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그치지 않는 사색 – 『사랑해』[기획회의 060615]

공감에 그치지 않는 사색 – 『사랑해』

김낙호(만화연구가)

2000년대 초, 짧은 감상주의적 에피소드로 구성되며, 둥글둥글한 그림체에 파스텔톤 색채를 입힌 만화 모음집이 크게 유행한 바 있다. 소위 ‘에세이툰’이라는 이름 하에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연재하고 출판물로 출간하여 선물용으로 판매되었는데, 그 중에는 큰 히트를 기록한 것도 더러 있다. 『파페포포 메모리즈』 같은 출판 시장의 밀리언셀러, 『광수생각』같이 일간지 지면이라는 매체력을 바탕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떨친 것, 등등 여러 가지가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유행을 타는 사조가 더러 그렇듯, 이 경우 역시 인기나 대중적 판매량과는 별개로 어설픈 함량 미달의 작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차피 주관적인 감상주의를 기치로 내거는 에세이툰에 있어서 함량미달이라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바로, 그럴듯한 감상적 어휘로 적당히 조합한 멘트 한마디를 말미에 던져놓고는 정서적 공감을 구할 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경우는 예쁜 구경거리로서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정작 ‘나’라는 존재에게 어떤 실제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것은 대화와 생각을 전제하지 않는, 공감만으로 이루어진 폐쇄성의 단점이다.

그런데 그 무렵, 특이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조선에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전문 도박 사기꾼들의 인생역정을 선 굵은 드라마로 펼쳐내던 중견 작가 콤비가, 그것도 바로 그 연재 지면에서 젊은 인터넷 만화 신인들의 아성이 높은 분야인 에세이툰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에 도전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막상 작품이 연재를 시작하자 녹록치 않은 것이다. 독자에게 성찰을 불러일으키며 품격 있게 돋보이는 만화 작품이 탄생해버린 것이다. 이거 대박이다, 라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으나… 어째서인지 단행본은 에세이툰 장르 특유의 예쁜 제책과 거리가 먼, 전형적인 대본소/대여점 공급 위주인 성인만화 단행본의 모습으로 출시되어서 그저 그런 정도의 반향 밖에 일으키지 못했다.

바로 그 작품, 『사랑해』(허영만 그림, 김세영 글 / 김영사 / 2권 출시중) 가 본격적으로 벼르고 재출간되었다. 재출간 버전은 이전 출시본이 지녔던 여러 약점들을 보완해가면서, 12권 세트 완결을 목표로 출시를 시작했다. 이 작품은 에세이툰의 거품 유행이 다소나마 진정된 지금 다시 볼 수록, 더욱 진가가 드러난다. 원래 김세영 글 허영만 그림의 만화 콤비는 『오!한강』, 『카멜레온의 시』,『타짜』등 워낙 굵직하고 진지한 이야기들을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그 작품들의 바탕에 깔려있던 것은 단지 남성적 에너지로 가득한 출세 지향 활극 모험이 아닌 인간사에 대한 통찰이었다. 사람 산다는 것이란 뭐 다 그렇듯이, 적당히 비열하고 적당히 남 속이고, 또 속으면서 하나씩 자신의 길로 가는 것. 그 와중에서 어떤 주인공은 허탈하게 파멸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길을 발견하여 득도하다시피 하기도 한다. 만약 어깨에 힘을 빼고, 굵고 격정적인 드라마의 옷도 좀 벗고, 그냥 편안하게 사람 사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어떨까. 뭐 너무 이것저것 이야기하기보다, 아예 사람들 간 관계 가운데 가장 강력한 연계고리인 ‘사랑’에 대해서 논해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렇기에 풋풋한 젊은이들의 호기심어린 감상주의로 절여지기 일쑤였던 여타 에세이툰과는 달리, 『사랑해』는 시작부터 결혼과 아이 낳는 것부터 들어간다. 내용으로 치자면, 이 작품은 글 읽기 좋아하는 30대중반 만화스토리 작가(김세영 작가가 자신을 모델로 삼았음직하다)와 20세 여자의 가족 꾸리기가 전부다. 그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양한 감성적 느낌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계속 풀어나간다. 굉장히 리얼리즘적으로 생활의 찌든 때를 묘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해』는 구체적인 주인공들의 구체적인 생활이 있다. 그렇기에 실제로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잠시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묘미가 있다. 작가의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에서 건져내는 다양한 격언들의 향연조차도, 결코 작품의 주역으로 기능하기 보다는 이들의 그러한 구체적인 삶의 장면을 해석해내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될 뿐이다. 즉 이 작품에서 감상적인 문구들은 감성에 대한 동조를 강요하기 보다는, 독자 역시 자신들의 구체적인 생활을 살아나가는 속에서 그러한 성찰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색의 과정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이 사색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대화다. 사랑을 다룬다고 해서, 그냥 눈빛만 보고 감성을 공유하고는 세상을 찬양하는 공식을 밟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감상적인 독백보다도, 문답과 설명의 방식으로 자신들이 처한 지금 그 상황 속에서 사랑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기를 즐긴다. 자신들의 현재 사랑의 모습에 자아도취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라는 소통을 통해서 서로의 사고과정에 개입하여 사랑을 만들어나가는 매력을 지니는 것이다. 두 주인공 및 가족의 관계가 보수적 가정 구도의 틀에 들어있기에 지니는 약점도, 대화라는 소통기제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덕분에 대체적으로 무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각 연출 역시 간략한 그림체를 바탕으로 여유로운 호흡을 부여한다. 능숙한 칸 흐름이 주는 편안한 독서경험은, 다른 만화들에 비해서 다소 글이 많은 편인 이 작품을 읽어나감에 있어서 큰 득이 된다. 주인공들이 이끌어나가는 일반적인 극만화의 형식을 기틀로 삼으면서도 종종 다큐멘터리적 느낌으로 명언의 주인공이나 사색적 도해를 자연스럽게 엮어넣는 점 역시 대단히 매력적이다. 다만 이번 재출간 버전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원래 흑백으로 연재된 작품 위에 파스텔톤의 컴퓨터 컬러를 입혔다는 것이다. 주류 셀애니메이션풍의 인터넷만화라면 모를까, 열린 선이 많은 허영만 특유의 그림체와는 그다지 조화를 이루지 않는 화사첨족이다. 더욱이 내용의 여유로움을 시각적 여백에서도 뒷받침해주는 그 조화의 효과가 파괴된다. 물론 “선물하고 싶은 책 1위” 등의 이야기가 보도 자료에 반복되는 것으로 보아 선물 아이템 시장을 노리고자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시도를 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만화 작품의 매력 자체를 감소시키는 처사는 좋은 선택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실 그 것 말고도, 애인 선물용으로 하기에는 전 12권 완결 예정이라는 방대한 볼륨 자체가 지나치게 푸짐하다는 단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추후 과제지만 말이다.

