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검찰이 될 때

!@#… 나는 누가 미국을 언론과 사상의 자유의 나라니 어쩌니 하는 순진무구 이단옆차기하는 소리를 하면 닭살과 짜증이 34.5%대 65.5% 비율로 마구 솟아난다. 오히려 민간에 의한 통제와 우민 정치, 상업화에 의한 의식마비의 극단을 달리는 사상최악의 사회 통치구조의 모범적 사례라는 입장에 더 가깝다. 계속해서 나의 이런 편향적인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켜주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이번 건은 혼자 보고 있기 아까울 정도다.

!@#… 원문은 밑에. 에에… 결론만 풀어쓰자면, 부모들이 검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법안이 캘리포니아에서 상정되고 있다는 거다. 즉 부모들이, 어떤 매체가 지들 생각하기에 미성년자에게 유해하고 또한 유통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연방법원에 고소할 수 있다는 것. 한국으로 번안해서 설명하자면, 검찰만 ‘천국의 신화’ 를 외설혐의로 고소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던 부모 누구라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의 청소년 보호법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포괄적인 표현/유통 검열 시스템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수구 꼴통들이 사회정의로 받아들여지는 현재 미국의 메인스트림 상황에서, 과연 이 법안이 성공적으로 저지될 수 있을까? 

!@#… 타산지석,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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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bldf.org/pr/archives/000181.shtml

May 18, 2004

New Censorship Bill Turns Parents into Prosecutors

On April 28, California Congressman Duncan Hunter (R) introduced legislation that could “turn parents into prosecuting attorneys fighting a wave of obscenity,” the representative told Family.org. H.B. 4239, also called the “Parents’ Empowerment Act,” would allow the parent or guardian of a minor to sue in federal court anyone who knowingly disseminates any media containing “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if the material is distributed in a way that “a reasonable person can expect a substantial number of minors to be exposed to the material and the minor, as a result to exposure to the material, is likely to suffer personal or emotional injury or injury to mental or moral welfare.” The bill has been referred to the House Judiciary Committee.

On April 28, California Congressman Duncan Hunter (R) introduced legislation that could “turn parents into prosecuting attorneys fighting a wave of obscenity,” the representative told Family.org.H.B. 4239, also called the “Parents’ Empowerment Act,” would allow the parent or guardian of a minor to sue in federal court anyone who knowingly disseminates any media containing “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if the material is distributed in a way that “a reasonable person can expect a substantial number of minors to be exposed to the material and the minor, as a result to exposure to the material, is likely to suffer personal or emotional injury or injury to mental or moral welfare.” The bill has been referred to the House Judiciary Committee.The bill allows compensatory damages starting at no less than $10,000 for any instance in which a minor is exposed to “harmful to minors” entertainment products. The bill also allows that punitive damages and reasonable fees may be awarded to the prevailing party at the discretion of the court. The bill also seeks to strengthen the current test courts utilize in determining what is obscene material by providing a separate definition of obscenity specifically for children. It is an affirmative defense to action under this bill if a parent or guardian of the minor owned the material.

On April 28, California Congressman Duncan Hunter (R) introduced legislation that could “turn parents into prosecuting attorneys fighting a wave of obscenity,” the representative told Family.org.H.B. 4239, also called the “Parents’ Empowerment Act,” would allow the parent or guardian of a minor to sue in federal court anyone who knowingly disseminates any media containing “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if the material is distributed in a way that “a reasonable person can expect a substantial number of minors to be exposed to the material and the minor, as a result to exposure to the material, is likely to suffer personal or emotional injury or injury to mental or moral welfare.” The bill has been referred to the House Judiciary Committee.The bill allows compensatory damages starting at no less than $10,000 for any instance in which a minor is exposed to “harmful to minors” entertainment products. The bill also allows that punitive damages and reasonable fees may be awarded to the prevailing party at the discretion of the court. The bill also seeks to strengthen the current test courts utilize in determining what is obscene material by providing a separate definition of obscenity specifically for children. It is an affirmative defense to action under this bill if a parent or guardian of the minor owned the material.The bill is in its earliest stage, but if it passes, it will seriously threaten retailers, distributors, and publishers. Family.org talked to Hunter who said, “If the people who published (the material), published it in such a way that they could reasonably have expected children to access it, then the parents can receive an award of $10,000.”

