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건담 시리즈 떼거지: 막투, 마라사이, 제타, 디오 [HGUC]

!@#… HGUC 제타 시리즈 이것저것. 만든지는 백만년전이지만, Z건담 극장판 완결편 dvd 발매를 목전에 두고 기념으로 내맘대로 사진 대방출. 사실 일본의 코어 건담팬들이 일년전쟁에 얽매이듯, 한국의 코어 건담팬은 사실상 제타를 하나의 원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기야 다이나믹 콩콩 사전류라든지, VHS 보급에 따른 무판권 비디오 대여라든지, 심지어 86년 소년중앙의 제타 건담 만화 연재 (후에는 소설로 전환) 까지, 적당한 설정이나 짝퉁 프라모델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서 받아들인 첫 건담인 셈이니까 그럴만도 하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제타의 모빌슈츠들은 다양성과 실험적 컨셉, 아름다움에 있어서 건담 시리즈의 사실상 정점이었다. 당대 최고의 젊은 크리에이터들과 중견들이 서로 경합하듯, 일년전쟁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파격을 추구하는 다양성 속에서 뭇 소년들을 셀레게 했다. 마찬가지의 괴물형 디자인이라고 할지라도 일년전쟁의 대충 만든 해산물들과 제타의 가쟈C나 큐베레이는 격이 달랐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해산물 시리즈도 무척 좋아하지만). 여튼 한마디로, 제타는 건프라 역사에 있어서 각별한 녀석들이고, 그것을 의식하듯 HGUC로 나온 제타 계열 모빌슈트들은 하나같이 환상의 프로포션과 품질을 자랑하곤 한다. 여기 소개하는 건 그 중 몇가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공감에 그치지 않는 사색 – 『사랑해』[기획회의 060615]

공감에 그치지 않는 사색 – 『사랑해』

김낙호(만화연구가)

2000년대 초, 짧은 감상주의적 에피소드로 구성되며, 둥글둥글한 그림체에 파스텔톤 색채를 입힌 만화 모음집이 크게 유행한 바 있다. 소위 ‘에세이툰’이라는 이름 하에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연재하고 출판물로 출간하여 선물용으로 판매되었는데, 그 중에는 큰 히트를 기록한 것도 더러 있다. 『파페포포 메모리즈』 같은 출판 시장의 밀리언셀러, 『광수생각』같이 일간지 지면이라는 매체력을 바탕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떨친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유행을 타는 사조가 더러 그렇듯, 이 경우 역시 인기나 대중적 판매량과는 별개로 어설픈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차피 주관적인 감상주의를 기치로 내거는 에세이툰에 있어서 함량미달이라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바로, 그럴듯한 감상적 어휘로 적당히 조합한 멘트 한마디를 말미에 던져놓고는 정서적 공감을 구할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경우는 예쁜 구경거리로서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정작 ‘나’라는 존재에게 어떤 실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대화와 생각을 전제하지 않는, 공감만으로 이루어진 폐쇄성의 단점이다.

그런데 그 무렵, 특이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조선에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전문 도박 사기꾼들의 인생역정을 선 굵은 드라마로 펼쳐내던 중견 작가 콤비가, 그것도 바로 그 연재 지면에서 젊은 인터넷 만화 신인들의 아성이 높은 분야인 에세이툰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에 도전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막상 작품이 연재를 시작하자 녹록치 않은 것이다. 독자에게 성찰을 불러일으키며 품격 있게 돋보이는 만화 작품이 탄생해버린 것이다. 이거 대박이다, 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단행본은 에세이툰 장르 특유의 예쁜 제책과 거리가 먼, 전형적인 대본소/대여점 공급 위주인 성인만화 단행본의 모습으로 출시되어서 그저 그런 정도의 반향 밖에 일으키지 못했다.