『사랑해』는 단절적이고 마취적인 편안함과 감상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 실제 생활 속의 사색이 주는 즐거움을 대화로 같이 나누자고 제안하는 작품이다. 생각에 싹을 틔워주는 이 작품이 다시 독자들과 만나게 되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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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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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인 대상의 보편적 오락성 – 『불친절한 헤교씨』[기획회의 060530]

!@#… 굿모닝서울에서 시작해서 엠파스를 거쳐서 결국 파란에서 완결짓고 만, 근성의 연재작. 매체의 독자층으로 볼 때는 사실 맨 처음의 지하철 무가지 쪽이 더 적합했을터인데, 여하튼 포털에서 둥지를 틀 수 밖에 없었던 경우. 좀 더 본격적으로 들어가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참 많았는데, 그래도 완결을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연재만화에서 작품의 최종분량에 대한 사전합의 등 쌍방 합의 연재 조건 도입의 필요성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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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성인 대상의 보편적 오락성 – 『불친절한 헤교씨』

김낙호(만화연구가)

오늘날 한국에서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트렌디물이 가장 선호하는 장치들은 무엇일까. 즉 장르 영화나 드라마, 장르 소설, 만화의 인기작들에 응당 들어있기 마련인 어떤 소재들의 경향 말이다. 우선 간단히 떠오르는 것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는 ‘조직폭력’. 조폭 장르가 인기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연애가 핵심인 드라마에서마저도 조폭 또는 사실상 조폭을 연상시키는 구도가 꽤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조폭은 상처받은 거친 남성, 비합리적인 위계로 꽉 짜인 사회구도, 비열한 현실감이 넘치는 등장인물들을 등장시키기 좋은 소재로, 어두운 면모를 간직한 매력적인 남자캐릭터를 만들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는 전문성.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내용이 들어 있어 줘야 이 복잡하고 전문적으로 분업화된 세상 속에서 일종의 극적 현실감을 확보한다. 카지노 딜러의 세계든, 과자 제빵 장인의 세계든, 조선시대 여형사든, 한쪽 세계의 전문성이 가져오는 낯설음이 오히려 몰입을 하기 위한 징검다리로 쓰이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뭐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 멜로 코드. 사람과 사람이 서로 끌려서, 사귀든지 헤어지든지 여하튼 인간적 애정으로 움직여주며 극의 뼈대를 생성해 주는 것이다. 조폭 코드도 전문성 코드도, 결국 이 멜로라는 핵심 뼈대 위에 발라지는 살과도 같다. 여하튼 이러한 장치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구사하는가에 따라서 대중 오락물로서의 호소력이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코드들을 능란하게 균형 잡아가면서 구사함으로써 결국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주로 저녁시간대 TV 드라마였다. TV라는 형식 덕분에 넓은 향유층을 거느릴 수 있으며 연속극이라는 형식 덕분에 충분한 방영시간과 연재가 주는 지연효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재만화는 어떨까. 매니아 지향 만화잡지가 아니라, 신문이나 대형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만화라면 성인 대중 일반이라는 향유층 확보가 수월하다. 그리고 연재를 통한 관심끌기라면 만화 또한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아주 조폭 장르물로 가거나, 아주 전문분야 정보전달에 쏠리거나, 아주 멜로물로만 가버린 경우들이 대부분이라서 강력한 성공사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불친절한 헤교씨』(박기홍 글, 김선희 그림 / 작은책방/ 2권 발행중)는 연재만화에서도 그러한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지면이 사라지면 작품도 중단되는 연재 만화의 일반적 사례와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에는 지하철 무가지 <굿모닝서울>에서 연재를 시작했다가, 포털 사이트 <엠파스>로 자리를 옮겼다가, 그 곳 지면이 사라진 후에는 또 다른 포털 사이트인 <파란>으로 다시 둥지를 옮겨서 연재를 지속해온 특이한 경우다. 