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저널 토론에서 중요한 곁가지로 제기되어버린 만화 쿼터제. capcold는 만화쿼터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취해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쿼터제는 안된다!!!라는 입장이기보다는 만화에서 쿼터제의 적용 현실성이나 효과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대형출판사들의 일본만화 과잉수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한지는 벌써 4년도 넘었고 지금 쿼터제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취지에는 천번만번 동의하지만, 이것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인가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마 이런 제게 확신을 심을 수 있는 논리라면 누구에게나 통할 거라고 믿기 때문에, 한번 제 회의론의 근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 쿼터제에 대해서, 몇가지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할 지점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다른 매체에서 운용중인 쿼터는 유통에 관한 쿼터지, 제작에 관한 쿼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의 경우 방송 편성 시간에 한국산 애니를 특정 비율 집어넣기지, 제작이나 유통사에게 만화를 어느정도 직접 국내산으로 만들어라, 해외 수입을 이 정도만 해라, 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작사나 유통사에게 쿼터를 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방송국에 쿼터를 거는 것이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작사나 배급업자에게는 쿼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쿼터는 어디까지나, 극장주들에게 적용되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실제로, 66년 처음 시작되었던 당시와 70년대에는 영화 쿼터가 배급업자에게 직접 부과되었습니다. 즉 외화 수입추천 1편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편수의 한국영화를 제작해야만 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다들 쉽게 짐작하시다시피, 날림 새마을영화의 범람이었습니다(-_-;). 그래서 결국 쿼터제는 유통의 가장 말단, 극장으로 내려옵니다. 1년 중 일정일 이상을 의무적으로 한국영화를 틀어주기.
쿼터제도는 향유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통로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의 또다른 전제는, 그만큼 그 통로가 좁고, 확장이 어려우며, 독점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영화라고 할지라도, 극장에는 쿼터가 있지만 비디오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비디오는 극장과는 달리 통로가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장 창고 용량이야 물론 한계가 있지만). TV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죠. 텔레비젼 방송국은 제한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고, 어디로보나 자원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쿼터제가 의미가 있는 셈이죠.
그런데 만화의 최종 소비 통로는 극장이나 TV방송국의 모델보다는, 비디오의 모델에 더 가깝습니다. 통로가 한정되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그러니까 90년대 중반 이후로 그렇게 엄청난 고무줄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많은 종수를 찍어서 곤란한 것은 제작의 차원에서 그것을 담당할 인력과 마케팅 능력이 잠식당하고, 독자의 판별력이 떨어지게 되어서인 것이지, 통로 자체가 독점화되어 버리기 때문이 아닙니다. 통로 점유의 측면에서 일본만화를 놓느라고 한국만화를 못 놓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용의 측면에서 한국만화를 상대적으로 안 만들고 못 띄워주기 때문에 한국만화가 안보이는 겁니다.
자, 이제 문제입니다. 쿼터를 ‘어디에’ 적용해야 할까요? 쿼터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는 박인하님이 글에서 지적하셨다시피 일본만화 종수 줄이고 이성적/상식적 시장구조를 회복하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 제작(=출판사)에 쿼터제 도입: 이것은 출판사의 전체 만화 출판 종수 가운데 특정 퍼센트 이상의 한국만화를 제작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식입니다. 70년대 영화에서 생긴 쌈마이스러운 일이 그대로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히트작 하나를 수입하기 위하여, 졸속 어거지 함량미달 찌라시 책을 10종, 한 50부 정도씩만 찍어서 대충 묶어버리고 다음주에 파지처리해버리는 것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수가 아닌 발행 부수로 쿼터제를 한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명백한 시장 침해. 이 경우 당연히 한국만화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죠. 우수한 외화와, 허접한 ‘방화’로 인식이 이분화되었던 그 시절 영화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처럼 말입니다.
출판사가 그런 자기 이미지 깎아먹기를 할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연간 1000종을 내는 출판사들은, 자사 작품들을 통한 브랜드 이미지 구축과는 거리가 멀죠. 게다가 한 회사 내에서 출판 라인의 브랜드만 다르게 해서 개별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고. 이것은 위반시 과징금제도로 하든, 준수시 지원금으로 하든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는 꽁수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한국 번역판 제작을 하기 이전의 단계에서 쿼터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출판 수입추천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겁니다. 즉 어느 출판사는 전년도 전체 출판 종수의 60% 이상 가는 수의 수입추천을 신청할 수 없다, 라고 못박는 겁니다. 이 경우도 이 꽁수를 여전히 쓸 수 있습니다(사실, 양적인 개념에서는 항상 쓸 수 있습니다). 대형출판사들이 capcold보다 사악한 잔머리를 덜 굴려보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습니다.
