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신문을 구원할 것인가 [인물과 사상 / 2004.8]

!@#… [인물과 사상]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런 재미없고 이상한 글 말고도 훌륭한 글들이 많으니, 잡지는 알아서 사보시기를;;  이전 김상택 만평 비평글과 마찬가지로, [미디어 오늘] 온라인에서도 게재중.

!@#… 이 글을 썼던 시점 이후로 이미 몇가지 변화의 조짐이 후딱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세는 아직은 여전한 듯 하더군요. 음. 좋은건가, 나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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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잡지 <허브> 창간

!@#… 볼만한 잡지가 창간되었다… 이름하여 <허브>.

http://www.c-herb.net/

!@#… 2-30대 여성, 한마디로 80년대의 순정만화 붐 속에서 만화를 원래 좋아했으나 지금은 좋아할만한 자신들 연배에 맞는 만화를 찾기 힘들어서 만화를 못보고 있는 세대. 이들을 노리는 잡지를 표방하고 탄생.

!@#… 잡지 내용이 아닌 잡지 프로덕션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행본시장을 노리고 잡지를 팜플렛 취급해버리는 기형적인(게다가 십수년간 여실히 실패로 드러난) 시장공략이 아니라, 잡지 자체가 잡지로서 재미있는 지면. 대형 자본을 뒤에 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생존전략을 매 순간마다 짜낼 수 밖에 없는 배수의 진. 수익이 나면 작가에게 배분하는 혁신적인 시도… 등등 성공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 투성이인지라, 창간 준비 단계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프로젝트. 결국 여차저차 창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첫술에 배부를수야 없는만큼, 앞으로 두 술 , 세 술, 백 술까지도 열심히 계속 나와서 독자들에게 질타와 칭찬을 받아내기를.

!@#… 그리고 솔직히… 첫째, 왜 만화계 어려운데 이런 걸 또 만드느냐 하는 인간들 보거라. 당신들이 업계 종사자인지, 열혈독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 어쩌라고?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그냥 앉아서 죽어버릴까?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징징거리면 누가 사탕 하나라도 준다니? 두 발로 일어설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은 죽어버리면 되는 것이고, 일어서는 자들을 제발 발목 붙잡지나 말자. 둘째, 가격 높다, 유통비 아겼다면서 왜 그리 비싸냐 하는 멍청이들 보아라. 우선 유통비가 뭔지는 아냐? 유통비하면 그냥 퍼센트 떼서 값 싸지는 것만 알겠지? 복마전같은 잡지 유통구조 속에서 도매상들 돌아다니면서 영업뛰고 집어넣는 인건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시도인지는 생각해봤냐? 그리고, 초딩들도 아닌 주제에 일반적인 영화 한 편 관람료보다도 싼 월 6000이 아깝다면, 그건 비싸서가 아니라 단지 ‘만화에 돈 쓰는 게 싫어서’일 뿐이다. 니들에게 만화란건 그 따위 의미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그냥 지하철 무가지나 보고 살아라. 공짜… 그게 너그들의 그 싸구려 수준과 취향에 딱 맞다. 제 값 주고 자기 취향 즐기려는 사람들한테 초치지 좀 마라. 요새 날씨 덥지? 스트레스 쌓이지? 그래서 시원한 에어컨 틀어진 피씨방에 앉아서 오만군데 게시판에다가 리플을 빙자하여 똥이나 칠하고 싶지?

!@#… 뭐, 궁금하신 분들은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서 정기구독 신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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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보면 연쇄살인마된다

!@#…최근에 잡힌 연쇄살인마의 어머니되시는 분의 신문인터뷰.

“제 정신 갖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릴 때는 참 착했는데 만화책을 좋아하다가 소년원 감방 들락거리더니 점점 나쁜 짓을 하기 시작했어요. 자기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똑같은데 이혼하고 큰 충격을 받아 그런 겁니다.” (출처)

!@#… 아하, 그러쿠나. 만화책-> 소년원 -> 감방 -> 인생파멸. 만화책을 보다보면 연쇄살인마가 되겠쿠나.

!@#… 아직도 이런 시대착오적인 기사를 쓰고 앉아있는 찌라시 기자들이 남아있다니. 이 글을 쓴 동아일보의 전지원 기자에게는, ‘볼링 포 콜롬바인'(콜롬바인 총격살인사건은 볼링 때문이었나? 라는 멋진 질문을 던져주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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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 뉴스의 링크가 망가졌군요. 그냥 전문을 퍼왔습니다.

