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으뜸과 버금 0503]

명랑하면 강하다 – <요츠바랑!>

늦어도 80년대에 만화를 즐겨 본 세대까지는, 명랑만화라는 장르를 기억한다. 순진발랄한 주인공들, 특히 아동들이 벌이는 유쾌한 모험담 말이다. 명랑만화는 ‘전체관람가’ 만화의 대명사격인 장르였으며, 그 내용은 이상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가 절반 정도, 그리고 그냥 일상적인 소시민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자그마한 일들에서 벌어지는 소동이 나머지 절반이다. 전자의 경우는 어차피 모험물로 흡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면, 후자야 말로 정말 별 것 아니면서도 친근한 폭소를 띄위줄 수 있는 명랑만화 본연의 필살기인 셈이다. 하지만 점점 자극적인 소재나 서정성 과잉의 강한 맛에 길들여져온 90년대 이후의 만화판도 속에서 유감스럽게도 이런 감수성은 묻혀져만 갔다.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작/대원CI/3권 발매중)은 여러모로 명랑만화의 이런 발상을 떠오르게 하는 유쾌한 최근 작품이다. 주인공은 6살난 꼬마 여자아이 ‘요츠바’. ‘네잎’이라는 이름풀이 그대로 항상 머리를 4개의 꽁지로 묶고 다니고 커다란 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캐릭터다. 그리고 전체 줄거리는 그냥 이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이 동네에서 살면서 겪는 하루하루 일상, 그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즐거움들이다. 놀랍게도, 여기에는 별다른 극적인 사건이나 충격적인 설정, 감정의 미묘한 애증, 또는 반대로 (속칭 ‘에세이툰’ 계열에서 종종 드러나는 폐단인) 순수함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마저 없다. ‘요츠바’는 이런 장르에서 애용되는 위악적인 애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의미한 순진함의 상징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즐긴다는 점에서 약간 특이한, 그냥 6살 아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하게도, 그게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동물원 가서 동물들 구경하면서 장난치는 이야기가 재밌고, 축제에 놀러가서 아빠가 놀려주려고 숨어버려서 길을 잃은 줄 알고 우는 것이 재밌다.

도대체 그런 게 무슨 재미냐고 약간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니는 재미의 상당부분은 결국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요츠바랑!>의 작가 아즈마 키요히코는 이미 전작인 <아즈망가 대왕>에서 연애이야기도 복잡한 애증관계도 엽기감수성도 사용하지 않고, 뒤집어지게 웃기는 여자고교생 코미디를 만든 전력이 있다. 그리고 그 감수성을 더욱 다듬어낸 것이 바로 <요츠바랑!>이다. 일부러 한 템포 슬쩍 늦게 터트리는 변박자 리듬의 개그 호흡, 과잉자극을 배제하는 단촐하고 귀여운 그림체, 칸이나 페이지 구성에서 다양한 만화적 시각연출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 등이 훌륭하게 결합하고 있다(물론 의도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의도치 않은 성공을 거두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도 여전히 성장중인 작가인지 점점 이야기가 능숙해지는 모습이 엿보인다). 즉, 간단히 말해서, 만화로서 최선을 다해서 강력한 재미를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일본문화 일반이나 90년대 이후 일본만화 특유의 캐릭터 코드들을 능동적으로 재해석하는 부분들도 여럿 있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일본식 미소녀만화 취급을 받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심심한 이야기에서 오히려 신선한 재미가 나올 수 있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렇게 꺼벙이를 즐겼고 심술통이 재밌었고 도깨비감투를 읽었다는 기억이 슬슬 돌아온다. 그렇게, <요츠바랑!>의 재미는 낮설지 않은 것이다. 

