은 편집부에서 달아준게  꽤 마음에 들어버려서 그걸로 간다(부제가 원제였다). 이건 일종의 맛보기라 생각하고, 잡지에 들어있는 전체 커버스토리를 다 읽으면 대략 교양 수준이 100배 상승하리라 사료된다.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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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시사만화가로 살아가기 위해 [인물과 사상 0504]

!@#… 지난달 ‘인물과 사상’에 들어간 글. 조중동 한바퀴 돌았고, 새로운 진영으로 메스(?)를 들이대기 전에 한번 쉬어가는 의미에서 시사만화라는 분야 자체에 대한 개론격인 이야기를 했음. 뭐랄까, 저널리즘 학도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글이 되었지만…  덕분에 평소보다 재미가 좀 없어요 없어… 그러다보니 이번에는 ‘미디어오늘’에서 콘텐츠 퍼가겠다고 연락도 안오고, 우연히도 월간지마저 배달사고인지 나에게 도착안함. -_-;;;

!@#… 다음회부터는 다시 한개 매체씩 돌아가며 다루는 방식으로 복귀할 예정. 우선 이번은 이걸로 참으시길. 여기 실린 버젼은 오리지날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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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문화의 결정판

!@#… (좀 과장하자면) 00년대식 오타쿠문화인 <모에>의 정점 ‘**땅’. 귀여운 아가씨에게 종종 붙이는(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쨩” 정도로도 부족해서 더욱 더 로리로리화 시켜서 발음을 혀짧게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땅” 되겠다. 특히 이것은 미소녀형 의인화 작업이나 연상작용에 압도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되어, 컴퓨터용 OS를 미소녀 캐릭터들로 의인화시킨 OS땅이라든지, 숯을 머리에 이고 있는 빈쵸땅이라든지, 오타쿠 취향 영어단어집의 모에땅이라든지 하는 괴이한 녀석들을 만들어내고 있다(추가: 물론 상당부분 말장난입니다만). 각종 미소녀 공식과 모에요소들의 현란한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캐릭터들에 열광하기. 이야기의 재미에 아무래도 더 끌리는 capcold로서는 그다지 좋아하는 현상은 아니다. 간혹 즐기기는 하지만.

!@#… 하지만 이 녀석 앞에서는, 아무런 할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옛 말이 다시금 증명. 바로 이것 … “아프가니스땅” !!! 대략, 국제정치 모에만화!

http://www.yukai.jp/~timaking/afgan/index-afgan.htm  (일어)

(추가: 2006.4월부로 홈피 접속불가. 이곳에서 다른 정보를…)

!@#… 이왕 취향문화를 밀고간다면,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나. –;

감성만화, 삶을 제대로 건드리다 – <휴머니멀> [기획회의 050404]

!@#… 언제나처럼, 이번에 발간된 기획회의의 원고. 박순구 작가의 작품들은 soon9.com 에 가면 연재를 볼 수 있다.

!@#… 여담. 비평 본문에서는 살짝 언급했고 그다지 이 작품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하드하게 엮어낼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지만, 가해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묘사방법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물론 가해자도 궁극적으로는 가해/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의 ‘피해자’고 어쩌고… 뭐 다 좋단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해자가 입힌 피해와 그 가해자가 입은 피해를 같은 레벨에서 다루어버리면 강력한 부작용 한가지가 생긴다: 가해-피해 관계에서 발생한 해악 자체가 희석된다 (주류 일본인들이 히로시마 원폭 타령할때 맨날 써먹는 비열한 방법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동정을 던지기 보다는, 가해와 피해의 모순 자체를 부각시키는 성찰적인 접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에게는 가해자로서의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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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만화, 삶을 제대로 건드리다 – <휴머니멀>