범인 유영철 어머니 “나도 죄인…무슨 할말 있겠나”

“자식 잃어버린 부모 마음은 다 똑같지요. 내 딸이 죽었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가 자식 앞에서 죽어야 하는데, 생목숨 끊기가 쉽지 않아서….”

18일 오후 10시반경 연쇄살인범 유영철씨의 어머니 A씨(62)는 집 앞에서 기자와 만나 “나는 죄인”이라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는 말을 힘없이 되풀이했다.

그는 “처음 경찰로부터 아들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지어낸 얘긴 줄 알았다”고 말했다. “모자란 아이라 마구 지어냈을 줄 알았다”는 것. 하지만 시신을 발굴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푹 쓰러졌다는 것.

그는 “한두 명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명을 죽였다니 믿을 수 없다”며 “딸도 매우 충격을 받아 쓰러진 상태”라고 말했다.

“제 정신 갖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릴 때는 참 착했는데 만화책을 좋아하다가 소년원 감방 들락거리더니 점점 나쁜 짓을 하기 시작했어요. 자기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똑같은데 이혼하고 큰 충격을 받아 그런 겁니다.”

그는 “15일 아들을 만났는데 ‘나는 이제 갑니다. 죽습니다’고 하더라”면서 “아무 할 말이 없어 울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A씨는 평소 아들과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오피스텔에 자주 갔었다는 아들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A씨는 아버지와 형이 간질로 목숨을 잃었다고 진술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약자 위의 약자 / 엔도히로키 作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 이번 주부터는 경향신문 인터넷 khan.co.kr에서 만화 섹션이 생겨나 만화섹션으로 분류되어 들어가있어서 해피…했는데, 왠걸, 네이버나 엠파스 뉴스 검색을 가보니까 ‘경향신문>속보’로 분류되어 있었다. -_-; 언제쯤 자동으로 해피하게 ‘만화/애니’ 분류로 포워딩될까? 언제쯤 이런 칼럼이 있다는 걸 경향신문 사이트 들어오지 않고도 사람들이 눈치라도 챌 수 있을까…;;;;

!@#… 가끔, 신문에 나온 글에서 문장이 살짝 꼬여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보통 그건 분량 조절을 위해서 편집 단계에서 담당자께서 축약을 하다가 있을 수 있는 마이너한 사고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시기를…-_-; 여기 올리는 건 원래 버젼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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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위의 약자: , 엔도 히로키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세상의 진리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확실히, 죽을 때 까지 끝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되어버린 이 괴이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여전히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떨까. 정말로 ‘나는 강하니까 너희 약자들을 뜯어먹을꺼야’라고 달려드는 것일까?

일본작가 엔도 히로키의 <에덴>이라는 작품은 이 질문에 대한 잔인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다른 약자들이라는 것. 약자라는 것을 방패삼아서 자신들보다 더 약한 자들을 괴롭힌다는 것. 이 작품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물인데, 탄탄한 연출력과 스타일리쉬하지는 않지만 섬세한 그림체로 작가 특유의 냉소적이고 차가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수작이다. 작품의 시작은 인류를 멸망시킬 위력의 전 지구적인 바이러스라는 다소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내 작가는 본색을 드러내는데, 사실 이 바이러스는 인류의 10% 가량 밖에 감소시키지 못하고 잡힌 것이다! 그리고 병을 잡는 과정에서 강대국 중심의 세계정부가 만들어지고, 이에 저항하는 세력 등 국제적 마찰이 심화된다. 여전히 사회의 여러 모순과 차별은 그대로이거나 더욱 커져있다.

이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도는, “나를 억누르던 강자가 나중에 알고보니 또 다른 약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아버지-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남녀관계, 사회계층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 일화에서, 최광문이라는 한국계 등장인물이 이렇게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한다. “어린시절 나한테 김치냄새나는 녀석이라고 돌을 던진 건 모두 나처럼 가난한 집 애들이었어. 부잣집 아이들은 그 광경을 단지 웃으며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지.”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항상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강자에게, 또는 약육강식의 시스템에 돌린다. 자신의 의지로 직접 하고 있는 비열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도매급으로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평범한 약자들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하며 친일 부역을 했으며, 나치당원이 되어 유태인들에게 돌을 던졌으며, 그 당시 광주를 빨갱이 폭도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오늘날, 약소국을 자처하는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가, 미국이라는 절대강자에게 기대어 ‘할 수 없이’ 침략자 동지로서 중동으로 출동한다. 좋은 만화는 만화 자체로 끝나지 않고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때로 그것은 아프다. 우리 자신들의 비열한 현실을 비춰주는 풍속화니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월간미술] 한국만화의 역사와 비평적 쟁점