[으뜸과 버금 20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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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그림자를 그리며 세상에 자리잡기 – <그림자 소묘>[으뜸과 버금 0502]

만화는 자유로운 표현방식이다. 그림과 글을 거리낌 없이 섞어 쓰며, 그것도 그런 그림들을 여러 개를 마음대로 공간 속에 분할하고 흩뿌리고 붙여넣는다. 세밀한 그림과 대충 그린 여백 넘치는 작대기 형상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조화를 이루도록 지휘감독이 행해질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 바로, 이야기의 효과적인 전달이다. 만화의 생명은 이야기로서의 재미(말하자면 길어지겠지만, 여기서는 우선 ‘독자를 끌어들여서 작품을 끝까지 만족스럽게 읽도록 만드는 힘’ 정도로 적당히 규정하고 넘어가자)이고, 그것이 확보되었을 때 비로소 그 속에 담긴 정서와 메시지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유대감을 만들어 깊은 울림을 준다. 이야기를 든든한 핵심축으로 놓고, 그것을 가장 확실하고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만화의 매력이다.

<그림자 소묘>(김인/새만화책)라는 작품이 소리소문 없이 출간되었다. 홍보는 기본적으로 출판사의 마케팅 역량 문제이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이 아무런 주목도 못받고 그냥 묻혀버리는 경우는 역시 언제라도 안타깝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시골에 살던 소녀가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다. 작품은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소녀가 서울에 올라와서 미술학원 강사와 친해지며 낯선 사람들이 만든 그 공간 속에 자신을 적응시키는 이야기, 후반부는 자신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다른 소녀가 주인공과의 상호교류를 통해서 비로소 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절묘하게 서로 연결되고 대칭되어, 세상과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따뜻하게 이야기한다.

<그림자 소묘>는 위에서 이야기한 만화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만화다. 사람의 존재감이란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을 미술의 소묘에서 이야기하는 그림자 개념으로 치환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발상이 신선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 속에 피터팬과 웬디의 그림자 소동을 모티브로 섞어넣어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돋구는 능숙한 구성 솜씨가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위해서 다양한 시각기법들이 총동원된다. 사실 주류 상업만화들이 펜과 잉크로 가는 것에 비해서 콘테와 붓으로 그렸다느니 하는 것은 솔직히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화제 거리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콘테 질감의 소묘, 2차원적 형상과 여백의 붓선들이  각각 정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의 재미를 확대시켜줄 수 있는 그 순간에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밀도의 소묘 그림체로 묘사되는 인물들, 존재감을 잃었기에 하얀 여백 면과 붓선 만으로 형상화된 소녀. 현실의 거리와 그림으로 그려진 지도, 그리고 그 두가지가 섞여들어가면서 만드는 풍경. 따뜻하고 탄탄한 이야기를 돋보이게 만드는 멋진 ‘만화적’ 표현이다.

물론, 그림 질감의 밀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서 주류 만화에만 너무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약점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대중문화로서 즐기려는 작품에 대해서는 항상 작품으로 들어갈 진입장벽이 무척 낮기를 바라기 때문이다(이런 경향을 비웃기 위해서,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첫 챕터를 일부러 집요할 정도로 난해하게 썼다). 특히 만화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생명력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면 언젠가는 결국 독자에게 도달하고 만다. <그림자 소묘>가 그런 작품이 되어줘야 한다고 믿는다.

[으뜸과 버금 2005. 02.]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성인과 어른의 간극에서 하는 재담 – <다르면서 같은> [기획회의0502]

꼭 자서전 차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작품의 생동감 확보라는 측면에서 참 편리하다. 특히 성장이라는 모티브를 가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반대로, 자칫 잘못하면 자아성찰이라는 무게에 어깨가 짓눌려서 지나친 자기연민의 어두운 나락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유머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장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 무척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다. 하지만 한국계 미국 작가인 데릭 커크 킴(한국명 김지훈)의 작품집 <다르면서 같은>을 읽다보면, 그런 어려움이 전혀 실감이 가지 않는다. 그가 풀어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쫒아가다 보면, 유머감각과 자기연민은 애초부터 너무나도 친한 파트너처럼 느껴진다.

