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사가 붕괴할지라도: <저수지의 걔들>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이번 것은 여차저차하다보니 내용이 좀 어려울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담당 기자님은 오히려 이번 것이 평소보다 더 쉬웠다고 하시더군요. -_-;;; 여튼 요새 ‘요즘 젊은 것들은 긴 안목이 없어’ 투의 이야기가 자주 들려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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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가 붕괴할지라도 – <저수지의 걔들> 이동욱 作

90년대, 이 땅의 젊고 똑똑한 사람들의 관심분야가 급격하게 달라졌던 때가 있다. 그것이 소련붕괴 때문이니 자본주의적 개인주의가 만연해서 그랬다느니 나름대로 분석들을 했는데, 여튼 확실한 것은 결과로서 나타난 한가지 현상이었다. 바로 “대서사의 붕괴”인데, 포스트모던이니 시뮬라크르니 하며 폼잡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커다란 흐름이라든지, 중후장대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이 어느틈에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세상사는 큰 법칙과 통찰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파편화된 요소들의 결합이라는 것이다. 만화로 치환해보자면, 중후장대한 스케일의 드라마가 점차 쇠퇴하고 짧은 호흡과 작은 성찰의 찰나적인 이야기들이 득세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그것에 대해서 최근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도 꽤 나오고 있다 – “장편만화의 위기”라는 꽤 자극적인 말로 신문지면에까지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수지의 걔들>이라는 작품이 좋은 예가 된다. 우주선을 타고 각 행성들을 여행하는 탐험단의 모험을 코믹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최근 주목할 만한 작품인데, 짦막한 4칸만화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4칸만화는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행성에서 일어나는 모험은 보통 4칸만화 8~12편 정도가 내용적으로 연결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 편에서 소개된 캐릭터는 한참 나중의 모험에 다시 재등장하기도 하면서 시리즈로서의 전체적 맥락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원래 미국에서 현대 신문만화의 시작과 함께했을 정도로 오래된 방식이지만, 몇년전 <아즈망가대왕>의 히트로 인하여 재발굴된 형식이기도 하다.
대서사가 파괴되고 장편이 부진하다고 해도, 그것은 갑자기 작가들이 이전보다 게을러져서도, 독자들이 얄팍해져서도 아니다. 작품 전체를 통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읽어내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전의 장편 개념이 하나의 스트레이트한 스토리로 그런 목표를 향해서 직선질주를 했다면, 지금의 짧은 호흡 작품들은 하나씩 벽돌을 쌓아가듯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하는 작품들보다는 실패하는 작품들이 많을 뿐이다.
결국 현실세계도 마찬가지다. 직선적인 줄거리 – 즉 중후장대한 사회규범의 틀을 통해서든 다양한 일상적인 부분들의 결합을 통해서든, 결국 합리적이고 상식이 통하는 전체적인 사회상으로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대서사의 붕괴가 아니라, 그것을 시대의 흐름이니 도통 이해가 안되는 콩가루 사회이니 말하며 변명꺼리로 삼고 세상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시키는 우리들의 세태일 뿐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8. 21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현실적인 감상주의: <채널 어니언>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최근 수년간, 소위 에세이툰이라고 불리우는 장르가 따뜻하고 서정적인 메시지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감상주의적 만화들 대부분이 흔히 빠지곤 했던 함정은, 바로 따뜻한 감정의 일방적 강요라는 점이었다. 적당히 둥그런 그림체, 적당히 따뜻한 세상 사랑의 이야기들, 그리고 하나의 에피소드를 마무리짖는 훈계조의 멘트. 꽤 냉엄한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채널 어니언>이라는 만화는 에세이툰의 대히트가 일어난 시기보다 너무 일찍 나왔던 작품인데, 감상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포착한 귀중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채널 어니언>이 감상적이 되는 방식은 부드러움과 따뜻함의 편식이 아니라, 현실적인 일상의 틈새에서 문뜩 피어나오는 작은 상상과 망상이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의 마무리는 적당한 순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이것은 가상 공간이 아닌, 지금 우리가 서있는 구체적인 세계 – 예를 들자면 ‘서울시 지하철 4호선 동작역을 바라보는 전차 차량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언제’ 감상에 빠지는지에 대한 통찰 역시 돋보인다. 현대 사회는 결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순간에 이성의 끈을 놓치는 것을 관대하게 허용해주는 곳이 아니라서, 결국 감상적이 될 순간은 한 박자 늦게 찾아온다. 그것은 일상의 피곤이 정점을 이루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홀가분하게 맥주 한 캔을 따놓고 홀짝거릴 때, 또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이 안오는 새벽녘의 편의점에 들를 때 나타난다.