!@#… 맞아, 이런 황당한 글쓰기를 썼던 적도 있었구나. 한국만화의 역사 통째로를 월간지 기사의 짧디 짧은 지면에 우격다짐으로 쑤셔넣는 바보짓… 제목도 물론 잡지사의 취향에 따라서 어마어마한 제목으로 마구 확장. 뭐 이런 것이 있었다. 어디보자… [월간미술]. 2003년 5월호였나? 4월호? 기억이 가물가물. 당시 커버스토리의 타이틀 Art & Comics… 즉, 만화는 예술이 아니라는 의미 되겠다. 편집진이 의도했든 말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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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omics

한국만화의 역사와 비평적 쟁점

김낙호/만화비평

“근대적 문화의 형성기부터 한국만화의 역사는 시작된다. 19세기 말 서구에서 영향받은 일본만화를 통해 형성된 초창기 한국만화는 이후 급변하는 사회환경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 왔다.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만화의 여명기부터 최근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신개념의 만화환경에 이르는 만화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광복과 함께, 한국만화는 여명기를 지나서 새로운 시기로 들어섰다. 그 동안 억눌렸던 한국어 출판물에 대한 붐이 일어났고, 만화도 그 속에서 새로운 지면을 얻어 나갔다. 그리고 1948년 김용환의 주도로 한국 최초의 만화 전문 잡지인 《만화행진》이 만들어졌고, 이후 한동안 만화는 여러 방면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프로파간다용 삐라에 만화가 적극 활용되었으며, 한국전쟁 말기부터 권당 20페이지 내외의 조악한 품질의 대중오락만화인 《떼기만화》 판형들이 좌판을 통해서 보급되었다. 떼기만화에는 최상권의 《헨델박사》(1952) 등 모험물, SF 장르가 많았는데, 이로써 각종 이야기 만화가 급격하게 인기를 끌었다. 한국전쟁 이후에 잡지 창간은 더욱 가속되었고, 김용환, 신동헌, 박기정 등 많은 작가가 한국만화의 ‘황금시대’(주: 미국에서, 만화가 질적·양적·산업적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여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던 1930~195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를 지칭하는 용어인 ‘Golden Age’에서 차용했음)를 시작했다. 잡지 《만화세계》를 내던 출판사인 만화세계사는 1955년부터 200여 페이지짜리 고급 장정을 한 판본으로 큰 인기를 끌며 김종래의 〈눈물의 수평선〉등 히트작을 남겼다. 동시에 길거리 좌판에서도 서봉재의 〈밀림의 왕자〉(일본만화 〈소년 케니아〉의 도작) 등을 통해서 만화가 대중에게 크게 각광받았다. 하지만 경제사정의 악화로 인하여 서점용 고급 판형은 점차 시장성을 잃어 버리고, 1958년에는 책을 빌려 보는 ‘대본소’라는 유통구조가 들어섰다.

초창기의 대본소는 많은 만화를 적은 비용으로 볼 수 있게 하는 효용을 지니고 있었고, 덕분에 더욱 많아진 만화는 더욱 많아진 만화인구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그 속에서 한국만화는 극화체 만화, 만화체 만화, 순정만화라는 큰 줄기 아래에서 다양한 장르로 분화할 수 있었고, 한국적 감수성 위에서 일본의 드라마 만화, 미국의 슈퍼히어로 만화, 유럽의 모험물 등이 영향을 끼치며 골고루 유입되어 박기당, 엄희자, 산호, 신동우 등 기라성 같은 작가가 그 기세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대본소 체제만으로는 시장이 정상적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이은 1961년 사전심사 도입과 1966년의 대본소 유통 독점화로 이어져서 한국만화의 짧았던 황금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린다.