“This bill is troubling on several levels,” explains CBLDF Director Charles Brownstein. “It appears to allow for civil actions against any, or every, member of the dissemination food chain, from the retailer to the distributor to the publisher, of work that an individual parent may object to. So any citizen, using their own sense of what is obscene or harmful to minors, can bring suit. Considering that comics still suffer the cultural and legal stigma of being perceived as a juvenile medium, this bill could become a dangerous weapon in the hands of an individual who walks into a comic book store and is shocked to find that comics offer much more than Archie and Superman.”

Hunter’s bill enjoys the support of several religious, family, and conservative legal groups including the Christian Coalition, the American Center for Law and Justice and the World Family Policy Center at Brigham Young University. Working closely with Media Coalition, the CBLDF will continue to monitor the progress of this bill.

The full text of the bill can be found here. You may also e-mail your representative or call the U.S. Capitol switchboard at 202-225-3121 to voice your concern about this bill to your representative.

 

옛날에 썼던 게시판 의사소통 관련 이야기…

!@#… 97-98년동안(그러니까, 무려 학부시절…그것도 군인 신분도 못벗어난 상태에서), PC통신 나우누리에 있던 심리학과 사이버 과방에 주말 연재(?) 칼럼을 끄적였던 적이 있다. 꽤 다방면의 주제를 종횡무진한 만담반 진담반의 물건. 비록 그 통신 공간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게시판 및 자료실 내용은 모두 백업해놓았던 덕택에 오랜만에 한번 다시 캡춰했던 것을 들춰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어이쿠… 정말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아이디어들이 마구 날라다니는구나… 라는 인상. 하지만 여러모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여러 세계관의 원형적인 모티브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어서 내심 푸훗하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런 것이 일기장의 효용일까?

…여튼 전에 언급했던 전자게시판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부분이 보이길래 살짝 퍼왔다. 당시 심리학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 상에서 익명 게시판을 중심으로 많은 트러블이 있었던 맥락에서 나온 질책성 글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순박하게 문제에 접근했구나, 라는 느낌. 머리가 마구 굵고 복잡해진 지금으로서는 꿈도 못꿀 명쾌한 도덕주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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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낙호] 까투리의 헛소리….(47)

올린이:서울심리(서울심리) 98/12/07 11:19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전략)

!@# … ‘게시판 의사소통’

현실세계의 심리과 과방에는 두 대의 컴퓨터, 랜 단말기가 있다. 그것도 나란히. 그 두 대를 잡고 서로 채팅을 하면 어떨까… “대화의 단절의 시작”이라 명명하기로 그냥 결정해버렸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대화를 단절하는 행위라. 생각해보니까 참 재미있군.

(아직까지의) 컴퓨터 통신이라는 매체, 그 중에서도 ‘게시판’ 이라는 물건은 참 신기하다. ‘글로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대가리가 커다란 인간들, 그 중에서도 ‘지식인’ 흉내를 자주 내는 대학생이라는 계급은 ‘논쟁’을 벌일 때 글이라는 매체로 해서 그 권위를 높이려는 ‘자기 위안 행위’를 자주 해왔다(게다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여러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는 자본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전례로서 대자보 문화, 집단 잡기장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보존성이라는 측면에서 – 따라서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게시판에 비길 바가 못된다. 물론 대중성이라는 말은 아이디라는 (유료!) 출입증의 필요성을 우선 논외로 할 때 말이다. 오랜 시간의 보존성과 접근장소의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한 번 재기된 화두는 오래오래 남는다. 한 인간이 어떤 안건에 대하여 대자보를 잔뜩 써서 벽에 붙였다. 좀 있다가 그 자리에 그에 반박하는 대자보가 붙는다. 좀 더 있으면 또 그에 대한 반론이 나와 붙는다. 몇번 후면 처음부터 관심깊게 쳐다본 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고는 청테이프 쪼가리가 엉겨있는 벽면이 짜증날 뿐이다. 대자보 논쟁의 단점, ‘중간에 끼어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집단 잡기장 문화는 어떤가. 가장 가까운 예로 ‘심동일기장’을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건 과방에 눌러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동일기장을 가지고 나가서 집에서, 독서실에서, 까페에서 떠오르는 자유로운 생각을 적을 수 있을까. 또한 그 수많은 악필들 속에서 필체가 아닌 순수한 내용만을 보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힘들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프린터로 뽑아서 일기장에 풀로 붙여놓는 것도 별로 보기가 안좋지…).

