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영화화, 그 매력과 함정에 관하여 [씨네21 761호]

!@#… 지난번에 ‘이끼’ 개봉과 접목하여 씨네21에서 웹툰과 영화로 특집코너를 했는데, 그 중 한 꼭지. 늘 그렇듯 여기는 투고버전임.

 

웹툰의 영화화, 그 매력과 함정에 관하여

김낙호(만화연구가)

영화, 혹은 드라마가 웹툰에 눈독을 들인 것은 웹툰 장르에서 장편 히트작이 탄생한 것과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 강풀의 ‘순정만화’와 그 후속작들이 발표되는 대로 연이어 영화화 계약이 맺어졌고,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가 드라마로 이어졌다. 원래 일간지 연재에서 시작했지만 웹으로 연재공간을 옮긴 허영만의 ‘식객’ 역시 온라인으로 옮겨온 이후에도 계속 인기를 모아 영화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제는 붐이 몇 년 지속되면서 그간 성공작과 실패작들이 나온 만큼, 웹툰의 영화화가 단지 화제작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달려들법한 일시적 유행코드가 아니라 좀 더 차분하게 견주어보고 장단점을 따져볼만한 무언가가 되었음 깨달을 시기가 되었다. 과연 웹툰의 무엇이 영화에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무엇이 영화화 과정에서 난점으로 작용하여 결국 괴작으로 귀결되는가. 사실은 괴작도 일정 정도 만들어지는 것이 악취미적 즐거움을 위해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성공적인 웹툰 원작 영화를 위해 생각해볼만한 몇 가지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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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묻힌 만화, 게임을 넘어서는 만화 [계간만화 05 봄]

!@#… 하드하고 긴 글의 연타. 하기야 나중에 내 개인페이지 capcold.net으로 블로그를 이전하면, 네이버분점은 주로 하드한 글 백업용으로만 쓰게 될터이지만. 그게 언젠지는 나도 모른다니깐.

!@#… 여튼. 지난달에 발간된 계간만화 2005 봄호에 실린 글이다. 이로써 다섯계절째 계간만화 커버스토리 개근. 종종 해왔듯이, 이번에도 “지면상 다 못한 이야기들이 담긴 풀버젼”. 단, 제목은 편집부에서 달아준게  꽤 마음에 들어버려서 그걸로 간다(부제가 원제였다). 이건 일종의 맛보기라 생각하고, 잡지에 들어있는 전체 커버스토리를 다 읽으면 대략 교양 수준이 100배 상승하리라 사료된다.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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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티 국내개봉일.

!@#… 6월 29일이란다. 2005년 최고 기대작. 신시티(Sin City) 실사영화. 광팬인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원작만화가 프랭크밀러의 화끈한 비주얼을 살려내기 위해서 아예 공동감독으로 추대(화면 구성 담당). 정작 스토리가 엉망이면 딕트레이시 꼴 날텐데, <펄프픽션>처럼 서로 엮여들어가는 옴니버스로 구성해서 원작도 잘 살리고, 영화적 재미도 장난이 아니란다. 그것으로 기대치 50% 상승.

!@#… 원래 이런 만화(상당히 재밌고, 엄청 하드보일드하다) 그리고 이런 영화.

대등한 만남을 위하여 – <오세영 한국 단편...> [기획회의 050320]

만화와 소설, 대등한 만남을 위하여 – <오세영 한국 단편소설과 만남>

공식기관에서 ‘명작’ 한국 만화를 꼽아야 할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대중적인 인기로 세상을 휘어잡은 것도, 희대의 컬트로 숭배받은 것도 아닌데 거의 예외가 없어서, 최근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를 위해 선정된 100대 도서에도 한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라는 작품집이다. 80년대 <만화광장> 류의 성인만화잡지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던 진지한 사회발언과 만화양식의 가능성에 대한 추구가 꽃을 피웠던 모범사례중의 하나가 바로 당시 창작되어 나왔던 오세영의 단편 작품들이었다. 성인만화를 휩쓸던 리얼리즘 풍 이야기와 민중문화 담론 에서 열심히 주장해온 민중적 시각의 사회참여의식 등 다양한 시대정신의 영향을 소화해낸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90년대 초에 묶여져 나온 이 작품집에서 또하나 즐거운 발견은 바로 월북작가 단편소설 작품선이었다. 두고두고 오세영의 최고작 중 하나로 인용되고 있는 안회남 원작의 <투계> 등이 특유의 집요하게 토속적인 화풍으로 펼쳐졌던 것이다.