바로 그 작품, 『사랑해』(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 김영사 / 2권 출시중) 가 본격적으로 벼르고 재출간되었다. 재출간 버전은 이전 출시본이 지녔던 여러 약점들을 보완해가면서, 12권 세트 완결을 목표로 출시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에세이툰의 거품 유행이 다소나마 진정된 지금 다시 볼 수록, 더욱 진가가 드러난다. 원래 김세영 글 허영만 그림의 만화 콤비는 『오!한강』, 『카멜레온의 시』,『타짜』등 워낙 굵직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그 작품들의 바탕에 깔려있던 것은 단지 남성적 에너지로 가득한 출세 지향 활극 모험이 아닌 인간사에 대한 통찰이었다. 사람 산다는 것이란 뭐 다 그렇듯이, 적당히 비열하고 적당히 남 속이고, 또 속으면서 하나씩 자신의 길로 가는 것. 그 와중에서 어떤 주인공은 허탈하게 파멸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길을 발견하여 득도하다시피 하기도 한다. 만약 어깨에 힘을 빼고, 굵고 격정적인 드라마의 옷도 좀 벗고, 그냥 편안하게 사람 사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뭐 너무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보다, 아예 사람들 간 관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연계고리인 ‘사랑’에 대해서 논해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풋풋한 젊은이들의 호기심어린 감상주의로 절여지기 일쑤였던 여타 에세이툰과는 달리, 『사랑해』는 시작부터 결혼과 아이 낳는 것부터 들어간다. 내용으로 치자면, 이 작품은 글 읽기 좋아하는 30대중반 만화스토리 작가(김세영 작가가 자신을 모델로 삼았음직하다)와 20세 여자의 가족 꾸리기가 전부다. 그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양한 감성적 느낌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 풀어나간다. 굉장히 리얼리즘적으로 생활의 찌든 때를 묘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해』는 구체적인 주인공들의 구체적인 생활이 있다. 그렇기에 실제로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잠시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묘미가 있다. 작가의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에서 건져내는 다양한 격언들의 향연조차도, 결코 작품의 주역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이들의 그러한 구체적인 삶의 장면을 해석해내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다. 즉 이 작품에서 감상적인 문구들은 감성에 대한 동조를 강요하기 보다는, 독자 역시 자신들의 구체적인 생활을 살아나가는 속에서 그러한 성찰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색의 과정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이 사색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대화다. 사랑을 다룬다고 해서, 그냥 눈빛만 보고 감성을 공유하고는 세상을 찬양하는 공식을 밟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감상적인 독백보다도, 문답과 설명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처한 지금 그 상황 속에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를 즐긴다. 자신들의 현재 사랑의 모습에 자아도취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라는 소통을 통해서 서로의 사고과정에 개입하여 사랑을 만들어나가는 매력을 지니는 것이다. 두 주인공 및 가족의 관계가 보수적 가정 구도의 틀에 들어있기에 지니는 약점도, 대화라는 소통기제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덕분에 대체적으로 무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각 연출 역시 간략한 그림체를 바탕으로 여유로운 호흡을 부여한다. 능숙한 칸 흐름이 주는 편안한 독서경험은, 다른 만화들에 비해서 다소 글이 많은 편인 이 작품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큰 득이 된다. 주인공들이 이끌어나가는 일반적인 극만화의 형식을 기틀로 삼으면서도 종종 다큐멘터리적 느낌으로 명언의 주인공이나 사색적 도해를 자연스럽게 엮어넣는 점 역시 대단히 매력적이다. 다만 이번 재출간 버전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원래 흑백으로 연재된 작품 위에 파스텔톤의 컴퓨터 컬러를 입혔다는 것이다. 주류 셀애니메이션풍의 인터넷만화라면 모를까, 열린 선이 많은 허영만 특유의 그림체와는 그다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화사첨족이다. 더욱이 내용의 여유로움을 시각적 여백에서도 뒷받침해주는 그 조화의 효과가 파괴된다. 물론 “선물하고 싶은 책 1위” 등의 이야기가 보도 자료에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선물 아이템 시장을 노리고자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시도를 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만화 작품의 매력 자체를 감소시키는 처사는 좋은 선택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실 그 것 말고도, 애인 선물용으로 하기에는 전 12권 완결 예정이라는 방대한 볼륨 자체가 지나치게 푸짐하다는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추후 과제지만 말이다.

『사랑해』는 단절적이고 마취적인 편안함과 감상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실제 생활 속의 사색이 주는 즐거움을 대화로 같이 나누자고 제안하는 작품이다. 생각에 싹을 틔워주는 이 작품이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다.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capcold블로그 키워드 대전 2006.07.

