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영화를 판단하기 – 아라한 장풍대작전

아라한 장풍대작전을 보고. 거기에 대한 딴지일보의 영화평도 보고. 거기다가 남겨준 한마디. 왈가왈부하지말고 닥치고 그냥 봐라…주의자는 결코 아니지만, 비평을 위한 비평…즉 목적도 뭣도 없이 단지 지면을 채우기 위한 비평에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개인 홈피도 아니라 나름대로 언론이고 뭐고를 표방한다면, 비평은 순수한 개인감상이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이유와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폭주해서 어디선가 저절로 그런 의도가 만들어져서 필자의 손아귀를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끔 이런식의 말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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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지 게시판은 분위기 타는 거 빼면 솔직히 시체 아닌가? 이전에 다른 영화평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끔은 누군가가 조회수나 추천수 조작기도 동원한다. 지금 분위기가 무조건 아라한 장풍대작전 까면 플러스, 좋았다고 하면 졸라 마이너스 때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난 재기발랄한 영상실험을 보러 간 것도 아니고, 유쾌한 오락영화 한편 보러 간건데 흡족했거든? 언제까지 다찌마와리 타령이냔 말야. 정두홍의 악역이 너무 얕다고? 그럼 줄줄이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리? 신선계와 인간계가 분리되고 그 사이에서 드문 왕래가 있고 인간계의 혼란을 보다못한 신선이 개입을 하다가 마성에 사로잡혀 폭주한다… 전형적이잖아! 무협 환타지에 익숙한 사림치고 이런 캐릭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왜, 신선이니 도인이 뭔지도 다 설명해달라고 그러지 그래? 허공답보도, 경공술도, 전음입밀도 모두 다 일일이 설명해주라고 하지 그래? 이미 장르의 약속으로 정해진 것들은, 그냥 다들 알고 있으려니 하고 해피하게 넘어가는 게 바로 장르영화 아닌가. 대신 그자리에 또다른 ‘즐거움’을 집어넣고.

!@#… 난 근데 류승범의 캐릭터가 충분히 즐거웠거든. 괜히 러브러브 분위기로 안간 것도 좋고. 아 씨발, 방송국이라잖아, 방송국. 난 그 대사 하나만으로도 영화표 값어치의 즐거움은 뽑았거든? 즐기지 못했다는 열분들은 말이야… 스.스.로.영.화.표.어.치.만.큼.의.즐.거.움.을.얻.어.낼.생.각.이.애.초.에.없.었.던.거.야.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영화가 즐거움을 가져다 주든? 스스로 즐길 준비를 하고 즐겨야 즐겁지. 특히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으로 승부하는 닳고닳은 장르영화…나아가 그런 장르영화들을 공개적으로 짬뽕하겠다고 나선 장르영화라면 더더욱. 류승범의 원맨쇼로 진행되는 무협성장물을 두고, 류승범은 재밌으나 영화는 워스트 쥬니어라는 식의 평가는 솔직히 좀 닭살돋는다. 적어도 이 영화는 류승범이 재밌었으면, 재미있는 영화인거다. 스테이크 요리를 먹으면서, 고기는 맛있는데 요리가 형편없네요…라고 평가하나? 아 물론 그렇게 평가할 수도 있다. 같이 나온 당근이니, 파세리니 하는 것들이 졸라 상한 것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원래 의도한 본체 – 즉 고기덩어리가 육즙 가득 신선발랄하고 입에서 살살 녹으면 그냥 해피해지는 거다. 나머지는 부수적이란 말이다. 고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더 나은 약점들이다. 그 다음에 주방장에게 항의하든 말든. 