최근 <오세영 - 한국 단편소설과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단편소설 원작의 오세영 만화 단편들을 묶어낸 작품집이 출간되었다. 마치 수록 작품들의 문학적 권위를 형상화라도 하는 듯, 한 권의 묵직하고 커다란 800페이지짜리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나와서 책장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작품들은 <부자의 그림일기. 작품집에도 실렸던 월북 작가 단편선, 이후에 작업되어 단편문학선이라는 시리즈로 나온 바 있는 여러 작품들이 고루 집대성되어 있다. 그 중에는 <메밀꽃 필 무렵> 같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원작도 있고, 문학 전문서 귀퉁이에서조차 찾기 힘들었던 것도 (예를 들어 월북 작가) 많다. 이 책에서 원작으로 선택된 작품들은 주로 1900년대 전반의 단편소설에 집중되어 있는데, 생각해보자면 그 당시 많은 작품들이 바로 고된 사회적 현실 속에서 살아나가는 민중들의 삶을 비정할 정도로 생생하고도 비극적으로 그려냈던 경향이 있었다. 바로 80년대식 리얼리즘/민중문화와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감수성을 확실하게 재현하고 싶은 작가적 욕구에 충실하게, 오세영이 재창조한 만화들은 적극적인 재해석보다는 충실한 재현에 무게를 두고 이루어진다.

원작에 있는 대사는 토씨 하나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이 기본이며, 각 장면의 풍광이나 캐릭터들의 생김새와 행동거지 또한 대단히 자연스럽다. “쇠똥을 그릴 줄 아는 작가”, “할아버지를 할아버지 처럼 그리는 작가” 등의 찬사 처럼 시각적 장면묘사의 충실함은 특히 한국의 근대나 토속적인 풍광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원작자가 소설에서 묘사한 것 보다도 더욱 원작같이 느껴질 정도로 그 작품들의 원작 충실도는 대단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사진집이나 영화 스틸컷 모음 같은 느낌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88올림픽 전후를 무대로 하는 단편 ‘부자의 그림일기’에서 선보인 그림일기 + 무성극 만화의 교차편집이라는 형식실험이 보여주었듯, 오세영은 만화형식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 결코 문외한이 아니다. 칸 간 시선흐름을 고려한 화면구도라든지, 극적 긴장감을 높여주는 만화적 전개방식 등은 원작소설 만화화 작품에서도 충분히 사려깊게 활용되고 있다. 다만 원작의 유려한 흐름에 거스르지 않도록 명백하게 파격적인 쾌감을 극도로 자제할 뿐이다.

이 작품들에서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기로 작정한 접근의 장점은 명확하다. 문학적 평가가 높은 소설들을 애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적당히 마음대로 단순화시켜온 대다수의 ‘명작만화’ 류들이 쌓아온 만화에 대한 편견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문학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쌓아온 섬세미묘한 다층적 의미와 감성의 서술구조들을 과연 만화에서도 해낼 수 있을까라는 폄하는 ‘투계’ 같은 작품을 보면 확실히 날려버릴 수 있다. 영화화 등 다른 매체이식에서 항상 문제시되는 원작의 문제의식이나 감수성의 왜곡이라는 부분 역시 이 정도의 재현 충실성 앞에서는 내밀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단점은? 쉽게는 ‘독자적인 해석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는 식의 단순한 비난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작의 선정에서 이미 작가의 자의식이 개입되고 충실한 재현이 바로 창작의 의도라면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단점으로 제기할 만한 보다 중요한 지점은 이 책에 묶인 작품들이 상당수가 90년대 및 그 이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80년대의 작품 또는 당시의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만들어내는 작품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리얼리즘이나 민중문화 개념이 항상 강조해온 것이 바로 현실참여이라는 측면을 놓고 생각해볼 때, 오늘날의 세상과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80년대식 경향의 프리즘으로 투과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동시대적인 문제의식이라는 척추가 빠지고 ‘순수문학’의 예술지향적 자아도취에 빠질 위험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작품에 투여된 노력과 재능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진짜 고민이다.

앞서 말했듯, 책의 출판상태는 그야말로 성의있는 프로듀싱의 결실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만화책들은 각각의 실제 내용에 어울리는 책 모양새가 아니라 일괄적인 저가 대중오락물의 모양새라는 틀을 강요당했다. 자가 대중오락물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만화의 폭넓은 세계를 그 범주안에 다 우겨넣을 수 있을리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세영 작품집은 고전 문학의 깊이와 만화작품의 진지한 접근의 무게에 걸맞는 무게의 책으로 나왔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옥의 티는 오히려 과잉 프로듀싱이라는 부분인데, 말미에 순 우리말 용어에 대한 해설집을 첨부한 것은 좋지만  본문내용에 각주표를 달아서 독서의 흐름을 끊기게 했다든지 하는 등의 과유불급성 결과가 여기에 속한다.

이 책은 소설 원작 만화 작품을 모은 만화책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기 싫어서 쉽게 슬쩍 줄거리만 훑어보려는 게으름증을 해소하기 위한 만화들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오히려 소설을 읽어보고 그것을 만화로도 다시 한번 읽어보거나 또는 반대 순서로 읽어서, 그 감상을 증폭시키기 위한 것에 가깝다. 만화와 소설의 대등한 만남, 그리고 독자에게는 그 화학작용에서 오는 몇갑절로 증폭된 감상을 주기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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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만화 클래식 콘서트

!@#… 난 이런 식의 아이디어 기획들을 좋아한다. 만화속 클래식 콘서트. 이번 것은 노다메 칸타빌레, KISS 피아노의 숲 등 3작품이군. 노다메 하나만 지져도 좋을텐데.