1960∼1970년대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대본소 만화는 질적인 급락을 계속했다.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작가군은 공장제로 변해 가는 작업환경으로 인해 창작의 열기가 점차 식어 가면서 대본소 시스템에서 데뷔한 일련의 작가군과 세대적으로 단절되었다. 당시 질적 성장을 거듭하던 일본만화에 대한 도작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출판사 및 유통사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만화는 ‘무조건 많이 만들면 되는’ 공산품 취급을 받기에 이르렀다. 작가의 권리도, 작품의 수준도, 산업적 활로도 가히 ‘암흑기’라는 표현이 적합한데, 이 시기는 임창 등을 주축으로 한 ‘반합동연합’ 운동으로 대본소 독점체제가 깨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성인만화와 명랑만화의 성장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한국만화는 성인만화와 명랑만화라는 두 갈래 길에서 몰래(?)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1972년 창간된 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가 고우영의 〈임꺽정〉을 시작했고, 이것은 일간지와 성인만화의 성공적인 랑데부를 이끌어냈다. 굵직한 드라마의 연재극화(방학기의 〈바리데기〉 등)와 잡담적 사변과 줄거리가 수시로 교차하여 마치 이야기꾼의 재담을 직접 듣고 있는 듯한 ‘노가리 만화’(고우영의 〈삼국지〉 등)가 그 대표적인 장르다. 이외에도 박수동의 기념비적 작품 〈고인돌〉이 1974년부터 연재, 성에 관한 담론을 풀어나갔다. 또한 1964년 창간된 《새소년》 등의 어린이 종합잡지를 중심으로 명랑만화 장르가 꽃피었다. 이들은 일상적인 풍경과 상황 속에서 슬랩스틱 코미디와 교훈을 이끌어 내는 만화체(주: 카툰화 정도가 강한 형상)의 이야기들이었는데, TV의 ‘시트콤’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중 특히 길창덕의 〈꺼벙이〉, 윤승운의 〈요철 발명왕〉 등은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 물론 어린이 잡지에서 명랑만화가 가장 인기 있는 장르이기는 했지만, 기존 SF나 모험물에 대한 관심 역시 이어졌다. 잡지 연재에서 시작해서, 후속편들을 문방구 유통망을 통한 단행본 단위의 직접 판매를 시도한 고유성의 SF물인 〈로보트 킹 연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시작한 1980년대가 문화, 특히 대중문화의 고도성장기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만화에서 그 첫 번째 조짐은 대본소에서부터 나왔다. 시대의 욕구를 잘 반영한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의 대성공은 장편 극화의 붐을 촉발했고, 박봉성, 고행석, 허영만 등 1980년대를 이끌어나간 굵직한 대본소 극화 작가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고도성장 사회에서 비극적인 도전을 반복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이후에 하나의 장르처럼 굳어져서, 유사한 스토리와 화풍을 계속 재생산해 나갔다. 두 번째 조짐은 《보물섬》의 창간이었다. 《보물섬》은 만화전문잡지를 표방하며 기존의 종합 어린이 오락지보다 더욱 적극적인 작가 및 작품군을 거느렸고,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특히 보물섬은 소년 취향 만화와 여성 취향 만화가 고루 섞여서, 양쪽 장르의 독자를 고루 만족시켰다. 엄희자/민애니로 대표되는 초창기 전성기가 지나간 이후 표면에서 잊혀졌다가, 동호회 등을 통해서 게토 속의(?) 성장을 계속하던 순정만화 장르 역시 1980년대 말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그리고 1988년 창간된 순정만화 전문지 《르네상스》를 통해서 그들의 암중모색의 성과를 유감없이 떨쳤다. 김진/김혜린 등으로 대표되는 장쾌한 대하서사극은 순정만화 특유의 감성과 드라마 구조가 결합하여 걸작을 탄생시켰고, 강경옥 등으로 대표되는 섬세한 일상과 감정표현은 맹위를 떨쳤다.