!@#… 자꾸 류승완 감독이 안타깝다는 식의 별 필요도 없는 걱정이나 하면서 폼잡고 있지 말고… 감독은 대자본 동원해서 자기 찍고 싶은 거 해피하게 찍고 있잖아. 너무 자기맘대로 해서, 막판 결투씬 늘어지는 거 봤지? 다찌마와리는 그 때 주어진 예산으로 자기 찍고 싶은 거 찍은거고, 아라한은 아라한인 거다. 왜, 자본이 재능을 타락시켰다느니 하는 말을 하고 싶은거냐? 그럼 샘 레이미는 1억짜리 스파이더맨을 만들 수 있는 실력과 지명도를 가지고 다시 이블데드 찍으러 가야하게? 성냥팔이소녀마냥 한국영화계를 말아먹을 재앙급 프로젝트도 아니고… 매트릭스니 킬빌은 또 왜 맨날 들먹이나. 철학이니 아시아 무협영화에 대한 오마쥬니 어쩌니 하는 껍데기들을 다 벗겨내고 오락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평가를 했을때, 그것들은 도대체 얼마나 더 대단했다는 건가.

!@#… 적어도 난, 내가 이 영화 보면서 겪은 즐거움 – 즉 오락으로서의 즐거움 – 은 그냥 간직하고 있을련다. 그리고 아쉬웠던 부분은, 속편이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련다. 예를 들어서 난 말야, 봇짐 할머니나 구두방 아저씨같은 생활도인들이 문파를 이루어서 서로 항쟁을 하는 이야기도 보고 싶다. 사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핵심정서가 되어주었으면 했거든… 일가를 이루는 사람들이 진짜 득도한거고, 그들이 이 세상의 진짜 주인들이라는 거. 그냥 고수들이 평범하게 살고있더라 하는 소림축구의 세계관보다 훨씬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더욱 그쪽으로 파고 들어가면 얼마나 훌륭하겠나. 류승범이 변신슈퍼히어로 마냥 대활약하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더 보고싶다. 반칙왕과 스파이더맨과 품행제로를 합쳐놓을 수 있는 최강의 남자 캐릭터, 그리고 그걸 아무 무리없이 소화해내는 배우가 있지 않는가.

!@#… 그래서 당신은 아라한을 별 다섯개, 베스트로 봉하겠냐고? 전혀. 하지만 재미없으니 보지말라는 말은 안한다. 그 반대다. 재미있으니까 봐라. 대신, 재밌는 장면 같으면 낄낄대며 웃으면서 좀 봐라. 그걸 위한 영화다. 그 이외의 목적에 대해서는 어차피 부실덩어리다. 하지만 빨래방망이로 야구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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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게시 시스템에서의 언어 사용

!@#… 이런… 트랙백도 제대로 작동 안되는군. 네이버… 이게 무슨 블로그란 말이야!!! 뷁!!!

!@#… 아 뭐 여하튼. ‘연구자’들이 쉽게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현실세계의 변화를 스스로 체험하고 즐기면서 사는 것에서 나오는 통찰력. 종종 그것은 학술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라든지, 완성된 논리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훌륭한 통찰과, 더 많은 깊은 생각을 위한 단서를 던져주는 수가 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글 말이다:

웹 게시 시스템에서의 언어 사용 (http://pocorall.net/v2/archives/000279.html)

!@#… 자, 이제 근거를 조사하고 이론을 세팅하고 방향성을 잡고 실용과 대안을 만드는 것은 내 몫이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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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그리스도의 정열’? 그럴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이지. 여튼, 말많고 성공도 많았던 영화, 결국 보게 되었다. 짧은 인상들.

1. 브레이브하트.