  이러한 현실감각 덕분에, 주인공 어니언군이 감상에 빠지는 것은 결코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이성적 논리와는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만으로는 못 전달했던 부분들을 마저 소통한다는 말이다. 무작정 따뜻한 격언 속으로 빠져드는 잠시동안의 도피가 아닌, 누군가와 – 때로는 미래의 자기 자신, 때로는 심지어 ‘공포의 대왕’과 – 나누는 마음 편한 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다시 일상의 현실로 복귀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줄 수 있다.

  감상적인 현실도피가 유행하는 것이 오늘날의 풍속도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현실적인 감상주의를 즐겨보는 것이 더욱 큰 재미를 준다. 여하튼 그것이 지금 우리들 자신의 모습에 더욱 가깝기 때문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8. 7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만화 OSMU 성공의 조건 [시사저널]

!@#…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여기 블로그에 올리는 외부기고문들은 별도 언급이 없으면 대부분 ‘오리지널 버젼’들이다. 실제 실린 버젼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수도… 분량이나 기조 등 여러 이유때문에. 이번 것은, 지난주 시사저널에 보낸 박스 기사. 원래 올해에는, 문화산업 논의니 OSMU니에 관한 제대로 된 분석글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목표했는데… 아아…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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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OSMU 성공의 조건

90년대 후반 이래로 공공기관의 산업지원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OSMU(One Source Multi Use)다. 이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문화적 지원의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OSMU는 실제적 성공가능성보다는 이상주의적 목표 설정용으로 동원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만화분야에서 이 논리가 그럴듯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에서 들려오는 성공사례들 덕분이었다.

일본의 성공사례에는 만화가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문화상품들이 있다. 전세계에서 일본만화 최고의 히트작으로 군림하고 있는 <드래곤볼>부터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기대주 <강철의 연금술사>까지, 만화 작품이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음반,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하지만 재미있는 만화가 곧바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퍼져나간다는 흔한 오해는 다소 현실과 다르다. 일본에서 히트작의 일반적인 성공 패턴은 인기를 검증받은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특히 텔레비전 장기 방영 시리즈)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애니메이션 작품이 실제로 다양한 문화상품의 성공을 견인해나가는데, 그 속에는 역으로 만화 원작 자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단적으로 2001년부터 월간지 ‘소년 강강’에 연재중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단행본 권당 20만부 가량 판매되던 중형 인기 만화이었다가, 2003년에 애니메이션 방영개시된 이후 수요가 급증, 2004년 7월 현재 발매중인 단 7권만으로도 누적판매 1200만부라는 어마어마한 히트로 피드백되었다.

만화가 좋은 원작을 얻는 곳이고 애니메이션이 산업적 확장을 위한 허브로서 기능하는 이러한 모델의 진정한 함의는, 성공에 대한 보장이 힘든 대중문화의 속성상 이미 대중성을 검증받은 우수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선별해서 활용한다는 점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캐릭터 아이템으로서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마시마로>의 경우, 한 평범한 대학생이 온라인 만화 웹진에 연재한 재미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발탁되었던 것이다. 대중적 지명도를 얻고 있는 자신의 인터넷 일기만화를 자신이 취직한 캐릭터회사를 통해서 상품화한 <마린블루스>, 만화잡지들이 스러져가는 시장불황 속에서 오히려 새로 창간하여 적극적으로 성인 여성 취향의 이야기들을 발굴해내는 <월간 허브>…등 다양한 시도들이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많은 시도 가운데 어떤 것은 성공하고, 어떤 것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매력이 곧 성공의 바탕이라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제가 정부지원이나 산업 시스템 일반에 확실하게 반영이 된다면, 그 시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김낙호 / 만화연구가)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만화, 공짜신문의 꽃이라고? [한겨레21]

!@#… 지난호 한겨레21에 기고한 박스기사. 이전 인물과 사상 원고와 거의 같은 기조인데 재활용 만화 저작권 문제를 언급해주고, 지면개편 노력이 진행중이라는 부분 추가. 개인적 희망이야 데일리줌이 좀도 화끈하게 전면적인 개편을 해서 잘만든 좋은 신문으로 거듭나는 것이지만… 내가 하는 이런 비판적 지적들이 그쪽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받아들여지기는 할지) 지금으로써는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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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공짜신문의 꽃이라고?