2) 유통에 쿼터제 도입: 영화나 TV애니 같이 유통에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궁리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통의 최말단인 개별 서점. 하지만 예를 들어서 “매장에 한국 만화 진열 비중이 종수 기준으로 30% 이상이어야 한다”, 라고 강요하기는 정말 애매합니다. 앞서 말했듯, 한정된 통로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단보다는 좀 더 위에 있는 총판은 어떨까요. ….(10분 경과)… 옙, 총판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머리아파집니다. 총판 구조는 쉽게 어떻게 뭘 새로운 원칙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이쪽 이야기는 나왔으니 패스.
그럼 또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총판으로 가기 전의 ‘배급’ 단계. 얼마나 국산을 만들고 얼마나 수입을 하든지간에, 그것을 유통망에 뿌릴 때 쿼터를 걸고 견제하기. 아까 1)에서 한 이야기와 차이가 없어집니다. 아니면, 만화에서 아예 수입과 제작을 같은 출판사에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즉 수입 및 유통 전용 출판사와 한국만화 제작 전용 출판사의 역할분리. 마치 영화에서 제작사와 배급사가 분리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하나의 모기업에서 양측을 모두 소유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소규모 제작사로부터 가능성 있는 영화를 사들여서 배급하는 바람직한 경우도 많죠. 실제로 유통력을 가진 확고한 메이저와 소규모 제작사들이 나뉘어 있는 미국 만화계의 경우 이런 비슷한 사례가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유통사의 단계에서 쿼터를 거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 만화산업판이나 개별 출판사들의 영세한 구조상, 이런 식으로 전체 판을 뜯어고쳐버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상당히 요원한 아이디어입니다. 게다가 산업적 필요성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간다면 모를까(사실, 산업적으로는 이미 필요합니다), 법적으로 강요하기는 참 애매한 문제입니다.
!@#… 즉 제 회의론의 핵심은 이겁니다: 쿼터 제한을 둘 만한 곳이 없습니다. -_-;
!@#…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이냐? 라고 물어볼 겁니다.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쿼터제도의 효과를 지닐 수 있는, 좀 더 우회적인 방식들을 찾아볼 수 밖에요.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자면 주모씨님이 일종의 ‘자발적인 쿼터제’가 유지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연재만화 잡지의 경우, 사실은 일본 만화 수입시 단행본 계약과 연재 계약이 따로 들어가야 하는 계약상의 번잡함과 추가적인 비용부과가 상당부분 작용하리라고 봅니다. 게다가 잡지에서 수익을 못내는 기이한 구조상, 굳이 아주 특A급의 독자동원력이 아니라면 수입 작품들을 연재를 해넣어야할 이유도 별로 없는 셈이고. 산업적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론 그보다는 훨씬 제도적인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종수에 의거한 ‘쿼터’가 아닙니다. 총체적 경영 투자 자료에 의거한 ‘창작 출판사’와 ‘수입배급사’의 분류고(물론 이 평가는 매해 새로 갱신되어야 합니다), 각각에 합당한 지원책과 규제책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수입위주 출판사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종수가 아니라 국산 창작에 대한 투자비중 자체를 입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각 출판사에 자료를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판독해내는 문광부/콘진 담당부서의 전문성이 역시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과제죠. 아니, 애초에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연구용역을 통해서 만들어 내는 것도 역시 선결과제입니다.
쿼터로 영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업은, 지들 맘대로 하면 됩니다. 다만 영업의 결과로 ‘수입 배급사’로 분류되어버린다면, ‘창작 출판사’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제도적 혜택에서는 제외되도록 만드는 겁니다. 당연히 그 분류결과는 일반 대중에게도 전면 공개되어야 하고.
사실, 박인하님이 언급한 각종 제도적 지원에서 특정 출판사를 제외시키는 것 역시 이러한 틀 속에서 좀 더 발전시켜 볼 만한 발상입니다. 다만 시상식 등 작품에 주는 상을 거부할 경우 창작자만 피해를 보게 되니까 그 부분은 명확하게 구분해야죠. 어디까지나 출판사에 대한 자금지원에서만 상대적 불이익을 줘야 합니다. 수입배급사가 창작을 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다만 창작사로서의 혜택을 못받을 뿐. 창작사에는 없고, 수입배급사에게 돌아오는 혜택? 그런 거 없습니다. 왜 필요합니까. -_-;
!@#… 물론 이 정도 제도장치로 인하여 그 출판사들이 난데없이 일본만화 출판을 팍 줄인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수입 원자재 고갈이라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주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여튼, 국산 창작에 대한 지원이 정말로 국산 창작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정비를 해보자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현실적인, 만화계에 대한 ‘쿼터의 효과를 지닌’ 제도적 제안입니다.
PS. ‘아무도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 대여권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에 언젠가 다시한번…;; 엉망진창으로 결단난 후 한참 뒤인 지금 난데없이 불타오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회적 대안’으로서 좀 더 정리해보겠습니다.
PS2. 이노무 네이버블로그는, 네이버 바깥의 블로그에 트랙백 걸어놓은 건 제대로 엮인글 표시조차 안되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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