인간은 자신을 여타 동물과 구분 짓기 좋아하는 신기한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속성들에 대한 수많은 규정들을 마련해놓고는, 그것에 집착적으로 매달린다. 역설적으로, 그런 근거 빈약한 자존심의 결과 이야기로서 강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의인화’된 동물들의 이야기다. 동물들에게 인간적인 속성을 부여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은 동물들과 꽤 근본적으로 다르며, 몇 안되는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대단히 빛나 보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워낙 상상력이 빈약해서 자신들의 생활과 사회관계의 틀과 비슷한 모습으로 치환해서 보여주지 않으면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니까 말이다. 한쪽 측면에서는 의인화된 동물의 이야기가 우리와 의외로 닮았다는 것을 보면서 현실에 대한 풍자나 성찰을 느끼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동물 이야기로 표현되었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면서 부담감을 줄어든 채로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의인화된 동물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것이 뻔히 우리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남의 이야기인양 속아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키마우스라는 쥐는 2차 대전 징병에 앞장섰고, 반대로 아트 슈피겔만의 <쥐>에 등장하는 쥐들은 아우슈비츠의 과거와 유산을 담담하게 뒤돌아보게 만들었다.

<휴머니멀>(박순구/황매)은 동물을 등장시켰지만 사실은 인간 이야기를 하겠다는 동물 의인화 계통 작품의 본질을 그대로 건드려 보겠다는 의지가 제목에서부터 물씬 풍겨나오는 작품이다. 휴먼+애니멀, 이 정도면 대단히 노골적인 포부다. 그 다음으로 궁금해지는 것은, 인간들 살아가는 모습의 어떤 부분을 뒤돌아보게 만들 것인가라는 점이다. 보통 의인화 동물 이야기에서는 친구들 간의 실랑이나 성격 다른 사람들 사이의 사랑 이야기를 주로 구사하곤 한다. 그쪽이 훨씬 쉽기 때문인데,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그만큼 얄팍한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 역시 높다. 그런데 <휴머니멀>은 그보다 훨씬 우직하다. 그의 흰 생쥐는 이라크로 파병을 나가서 슬픈 최후를 맞이하고, 생쥐 마을에 온 침팬지 아저씨는 불법노동으로 연행된다. 비둘기는 교육현실에 갑갑해하며 탈출의 용기를 이야기하며, 수달들은 철거촌에서 쫒겨난다. 허투루 채우지 않고 진지하게 덤벼들었다는 점에서 우선 합격점을 부여하고 작품을 감상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품 자체의 알찬 구성과 치밀한 그림실력을 보며 이내 다시금 평가를 한 단계 더 높인다. 평평한 색감의 2차원에서 토실토실한 털 질감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각각의 단편 스토리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그때그때 그림의 밀도를 조절하는 실력은 만화라는 매체에서 빛을 발한다. 원래 개인 홈페이지에서 웹 연재했던 칸구성을 책 형식과 잘 조화시켜서 출판물로서 깔끔하게 읽히게 만든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기술적 능력을 믿고 과욕을 부리지 않고 꽤 직선적으로 한 가지 이야기씩 정리해나가는 호흡이 좋다.