소개는 이곳: http://blog.naver.com/dfs_v/80010895985

예매는 이곳.

!@#… 음음음… 하지막 북실북실 조곡이 없으니 대략 무효.

PS> http://nodame.moo21.com/ 이곳에 가면 노다메에 등장한 곡들 전체가 정리되어있다(비클래식까지도). 게다가 계속 업데이트중. 하기야 생각해보면, 전에 노다메 스페셜 씨디도 나온 적이 있었지. 물론 지금은 절판, 초레어 상품으로 마구 가격이 뛰고 있는 중. 뭐 그런 세상이다. 

커다란 산을 넘어가기 – <태백산맥>(박산하) [으뜸과 버금 0501]

!@#…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재미있게 잘 만든 경우. 아직 1권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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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산을 넘어가기 – <태백산맥>(박산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원작으로 만화로 만든다, 라는 기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기대감보다 걱정이 앞섰다. 태백산맥이 어떤 작품인가. 사람과 시대를 관통하면서 재미와 깊이를 두루 갖춘, 자타공인의 최강급 현대사 대하소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을 학원폭력물 <진짜사나이>이래로는 중급 히트는 있지만 확실한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것은 못만들어낸 박산하 작가가 만화로 만든다니… 그렇고 그런 보통의 아동 학습만화가 나와버렸다가 금방 잊혀지겠군, 이라고 속단했다. 사실 그 작가의 그쪽 계열 전작인 <칼의 노래>도 무난하기는 했지만 별로 특별히 볼만한 구석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태백산맥이라는 작품은 무려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에 달려들었으나 미적지근한 결과물만을 내버린 전력도 있고.

그런데, 1권을 펼쳐들고 보니… 이것 의외로 재미있다. 아니, 사실 꽤 잘 만들었다. 처음 등장하는 수많은 주연급 캐릭터들부터가 벌써 엇비슷하고 밋밋한 미소년미소녀가 아니라 강단이 있고 표정 풍부한 ‘한국 아이들’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 역시 적당히 무국적화한 가상공간이 아니라, 한국식 시골 풍경이다. 페이지 연출 역시 무난한 클로즈업으로 점철하지 않고, 역동적이지만 현란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칸 배분을 조율해 나아가고 있다. 한눈에 봐도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말이 되는 ‘작품’으로서 완성 짓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쓸데없는 해설자도, 귀여움 떠는 억지 조연도, 남녀관계를 맞추기 위한 무의미한 미소녀도 아직 투입된 바 없다. 줄거리의 압축 역시 이전에 임권택 감독의 극장 영화보다 훨씬 페이스의 배분이 좋다. 염씨 형제, 하대치, 김씨 형제, 명자… 주요 등장인물들의 어린시절이 모자람 없이 촘촘히 배치되어 이후 극의 긴장감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해방후 성장한 염상구의 귀환에서 1권을 마무리 짓는 노련함까지. 뭐랄까, 만약 아이에게 단순히 ‘좋은 만화책’ 정도가 아니라, ‘좋은 책인 것은 기본이고, 만화로서 좋은 책’을 골라줘야 한다면 별 망설임 없이 골라줄만한 책으로 나와 주었다. 

물론 문제는 과연 필자가 재미있어한 만큼, 이 책이 원래 목표로 하고 있는 독자층인 아이들도 좋아할 것인지다. 1권은 그나마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입할 구석이라도 있었겠지만, 이들이 모조리 성인이 되어 정치적 싸움에 휘말리는 이후 이야기들에 어떤 재미를 느낄지, 모르겠다. 온몸에서 빔이 나가는 마법 필살기로 상대를 쓰러트리거나, 화려한 주먹다짐을 하거나, 아니면 스펙타클한 폭발으로 수놓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전체적 색조를 포함한 시각연출 역시, 아이들이 흔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셀 방식의 감각과는 거리가 있다. 나아가 줄거리 전개 면에서도, 염상구 정도를 제외하자면 명쾌하게 승부를 가릴 수 있는 대결+성장구도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의 취향에 맞추기 쉽지 않다.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의외였던 점이기도 한데, 작품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 그런 요소들을 넣어서 적극적인 자기 타겟 공략에 나설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원작의 품격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하지만 이 점은 다시 말하자면 정작 쓸만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서도, 원래의 독자층에게 외면 받아서 묻혀버리는 아쉬운 일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만화 <태백산맥>은, 문학작품을 적당히 만화로 옮기기만 한 것에서 의미를 찾는 여러 “명작만화”류 들과는 다행히도 스스로 차별화를 꽤하면서 1권을 시작했다. 부디 보다 본격적으로 펼쳐질 이후 전개에서 원작의 무게에 눌리거나 나태하게 기대어 버리지 않고 본격적으로 만화 <태백산맥>으로서의 매력을 발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