…뭐 다들 알다시피, 이 영화는 멜 깁슨의 원맨쇼다. 유대계 자본(한마디로, 주류 헐리웃, 미국 금융 그 자체)들이 투자를 꺼리고, 또는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투자를 꺼려서 결국 멜깁슨 호주머니에서 돈 3천만달러를 털어 만든 “독립 블록버스터 영화”. 나도 호주머니가 그렇게 컸으면 좋겠다. 제작 투자 각본 감독 다 멜깁슨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러다보니, 멜깁슨이 원맨쇼를 했던 또다른 과거의 영화 한편과 이미지가 많이 겹친다. <브레이브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브레이브하트의 마지막 30분(그러니까, 마지막 전투 끝나고 고문받다가 장렬하게 죽는 부분)의 두시간 버젼이다. 얻어맞고 고문당해서 육체가 문드러지면서도, 눈빛만은 잃지 않고 버티기. 그러다가 마지막에 장렬하게 한마디 외치고 끝. 그리고 에필로그. 간단명료 그 자체이면서, 완전한 복사판이다. 그러니까 그 때 그걸 보고 재밌었던 사람들은 이번 영화도 재밌게 보겠지.

2. 말초.

…이 영화, 말초적이다. 엄청 말초적이다. 고매한 종교적 영적 영감이니 뭐니, 깡그리 배제했다. 그냥, “예수는 이렇게 졸라 맞아가면서도 니네를 사랑하고 용서했다; 그러니까 니네도 이제부터 교회 다녀라”. 영화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자 인간의 아들로서 겪는 정신적 갈등은 대략 5분 정도로 축약해버린다. 나머지는, 그냥 호쾌하게 두들겨 맞는거다. <시계태엽 오렌지>의 말콤 맥도웰이 생각났다. 그 인간은, 성서를 읽으며 예수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뒤에서 채찍질하는 로마병사에 이입하고 즐거워했다. 뭐… 이 영화라면 그게 좀 어려웠을꺼다; 로마병사들이 라틴어로 말하니까. 하지만 어떤 SM보다 강력하고 구체적인 신체폭력의 말초적 자극은 대단한 임팩트를 준다. 중세의 수도원 가운데 어떤어떤 일파들은 스스로 등에 채찍질을 하면서 신앙을 다졌다지 아마? 대략 그런 컨셉이다. 그래도 종교적 가르침에 관한 것인데, 너무 말초적으로 단순화시켰다고? 여튼, 어차피 생명유지 기능에 필요한 최소한의뇌세포만 남겨놓고는 나머지는 다 퇴화해버린 현대의 주류 영화관객들에게 딱 맞는 수준의 접근법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박스 오피스에서. 아마 한국에서도.

3. 언어.

…아람어와 라틴어로 된 영화. 영어로 안하고 당시 현지어를 사용한 것은 충실한 사실재현을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로 그런 식의 어감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이 가상하다. 아람어…는 내가 중동의 언어들을 전혀 모르니까 생략하지만, 라틴어의 재현은 정말 감동이다. 여기서 로마 병사들이 구사하는 라틴어는 바티칸식의 딱딱한 기도문의 어감이 아니라, 현재 이탈리아어의 어감(그렇다고 내가 이태리어를 한다는게 아니라… 들리는 ‘느낌’ 말이다)을 상당부분 품고 있는 살아있는 생활 언어 그 자체였다. 이 황당한 시도에 우선 박수. 재밌는 건, 유대 사제들과 빌라도가 대화할때는 아람어, 예수와 빌라도가 대화할때는 라틴어라는 것이다. 즉 예수는 당시 지배민족이었던 로마인들의 언어이자, 더 교양있고 깊이있는 언어로 취급받은 라틴어도 제대로 구사할 줄 아는 훌륭한 인텔리로 묘사된 셈이다.

4. 유대.

…알려져있다시피, 이 영화는 “유대인에 대한 악한 묘사로 인하여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하여 자본 투자를 못만났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유대계가 잡고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유대인의 모습은 이미 2000년 전에 묘사된 것에서 그리 새로울 것도 없었다. 유대인이라서가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단지 우매하고 나약하고 따라서 한없이 잔인한 군중들의 모습이었을 뿐이다(물론, 여기 한국에서도). 정말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영화속의 사제들이 아니라, 현실의 그런 인간들이다. 배타적이고,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십분 이용해서 다른 삶의 방식들을 철저하게 박해하고 억압하는 잘난 족속들… 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그런데, 오늘 뉴스를 보니 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하마스 지도자를 헬기로 사살해보렸다고 하는군. 또 (‘유대인들의’) 미국은 비난성명 한번 안하고 침묵을 지키는군. 이 이미지, 편견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5. 마무리: 그래서 감동은?