그 작품이 이번에는 종이 단행본으로 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대단히 유능하지만 오히려 그 유능함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30세 여자주인공 소헤교가 게임회사에 취직하여 커리어를 추구하는 이야기다. 이 와중에서 사채업자인 그녀의 아버지가 조폭과 금융사기 등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축을 이루고, 회사를 둘러싼 사람들의 관계가 여러 층으로 겹겹이 쌓여간다. 반은 조폭물, 반은 게임회사 커리어물로 이루어진 기묘한 균형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코믹한 티격태격과 진지한 가족사 문제를 오가는 여러 트렌디 멜로의 구도와 에피소드들을 섞어 넣으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을 섞으면서, 작품은 꽤 정면돌파를 시도한다. 조폭과 사기가 난무하는 이야기축에서는 비열한 정치적 관계들을 거침없이 묘사하여 극적 재미를 부여하고, 동시에 게임회사 이야기로 나타나는 전문 영역의 분야는 게임업계의 실제 모습들과 여러 현실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확실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그러면서도 콩가루 가족의 한 쌓인 관계, 남녀간 애정 구도가 들어있는 (비록 특이하게도 정작 여자주인공은 특별히 연애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멜로의 뼈대로 구심점을 부여한다. 이렇듯 열심히 섞이지만,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게 독자들을 뛰어난 오락성의 바다로 몰입시킨다. 여기에 남성 위주의 가족과 사회현실 속 유능한 여성의 수난이라는 주제 의식이 지니는 동시대성 역시 작품을 더욱 호소력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특별히 교훈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 진취적인 주제의식을 넣어줌으로써 향유자들로 하여금 죄책감 없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남성 글 작가와 여성 그림 작가라는 조합 역시 작품의 보편적 호소력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둘이 부부지간이라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강력한 정치적 드라마 부분과, 여성들에게 호소력 강한 섬세한 인간관계와 심경변화라는 부분을 잘 녹여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순정만화 특유의 그림체와 연출방식이 일반 성인 남성 독자들에게 주곤 하는 거리감 또는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남성극화에 가까운 직선적 사건 중심의 연출 역시 이러한 조합이 영향을 주었으리라 본다. 물론 거꾸로 보자면 각각 장르의 코어 팬들에게는 외면 받을 이유가 되지만, 적당한 정도의 취향을 지니는 일반 성인들에게는 그 정도가 좋은 균형이다.

어디로 보나,『불친절한 헤교씨』는 잘 만들어진 연재 오락물이며 일반 성인 독자층에게 보편적 호소력을 가지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작품은 연재 지면이 여러 번 바뀌어 온 것이 독자의 꾸준한 확보에는 감점요소가 되었으며, 흑백 극화의 형식이기에 종이가 아닌 웹 연재로서는 그 호소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바 있다. 이번에 출시된 단행본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까? 사실 이 작품은 단행본보다는 연재로 한편씩 보며 그 다음을 기다리는 형식에 더 어울린다. 게다가 소장하고 두고두고 곱씹어보는 장르라기보다는, 실시간으로 웃고 울며 즐겨야 재미있는 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행본에는 연재에서 공개한 바 없던 내용들을 더 넣는다고 하니 한번 두고 보며 즐겨볼 일이다. 단행본으로 완결이 나면 연재 당시보다도 더욱 재미있는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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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거대한 모험담의 학습만화 – 『지구대진화』 [기획회의 060515]

!@#… 오랜만에 만나는, ‘학습’에 정말로 신경을 쓰고 있는 어린이 대상 학습만화. 교육교육 말로는 떠들고 천문학적 돈을 쑤셔넣지만 정작 공부라는 것이 도대체 뭐고 뭘 어떻게 배우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놀랄만큼 무관심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책이 얼마나 부모들의 호응을 얻어낼지는 미지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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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모험담의 학습만화 – 『지구대진화』

김낙호(만화연구가)