<다르면서 같은>은 원래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서 연재한 같은 제목의 중편과, 기타 짦막한 단편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개인 출판으로 처음 발간되었다가, 대형 출판사에 발탁되어 다시 출간된 후 그 해 북미지역의 대표적인 3대 만화상인 하비, 아이스너, 이그나츠에서 신인상을 모조리 휩쓴 화려한 데뷔를 거두었다. 이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가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표제작인 ‘다르면서 같은’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 작품은 20대 후반을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인 주인공 사이먼과 그의 친한 친구이자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인 낸시가 어느 주말에 한 낯선 남자를 찾기 위해 벌이는 작은 모험(?)담이 줄거리인데, 사람과 사람의 만남,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섬세한 집착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어떤 순간에도 낙천주의에 빠지지도, 유머감각을 잃어버리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감각이 이 모든 것의 척추를 이루어주고 있다.

한국계라고 해서 왠지 뻔한 기대를 가지고 있을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은 옛 TV시리즈물 의 이상한 이국 공간이 아니라 그냥 미국이다. 정체성과 관련된 고민이 인위적으로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민족주의의 차원이 아니라 인종적 출신 성분의 문제다. 이들의 생활은 ‘교포’가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인 것이다. 좋은 예는 사이먼과 낸시가 슈퍼마켓에서 오리엔탈 맛이라고 쓰여진 라면을 놓고 펼치는 짧은 만담대화인데, 미국사회가 아시아계에 대해서 가지는 생활화된 편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무척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여하튼, 결국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성장은 추상적인 정체성을 찾기 위한 애매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사람들과 같이 살아나가기 위한 삶의 지혜를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에는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철없이 방황할 시기는 이미 지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활에 찌들고 굳어버리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이기 때문이다. 법적인 성인이지만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는 않은 시기. 장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지는 않지만 직장은 있고, 결혼에 진지하게 목매이기는 아직 싫지만 고등학교 동창 녀석 가운데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시기인 것이다.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조금씩 성장을 이루어내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성장통과 자기연민적 성찰은 결코 과잉된 낭만으로 무겁게 짓누르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일하며 취미로 만화나 그리는(!) 자기연민으로 가득한 주인공일지라도 삶의 무게에 망가지지 않도록 하는 이유는, 바로 수다다. 혼자 독백으로 중얼거리는 일방향 뱉어내기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고민은 바로 그 속에서 수정되거나 부정되고, 때로는 북돋아진다. 시시한 고민, 깊은 성찰, 실없는 농담 그 모든 것이 박진감 넘치는 수다 속에서 펼쳐진다. 마치 우디 앨런의 코미디 영화를 연상시키는 자아몰입형 주인공과 주변 캐릭터들의 화려한 재담이 촘촘히 수놓아지면서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런 모티브들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만화의 표현적인 속성들을 120%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대화가 아닌 ‘수다’의 박진감 넘치는 과정을 이토록 명쾌하게 표현하는 것의 일등공신은 칸 안팎을 넘실대며 서로 꼬이고 연결되어 있는 말풍선들이다. 대화하는 주인공들은 서로 말허리를 끊으며, 서로의 말꼬리를 부여잡고 비꼬고, 그 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 과정이 말풍선이라는 장치 속에서 완전히 시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급격한 시점 전환과 긴 응시를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안정감 있는 칸 연출이 결합하여, 더욱 대화의 박진감이 깊이를 더한다. 그림체 역시 인종적 차이나 개별적인 표정을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는 세밀함과, 만화적 여유를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약호화된 그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내고 있다. 4칸 이상 가는 미국만화를 볼 때 한국의 독자들이 흔히 느끼곤 했던 필체나 문법에 대한 거부감은 적어도 이 작품을 읽을 때는 벗어던져도 좋다.