…종교적 헌신과 진정성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뚜렷하게 보인다. 멜깁슨씨, 고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헌신과 진정성이라면, <삼손과 데릴라>를 위시한 김청기 감독의 수많은 성경 애니메이션들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안바라고 사비로 만들다시피 한 것도 그렇다. 내게 있어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누군가의 진심이 담겨있구나, 라는 것이 줄 수 있는 감동 뿐이다. 그것이 결코 적은 것이라거나 폄하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딱 그 정도까지라는 것이다. 시각적 쾌감으로 즐기거나(멜깁슨은 팀버튼이 아니란 말이다), 이야기의 매력(워낙 많이 보고 들은 스토리라서…)으로 즐기기에는 사실 좀 턱없다. 그냥, 영상으로 보는 기독교 성서 + 한 호주출신 미국 영화인의 신앙에 대한 절절한 의지. 나에게 영화적 감동을 주는 것은 그럭저럭 가능하지만, 나를 다시 일요일마다 교회로 직행하게 만들만한 영화에는 39.304% 쯤 부족하다. 하기야, 아람어와 라틴어로 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원래 이 영화의 의도가 포교활동보다는 기독교 신자들을 위한 컬트영화에 가까웠을 수 밖에 없지만. 여튼, 볼 만 하다.

PS: 하지만 가능하면 보기 전에 성경 4대복음 중 아무거나 하나를 한번 더 읽고 가거나(기독교 신자라면), 성경의 내용을 어느정도 꿰고 있는 친구를 데려갈 것(신자가 아니라면)을 권한다. 워낙 성서의 wndy 이벤트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물흐르듯 플래시백 이벤트로 주욱주욱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PS2: 눈썹을 홀라당 밀어버린 사탄 아저씨, 당신의 묵직한 카리스마는 가히 대천사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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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웹

!@#… 웹이라는 녀석은, 원래는 www 표준규약과 html 언어에 의하여 움직이도록 되어있다. 그냥 어떤 기술자가 짜잔~하고 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합의에 의해서 표준안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대부분의 현대 테크놀로지가 그렇듯이).

…당근, 표준이라는 것은 약속이라는 말이고, 대개 약속은 어겨지기 마련이다. 표준안은 보통 너무 피상적이고 미약하며, 재빠른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지 못하고 굼뜨다. 새로 표준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방해물. 말이 이해가 안가면, 대략 이 나라의 ‘국회’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니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혹은 기타 자신이 속해있는 임의의 개판 일보직전의 조직을 한번 상기해보자.

…여하튼 그래서, 비록 표준안에 속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재주를 발휘한다고 하는 것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표준안의 호환성을 지키면서 부가기능을 첨가하는 정도면 좋은데, 종종 꽤 근본적인 부분까지도 건드리는 만행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새로운 기술적 성과를 새로운 공공 표준안으로서 추진하고 공개하기보다는 그냥 사익을 위해서 활용해버린다. 사실 이들은 표준안의 어기는 것으로서, 호환성 문제라든지 하는 것을 통해서 전체 시스템의 비효율화로 이어지든지, 아니면 MS처럼 미디어 공공재의 사유화라는 무시무시한 무공으로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왜 어떤 페이지들은 ‘MS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돌아가는지 고민해본 적 있는가?).