하지만 컴퓨터 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또다른 대안이 되어주었다. 게시판. 대자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정돈성. 심동일기장과 다를 바가 없는, 자유로운 ‘말’ 같은 ‘글’을 용납해줄 수 있는 공간. 아, 정녕 게시판은 꿈의 ‘논쟁’ 매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말이 되나. 매체의 특성을 한순간이라도 잊어버리면 그것은 바로 우리를 덮쳐온다.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모든 장점은 곧 그 단점이 된다. 보존성, 그에 따른 대중성이라는 것은 논쟁의 당사자들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논쟁을 노출시킨다는 것이고, 그것은 특히 ‘오해’라는 것과 결합될 때 꽤 일을 꼬이게 만든다. 글과 말의 결합. 말을 하듯이 글을 쓴다. 아니, 말이 곧 글로 남는다. 그 속에서 맥락의 부재, 맥락의 변화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말’로 하면 대화 당사자와 주변 관찰인물들의 직접적인 관계속에서 그 맥락을 새로이 조절해 나갈 수가 있지만, 그것이 ‘글’로 이루어질 경우 이는 훨씬 힘들고 느려진다. ‘듣다가 중간에 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간에, 얼마나 애초의 맥락에서 비껴나가든 간에 끝까지 들어주고 반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글실력으로 반박하는 것에 실패하면 논점은 상대방의 것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논쟁의 약육강식 논리는 ‘말’보다 ‘글’에서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되는 것이다.

또한, 게시판에서는 말을 하다가 글이라는 측면을 잊어버리며, 글을 쓰다가 말이라는 측면을 잊어버린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개입이 없는 한) 영.구.적.으로 남아서 (전혀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한적이 없는 이도 포함한) 모두에게 공개된다는 것, 말 그대로 그 문제가 당사자들간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가 된다는 것. 그 문제의 초점에 ‘개인’이 있다면? 간단히 ‘이지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했든 말았든 간에. 거기에 말을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글을 쓴다’는 생각만이 지배한다면 어떤 헛소리라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강제로 주입하는 행태까지 (…찔리는군) 생겨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 한둘쯤 바보 만들고 전체가 콩가루가 되는 것은 식은 죽먹기라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애초에 알아차린 초창기 통신인들은 엄격한 네티켓을 만들어냈다. ‘님’자 호칭과 극존칭의 사용, 다수의 권고에 의한 자진삭제, 네트상에서 생긴 문제들을 네트상에서 풀어서, 문제가 커짐을 공유한 모두에게 문제의 해결까지도 같이 공유하게 만들어주는 문화 등등.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통신인구가 폭발하면서 이는 거의 Recycle Bin으로 쳐넣어졌다 (그 대신 오히려 초창기에는 ‘장난’으로 했던 언어해체 – 어솨요, 안냐세요 같은 – 들에 장난이 아니게 집착한다… 마치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로 쓰면 바보라도 된다는 듯이). 그와 함께 통신은 점차 ‘잡스러워 졌다’. 통신은 애초에 의도한 ‘대화의 장’이 아닌, ‘자기 푸념의 장’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이다.