[으뜸과 버금 2005. 01.]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한국만화 무엇이 OSMU 성공을 끌어들이는가 [계간만화 04/가을]

!@#… 계간만화 04년 가을호 원고. OSMU라는 ‘누구나 다 이야기하기에 오히려 뻘쭘해지기 쉽상인’ 주제를 과감하게 정면돌파..; 언제나처럼, 여기 올리는 건 ‘오리지널 버젼’. 실제 버젼,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이 속해있는 특집기획 전체를 제대로 읽으려면 <계간만화> 가을호를 구해보시길 (http://www.qcomic.com). 아니, 꼭 구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함.

!@#… 어차피 항상 나오는 이야기인 ‘만화에는 OSMU가 중요하다 / OSMU에는 만화가 중요하다’ 같은 이야기나 ‘만화는 원작산업이니까 이제 라이센싱 개념을 제대로 잡자’ 식의 이야기는 다른 분들이 이미 오랫동안 열심히 하고 계시기 때문에, capcold 성격상 남들이 안하고 지나간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봤다. 뭐냐하면, “그럼 만화가 좋은 원작이 되려면 구체적으로 뭘 갖추어야 하는가?” 라는 것. 만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혹은 좋은 만화를 고르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다른 분야의 입장에서도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지점 아닐까, 라고 생각한 것이다. 뭐 그래서 이런 글이 되었다. …꽤 길다… -_-;

!@#… 그러고보니 요새 기억력이… 지난 여름호에 쓴 ‘독자의 진화’ 글도 여기 안올렸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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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소스, 그 맛의 비결을 찾아서

 – 한국만화의 무엇이 OSMU를 성공으로 끌어들이는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 원소스멀티유즈(줄여서 OSMU)를 하는 이유는 뭘까? 대답은 한 글자면 충분하다. “”. 이런 단순명료한 전제만으로도 OSMU가 추구해야할 핵심적인 방향성은 확실해진다. OSMU는 문화의 논리가 아닌, 산업의 논리다. 문화의 논리를 조금이라도 고려하는 것은, 재료로 다루는 문화상품의 품질을 관리할 때 뿐이다. “모두를 감동시키는 훌륭한 작품이 나와주면 저절로 모든 분야로 뻗어나가면서 대박이 터질꺼야”라는 순진발랄한 문화 논리와 산업적 성공은 대략 900광년쯤 떨어져 있다. 이것은 그다지 분노할만한 일도 아니고, 거부감을 가질 일도 아니다. 애초에 OSMU는 그런 개념이니까.

  한국의 만화에 있어서, OSMU는 좀 더 복잡미묘한 상대이기는 하다. 만화는 단지 산업적 이해 이상으로, 문화적 위상 자체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난 10여년 동안 이 개념에 매달려 왔으니까. 물론 이러한 개념혼동은 많은 시행착오와 멍청한 발상들(‘정부가 주도하는 중견 작가 인큐베이팅’이라든지)을 탄생시켰지만, 지금에 와서는 적어도 대중문화 산업 일반이 만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경지까지는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과연 만화가 OSMU 거래의 현장에서 내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밀 준비는 되어 있는걸까? 점검의 시간이다.

[] 비주얼과 이야기

  만화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림이다. 카툰화법으로 그려진 그림 한 장만 봐도 앗 만화다!라고 할 정도로 익숙하며, 쉽게 받아들여진다. 캐릭터 라이센싱/프랜차이즈 사업에게 ‘캐릭터 산업’이라는 (오해의 여지가 많은) 호칭을 붙여주고 한창 거품을 키워낸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이쪽 분야 대다수 상품들이 명백히 만화라는 장르에서 발달시켜온 시각적 기법들(그림체, 표정, 상황 묘사 등)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만화가 비주얼이라는 측면으로 큰 매력을 행사한다는 인식은 꽤 그럴 듯 하다.  만화의 비주얼 속성으로 승부한 아기공룡 둘리 프랜차이즈의 성공이라든지, 박희정, 권신아 등 화려한 비주얼을 뽐내는 만화 계열 일러스트레이션의 인기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비주얼 그 자체만으로 행사할 수 있는 힘은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94년, 이현세/야설록의 만화 <아마게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개봉되었다. 당시 제작사측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운 부분이 비주얼의 완성도였는데, “이현세 그림이 움직인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했다. 즉 이전의 TV물에서 망가졌던 그림체가 아니라 이현세 만화 특유의 비주얼을 제대로 구현했다는 자랑이며, 당시 이현세 만화의 비주얼이 가지고 있던 대중적 인기를 노린 발언이었다. 물론 애니메이터들의 노고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문제는 관객들은 그런 부분은 그다지 신경을 안썼고, 결국 흥행참패를 했다는 것이었다. 비록 원작만화의 그림체를 형편없이 뭉개버리고도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등의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애니메이션 같은 미디어 상품 분야에서는 이야기의 재미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재미있는 이야기와 결합한 훌륭한 비주얼은 더욱 재미를 배가시켜 주지만, 이미 재앙급으로 망가진 이야기를 구원해줄 힘 따위는 애초에 없다.