사실 자신이 직접 발굴해서 번역 소개한 책에 대한 리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겸연쩍은 일이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작품 자체의 우수성이 개인적 쑥스러움을 가볍게 넘어서줄 만한 힘이 있다. 물론 신인 작품 모음집이 첫술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실제로 표제작인 ‘다르면서 같은’ 이외의 단편들의 수준은 고르다고 하기 힘들다. 성찰의 무게감에 짓눌린 자전적 초기 작품들도 있고, 너무나 날 것 그대로의 거친 풍자 때문에 김이 빠지는 것도 있다. 그에 비해서 작가가 겪은 한국에서의 일화를 소개한 단편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주는 은근한 미소는 아마도 각별할 것이고, ‘올리버 픽’ 같은 짜증날 정도로 자기연민의 극단을 달리는 이야기들에 매니악한 재미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인의 첫 단편모음집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볼 때 그 정도의 들쑥날쑥함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르면서 같은>은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자기연민에 관한 재담이다. 그것을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나간 표제작, 또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시도를 하고 있는 여타 단편들이 어울려서 각각 다르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르고도 같은, 다르기에 같은, 다르다는 점이 바로 같은 사람들의 관계맺음 – 사실 그것이 우리들의 삶 그 자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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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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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생활 (제3회)[경향신문 05/01/28]

!@#… 경향신문 만화섹션이 폐간되어버리는 바람에 공중에 떠버린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연재속도와는 상관 없이 빠른 템포로 한 100회 분량정도 만들고 해설을 붙여서 성인 대상 영어학습 수첩을 만들 계획이었음. -_-; 앞으로도 틈틈이 원고는 쌓아갈까 해보고는 있는데, 어찌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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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함의 승리 – <돌격! 크로마티 고교> [기획회의 050205]

!@#… 며칠간 운나쁘게도 내 블로그 업/다운/수정이 모조리 에러로 먹통이 되어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정상가동(고객센터에 문의메일 보냈었으나 물론 답변이나 해명은 없음… 역시나 한 불친절 하는 네이버의 위력).

!@#… 지난호 기획회의 원고, 크로마티 고교. 우연히도 <두고보자> 동료이자 만담 라이벌/파트너인 김태권님도 <네트워커>에 연재중이신 칼럼 지난호에서 똑같은 작품을 다루었음. 그것도 하필이면 마찬가지로 개그의 문법에 대한 걸로…;; 음 무서운 일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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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함의 승리 – <돌격! 크로마티 고교>(노나카 에이지/서울문화사)

세상에서 가장 힘든 행위가 바로 남을 웃기는 것이다. 하물며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웃기는 것이라면 더더욱 압박을 받을 일이다. 특히 상대방들의 기대수준이 높을 수록 더욱 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개그 만화는 최악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유머 기법을 고도로 발달시켜온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이미 수많은 웃음의 공식과 코드들에 식상하리만치 익숙해져버린 독자들을 만족시키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야심찬 첫단추를 꿰었다가도 아이디어 고갈에 따라서 얄팍한 패러디에 의존하다가 결국 단명해버리는 작품들을 얼마나 많이 목격했던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확실한 반전효과를 연마하거나, 획기적인 소재를 불러내고는 한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허를 찌르기 위해, 극단적일 정도의 무의미함과 뻔한 소재를 뻔뻔하리만치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를 쓴다. 상식에서 어긋남을 극단으로 밀고가서, 완벽하게 부조리하고 황당한(매니아층에서는 흔히 ‘아스트랄’이라고 일컫어지는) 요소들이 포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일상적이고 뻔한 생활세계에 난데없이 그런 부조리한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집어넣음으로써 강렬한 대비효과와 함께 당혹스러운 악취미성 웃음을 터트리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황당한 괴리에 질려버려서 그냥 책장을 덮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벽’을 넘어서는 자에게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는 웃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돌격! 크로마티 고교>(노나카 에이지/서울문화사. 4권 출간중)는 최근 이러한 계열의 개그만화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줄거리만으로 요약한다면, 무척 단순하다. 카미야마라는 모범생이, 실수로 크로마티 고교라는 깡패 학교에 진학해서 그곳의 여러 인간군상들 틈새에서 일상적인 학창생활을 보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정과 성장의 모티브 따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고, 불량아 집단이라는 설정 역시 양아치와 권력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단지 완전히 상식을 벗어난 괴짜 캐릭터들을 도입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싸움을 하고 세력다툼을 하기 위한 불량아가 아니라, 분위기는 잔뜩 잡지만 사실은 엄청난 바보인 괴짜들이라는 말이다. 그냥 성격이 괴짜라든지 하는 정도의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학생이라고 볼 수 없는 콧수염 아저씨, 진짜 고릴라, 로봇, 복면 레슬러가 태연하게 학생으로서 등교하고 다닌다. 학원 폭력물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끔 이쪽 학교의 누군가가 상대 학교에 납치당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깡패들이기 때문에 별로 불쌍하지도, 분노할 여지도 없다. 심지어 유일하게 ‘범생이’라고 설정되어 있는 주인공 카미야마마저도 실상 하는 짓을 보면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는 그 어떤 깡패보다도 더욱 악랄하다. 정작 그림체는 거친 선의 극화로 전형적인 조직폭력물을 연상시키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상식을 벗어던지지 않고는 도저히 즐길 수 없는 과격한 개그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별다른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냥 수학여행도 가고, 학교도 다니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악플에 스트레스도 받는, 그렇고 그런 일상밖에 없다. 아니 오히려, 이 만화는 적극적으로 그 시시함을 스스로 강조하기까지 한다. 등장인물들의 실제 대화를 통해서, 사실 원래 현실이라는 것은 별 것 없고 극적인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라고 작중에서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다! 막나가는 허풍을 핵심무기로 하는 개그만화라는 장르에 속해있으면서, 오히려 그 점을 스스로 지적하고 비웃어버릴 정도로 자학적인 정서가 있는 셈이다. 이런 극단적인 뻔뻔함을 처음 접할 때는 당혹감이, 두 세 번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슬슬 어이없는 웃음으로 바뀐다.