!@#… SlimStat로 바꾼 이래의 키워드 통계. 외부, 주로 구글, 테크노라티 등 서양 기반 검색엔진에서 어떤 키워드로 이곳까지 흘러들어왔나를 봐주는 기능. 네이버와 다음은 그리 잘 지원해주지는 않는 듯. 이전 5월 통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

망가천국 60 53 / 미연시게임맛보기 (주: 이블로그와 무관) 30 29 / 미연시 게임 맛보기 (주: 무관하다니까) 28 26 / 성인만화 25 24 / 하루히 16 14 / 허리케인블루 14 14 / 항문섹 13 12 / 하렘물 13 13 / 블로그망가 12 1 / 성만화있는블로그 11 8 / 선별 10 1 / 겨드랑이 10 9 / OSMU 10 9 / 드래곤볼망가 8 7 / 성인만화블로그 6 4 / 십시일반감상문 6 5 / 섹하는만화 6 5 / 장난감 박물관 대학로 6 1 / 승*이의블로그 6 6 / 아마존 6 5

!@#… 촌평은 대체적으로 생략.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검색어로 찾아온 사람들은 대체로 이 블로그에서 많은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특히 겨드랑이…;;;

[광고] 한겨레21 617호에 만화특집 별책부록 들어있습니다.

!@#… 한겨레21 (지금 가판대에서 판매중인) 이번 617호에 만화 특집 별책부록이 있습니다. ‘여름’이라는 테마로 실력있는 작가들이 진지하고 재미있고 여하튼 좋은 만화를 만들어 묶은 책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예전 한겨레21의 추리소설 특집 별책부록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품질일지 예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단 이번 별책부록에 한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면, capcold 라는 인간이 참여했다는 것… -_-; (먼산)

!@#… 이번주 지나고 절판되기 전에 너도나도 사봅시다. 나중에는 레어아이템입니다.

모에라는 취향문화를 바라보기 [문화저널 백도씨/창간호]

!@#…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새로 창간한 월간 문화저널 백도씨에 기고한 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모에 취향은 아니지만 (구세대다 구세대…), 이쪽 계통의 현재 가장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니까. 이미 전에 해오던 이야기에 약간 더 살을 붙여서 모에라는 현상을 한국에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화두 몇개를 던진 정도. 한겨레에 기고한 하루히 글과 연동시켜서 읽어봐도 좋을 듯. 아 그래도 창간호의 품위를 조금 지켜주는 의미에서, 모에의 성적 코드에 대한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 다른 지면에서 한번 해봐야지.

========================

모에라는 취향문화를 바라보기

김낙호(만화연구가)

모에라는 시대정신

모에는 좋든 싫든 현재 일본 대중문화 하드 유저들의 기이하다면 기이한 ‘시대정신’이다. 우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모에라는 패턴은 이전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자. 예를 들어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레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그냥 팬일 뿐. 하지만 붕대를 맨 미소녀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이고, 하필이면 레이가 그 결정체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면 그건 어엿한 ‘붕대소녀 모에’다. 모에하는 사람은 수많은 만화, 애니, 게임 등 장르 대중오락문화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그 중 붕대를 맨 소녀 캐릭터를 찾아내며 애착을 보인다. 그리고는 붕대소녀는 자고로 3분에 한번씩 아픔으로 얼굴을 찌푸려야 하며, 부상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활약을 벌이려다가 아픔으로 한번 넘어져 줘야 하며, 머리에 붕대를 맬 경우 머리카락 전체를 뒤덮어서는 안되고 이마와 한쪽 눈 정도까지만 덮어야 한다는 등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한다. 당연히 붕대소녀를 묘사한 각종 피겨와 게임, 만화책들을 긁어모은다(문화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용어를 빌자면, ‘데이타베이스적 소비’). 80년대의 애니광들은 『오렌지로드』 마도카의 이고 민메이라는 아이돌을 숭배했지만, 2000년대의 오타쿠들은 『오네가이 티쳐』 미즈호를 보며 누님 모에를 한다는 식의 차이다. 특정한 이야기 속에 놓여진 캐릭터 전체를 하나의 동경의 대상으로 놓기보다, 그 캐릭터가 지니는 특정한 구성요소에서 쾌감을 느끼는 구조 말이다.

모에에 대해서, 사람들은 범람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방편으로 파편화, 특성화된 선호 취향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파편화된 여러 기호의 세계 속에서 나름의 공통적 요소들을 찾아 나서서 캐릭터성의 근본적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시도이기도 하다. 즉 원형적인 요소들의 파편을 긁어모아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이상향을 조합하여 맞추어내는 방법인 셈이다.