1980년대의 세 번째 발전은 만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이었다. 만화의 대중친화력과 강력한 표현력에 매력을 느낀 문학이나 민중미술계의 전문적인 관심이 만화 영역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서 사회참여의식과 실험성이 강한 작가주의적 작품 경향들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1987년 창간된 《만화광장》은 그러한 움직임의 정점이었는데, 이론적 논의들과 작가의식이 강한 작품들이 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아예 사회운동의 일선에서 활동해 온 ‘민중만화’도 효과적인 선동수단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1980년대 전성기의 마지막은, 1988년 창간된 주간지 《아이큐 점프》가 열었다. 일본식의 기업화된 잡지관리시스템을 수입하고, 주간지라는 빠른 스케줄 및 중고생층이라는 대상 연령층 공략 등은 한국에서는 대단히 신선한 시도였고, 이현세/야설록의 〈아마게돈〉, 이상무의 〈제4지대〉 등 대담한 시도가 히트로 이어졌다. 하지만 주요 인기 작품이 연재종료되면서, 잡지사는 떨어져 가는 인기를 만회하기 위하여 새로운 작가 발굴과 시스템 개혁보다는 너무도 손쉬운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1989년 말, 결국 일본의 ‘검증된 초히트작’인 〈드래곤볼〉이 한국 라이선스 연재를 시작하면서 한국만화는 1990년대를 맞이했다.

1990년도 《스포츠 조선》 창간으로 인하여 스포츠 신문들은 만화를 통한 독자확보경쟁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아이큐점프》와 비슷한 컨셉트의 소년지인 《소년챔프》 창간이 이어지면서 한국만화의 판은 일순간 희망찬 성장을 보여 주는 듯했다. 이전의 도제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지면을 얻을 수 없었을 법한 새로운 감수성의 젊은 세대들이 속속 데뷔했고, 해적판으로 유입된 다양한 일본만화는 만화의 더욱 넓은 세계를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그 와중에 〈어쩐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저녁〉, 〈마이러브〉등, 소년만화 장르의 일부 인기작들이 단행본 누계 판매 100만부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라면 유익한 자극도 도를 넘어서면 독이 된다. 1994년을 기점으로 한국만화의 양대 메이저 출판사인 서울문화사와 대원은 대대적인 만화사업 확장을 꾀했는데, 연령별로 분화된 다양한 잡지 창간과 일본 만화 단행본 라이선스 수입 강화가 주요 요지였다. 1990년대 중후반 일련의 만화탄압사태를 맞을 때마다 이들은 질적인 개발보다 양적인 확대를 통해서 돌파하려 했고, 급기야는 일본만화 라이선스 경쟁에 들어갔다. 그 결과 지나치게 많은 종수가 좁은 시장을 강타했고, 시장은 기형적으로 왜곡되어 현재까지 그 문제를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쉽게’ 데뷔한 새로운 세대의 신인작가와 기존 작가군 간에는 명확한 세대적 단절이 이루어졌고, 마치 10대 댄스음악 위주의 가요계처럼 주류만화가 특정 장르, 경향성 위주로 집중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한국만화의 새로운 가능성

하지만 결국 문제를 풀어 나가는 열쇠를 쥔 것은 작가와 작품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1990년대의 작가들은 그들의 만화에 대한 열정을 풀어 나갔다. ‘구태의연한’ 기존 장르의 재해석이 그중 하나다. 1980년대 대본소 극화의 유산을 이어받은 드라마틱한 스토리 구조와 비정한 사회에 대한 동시대적인 묘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윤태호의 〈YAHOO〉, 대본소 무협만화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그 속에 존재론적인 철학을 시간이 정지한 듯한 연출 방식 속에 묘사하는 〈남자이야기〉의 권가야 등도 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던 명랑만화의 유산 역시, 1990년대 말에 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부활했다. 이들은 명랑만화에 날카로운 시사성과 소소한 일상성을 더욱 보강했다. 일간지에 연재되는 홍승우의 〈비빔툰〉, 김진태의 〈시민쾌걸〉, 정연식의 〈또디〉 등이 백미다. 과격한 종류의 실험은 주류만화의 방식에 전면적인 반기를 드는 진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일련의 젊은 작가들이 스스로 ‘언더그라운드’라고 선언하며 기존 지면에서는 담아낼 수 없었던 다양한 표현적/메시지적 실험을 담아 낸 작품들로 가득한 새로운 잡지들을 만들어 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두 잡지가 바로 《화끈》과 《히스테리》였는데, 이들 잡지를 중심으로 작가집단이 형성되었다. 두 진영 모두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웹진과 종이잡지를 넘나들며 지속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젊은 만화의 확장은, 여성들의 힘에서 나오고 있다. 이진경의 〈사춘기〉, 한혜연의 〈금지된 사랑〉 등은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또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가득 찬 작품들이다. 1980년대 중반 이래로 순정만화의 대가들이 택한 길이었던 드라마틱한 대하서사시나 일상에 대한 소소한 탐구라는 우회로 없이,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현실을 발언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비단 이러한 페미니즘적 메시지 차원뿐만 아니라, 기존 틀을 크게 뛰어넘는 독특한 미학적 표현의 확장 역시 여성작가들이 선두에 서 있다. 다양한 시각적 스타일의 이애림, 현실적인 주제의식과 과장된 만화적 비유를 일삼는 최인선 등 수많은 작가 활동중이다.