개인적 대화로서 맥락부터 파악을 하고, 아마도 개인적 대화로서 끝날 수 있었을 논점을 다짜고짜 공개적인 ‘게시판의 장’으로 끌고 나오는 것은, 특히 사고의 깊이, 글솜씨, 게다가 덤으로 해당 사회집단에서의 위치마저 손위인 인간이 손아래를 대하는 것일 경우는 그 자체로 이지메다. 그것을 온갖 인간들이 다 달려들어서 거들어주면 그건 바로 ‘왕따’다. 행동에, 발언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논점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그 인간이 더 좋고 싫고가 공개적인 발언이 되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격함’을 위장한 ‘무례함’은 그에 걸맞는 정중함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하지만 걸어온 시비에 대해서 정말로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굴한 짓이다. 자신을 해명하고 변호하며,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논쟁의 기본자세다. 상대가 나보다 좀 강하면 어떠한가. ‘학습된 무기력’ 탓이나 할 것인가. 그리고 토라져 있다가 ‘떠나버릴’ 텐가.

음… 너무 질책성으로 흘러가는군. 사실 이미 어쩌다가 이런 화두에 관해서 생각하고 말을 꺼내게 되었는지 너무나 뻔한데 말이다. 단지 문제가 나오고 그것이 풀어져나가는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감히 보기가 안좋았기에 한마디 뱉어보았다. 이런 노골적인 질책성 문건도 그냥 ‘헛소리’로 포장해서 내보내는 이 까투리도 매우 보기가 안좋지만 말이다… 어쩌겠어. 무책임한데 (정.말. 무책임하군…). 여하튼 아름다운 게시판을 보고싶다는 소망만은 ‘참소리’겠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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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게시 시스템에서의 언어 사용

!@#… 이런… 트랙백도 제대로 작동 안되는군. 네이버… 이게 무슨 블로그란 말이야!!! 뷁!!!

!@#… 아 뭐 여하튼. ‘연구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현실세계의 변화를 스스로 체험하고 즐기면서 사는 것에서 나오는 통찰력. 종종 그것은 학술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라든지, 완성된 논리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훌륭한 통찰과, 더 많은 깊은 생각을 위한 단서를 던져주는 수가 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글 말이다:

웹 게시 시스템에서의 언어 사용 (http://pocorall.net/v2/archives/000279.html)

!@#… 자, 이제 근거를 조사하고 이론을 세팅하고 방향성을 잡고 실용과 대안을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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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웹

!@#… 웹이라는 녀석은, 원래는 www 표준규약과 html 언어에 의하여 움직이도록 되어있다. 그냥 어떤 기술자가 짜잔~하고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합의에 의해서 표준안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대부분의 현대 테크놀로지가 그렇듯이).

…당근, 표준이라는 것은 약속이라는 말이고, 대개 약속은 어겨지기 마련이다. 표준안은 보통 너무 피상적이고 미약하며, 재빠른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지 못하고 굼뜨다. 새로 표준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방해물. 말이 이해가 안가면, 대략 이 나라의 ‘국회’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니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혹은 기타 자신이 속해있는 임의의 개판 일보직전의 조직을 한번 상기해보자.

…여하튼 그래서, 비록 표준안에 속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재주를 발휘한다고 하는 것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표준안의 호환성을 지키면서 부가기능을 첨가하는 정도면 좋은데, 종종 꽤 근본적인 부분까지도 건드리는 만행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새로운 기술적 성과를 새로운 공공 표준안으로서 추진하고 공개하기보다는 그냥 사익을 위해서 활용해버린다. 사실 이들은 표준안의 어기는 것으로서, 호환성 문제라든지 하는 것을 통해서 전체 시스템의 비효율화로 이어지든지, 아니면 MS처럼 미디어 공공재의 사유화라는 무시무시한 무공으로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왜 어떤 페이지들은 ‘MS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돌아가는지 고민해본 적 있는가?).