하지만 모에라는 것이 정말로 이전 세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향유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비록 궁극의 오타쿠 ‘오타킹’을 자처하는 오카다 도시오 같은 7-80년대 만화/애니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위 1세대 오타쿠들에게 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행위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모에 특유의 미형 캐릭터에 대한 동경은 사실 난데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다. 만화편집자 출신 평론가 사사키바라 코우는 『미소녀의 현대사』라는 저서에서 아예 모에를 미소녀에 대한 애호와 동격으로 놓기까지 하는데, 무려 TV애니 『바다의 트리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마크로스』의 아이돌 스타 민메이의 ‘팬’을 자처했던 그 세대라 할지라도 민메이 성우의 앨범들을 긁어모으고, 일러스트들을 서로 교환하며, 기타 각종 상품들을 수집해오지 않았던가. 바로 이러한 점들은 사실 모에가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일부 특정 매체에 주로 기반을 두고 있다는 중요한 현상과도 연결된다.

모에는 왜 만화/애니/게임 문화와 친한가

‘모에’ 행태는 실체를 획득할 수 없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획득할 수 있는 대상이면 가서 얻어내면 되는 것이지, 관련 굿즈를 사서 모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캐릭터를 사랑하더라도 동경의 대상이 되는 실체로서의 배우가 있다. 즉, 겨울연가의 모 캐릭터에게 반한 나머지, 욘사마의 팬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만화/애니/게임류의 경우, 캐릭터들은 캐릭터 자체로서만 존재한다. 실체를 얻을 수 없기에 하나의 전체로서의 상대를 동경하고 역할모델로 삼는 방식의 향유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하기야, 인기 없는 방구석 폐인들에게 있어서는 이웃집에 사는 3차원 물질계의 여성들도 이미 실체를 획득할 수 없는 먼 세상 신비의 대상이기는 매한가지지만 말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때로는 집착적일 정도의 애정을 과시하는 방법은 바로 소비와 재창조다. 관련 상품들을 소비하며, 또한 이미 주어진 캐릭터로서의 요소들을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재결합하고 재창조해내는 방식으로 즐긴다. 이것이 곧 캐릭터 상품 시장과 동인문화로 치환되어 나타나는 셈이다.

시각적 표현방식으로서의 만화언어 역시 모에를 위한 유리한 조건이다. 실제로 카툰화법을 채용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가장 강하게 모에 취향과 연계되어 있다. 그에 비해서 소위 ‘실사판’으로는 도저히 같은 정도의 모에를 만들어내기가 힘들다. 앞서 이야기한 가상성 – 즉 캐릭터가 실체가 없는 캐릭터 자체로서만 존재한다는 요소와 함께, 만화언어는 모에 요소들을 가장 특징적으로 표현하고 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툰화법은 근본적으로 생략과 집중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압축적으로 핵심 모에요소를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테나 머리’라는 모에 요소를 실사판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아무리 무스를 2-3통 뿌린다고 할지라도 과장되고 뚜렷하게 나타내기가 대단히 힘들며, 성공하더라도 오히려 우스꽝스러워 보일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카툰화법을 채용하면 안테나 머리는 쉽게 하나의 기호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각각의 분절적 모에 요소들을 표현하기에 대단히 용이하며, 나아가 이런 요소들을 자유롭게 서로 결합하는 것 역시 간단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카툰화법이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이래로 모에적 향유가 급격하게 발달하게 된 점에는 컴퓨터 게임의 대두가 큰 역할을 했다. 사실 만화/애니 향유층을 지양분 삼아서 발달, 카툰화법으로 표현된 캐릭터들의 모험담이 일본에서는 컴퓨터 게임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미 80년대부터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90년대의 급격한 PC보급과 각종 비디오게임 콘솔의 반복된 자기혁신은 게임을 오타쿠 문화의 보다 강고한 축으로 자리매김시켰다. 특히 RPG와 미연시 계열 등 손가락의 반응속도보다는 내러티브적 흐름을 중시하는 장르들에 있어서, 캐릭터성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기에 이것은 자연스럽게 오타쿠 문화 전반으로 같이 융합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고정된 스토리를 따르는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게임 장르 자체가 가지는 특성이란 바로 내러티브 구조의 느슨함 및 루트의 복합성이다. 따라서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 속에 처해지는 캐릭터성의 조합에 더 주목을 할 수 밖에 없는 방식의 향유를 자연스럽게 강제하는 셈이다. 모에는 이러한 양식을 흡수하며 더욱 공고한 주류 향유 패턴으로 발달했다. 이렇듯 모에는 만화언어의 취향 클러스터 – 즉 만화 자체, 카툰화법을 채용한 주류 애니메이션, 카툰화법으로 이루어진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게임, 그리고 그와 연관된 피겨 등 각종 상품을 포괄하는 대중문화 향유 취향의 집합 – 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 현실과 모에