  비주얼의 매력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는 팬시 상품 프랜차이즈의 일부 분야일 뿐, 현대 OSMU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디어 문화상품의 핵심적인 매력포인트는 ‘이야기’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그것에 어울리는 비주얼이라면 심지어 초등학생 낙서 같은 작대기 인간(‘졸라맨’)이라도 대형 스타 캐릭터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풍경 아닌가. 만화는 애초부터 이야기 매체다. 비주얼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서술하기 위하여 비주얼을 도입한다. 게다가, ‘한국만화는 비주얼이 너무 구려서 못써먹겠어’라고 푸념할 정도로 그래픽 기술력이 떨어지는 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설령 정말로 구리다면, 더 유능한 그래픽 디자이너 인력들을 동원해서 다시 디자인하면 된다. 한마디로, OSMU 프로젝트 속에 있는 만화의 입장에서라면, 비주얼은 (비록 욕심은 날지언정) 굳이 끝까지 책임져야할 분야가 아니라는 말이다. OSMU라는 네트워크에서 구석구석 만화의 힘을 발휘하고 싶다면 명백하게 신경써야할 우선순위는 이야기다.

[] 이야기성: 줄거리인가 캐릭터인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가 연달아서 히트를 쳤다든지, 만화 원작의 영화가 무더기로 제작된다든지 하는 것은 별로 새로운 뉴스거리도 아니다. 영화를 필두로 하는 영상 미디어 분야가 워낙 급속하게 부흥하면서, 소재로 쓸 수 있는 이야기 거리에 대한 수요 역시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만화라는 분야가 꽤 흥미로운 것이다. 이미 비주얼로 풀어서 서사를 하고 때문에, 그 이야기가 영상화에 적합한지 좀 더 확실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연재물 만화의 경우 극 진행의 독자와 밀고 당기기 호흡이 이미 레디메이드로 갖추어져 있기까지 하다. 이제야 만화 원작이 이렇게 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만화와 영상의 파트너쉽은 천생연분이다.

  사실 만화의 입장에서도 영상과의 결합은 매력적이다. 문화상품의 OSMU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강력한 핵심 미디어 상품 하나가 전체 프랜차이즈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통제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만화가 OSMU 논리를 필사적으로 추구해왔다는 점을 뒤집어본다면, 그만큼 만화가 그 자체로서는 산업적 활력이 소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인식이 나온다. 즉 만화 산업은 현대적인 OSMU에서 ‘허브’역할을 할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주1). 하지만 현재 영화나 TV드라마는 히트작 한번만 나오면 ‘경제효과 수백억’이라는 등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고 있다. 윈-윈의 공생관계를 노릴 이유가 충분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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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만화시장 자체가 기형적으로 크기로 소문난 일본의 경우라 할지라도, 히트작의 일반적인 성공 패턴은 인기를 검증받은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특히 텔레비전 장기 방영 시리즈)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2001년부터 월간지 ‘소년 강강’에 연재중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단행본 권당 20만부 가량 판매되던 중형 인기 만화이었다가, 2003년에 애니메이션 방영개시된 이후 수요가 급증, 2004년 7월 현재 발매중인 단 7권만으로도 누적판매 1200만부라는 어마어마한 히트로 피드백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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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적으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야기를 통째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왕 기승전결 다 맞추어놓은 것, 그냥 그대로 쓰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재든 단행본이든, 만화는 독자적인 매체로서 특유의 소비/향유 양식을 구축해왔다. 그것에 알맞도록 구성된 이야기 전개나 호흡이 다른 곳에서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예를 들어서 최근 영화화 논의가 진행중이라는 <도시정벌>의 경우, 만화원작이 대본소용 성인만화의 독서패턴 – 즉, 만화가게에서 수십권 분량의 책을 잔뜩 쌓아놓고, 밤새 가끔 딴짓도 하면서 물 흐르듯 줄줄 읽어내려가는 식이다. 두 시간 동안 어두운 극장에 앉아서 스크린에 집중해야 하는 극영화에서 그런 이야기 전개를 구현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즉 이야기의 큰 얼개만을 따온 상태에서 전체 내용을 완전히 새로 짜맞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제작되어 나름의 성과를 올린 영화  <바람의 파이터> 역시, 방학기 원작만화로부터는 거의 제목만 빌려왔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체 구성이 확연히 다르다.