개인적으로, 소위 “책을 읽자” 류의 캠페인을 싫어하는 편이다.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습득하고 간접경험을 쌓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자는 것이어야 하는데, 종종 단순히 월 평균 독서량이 어쩌니 하면서 단지 얇게 썰린 죽은 나무토막에 대한 페티시즘적 열정을 발휘하는 선에서 그치곤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중 특히 지식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잘 정리된 풍부한 지식이 들어있고 그것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편리한 방식으로 전달된다면 그것이 책이든 인터넷 홈페이지든 비디오든 동네 아저씨의 연설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책이라는 매체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제대로 된 풍부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면 그것이 교과서든 소설이든 만화책이든 모양새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실 교양/학습만화라는 장르는 이러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분명히 만화는 표현력과 전달력에 있어서 큰 장점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능력을 그냥 썩혀둔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베스트셀러의 등장에 힘입어 큰 호황을 누리고 있는 교양학습만화의 경우 이러한 근본적 취지를 사정없이 배반하는 경우들이 다수였다. 말은 교양학습만화를 표방했지만, 실상은 연성화된 가벼운 지식들을 양념으로 살짝 뿌린 아동 취향 모험 오락만화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장르 오락 만화라는 사실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왕 교양과 학습을 위해서 교양학습만화를 선택했다면 완성도 높은 지식을 축적하도록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을 골라잡는 것이 원래의 취지에 맞을 것이라는 의미다. 만약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싶다면 처음부터 교양지식 입문서를 읽는 것이 효과적이지, 그 분야를 소재로 삼았을 뿐인 오락 작품으로 만족하는 것은 좀 곤란하지 않은가. 아무리 시대의 대세가 속칭 ‘에듀테인먼트’라고 해도, 오락과 교육의 경계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거나 하는 과장은 금물이다.

『지구대진화』(NHK 기획, 고바야시 타츠요시 그림 / 삼성출판사, 전6권)은 정통파 ‘학습’만화다. 내용은 NHK의 유명한 동명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내용을 만화로 이식한 것으로, 문자 그대로 지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내용 전개방식은 실제 NHK 제작자들이, 방송국에 견학 나온 두 중학생에게 다큐의 내용을 순서대로 소개해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년소녀 주인공들을 모험길로 보내고 억지로 상황을 체험하게 만들어서 지식을 끼워 맞추는 식이 아닌, 순수하게 ‘강의식’ 학습만화인 셈이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막간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게 연속적으로 흘러가며, 부차적으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한 개 에피소드에서 배운 지식을 써먹으며 소동을 벌이는 전형적인 학습만화 구도를 보기 좋게 배반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그냥 설명문 같은 딱딱한 내용이라서,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없다는 말인가?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분명히 재미있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성장 스토리다. 단지 하필이면 그것이 등장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구’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갖은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성장과 성장을 하여 오늘날의 이곳까지 도달한 지구라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모험담 말이다. 실로 장쾌한 스케일의 영웅전설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지구와 그 지구에 달라붙어있는 생명이 펼치는 생명의 서사시는 몇몇 미미한 인간들의 성장담과는 전혀 다른 규모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지구과학이나 생물학 시간에 배우는 파편적인 자연 이야기가 아니라, 46억년의 역사를 하나의 이야기로서 순차적으로,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서술해 나아간다. ‘지식’이 바로 모험담이 되며, 그 결과 방대한 양의 귀중한 자연과학 지식을 문자 그대로 재미있게 학습시켜준다.

이러한 스케일 큰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연출방식은 과연 이름난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답게, 다큐와 동일한 순서로 다큐의 핵심 내용들을 별다른 각색 없이 그대로 전달해준다. 지구의 46억년 역사를 전집도 아닌 6권짜리 시리즈에 압축한다는 것은 일견 빡빡하게 들릴 수 있지만, 핵심을 짚는 절묘한 비유로 표현한다(지구의 역사를 하루의 시간에 비유하는 등). 또한 시각적으로도 명쾌한 도해와 구체적인 CG를 사용하는데, 휘황찬란한 원색 컬러로 포장하기보다 오히려 만화로서 부담 없이 읽기 편한 흑백으로 표현하는 배려를 보여주고 있다. 분명히 『지구대진화』은 훌륭한 교양 지식을 잘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필독서까지는 아니라도, 추천 교양서로서 오르내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시도가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결정적인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독자층을 제대로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주류 교양학습만화의 주요 소비층은 하필이면 초등학생인데, 초등학생 대상으로는 지식수준이 너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독자층이 되어주어야 할 중학생 이상의 경우는 입시과정에서 벗어난 지식에 대해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달려들기가 결코 쉽지 않다 (전적으로 입시 제도에 맞춰져 있는 정규 교육과정 속에서, 지구과학은 학생들에게 유감스럽게도 찬밥신세 아니던가). 깨달음을 위한 지식이 아닌 입시 성적을 위한 지식으로 움직이는 패러다임 속에서, 대자연이 움직여온 이치 같은 큼지막한 이야기는 관심의 대상에 들어오기 어렵다는 말이다. 나아가 성인들은 학습만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동용으로 치부하며 거리를 두기 십상이다.