개별 작품들은 오랜기간 동안 자유롭게 하나씩 발표된 것들이다 보니, 하나의 주제로 완전히 엮여진다거나 혹은 모두 동일한 수준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각각 작품이 만들어졌던 시기적 맥락을 단행본에서는 전혀 밝혀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지점들이 더욱 혼란이나 오독의 여지를 남길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이라크 파병반대라는 시기적 맥락이 상당히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첫 번째 이야기 <어느 흰 쥐 이야기>는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의 비극을 감성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의 한국군 이라크 파병이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친구를 빙자한 부하) 입장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런 가해와 피해 사이에 있는 모순을 직시하지 않고 다소 평면적으로 접근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 한 치와와 견의 마지막 비극적 사랑을 그린 <사랑합니다>라는 단편은 동물을 통해서 인간사를 바라본다는 이 시리즈의 전체 컨셉에서 볼 때 다소 이질적이다. 결국 우리들이 어떤 사랑하는 대상을 오매불망 그리는 것을 비유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냥 동물이 주인을 기다리는 ‘집 찾아간 백구’의 감수성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필이면 책표지에 인용된 두 작품을 위에서 언급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 책은 빛나는 순간들이 더욱 많고 돋보인다. 골목에서 술먹고 사랑했던 사람의 이름을 외쳐보는 팬더의 걸음을 따라가는 <당신의 골목은 어떤가요>는 동물 의인화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느리게 어슬렁거리는 팬더의 움직임이, 이 작품에서는 취기와 실연의 슬픔이라는 감정을 부여받는다. 골목에 울려 퍼지는 미소와 눈물은 요새 유행어로 치자면 ‘백만불’ 짜리다.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치매 걸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눈작고 얼굴 비슷한 동물인 두더지를 활용한 센스는 절로 감동을 불러온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작품이자 가장 백미인 단편인 <고래가 되고 싶어요>에서는 철거민 이야기를 천연기념물인 수달에 비유해서 풀어나가고 있다. 어린이 그림일기를 통해서 묘사되는 어린이 시각으로 걸러진 현실과 진짜 현실의 비정함의 대비는 오세영의 걸작 <부자의 그림일기>의 적자로 견줄 수 있는 강력함을 발휘한다. 그리고 단지 우린 참 불쌍해요라는 논조가 아니라, 우리 집이  허물어지고 새 집을 짓는데 우리는 거기서 살 수 없다는 것의 부조리함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통찰이 녹아들어가 있기에 더욱 값지다.

수많은 에세이툰이니 감성만화니 하는 것들이 항상 인간성을 이야기하고 따스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진짜 인간성과 따스함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말랑말랑한 감성의 달콤한 조미료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이라는 ‘진국’에 대한 직시다. <휴머니멀>이 한참 에세이툰이 붐을 이루었던 2-3년 전에 나왔더라면, 이쪽 장르는 아마도 지금보다 수십배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뭐, 사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휴머니멀>의 파급력이 널리 퍼져서 많은 독자들이 감성만화에 대한 새로운 – 아니 애초부터 근본적이었던 – 즐거움에 눈뜨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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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대등한 만남을 위하여 – <오세영 한국 단편...> [기획회의 050320]

만화와 소설, 대등한 만남을 위하여 – <오세영 한국 단편소설과 만남>

공식기관에서 ‘명작’ 한국 만화를 꼽아야 할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대중적인 인기로 세상을 휘어잡은 것도, 희대의 컬트로 숭배받은 것도 아닌데 거의 예외가 없어서, 최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를 위해 선정된 100대 도서에도 한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라는 작품집이다. 80년대 <만화광장> 류의 성인만화잡지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던 진지한 사회발언과 만화양식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가 꽃을 피웠던 모범사례중의 하나가 바로 당시 창작되어 나왔던 오세영의 단편 작품들이었다. 성인만화를 휩쓸던 리얼리즘 풍 이야기와 민중문화 담론 에서 열심히 주장해온 민중적 시각의 사회참여의식 등 다양한 시대정신의 영향을 소화해낸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90년대 초에 묶여져 나온 이 작품집에서 또하나 즐거운 발견은 바로 월북작가 단편소설 작품선이었다. 두고두고 오세영의 최고작 중 하나로 인용되고 있는 안회남 원작의 <투계> 등이 특유의 집요하게 토속적인 화풍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최근 <오세영 - 한국 단편소설과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단편소설 원작의 오세영 만화 단편들을 묶어낸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마치 수록 작품들의 문학적 권위를 형상화라도 하는 듯, 한 권의 묵직하고 커다란 800페이지짜리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나와서 책장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작품들은 <부자의 그림일기. 작품집에도 실렸던 월북 작가 단편선, 이후에 작업되어 단편문학선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바 있는 여러 작품들이 고루 집대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메밀꽃 필 무렵> 같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원작도 있고, 문학 전문서 귀퉁이에서조차 찾기 힘들었던 것도 (예를 들어 월북 작가) 많다. 이 책에서 원작으로 선택된 작품들은 주로 1900년대 전반의 단편소설에 집중되어 있는데, 생각해보자면 그 당시 많은 작품들이 바로 고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살아나가는 민중들의 삶을 비정할 정도로 생생하고도 비극적으로 그려냈던 경향이 있었다. 바로 80년대식 리얼리즘/민중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감수성을 확실하게 재현하고 싶은 작가적 욕구에 충실하게, 오세영이 재창조한 만화들은 적극적인 재해석보다는 충실한 재현에 무게를 두고 이루어진다.