격심한 경쟁체제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무가지는 좁은 관심분야, 연합뉴스에서 일괄공급되는 똑같은 기사, 그리고 신문의 성향이 담긴 사설의 부재 등으로 인하여 차별화가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경쟁지와 차별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이미 비슷한 상황에서 수십년전 스포츠신문들이 채택했던 전략이었던) ‘신문만화’가 무가지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지하철 무가지의 만화편성 전략에서 종합일간지의 안방마님인 한칸 시사카툰은 역할이 대폭 축소되었으며, 4칸 시사만화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스포츠신문에서 볼 수 있던 1면 4페이지 호흡의 에피소드 만화나 연재극화가 일정 지면을 차지하고 있고, 인터넷에서 주로 히트한 생활속의 따뜻한 감상을 다루는 속칭 에세이툰이 한편 이상 편성되어 있다.
무가지의 만화편성 가운데 가장 특이한 시도는 ‘재활용 만화’로, 이미 단행본으로 오래 전에  유통된 바 있는 에피소드 방식의 만화들이 다시 한 회씩 그대로 연재되는 것이다. 어차피 다음 줄거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끌고 나가는 작품이 아니라면 차라리 원고료도 아끼고, 이미 대중적 재미가 검증된 작품을 한편씩 되새김질해도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계산인 셈이다.
그러나 재활용 만화는 한국 특유의 모호한 저작권 계약 관행상 문제 발생의 소지를 품고 있는데, 최근 만화 <무대리>를 둘러싼 설전이 대표적이다. 사건의 발단은 일간스포츠에서 연재중인 인기만화 <용하다 용해>가 한 지하철 무가지에서 <무대리>라는 제목으로 연재 개시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원래 스포츠서울에서 연재되다가 몇 개월전에 일간스포츠로 연재지면을 이전했던 것인데, 무가지측은 해당 작품의 단행본 발간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스포츠서울에서 연재되었던 분량인 첫 화부터 개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기 작품을 자사 신문의 얼굴로 내세우려면 연재중인 특정 에피소드가 아니라 시리즈 자체에 대한 독점적 연재권한을 주장할 필요성을 느낀 일간스포츠는, 이 사건을 ‘도의 없는 만화판’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 결과 한동안 해당 무가지 지면에서 <무대리>의 연재가 중단되었으나, 이내 다시 연재를 속행했다.
만화로 무가지 시장의 경쟁을 돌파하고자 하는 더 본격적인 시도는 만화 무가지를 표방하며 6월에 창간된 ‘데일리줌’이다. 군인공제회의 투자를 받아서 지면의 60% 이상을 만화로 채우겠다는 야심찬 포부와 이현세, 강철수, 고우영 등 스포츠신문의 인기만화가들을 올스타팀으로 포진시킨 위용은 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생각보다 잠잠했다. 문제는 지명도 있는 작가, 좋은 작품, 그리고 시의적절한 편성은 모두 별개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대표작으로 내세웠던 이현세의 <신들의 시간>은 자신의 현재 주력작품인 <천국의 신화>의 패러디에 가까우며, 고우영의 <십팔사략>은 출판사의 원고분실사건으로 소실되었던 동명의 작품을 복원해내는 과정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짜 약점은, 이러한 작품들이 유료 스포츠신문이 아닌 지하철 무가지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편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거창한 신화와 역사의 세계를 다룬 작품, 80년대에 대한 맹목적 향수를 다룬 작품, 가벼운 에세이툰 등이 유기적인 독서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수평적으로 뭉쳐져있었다. 또한 일반 뉴스보도가 만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완전히 뒤로 밀려나버림으로써 출퇴근길에 읽는 ‘신문’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최근에는 이러한 실수에 대한 반성으로 점차적인 지면개편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극심한 무가지 경쟁구도 속에서 인지도/선호도 면에서 이미 확실한 열세로 시작되어버린 현재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해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만화는 사랑받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좋은 파트너지만, 신문으로서의 완성도를 확보해주는 요행수가 되어주지는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셈이다.

(출처: 한겨레21 제521호 / 2004.8.12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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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문고의 향수> 전시회 개장 (SICAF2004)