  덤으로 시기적인 유행의 문제도 있다. 만화 원작이 발탁(?)되는 시점은 보통 연재가 한참 징행되었거나 아예 완결이 된 이후다. 영화나 드라마 등 이후 미디어 상품의 제작기간까지 고려하면 그 시간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특히 한국같이 자고 일어나면 사람들이 다른 곳에 우루루 모여 있는 사회에서, 시대에 뒤떨어지는 요소들의 재창작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방향의 극단으로 갈 때, 원작의 줄거리는 커다란 기본 이벤트 몇 개만 남길 뿐, 나머지는 새로운 창작으로 채워진다. 그 때 결국 이식되는 것은 줄거리라기보다는 ‘캐릭터’다. 엄밀하게 말해서 등장인물들의 특정한 현재 성격, 그것을 형성해준 과거 경험,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서로 엮어주는 관계설정 등을 말하는 것이다. 폐인 신드롬을 낳은 미니시리즈 <다모>를 생각해보자. 만화팬 사이에서는 “방학기에서 김혜린으로 변신”했다고 불리워질 정도로 전체적 감각에 차이가 크다. 남은 것은 잠입 여형사라는 설정과 기본적인 주변 인물들의 관계다. 정작 히트를 친 요소들인 멜로드라마적인 이야기투르기, 와이어 액션 무협, 장중한 대사 등은 원작과 관계없다. 게다가, 캐릭터를 이식한다고 해서 반드시 원작의 캐릭터 설정 전체를 가져올 필요도 없다.  엘리와 라이더가 그냥 한국인 이야기로 바뀐 <풀하우스>는 어떨까? 원작과 다른 주인공 성격 때문에 원작팬들과 풍파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일본만화 원작의 영화 <올드보이> 역시, 쫒는 자와 쫒기는 자의 현재 구도는 가져오되, 그들을 형성한 과거의 사연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화원작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만화에서 창작자가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서 완성도를 높이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다른 분야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 그대로 ‘소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OSMU의 관점에서 만화가 할 역할은, 어떤 특정한 줄거리와 캐릭터들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하나의 사례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초’, 혹은 ‘현존 최강’의 사례일 경우 비로소 줄거리와 캐릭터를 다른 분야에 대여해주면서 원작으로서 가치를 획득하고, 결국 비싼 라이센스비를 챙길 수 있다. 따라서 OSMU를 통한 성공을 꿈꾼다면, 현재 각 분야에서 유행하는 요소들을 매 순간 반영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무한대로 이어가면서 ‘기본빵’을 지키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일관성있는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특정한 소재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연재의 와중에 캐릭터의 성격이 통일성 없이 망가지면 아웃이다. 어설픈 전개로 인하여 줄거리의 얼개 자체가 이해불능의 경지로 떨어져도 아웃이다. 괜히 “나중에 드라마화하려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면 어떤 줄거리, 어떤 캐릭터들이 필요할까”라는 고민에 귀중한 시간과 뇌세포를 할애할 필요도 없다. 만화로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져서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높은 인지도를 끌어냈다면, 그것을 소재로서 활용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그쪽 분야 전문가들의 몫이다(그리고, 그들의 실력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쉽게 생각하자. 만화가 OSMU에서 당당하게 자기 위상을 획득하고 싶다면 생각할 것은 단 하나, 매력적인 줄거리와 캐릭터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서만화로서 독자들을 설득시키는 것 뿐이다.