사실, 모에는 상업적 이유 때문에 선 굵은 대형 서사물보다 캐릭터 조합극으로 주류 방향을 잡고 있는 현대 일본의 서브컬쳐 산업이기에 여기까지 주류화될 수 있었던 방식이다. 모에적 향유는 단지 재미있는 특정 작품 한 가지에 대한 낮은 수준의 몰입이 아니라, 만화언어 취향 클러스터 전반에 대한 높은 수준의 몰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신문 시사 만화를 가끔 즐겨보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정도가 아닌, 만화 자체를 좋아하는 정도는 되어야 모에적 향유를 시작할 수 있다. 모에는 근본적으로, 각종 캐릭터 공식에 대한 광범위한 흡수와 적극적 집착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소수 매니아적 취향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소수 매니아적 취향의 소유자들이(넓은 의미의 ‘오타쿠들’) 충실하고 강력한 구매력을 발휘해 주어서 주류 시장으로 부상시켰다. 그리고 그 취향이 창작자/생산자들에게도 피드백되어, 모에 취향의 시장이 공고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에도 일본의 만화/애니/게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모에 취향을 가지고 있는 매니아 층이 뚜렷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시장 구매력은 모에를 주류 시장으로 올려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취향으로서는 모에를 표방하지만, 소비를 통해서 그 취향시장을 발전 또는 최소한 유지시켜놓을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다. 만화는 스캔본, 애니는 인터넷 불법공유 동영상, 게임은 복사CD를 쓰면서 취향만으로 모에를 추구하는 것은 시장의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정식으로 모에적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극히 소수에 불과한 정도라면, 시장과 취향이 결합된 진짜 문화산업으로 발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일본의 문화콘텐츠 성공담을 벤치마킹하고자 할 때, 그것이 모에 취향의 사업 모델인 경우다. 게다가 이미 영화나 TV드라마의 성공사례에서 볼 수 있듯, 여전히 한국의 일반적인 대중문화 향유자들은 완성된 극적 구조 속에서 벌어지는 선 굵은 이야기에 대한 수요가 높으며, 실체로서의 스타 또는 현실의 직접적 반영으로서의 캐릭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모에적 향유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는 점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사항이다.

물론 모에는 그 자체로서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이미 일본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장단점을 드러낸 대중 문화패턴인 만큼, 받아들일 것은 본받고 경계할 것은 버리면 된다. 예를 들어 모에적 향유가 지니는 열정적인 요소들은 받아들이고, 지나치게 파편에 집착하여 전체 상을 경시하는 풍조는 막아내면 된다. 이 두가지 극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지키면서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또 향유하는 문화로 나아가면 이 시대의 문화현상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 또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혹은 그냥 평이하게, 좀 더 즐겁게 대중문화를 즐길 수 있는 촉매 작용이라도 충분할 것이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신문법 일부 위헌 결정… 생각해보자면.

!@#… 헌재의 과도할 정도의 보신주의와 보수성은 어찌보면 그 기관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라고 할 수도 있으나… 비현실성과 시대착오로 빠질 수 있는 위험이 항상 상존한다. 결론 정리는 대략 이런 것. capcold가 하고 싶은 말의 한 85%는 들어있는 민언련/언개련의 ‘언론관계법 부분 위헌 규탄’ 기자회견문.

!@#… 하지만 이번 헌재에서 위헌결정난 것은, 그만큼 원래부터 존재하던 법적 허점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고쳐서 재입법해야지 뭐. 예를 들어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발전 기금으로부터 제외한다는 것보다는, 시장 점유율 일정 퍼센트 이하의 소수의견 매체만을 지원 대상으로 하는 언론 다양성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신문사 복수소유 문제 역시, 복수 소유를 일괄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위헌이라면 복수 소유시 경영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는 식으로 시행령 차원에서 우회하면 된다. 오히려 이런 명백하게 헌법차원에서라도 핑계잡힐 만한 것들을 그대로 강행해서 약점을 만들어 온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었을 뿐.

!@#… 한번 일부 반려를 당한 후, 고칠 것을 고쳐서 완성품을 내놓는 것은 학계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경우다. 대단히 효율적이기도 하고. 그러니 신문법도, 더욱 완성된 형태로 다시 재입법을 들어가서 결국 제대로 된 언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근간논리가 되어주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