설명 방식에 있어서 정공법 그 자체인 이 작품은, 유감스럽게도 독자 소구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 간극을 채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작품을 포장하는 마케팅이다. 진지한 교양지식을 얻게 해주는 본격 학습만화라는 점을 강조하는 작업에 실패하면, 그냥 ‘미소녀도 안 나오고 화려한 원색의 모험 액션도 없는 심심한 아동만화’ 정도로 취급받으며 서가 한쪽에서 먼지만 쌓이는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 부디 여러 노력들이 지속되어, 이런 고품격 지식이 가득 담긴 만화가 정당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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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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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인위적 구축에 관하여 -『유리의 도시』[기획회의 060501]

!@#… 정작 출판을 하는 사람들이 만화의 표현양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들고 오더라도 상당부분 망가질 수 밖에. 그리고 한국에서 단지 멋있게 보이려고 그래픽노블이라는 명칭 쓰는 것, 무척 짜증난다. 뭐 그것을 무려 그래픽 소설이니, 그림소설이니 직역해서 쓰면서 정작 그게 만화를 지칭한다는 것 자체도 제대로 모르는 글쟁이들을 보면 더 짜증나지만 (만화의 지위니 뭐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글을 뱉어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고나). 하지만 여전히, 작품 자체는 강추하니까 리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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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인위적 구축에 관하여 -『유리의 도시』

김낙호(만화연구가)

소설 원작 『유리의 도시』는 폴 오스터의 대표작 『뉴욕3부작』의 첫 작품이고, 잘 알려져 있듯 이 작가는 현대문학의 대표적 문인 가운데 하나다. 사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시작한다. 가명으로 탐정소설을 쓰는 퀸이라는 주인공이,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한 여성 고객에게 탐정일을 의뢰받아서 수상한 노인 박사를 미행하다가 점점 더 큰 음모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느와르풍 펄프 탐정소설의 외관 속에서 중첩된 정체성, 언어적 기표와 기의의 혼란, 그리고 결국 분열증적 도피에 대한 중층적인 이야기들이 장르적이면서도 동시에 해체적으로 펼쳐진다.

최근 한국에서 만화판 『유리의 도시』(오스터 글/ 마주첼리, 카라식 그림/ 황보석 역/ 열린책들)가 출시되었다. 한국에 폴 오스터의 책들을 소개해온 출판사가, 원래 오스터의 책들을 번역해온 번역가를 거쳐서 일종의 소품으로 들여온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이 94년에 만화로 만들어진 것은 작가의 친구이자,『쥐』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골수 뉴요커 아트 슈피겔만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슈피겔만은 부드러움과 비정한 도시가 공존하는 탁월한 느와르 그림체를 선보인바 있는 마주첼리를 끌어들였으며, 원작이 지니는 관념적 세계관과 기이한 연출방식을 만화 특유의 방식으로 소화해낼 인재로 자신이 창간한 대안만화잡지 <로>의 편집인 출신인 카라식을 한 팀으로 엮었다. 결과는? 마치 『유리의 도시』는 애초부터 당연히 만화로 그려졌어야 했을 작품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만화판 『유리의 도시』는 만화적 표현력의 극단에서 폴 오스터가 펼쳐낸 복합적 세계관을 완전하면서도 독자적으로 소화해내고 있다.