!@#… 한동안 capcold를 행사마감에 시달리게 했던 이벤트, SICAF2004의 일환인 <클로버문고의 향수> 전시회가 오늘 개장.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성인 만화 전시회’인데, 특별히 야하던가 폭력적이던가 철학적이던가 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성인들만 느낄 수 있는 감수성 – 즉 7,80년대의 만화 향유에 대한 뒤돌아보기라는 테마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애들 등쌀에 못이겨 쫒아온 30대 부모님들에게 만화보는 즐거움을 다시 되새김질하게 만들려는 의도. 그 의도가 성공적이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게다가 폐막하는 그 순간까지 앞으로 일주일동안 희비가 교차하겠지만), 여튼 오늘 본 ‘엄마가 꼬마애들에게 만화책을 보면서 설명을 해주는’ 풍경은 그간의 개노가다가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 여튼 이걸로 또 전시 하나 쫑(일주일동안의 유지문제가 있으니 진짜 쫑은 아니지만, 개장하는 것까지는 쫑). 오늘 오전 10시 개막에, 9시 59분까지 만들고 있었던 급박함은 여전하고. 전시기획자로서의 capcold의 이미지는 오늘도 여전히 ‘오른손에는 커터칼, 왼손에는 77′(주: 77은 3M에서 나오는 스프레이식 접착제의 이름. 전시회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테이프와 좋은 라이벌 관계다). 현장파, 또는 십장형 큐레이터. 다음번부터는 진짜로, 우아하게 팔짱끼고 그림 위치 조정해달라고 나즈막히 점잔떠는 큐레이터로 이미지를 한번 바꿔봐야 하겠다. (과연?)

!@#… 좋은 전시기회를 부여해주고 골치아픈 코디네이터 역할을 일임해온 박인하 교수, 박조교 망구 스캔인간들 등 청강 인쇄공방(채택될 리 없는 가칭) 여러분, SICAF측 프로젝트 매니저 공태건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 순간 든든한 지원자인데다가 클로버문고에 혼을 불태우시는 버즈컴, 신머루님 위시한 ‘클로버문고의 향수’ 카페 여러분들. 그리고 오늘,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동안 전시장에서 만화를 즐기시며 전시장 풍경의 일부가 되어주실 수많은 방문객들. 좋은 전시라는 것은, 일개 기획자가 이런 수많은 훌륭한 인연들을 만날 때 우연히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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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부터는 부록: <클로버문고의 향수> 전시회 도록 설명원고 풀버젼. 실제 도록에 들어간 편집버젼보다도 더욱 풀버젼. 밑에는 축약된 영어판 버젼도 같이.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식 도록에 들어간 영어판은 에에… 좀 곤란한 수준의 번역인지라…결국 내가 직접 다시 주욱 고쳤지만, 얄궂게도 결국 도록에는 이전 버젼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0.5초 동안 좌절. (솔직히, 이런 대규모 국제행사 공식 도록 텍스트의 번역을 일반 알바생들에게 완전히 일임한다는 발상 자체가 좀 곤란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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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중개자 무당…말리作 <도깨비 신부>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이번주에도 어김없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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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풍속사]소통의 중개자 ‘무당’…말리作‘도깨비 신부’

아이러니컬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컬트가 더욱 각광받는다. 다양한 현상들이 발달된 과학으로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고 있기에 더욱 더 초자연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가 그런 매력 덩어리를 절대 놓칠 리가 없다. 무엇보다 표현적 자유도가 높은 만화야말로 오컬트와 환상의 궁합을 이룰 수 있다.

최근 발간을 재개한 말리의 ‘도깨비 신부’는 발표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으로 몸주·도깨비·굿 등 전통적인 무속 개념들을 현대적 드라마 구조로 섬세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주인공은 무당의 피를 타고난 여고생인데, 각종 신들과 도깨비들이 보이고 그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다.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도 서서히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며 세상에 도움 되는 일도 해내는 성장 드라마인 것이다. 하지만 ‘도깨비 신부’의 진정한 미덕은 ‘한국적 전통’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무당에 대한 민속적 고찰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현실에서 오컬트가 가져야 하는 의미를 보여준다.

사실 오컬트의 핵심은 미지의 힘이나 존재들과의 조우에 있다. 때로는 그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격퇴해야할 공포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기도 한다(속칭 퇴마물).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아마도 그들은 특별히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완전히 ‘다른’ 자들일 뿐일 것이다. 우리의 규칙·상식과는 전혀 다른 자들이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피해를 입히기도 스스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무당’이 퇴마사와 다른 것은 바로 이들 간의 대화를 이끄는 중재자라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해주기까지 한다.

무당은 서로 다른 세계, 다른 문화 사이에서 조율을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나와 다른 자들을 적으로 돌려서 화려하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오해를 풀어나가며 돕고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무당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 영적 존재들은 고사하고 육신을 지닌 사람들하고도 도통 말이 안 통하는 곳이니 말이다.

부당한 침략전쟁도, 교통대란도, 개혁 후퇴도 어쩌면 사람 세상의 이치를 모르고 자신의 위세만 발휘하는 마치 ‘저 세상’에 속한 듯한 존재들과의 오컬트적인 마찰인지도 모른다는 몽상을 해본다. 실력 좋은 무당들이 나와서 그들이 이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판 씻김굿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훌륭한 무당 즉 세계와 세계를 이어주는 중재자가 절실한 한 시대의 풍속도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7. 24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