[] 세계관

  앞서 스쳐지나가듯 OSMU의 ‘허브’라는 개념을 언급하면서 영화나 TV드라마를 예로 들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한국에서 허브 역할을 해줄 강력한 매체로 떠오른 신흥 강자가  있다. 그것도 심지어 산업 성장성 등에 있어서 무척 전도유망하기까지 하다. 그 이름도 찬란한 ‘온라인 게임’이다. 확실히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의 사용자층, 확산력, 영상으로서의 비주얼, 응용분야의 다양성 등을 놓고 볼때 만화는 당장 온라인 게임과 혈맹이라도 맺어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그렇듯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온라인 게임에서는 캐릭터와 줄거리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 매체에서 독자는 특정한 캐릭터, 즉 주인공이나 그 주변인물들의 모험을 관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는 자기 자신이 하나의 캐릭터로서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정해진 줄거리에 따라서 정해진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서 움직인다. 그 결과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던 만화의 핵심적인 역할, 즉 이야기 소스로서의 기능이 무용지물이 된다. 곤란하다. 그렇다면 만화는 게임이라는 멋진 허브를 포기해야할까? 물론 아니다. 만화 원작이 이러한 OSMU 모델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있다. 바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세계관은 작품의 시공간,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 등장인물들의 특성 등을 직접적으로 관할하는 규칙이다. 그것은 크게는 <팔용신전설> 마냥 전체 세상을 통째로 창조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작게는 <파이트볼>처럼 단지 스포츠의 룰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작품 속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이 규칙을 지켜나가며, 모든 갈등의 발생과 극복 역시 그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무협만화의 세계관에서는 레이저 병기로 상대를 날려버리지 않는다; 비급을 찾고 수련을 해서 무예의 힘으로 상대를 극복하는 것이 이 세계의 규칙인 것이다. 하지만 총과 미래형 병기들이 허용이 되는 세계관을 지닌 작품이라면 어떨까? 새로운 방식의 대결이 가능해질 것이고, 총보다 빠른 무공이 소재로 도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관장하는 규칙을 지켜가면서 목적을 이루는 서사구조’라는 차원으로 놓고 봤더니, 이제야 만화와 게임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생겨났다. 게임은, 다양한 만화원작에서 창조한 세계관을 차용해서 멋진 작품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만화는 그 표현적 자유도 덕분에, 현실 세계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그 덕분에 황당하고 허황된 것을 “만화 같은” 이라고 폄하하는 기분나쁜 관습도 생겼지만 말이다). 따라서 다양한 특이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비단 본격적인 환타지나 SF뿐만이 아니라도, 생략과 과장을 통해서 특정한 하나의 요소를 ‘작품 속 세계에서 그 어떤 다른 것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포장해내는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본만화 <유희왕>의 세계관 속에서는 특정한 규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트레이딩 카드를 통해서 격투를 하고, 그 속에서 강적을 물리치고 승리해야 세계를 구원한다. ‘고작’ 초등생들 사이의 카드게임이 이 작품 속에서는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만화가 일정정도 인기를 끌자 TV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고,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당연히 실제 카드게임을 만들어서 상품화했다. 그것은 경쟁심 강한 남자 초등학생 층에게 크게 어필했고, 그 결과 세계적인 OSMU 대형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명사격으로 군림해온 <리니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일숙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만화원작과 비주얼도 다르고, 특별히 줄거리나 캐릭터를 가지고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단지 제목이 같기 때문에 원작이라는 말인가? 만화 <리니지>를 원작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혈맹이라는 세계관 때문이다. 혈맹이라는 단위로 아군을 만들고 적군을 구분하는 방식은 온라인 세계의 패거리 문화와 찰떡궁합을 이루어 이후 ‘공성전’ 등 특유의 집단 놀이문화의 촉발점이 되어주었고, 그 결과 큰 히트를 쳤다.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경우는 더욱 흥미롭다. 동명 원작만화의 작가인 이명진이 게임 디자이너로 직접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주인공 캐릭터들이나 핵심 줄거리는 전혀 인계되지 않았다. 심지어 온라인게임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제작된 TV애니메이션 시리즈 역시 원작만화와는 아예 연결고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세계관 구성만은 이 다양한 활용처(‘멀티유즈’)들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주는 진정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을 만들어나감에 있어서, 사실 세계관을 신경써서 만들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원래 있는 굉장히 잘 구축된 세계관 위에서 자기 캐릭터들로 다른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정도로 만족하는 작품들도 많다.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 세계관을 고유명사만 조금씩 바꾼 채로 그대로 가지고 와서 적당히 스토리를 꾸미는 수많은 환타지 만화가 범람하는 것은 사실 비단 한국만의 예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OSMU의 입장에서 다른 미디어 상품이 그런 작품들을 소재로서 발탁해야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여하튼, 만화가 OSMU에서의 폭넓은 성공을 꿈꾼다면, 세계관이라는 요소를 주의깊게 가꾸어야할 필요가 있다. 꼭 방대한 설정자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서 이 작품의 세계에서 중요한 핵심 가치, 사람들의 행동 원칙을 통일성 있고 집요하게 강조해주는 작업이면 충분하다. 이쯤 되면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세계관이라는 것은 바로 작품의 주제 자체를 형상화한 것이다. 세계관이 부실하다는 것은 작품의 주제(즉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구심점이 되는 핵심 소재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과 동의어다. 한마디로, 작품으로서 부실하다는 이야기다. 만화자체로서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로 만화 원작 OSMU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인 셈이다.