원작에 있는 대사는 토씨 하나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 기본이며, 각 장면의 풍광이나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행동거지 또한 대단히 자연스럽다. “쇠똥을 그릴 줄 아는 작가”, “할아버지를 할아버지 처럼 그리는 작가” 등의 찬사 처럼 시각적 장면묘사의 충실함은 특히 한국의 근대나 토속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원작자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 보다도 더욱 원작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작품들의 원작 충실도는 대단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사진집이나 영화 스틸컷 모음 같은 느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88올림픽 전후를 무대로 하는 단편 ‘부자의 그림일기’에서 선보인 그림일기 + 무성극 만화의 교차편집이라는 형식실험이 보여주었듯, 오세영은 만화형식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 결코 문외한이 아니다. 칸 간 시선흐름을 고려한 화면구도라든지,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만화적 전개방식 등은 원작소설 만화화 작품에서도 충분히 사려깊게 활용되고 있다. 다만 원작의 유려한 흐름에 거스르지 않도록 명백하게 파격적인 쾌감을 극도로 자제할 뿐이다.

이 작품들에서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기로 작정한 접근의 장점은 명확하다. 문학적 평가가 높은 소설들을 애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적당히 마음대로 단순화시켜온 대다수의 ‘명작만화’ 류들이 쌓아온 만화에 대한 편견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문학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쌓아온 섬세미묘한 다층적 의미와 감성의 서술구조들을 과연 만화에서도 해낼 수 있을까라는 폄하는 ‘투계’ 같은 작품을 보면 확실히 날려버릴 수 있다. 영화화 등 다른 매체이식에서 항상 문제시되는 원작의 문제의식이나 감수성의 왜곡이라는 부분 역시 이 정도의 재현 충실성 앞에서는 내밀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단점은? 쉽게는 ‘독자적인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의 단순한 비난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작의 선정에서 이미 작가의 자의식이 개입되고 충실한 재현이 바로 창작의 의도라면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단점으로 제기할 만한 보다 중요한 지점은 이 책에 묶인 작품들이 상당수가 90년대 및 그 이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80년대의 작품 또는 당시의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이나 민중문화 개념이 항상 강조해온 것이 바로 현실참여이라는 측면을 놓고 생각해볼 때, 오늘날의 세상과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80년대식 경향의 프리즘으로 투과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이라는 척추가 빠지고 ‘순수문학’의 예술지향적 자아도취에 빠질 위험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작품에 투여된 노력과 재능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진짜 고민이다.

앞서 말했듯, 책의 출판상태는 그야말로 성의있는 프로듀싱의 결실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만화책들은 각각의 실제 내용에 어울리는 책 모양새가 아니라 일괄적인 저가 대중오락물의 모양새라는 틀을 강요당했다. 자가 대중오락물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만화의 폭넓은 세계를 그 범주안에 다 우겨넣을 수 있을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세영 작품집은 고전 문학의 깊이와 만화작품의 진지한 접근의 무게에 걸맞는 무게의 책으로 나왔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옥의 티는 오히려 과잉 프로듀싱이라는 부분인데, 말미에 순 우리말 용어에 대한 해설집을 첨부한 것은 좋지만  본문내용에 각주표를 달아서 독서의 흐름을 끊기게 했다든지 하는 등의 과유불급성 결과가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은 소설 원작 만화 작품을 모은 만화책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싫어서 쉽게 슬쩍 줄거리만 훑어보려는 게으름증을 해소하기 위한 만화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오히려 소설을 읽어보고 그것을 만화로도 다시 한번 읽어보거나 또는 반대 순서로 읽어서, 그 감상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에 가깝다. 만화와 소설의 대등한 만남, 그리고 독자에게는 그 화학작용에서 오는 몇갑절로 증폭된 감상을 주기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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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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