한국에서의 젊은 만화의 또 다른 중요한 경향성은, 인터넷을 위시한 정보통신의 활용이다. 언더그라운드 성향 만화웹진 《화끈》의 편집장이기도 한 모해규는 플래시를 활용한 만화, 그리고 핸드폰으로 다운받을 수 있는 모바일 코믹 스트립 분야의 개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아니면 〈스노캣〉(http://www.snowcat.co.kr)의 홈페이지처럼, 적극적으로 하나의 홈페이지를 통째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아이완의 〈점핑〉 시리즈처럼 온라인의 상호작용적 공간에서 새로운 만화독서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다.

독립 출판, 자비 출판이 늘어나는 것도 최근의 공통된 경향이다.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 젊은 작가들이, 기존의 굳어진 생산방식과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형 출판사들에게 자신의 작품과 작가로서의 미래를 의지하지 않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만화가들에게 가장 돋보이는 특성은 바로 앞으로의 가능성들이다. 2003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는 한국만화특별전이 열렸다. 이전에는 서구에 거의 그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던 한국만화가 처음 선보인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만화관계자들은 특히 젊은 작가들의 에너지와 다양한 감수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들과의 교류를 희망했다. 역사전을 통해서 기존의 명작들을 보는 것은 그들에게는 박물관적 즐거움일 따름이지만, 젊고 현재적인 에너지를 보면서 그들은 이 작가들과 함께 새로운 만화를 만들어 보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들의 활약에 따라서, 만화는 더욱 활발하게 새로운 변종들을 낳아가며 한 단계 새로운 진화를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독자의 시각에서, 그 순간이 너무나도 기대된다.

 

— 2003. Copyleft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 개작불허/영리불허 —

타자의 눈, 우리 모습 – <새댁 요코짱...>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흔히 ‘타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들이 쉽게 지나치는 일상적인 습관들이 사실은 얼마나 전혀 일상적이지도, 당연하지도 않은지를 탐지해내는 능력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완전한 타인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거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우리들’의 생활을 깊숙하게 같이 겪고 느낄 수 있어야 섬세한 발견이 가능하니까. 따라서 타인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외부인은 아닌 미묘한 균형점 위에 있는 자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타자의 눈이다.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의 주인공인 ‘요코짱’은 앞서 말한 그 중간지점에 서있는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중국유학 도중 만난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살게된 작가가 이곳에서 겪은 여러 가지 신기한 일상을 짧은 호흡의 에피소드로 구성한 만화다. 대충 그린 주인공이라든지 잡담식 전개 등 부담없는 연출에, 일본어에 한글 자막 입히기 등의 기법 덕분에 평범한 일본사람이 일상적 수다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감상할 수 있다. 버스를 타며 다른 아줌마들과 경쟁하기, 한국식 가족관계에서 자리 자리잡기… 사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아줌마들의 에너지에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더욱이 그것을 은근히 부러움 섞인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것도 그리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아줌마 사회에서 아줌마가 되어가는 모습을 웃으면서 자랑하는 모습은 남모를 재미를 준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네 아줌마들이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인정많다는 것은 어차피 우리들도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요코짱의 이야기로 들으면 더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일까? 간단하다. 타자의 눈이 주는 진정한 재미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남’이 확인해주었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의 입을 통해서,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느끼고 있던 바가 맞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심정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요코짱이 묘사하는 한국 아줌마들의 오늘날 모습들에 즐거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렇게 묘사해주고 있는 요코짱이 ‘타자’라는 사실에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요코짱은 한국인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면 안되고, 매번 오해에 부딪혀주어야만 한다. 요코짱이 ‘우리’가 되면 매력을 잃어버릴테니까.

세계화되었다고 자평하면서도, 실제로는 타자들이 타자로 남아있어주기를 바라는 은근한 폐쇄성이 아직 공존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요코짱의 만화일기가 히트를 치는 2000년대 한국, 우리들의 풍속도다.

(글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6. 18]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토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