[] 매력을 유지해주는 미덕: 지속성과 스타성

  작품의 구성요소는 아니지만, 만화가 강력한 원소스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적인 미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지속성이다. 문화 상품의 소비라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소비다. 성게군이 그려진 다이어리를 사는 이유는 단지 그림이 예뻐서가 아니라 성게군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고, 그 매력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실제 작품인 <마린블루스>의 개별적인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OSMU라는 말 자체가 결국 속되게 표현하자면 한가지 매력적인 아이템을 가지고 끝까지 뽕발을 뽑자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매력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 자체가 계속 새로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한번 만들어진 이야기가 계속 인기를 끌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시마로>의 사례처럼, 팬시상품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는데 정작 그 유행의 근원이 되었던 원작 이야기 자체가 기약 없이 중단되어 버렸다고 한다면 전체 프로젝트는 아주 쉽게 김이 빠진다.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것은 토끼 주인공의 허를 찌르는 성격과 에피소드들, 즉 ‘엽기토끼’ 였지, 무슨 귀여운 외모의 다양한 캐릭터들이니 어쩌니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스타성’이다. 반드시 만화로서 대박을 터트려야한다거나, 엄청나게 작품성이 우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수많은 만화들 가운데, 소재를 찾고 있는 OSMU 종사자들의 눈에 들어올 수 있기 위해서는 뚜렷한 지지층이 있는 것이 좋다. 즉, 이 작품을 누가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가 명백하게 드러나 주어야 산업적인 전략 구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구상이 가능해야만 OSMU 산업으로서 성립이 된다. 또한 비슷한 작품군들 가운데 바로 이 작품이 선택되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그것 역시, 단지 일개 전문가의 식견이 아니라 작품의 지지층을 보고 판단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서 <신암행어사> 애니메이션이 만화를 어느 정도 이상 친숙하게 읽고 있는 청소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극장용 장편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만화 원작의 지지층 성향에 맞춘 기획인 것이다.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는 나중에 차차 증명될 일이지만, 적어도 명백한 전략을 짜고 제대로 부딪혀볼 수 있는 최소조건은 되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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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수박 겉햝기로나마, OSMU 프로젝트에서 만화가 내밀 수 있는 카드패, 그리고 그것이 정말 쓸만한 것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을 주욱 훑어보았다. 다양한 요소들을 언급했지만, 정작 이야기의 결론은 결국 하나로 돌아오고 있다: 우선 만화로서 완성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고 나서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애니메이션 풍, 영화 풍, TV드라마 풍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화로서 취할 수 있는 자유로운 발상으로 흥미로운 세계관을 구축하고, 그 속을 모험하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만화 특유의 표현법과 향유 패턴 속에서 팬층을 다지고 명망을 얻으면 된다. OSMU는 작품의 부족함을 메꾸어주거나 문화적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원래부터 가능성 있는 작품의 상업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개념이다. 문화산업 논리의 성공적인 정착에 따라서, 멀티유즈를 하겠다는 – 즉 자신들의 훨씬 더 장사가 잘 되는 미디어로 만화의 어떤 부분을 같이 데려가 주겠다는 – 파트너들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제, 만화가 득의양양하게 보따리를 풀어놓을 차례다. 사실, 한국만화는 많은 것을 비축해놓고 있다. 하지만 소진되기 전에, 계속해서 그 보따리를 다시 채워 넣는 것은 이제부터의 임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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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OSMU 성공의 조건 [시사저널]

!@#…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여기 블로그에 올리는 외부기고문들은 별도 언급이 없으면 대부분 ‘오리지널 버젼’들이다. 실제 실린 버젼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수도… 분량이나 기조 등 여러 이유때문에. 이번 것은, 지난주 시사저널에 보낸 박스 기사. 원래 올해에는, 문화산업 논의니 OSMU니에 관한 제대로 된 분석글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목표했는데… 아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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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OSMU 성공의 조건

90년대 후반 이래로 공공기관의 산업지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OSMU(One Source Multi Use)다.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문화적 지원의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OSMU는 실제적 성공가능성보다는 이상주의적 목표 설정용으로 동원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만화분야에서 이 논리가 그럴듯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들려오는 성공사례들 덕분이었다.

일본의 성공사례에는 만화가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문화상품들이 있다. 전세계에서 일본만화 최고의 히트작으로 군림하고 있는 <드래곤볼>부터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기대주 <강철의 연금술사>까지, 만화 작품이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음반,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재미있는 만화가 곧바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퍼져나간다는 흔한 오해는 다소 현실과 다르다. 일본에서 히트작의 일반적인 성공 패턴은 인기를 검증받은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특히 텔레비전 장기 방영 시리즈)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애니메이션 작품이 실제로 다양한 문화상품의 성공을 견인해나가는데, 그 속에는 역으로 만화 원작 자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단적으로 2001년부터 월간지 ‘소년 강강’에 연재중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단행본 권당 20만부 가량 판매되던 중형 인기 만화이었다가, 2003년에 애니메이션 방영개시된 이후 수요가 급증, 2004년 7월 현재 발매중인 단 7권만으로도 누적판매 1200만부라는 어마어마한 히트로 피드백되었다.

만화가 좋은 원작을 얻는 곳이고 애니메이션이 산업적 확장을 위한 허브로서 기능하는 이러한 모델의 진정한 함의는, 성공에 대한 보장이 힘든 대중문화의 속성상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우수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선별해서 활용한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캐릭터 아이템으로서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마시마로>의 경우, 한 평범한 대학생이 온라인 만화 웹진에 연재한 재미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발탁되었던 것이다. 대중적 지명도를 얻고 있는 자신의 인터넷 일기만화를 자신이 취직한 캐릭터회사를 통해서 상품화한 <마린블루스>, 만화잡지들이 스러져가는 시장불황 속에서 오히려 새로 창간하여 적극적으로 성인 여성 취향의 이야기들을 발굴해내는 <월간 허브>…등 다양한 시도들이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많은 시도 가운데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매력이 곧 성공의 바탕이라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제가 정부지원이나 산업 시스템 일반에 확실하게 반영이 된다면, 그 시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김낙호 / 만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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