…더헉. 또 무거운 글이 되는군. 여튼 원래 하려던 말로 돌아가자. 속칭 “보이지 않는 웹”이라는 개념이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이 아니라, 우리 일상적인 인터넷 생활의 가장 현실적이고도 피부에 와닿는 개념이다. 무엇인고 하니, html을 기반으로 하는 표준적인 웹 검색엔진 시스템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인터넷 상의 정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검색엔진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정보를 통해서 물어물어 연결되어 찾지 않고서는 그 정보의 존재 자체도 모르게 된다는 말이다. 매초 매분마다 새로운 정보가 탄생하는 정보의 무한쓰레기통인 인터넷에서, 그건 꽤 치명적이다(라이코스에서 최초의 검색엔진을 발명하기 전의 구석기급 웹이 얼추 그런 모양새였다).

…이런 식이다.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사람들은 독자적인 데이터베이스 엔진을 만들어냈다. SQL이니 뭐니 하는 어차피 들어봤자 머리만 아픈 이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웹에서 구현을 하려면 html이라는 표준언어를 사용한 ‘웹페이지’라는 물건으로 그 정보를 변환시켜줘야 한다. 안그러면 창에 안뜨니까. 그래서 jsp니 asp니 php니, 좀 더 간단히는 cgi니 하는 것들이 마구 등장한다(이 이름들은 주소창에서 심심치 않게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즉 특정한 데이터를 임시적으로 html로 만들어서 당신들의 브라우저에 쏴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 데이터에 대한 그 모양 그대로의 html언어로 된 웹페이지 파일 자체 – 즉 물리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가상현실의 경지다, 이정도쯤 되고 보면.

…하지만 여기서 문제 발생. 실체(html 파일)가 없다보니, 그것을 웹 검색엔진은 검색해내지 못한다. 비록 대부분의 검색엔진은 웹크롤러라는 소프트웨어 로보트를 활용해서 인터넷 곳곳을 누비며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데이터베이스형 정보창고 앞에는 무용지물이다. “모든 가능한 독창적인 데이터베이스 엔진”에 대해서, “모든 가능한 정보 입력”을 다해보고, 그 결과 나오는 모든 가상의 html 페이지들을 등록해 놓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인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라고 자꾸 말하니까 못알아들으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게시판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국의 웹 상에 퍼져있는 수많은 게시판의 정보들은 거의 대부분 일반적인 웹 검색엔진으로 검색되지 않는다.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게시판 프로그램인 제로보드나 이지보드 등이, 실제로 html을 남기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엔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해당 게시판 내부에서 게시물 검색하는 것이야 물론 깔끔명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게시판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많은 주옥같은 정보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웹”이 되어버린다.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서는 검색이 안되는, 그래서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런 데이터가 된다는 것이다. 주소창 속의 것은 자고로 *.html로 끝나야 한다. 무슨 “…do?Redirect…20394#” 따위가 아니라.

…Movable Type로 대표되는 최근의 여러 블로그 엔진들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기존의 게시판들 마냥 자유롭게 작성하고 고칠 수 있으면서도, 실제로 html을 만들어서 저장해놓는다. 포털 서비스에서 해주는 맞춤형 블로그 중에서 생각하자면, 야후!블로그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엠파스나 네이버 블로그는 그런 해피한 녀석들이 아니다. 그냥 자체 엔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존의 게시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좀 더 사용하기가 편해졌다는 것만 제외하자면 말이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웹”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네이버 블로그의 자료 검색은 네이버 검색엔진에서나 돌아간다. 어디 외부 페이지에서 직접 링크를 한 게시물이 있어서, 그것을 타고 검색엔진의 로봇이 어느날밤 우연히 흘러들어와 기록을 남기고 가는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그런 치명적인 약점들을 감추기 위해서 이웃이 어쩌느니 일촌이 어쩌느니 하는 오만가지 꼼수를 쓴다.