가장 돋보이는 것 가운데 하나는 도시적 경직성을 나타내는 연출의 형식미다. 세로 페이지를 세로의 9개 칸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칸 연출은 뉴욕의 바둑판식 도로의 이미지이자 고층빌딩의 창문, 그리고 나아가 감옥문을 연상시키는 경직성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 속에 사는 인간군상은 도시 자체와는 달리 둥그런 필체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을 영위한다. 하지만 그 정상성 가운데 때로는 선이 거칠게 갈라지면서 속에 담아둔 광기와 혼란의 내면이 슬쩍 엿보이는 순간이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언어적 기호와 도상 기호의 자유로운 혼합 역시 만화적 연출의 힘을 과시한다. 이 작품에서 궁극의 인위적 구조이며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기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다른 하나는 바로 문화적/사회적 코드로서의 ‘언어’다. 언어는 세계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인위적 기호로 치환하며, 그 속에서 때로는 갑갑한 현기증을 일으키도록 하는 주범인 셈이다. 그런데 도상 기호의 자유로운 흐름, 언어(문자)와 그림의 혼합을 가장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매체가 만화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자연언어를 발견하려는 실험을 당한 후유증으로 보통의 언어구조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 극중 인물 피터 스틸맨 (아들)이 주인공 퀸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다른 이미지로 자유롭게 치환되며, 그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스틸맨의 입에 완전히 붙어서 나오고 있는 말풍선 속의 메마르고 모호한 말들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기표와 기의의 분리관계를 이야기하듯, 말과 그림은 서로와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는 명 시퀀스다. 혹은 존 밀턴의 실낙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읽어나가는 장면 역시 탁월한 사례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아담의 행위는 그대로 만화의 칸 속에서 문자가 되어 바닥에 그림자로 달라붙고, 세상 사물의 자연스러운 모습과 문자라는 언어기호의 인위성이 그로테스크한 대비를 이룬다. 작품의 세계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러한 탁월한 연출효과를 그 어떤 다른 매체에서 흉내낼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반대로 생각하면 만화 특유의 자연스러운 독서를 방해하는 단점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줄거리 요약만 하는 명작문학 학습만화가 아니라 또 다른 버전의 ‘폴 오스터 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독자들이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게다가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형식적 미학을 추구하기 위해서 줄거리 진행의 재미를 놓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원래 원작 자체는 팜므파탈, 수상한 과거를 가진 용의자, 미궁으로 빠져드는 사건, 그 속에서 모호해지는 정체성 등 장르 탐정소설의 얼개는 줄거리적 재미를 충분히 보장한다. 혹은 줄거리가 해체적으로 변모하는 말미까지 전부 포괄하더라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도시 버전, 혹은 정신분열증 증상 전개의 비유적 표현이라는 틀에서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의 방식을 가로막지 않는 포괄적 그림체의 열린 연출은 이 작품에 작가팀이 들였을 세심한 고민을 엿보게 한다. 이렇듯 미학과 재미 두 요소들을 종합해서 판단을 내리자면, 만화판 『유리의 도시』는 명작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걸작의 경지를 기웃거리는 매우 우수한 작품으로 별 무리 없이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우수성과는 별개로, 이번에 출시된 한국어판은 편집 제작상의 몇가지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만화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하여 작가들의 세심한 연출이 상당부분 뭉개지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표지의 일러스트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미국에서 원래 출시된 판본은 주인공 퀸의 정상적 외관부터 시작하여 완전히 갈라진 선으로 그려진 내면의 혼란의 묘사까지의 중간과정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한국어판은 마지막 혼란의 그림을 생략하고 중간과정까지만 잘라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더욱 큰 문제는 바로 글꼴의 사용이다. 이 작품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원어 판본은 경직된 분위기의 곧은 글꼴, 제3자적 시선의 타자기 글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담아내는 부드러운 글꼴 등을 포함, 다양한 글꼴들이 효과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세심한 연출의도는 한국어판에서 일괄적으로 가벼운 글꼴 하나로 통일해버리는 통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보도 자료에서 만화라는 용어의 사용을 의도적으로 꺼리며 ‘그래픽 노블’이라는 어휘로 한껏 멋을 부려보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세심한 미학적 관심을 먼저 발휘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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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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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적 생활 – 『크래커』[기획회의 060415]

!@#… 전작 ‘남자친9’ 보다 표현은 세련되어지고, 신선함 측면에서는 좀 심심해졌다. 안정기에 들어선 작가가 되어버리는 건가? 그게 좋은 건지 나쁜건지는 뭐라 하기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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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적 생활 – 『크래커』

김낙호(만화연구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공적인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중 가장 커다란 난점 중 하나는 바로 독자들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방식이 이중적 구조로 되어있다는 점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우리가 이야기를 ‘경험’하는 방식은 큼지막하고 연속된 서사의 흐름을 따르지만 ‘기억’은 분절적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가 서사적 흐름으로 경험된다는 말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기억이 에피소드라는 말은 무엇일까? 전체적이고 커다란 줄거리의 흐름을 기억하기보다, 강렬한 순간들, 뚜렷한 인상이 남는 어떤 상황과 그 속에 처해진 인간들의 당장의 대처 패턴 위주로 기억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교량 역할로서 비로소 하나의 줄거리와 서사적 흐름이 떠오른다. 특히 우리들의 진짜 삶 자체부터가 특별한 세계 속 특별한 사건의 경험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따라서 만약 일상적인 상황을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면, 당연히 굵은 서사적 흐름보다는 일관된 분위기 속에서 반복적 구도의 에피소드 위주로 제시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굵은 서사적 사건을 만들만한 소재가 없어서라기보다, 그쪽이 훨씬 더 말 그대로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크래커』(토마 / 애니북스)는 문자 그대로 그냥 같이 살고 있을 뿐인 두 동거 남녀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다. 서로 연인도 아니면서 단지 방세를 줄이고자 같이 사는 남녀라는 설정이 일상적이라기보다, 여하튼 그렇게 살고 있는 두 사람이 겪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공감시키기 위해서 극단적일 정도의 에피소드 중심 이야기를 구사하고 있다. 짧은 몇 페이지 속에 벌어지는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사소한 다툼, 작은 오해, 또는 단순한 잡상이 파스텔톤의 간결한 낙서체 그림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소위 에세이툰이라고 불리우는 감상에 그림을 삽입하는 것에 가까운 장르의 만화류들과는 다르게, 실제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교훈이나 단상을 전달해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짤막한 에피소드들의 연속 속에서 꾸준히 인간사가 진행된다. 남자는 연애를 하게 되고, 여자는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며 여러 상황들을 벌이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차이기도 한다. 밴드 매니저가 직업인 남자는 잘 못나가지만 자기가 지지하는 음악가들을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여자는 조직 없이 스스로를 관리해야하는 압박과 자유를 동시에 느끼며 직업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 특별히 처절하다거나 극사실적으로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해서 현실을 환기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일상’으로 독자들에게 경험시켜준다는 것이다.