연출방식 역시 이런 패턴에 맞추어 짧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결코 복선이나 중층적인 서술을 사용하지 않고, 아무리 당혹스럽고 황당한 전개라고 할지라도 우선 벌여놓고 보는 것이다. 언제라도 갑자기 다음 칸, 다음 페이지에 외계에서 운석이 떨어져서 학교 건물을 덥치더라도 이상하지 않고, 말을 타고 학교에 달려들어와도 태연자약하다. 특별히 결정적인 개그에 앞서서 반전효과를 위해 평온하고 정상적인 정서를 강조하는 연출조차도 왠만하면 그냥 배제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도 아무리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대부분의 인물들이 그냥 납득해버린다; 엄청난 바보들이니까 말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림체를 통한 시각표현 역시 조금도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막무가내 부조리 개그 분야의 최고 모범사례 작품인 <멋지다 마사루>(우스타 쿄스케 작)에서조차 결정적인 임팩트가 필요한 순간에 그림체의 밀도를 급격하게 높이거나 낮추는 등 상당히 잘 계산된 시각연출을 보여주고 있는데, <돌격!크로마티 고교>는 그것마저도 무시한다. 마치 무표정하게 사랑의 노래와 저주의 폭언을 동시에 퍼붓는 사람마냥, 이 작품은 너무나 균일하게 진행되기에 더욱 더 그 속에 담긴 부조리한 개그요소들이 더욱 돋보인다.

모든 개그만화의 숙명인 ‘독자의 익숙해짐’이다. 독자라는 존재들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서, 어떤 새롭고 과격한 개그라고 할지라도 어느 틈에 익숙해져서 더 새롭고 강한 자극을 찾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식상해지는 것이다. <돌격!크로마티 고교>는 오히려 처음부터 반복과 지리멸렬, 황당함과 충격효과를 마구 남발함으로써 뻔뻔하게 그 점을 정면돌파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결과 2002년 고단샤 만화상 수상을 통해서 대중과 업계의 높은 평가를 증명 받았고, 애니메이션 시리즈 방영에 이어 심지어 최근 실사영화까지 제작되었다. 남을 웃음으로 인도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지만, 결국 개성과 뚝심으로 성공에 도달하는 이런 작품들이 나와주고 있기에 여전히 개그만화는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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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