!@#…인터넷은 네트워크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개방되고 가장 호환성있는 궁극의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웹”은 그 이상향이 실제로는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사례다. 사실은 별 쓸모도 없는 약간의 편의, 약간의 허영 때문에 네트워킹, 사람과 사람들의 진정한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목표로부터 하염없이 벗어나는 나약함이 싫다. 무엇보다, 그것을 알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미미한 기술적 숙련도만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기 네이버에 블로그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말이다. 정말로 열린 소통을 지향하는 네트워크, 그것을 목표로 하는 인터넷이 되었으면 좋겠다(그런데, 과연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원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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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차선감소 : 인터넷 거버넌스

 

 

!@#… 인터넷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있다. 인터넷의 물리적 인프라, 기술표준, 주소관리체계, 도메인 이름 부여, 컨텐츠에 대한 관리 체계 등등, 인터넷의 (메타)미디어적인 기능들을 조율하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주 상식적으로, 그런게 저절로 될 리가 없지 않는가?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신 당신, 구석에서 손들고 서있기를)  인터넷이 탈중심적이고 자유롭니 어쩌니 하는 것도, 누군가가 뒤에서 조율할 것은 다 조율하면서 의도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추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현상이고 주장이다. 미디어의 기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산물이 아닌, 결정의 산물이다. 누가 어떻게, 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모르면 알게 모르게 바보되기 쉽상이다.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말이다. 대략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2001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인터넷 거버넌스 연구센터(cigs)에 연구원으로 있을 때 만든 녀석이다; 지금 만들라고 하면 꽤나 또 고쳐야 할 개념들이 있을 듯) 

!@#… 뭐 여튼. 맨 위에 걸어놓은 저 그림. 인터넷이 점점 더 ‘넓어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점차 선택의 폭은 좁아질 것이라는 냉소를 담고자 사용하고픈 경고판이다. 전방 차선 감소. 그래, 인터넷의 앞날에는 앞으로 몇차선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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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론 형성의 공간: 전자게시판의 명암 [대학원 정보사회론 0206]

!@#… 대학원에서, ‘정보사회론’ 수업의 텀페이퍼로 전자게시판의 토론이 “어떻게 하면 개판이 되는지”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나중에 나 자신도 스스로 더 파볼 주제이기는 하지만, 혹시 또 누구 다른 사람이 이걸 보고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한번 올려본다. 떠오르면, capcold에게도 알려주시길 바람. 본문은 첨부파일.

(요약) 제목: 사이버 공론 형성의 공간: 전자게시판의 명암

“…즉, 인터넷이 하나의 ‘가능성’에서 ‘일상적인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서, 전자게시판 상에서 ‘제대로 된’ 토론이 가능한가에 대한 당초의 기대나 예상과는 다른 방향의 부정적인 기능들과 회의적인 발견들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자게시판이 합리적이고 열린 토론의 장으로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쉽지 않은 – 아니, ‘부정하고 싶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전자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어떠한 것들이 공공영역의 형성에 있어서 꼭 필요하며,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어떠한 요소들인지에 대한 개념화가 필요하다.”

1. 문제제기

2. 연구문제 및 연구방법

3. 전자 게시판에 관한 이론적 논의
 가.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나. 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의 문어적/구어적 속성에 대한 논의
 다. 게시판 커뮤니케이션의 Telelogic/dialogic 속성에 대한 논의
 라. 새로운 범주구분 제안: ‘턴-바이-턴’ 대 ‘실시간’

4. 게시판 토론의 양상 
 가. 참여자 측면: 참여자의 문제
 나. 참여자 측면: 정체성의 문제
 다. 언어속성의 측면: 구두 언어와 문자 언어 사이
 라. 토론진행의 측면: catch-up의 문제
  1) ‘양’의 문제
  2) 게시판의 기술적인 장점으로 인한 문제
 마. 토론진행의 측면: 진행 일반의 문제

5. 대안들 
 가. 양의 문제
 나. 토론관리자의 도입
 다. 토론 커뮤니케이션의 속성에 대한 인식 확장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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