『크래커』에서 다루는 남녀간의 관계 역시 이런 맥락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 둘은 알고 보니 서로를 갈망하지만 겉으로는 쿨하게 서로를 외면하는 주말 드라마 같은 방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고, 문자 그대로 그냥 살다가 이런 저런 서로에 대한 모습을 관찰하고 또 관망하는 사이다. 대변을 보고 깜빡 잊고 물을 안내린 적이 있는 여자와 연애를 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는 남자의 결심이 이런 사이를 잘 나타내준다. 작가는 이전 작품인 『남자친9이야기』에서도 이미 이런 적당한 거리감을 지닌 쿨한 인간관계 설정을 선보인 바 있지만, 헤어진 남자친구라는 나름대로 끈적한 설정이 깔려있던 바 있다. 하지만 『크래커』에서는 그 정도의 설정마저도 부여하지 않고, 정말 문자 그대로 서로를 관망하는 인간관계 자체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훨씬 더 높은 완성도의 트렌디함, 쿨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드라마틱함으로 다가온다. 확실하게 작가는 한층 더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한층 능숙하게 다가선 셈이다.

일상의 에피소드로 서사적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세밀함이다. 기이한 사건으로 시선을 휘어잡는 방식이 아닌 이상, 독자들의 관심을 붙들어 맨다는 것은 바로 하나의 주어진 상황을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서 복잡 미묘한 관계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끄집어내어 공감으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에피소드가 ‘리얼함’을 획득하여 수많은 생각의 가지들이 뻗어져 나오고,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 틀이 완성된다. 『크래커』의 경우 연인은 아니지만 연인이 될 수도 있는 현실적 조건에 처해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에 있어서 그런 세밀함이 상당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한 에피소드에서, 여자는 남자가 돈 안되는 밴드 매니저 일을 하고 있기에 그저 그렇게 수주를 받고 있는 프리랜서인 자신과 비슷하게 곤궁한 처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보고 있자니까 원하는 CD들을 대량으로 잘만 사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 하나다: “있는 집 자식들이란…”. 이런 종류의 것들이 바로 실제로 우리들이 현실 속에서 종종 구사하는 우리 주위 세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 아니던가.

물론 에피소드 단위의 감수성에 기반한 접근 방식이 모든 면에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약간만 독자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실패해도 등장 인물간 관계에 대한 피상적 묘사에 머무르기 쉬우며, 쿨함을 추구하던 의도가 경박함으로 오도될 수 있다. 즉 독자들의 상황적 트렌드를 강하게 탄다는 것이다. 물론 그 트렌디함 마저도 넘어설 수 있는 강력한 근본적인 매력을 겸비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크래커』의 경우 에피소드들이 축적되어 만들어내는 전체 이야기의 짜임새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긴밀하게 묶여지고 있기보다는, 한회씩 순간순간 펼쳐보게 만드는 연재물로서의 재미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크래커』는 재미있다. 공감을 보내는 독자층을 충분히 끌어들일 힘도 있다. 에피소드 묘사의 능숙함도 즐겁다. 온라인에서 한 회씩 연재로 보는 것의 즐거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책도 좋은 품질로 제작되어 출판되었다. 작품 분위기와 어울리는 팝 성향 독립밴드들의 노래들을 모아 놓은 음반도 같이 출시되어 분위기를 돋아준다 (다만, ‘최초’의 카툰 사운드트랙이니 하는 명백한 거짓말을 홍보자료에 늘어놓는 과유불급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면 마음 편하게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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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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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광을 보며 성장하기 – 『하나오』[기획회의 060401]

야구광을 보며 성장하기 – 『하나오』

김낙호(만화연구가)

야구라는 스포츠는 자고로 수많은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서 많이도 소재로 활용되었다. 분명히 야구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고, 열정과 극적인 드라마가 가득하다. 비록 축구도 공은 둥글다며 격동의 승부를 강조하지만, 시간 제한으로 움직이는 스포츠가 아니기에 소위 ‘9회말 투아웃 끝내기 만루 홈런 1점차 승리’가 가능한 야구만큼은 아니다. 게다가 팀 스포츠이면서도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1대1 승부가 게임의 기본 룰이기 때문에, 통계적 수치화라든지 기타 등등 팬들이 광적으로 좋아해줄만한 요소가 많다. 하지만 반대로,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야구만큼 뻘쭘한 스포츠도 영 없다. 규칙에 익숙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경기가 진행되는지 별로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세한 규칙을 몰라도 적들을 피해서 공을 그물에 넣기만 하면 되는 여타 구기 종목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강렬한 열정의 대상이 되지만,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열정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기 십상인 종목이다. 그렇기에 야구 경기 자체는 열정적인 드라마적 대결의 장이지만, 야구를 ‘바라보는’ 이야기로 간다면 열정과 이해의 충돌을 만들어주는 좋은 소재가 된다.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보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은 소재로 활용하여 결국 꿈을 꾸는 것의 즐거움, 즐길 줄 아는 것의 즐거움을 서로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를 만들기가 좋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완간된 『하나오』(전3권 / 마츠모토 타이요 / 애니북스)는 야구광 아버지와 야구에 관심 없는 아들 사이에 이해의 고리가 생겨나는 과정을 그린 유쾌한 성장물이다. 일본 최고 프로팀의 4번타자가 되겠다는 꿈 속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모범생으로 살며 야구에는 관심 가지지 않고 살고 싶은 초등학생 아들이 같이 살게 된다. 그리고 여러 좌충우돌 속에, 역시 꿈을 꿀 줄 아는 것의 미덕에 아들도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황당하고 아름다운 해피엔딩으로 향해 간다. 동네야구에 열 내며 프로 최강을 꿈꾸는 아버지가 오히려 소년스러우며, 현실에 완전히 적응하여 합리적 인생설계만을 목표로 하는 초등학생이 어른스럽다. 그러나 그 애어른은 결국 나름의 오해와 성장통을 거치면서 꿈이 있는 소년으로 자라난다. 배트와 공, 글러브의 힘이다.

『하나오』의 작가 마츠모토 타이요는 한국의 여러 젊은 작가주의 만화 지망생들에게 필수 참조 작가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만화라는 매체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젊음’이라든지 ‘자유분방함’의 이미지를 내용도 연출도 만화 특유의 방식으로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해낼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간 한국에는 『핑퐁』이라는 탁구만화 한 편만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좀 더 발랄하고 대중적인 또다른 대표작으로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핑퐁』이 작가의 성향 가운데 보다 리얼한 묘사법을 추구하는 방향에 있다면, 『하나오』는 유희적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두 작품, 아니 나아가 작가의 모든 작품을 꿰뚫는 핵심 모티브들이 효과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세계의 핵심 키워드는 청춘, 유희, 그리고 광각렌즈다. ‘청춘’은 작가의 핵심 주제로, 주로 성장통이라는 모티브로 발현된다. 그런데 그 청춘은 바로 지리한 세상과 강렬하고 자유로운 자극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의 시기다. 그 청춘의 끝(?)에, 작가는 마지막에 슬며시 자유로움의 손을 들어주곤 한다. 때로는 확실히 희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때로는 세상에 대한 적응을 하면서도 속에는 자유의 희망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말이다. 두 번째 키워드인 ‘유희’는 자유의 연장선상이다. 그것은 장난의 재미, 노는 것의 희열, 그것을 묘사하는 낙서의 즐거움이다.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도피적 행위에서, 때로는 아예 동화적 상상으로 비틀어지고 기묘하게 여로 요소들이 제멋대로 혼합된 살짝 왜곡된 가상 세계로 나타난다. 낙서를 하고 공상을 하는 소년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세 번째 키워드는 ‘광각렌즈’다. 광각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특유의 과장된 앵글과 원근법은 앞서 이야기한 주제와 감수성들을 표현해내는 시각연출 방식이다. 이 기법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세계를 극단적으로 주관적인 공간으로 만들며, 무언가를 단번에 뛰어넘고 싶어 하는 역동성의 이미지를 만든다. 중력이나 관성 같은 물리적 속박으로부터 자기 힘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 키워드는 『하나오』에 대단히 뚜렷하게 발현되어,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물론 아들은 변하지만 아버지는 사실상 변하는 게 없다는 점이라든지, 부자의 뜨거운 유대관계 속에 어머니는 별 역할이 없다는 것이라든지 이야기상의 허점을 찾아나서는 것이 어렵지는 않겠지만, 작품의 재미를 즐기는 즐거움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이번에 한국에서 출판된 『하나오』의 소장 가치 역시 높다.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95점 이상은 줄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한 번역, 좋은 인쇄품질과 멋진 제본이 그 핵심이다. 게다가 원래 작품 자체도 분량이 3권으로 마무리되어, 중간에 늘어지는 일 없이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만족감을 준다. 반드시 짧은 만화가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하게 시작했던 만화 작품이 적당히 높은 인기 속에서 연재를 하며 줄거리 무한 엿가락 늘이기라는 함정에 빠져버리는 경우를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특히 캐릭터성과 에피소드 방식 전개로 되어있는 경우에는 더욱 더 말이다. 작가의 밥벌이는 보장하나 작품으로서는 무너지는 연재물들의 바다 속에서, 자기 작품을 완전히 관리할 줄 아는 귀중한 참조 사례이기도 하다. 작가에게도 출판업계에도 독자들에게도, 문자 그대로 ‘모범적인’ 만화로 널리 추천할 만 하다.

하기야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장점을 찾고 주변에 추천을 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은, 만화라는 문화의 재미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마치 야구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야구의 재미를 설파하는 야구광의 모습과 진배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가 이 즐거움의 세계, 꿈을 꾸는 즐거움에 한사람이라도 더 입문시킬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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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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