…더헉. 또 무거운 글이 되는군. 여튼 원래 하려던 말로 돌아가자. 속칭 “보이지 않는 웹”이라는 개념이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 이 아니라, 우리 일상적인 인터넷 생활의 가장 현실적이고도 피부에 와닿는 개념이다. 무엇인고 하니, html을 기반으로 하는 표준적인 웹 검색엔진 시스템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인터넷 상의 정보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검색엔진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정보를 통해서 물어물어 연결되어 찾지 않고서는 그 정보의 존재 자체도 모르게 된다는 말이다. 매초 매분마다 새로운 정보가 탄생하는 정보의 무한쓰레기통인 인터넷에서, 그건 꽤 치명적이다(라이코스에서 최초의 검색엔진을 발명하기 전의 구석기급 웹이 얼추 그런 모양새였다).

…이런 식이다. 더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사람들은 독자적인 데이터베이스 엔진을 만들어냈다. SQL이니 뭐니 하는 어차피 들어봤자 머리만 아픈 이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웹에서 구현을 하려면 html이라는 표준언어를 사용한 ‘웹페이지’라는 물건으로 그 정보를 변환시켜줘야 한다. 안그러면 창에 안뜨니까. 그래서 jsp니 asp니 php니, 좀 더 간단히는 cgi니 하는 것들이 마구 등장한다(이 이름들은 주소창에서 심심치 않게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즉 특정한 데이터를 임시적으로 html로 만들어서 당신들의 브라우저에 쏴주는 것이다. 실제로 그 데이터에 대한 그 모양 그대로의 html언어로 된 웹페이지 파일 자체 – 즉 물리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상-가상현실의 경지다, 이정도쯤 되고 보면.

…하지만 여기서 문제 발생. 실체(html 파일)가 없다보니, 그것을 웹 검색엔진은 검색해내지 못한다. 비록 대부분의 검색엔진은 웹크롤러라는 소프트웨어 로보트를 활용해서 인터넷 곳곳을 누비며 정보를 수집하도록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데이터베이스형 정보창고 앞에는 무용지물이다. “모든 가능한 독창적인 데이터베이스 엔진”에 대해서, “모든 가능한 정보 입력”을 다해보고, 그 결과 나오는 모든 가상의 html 페이지들을 등록해 놓기에는 턱없이 역부족인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라고 자꾸 말하니까 못알아들으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게시판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국의 웹 상에 퍼져있는 수많은 게시판의 정보들은 거의 대부분 일반적인 웹 검색엔진으로 검색되지 않는다.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게시판 프로그램인 제로보드나 이지보드 등이, 실제로 html을 남기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엔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해당 게시판 내부에서 게시물 검색하는 것이야 물론 깔끔명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게시판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많은 주옥같은 정보들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웹”이 되어버린다.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서는 검색이 안되는, 그래서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런 데이터가 된다는 것이다. 주소창 속의 것은 자고로 *.html로 끝나야 한다. 무슨 “…do?Redirect…20394#” 따위가 아니라.

…Movable Type로 대표되는 최근의 여러 블로그 엔진들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기존의 게시판들 마냥 자유롭게 작성하고 고칠 수 있으면서도, 실제로 html을 만들어서 저장해놓는다. 포털 서비스에서 해주는 맞춤형 블로그 중에서 생각하자면, 야후!블로그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런데, 예를 들자면 엠파스나 네이버 블로그는 그런 해피한 녀석들이 아니다. 그냥 자체 엔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존의 게시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좀 더 사용하기가 편해졌다는 것만 제외하자면 말이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웹”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네이버 블로그의 자료 검색은 네이버 검색엔진에서나 돌아간다. 어디 외부 페이지에서 직접 링크를 한 게시물이 있어서, 그것을 타고 검색엔진의 로봇이 어느날밤 우연히 흘러들어와 기록을 남기고 가는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그런 치명적인 약점들을 감추기 위해서 이웃이 어쩌느니 일촌이 어쩌느니 하는 오만가지 꼼수를 쓴다.

!@#…인터넷은 네트워크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개방되고 가장 호환성있는 궁극의 네트워크를 지향하고 만들어졌다. “보이지 않는 웹”은 그 이상향이 실제로는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하나의 사례다. 사실은 별 쓸모도 없는 약간의 편의, 약간의 허영 때문에 네트워킹, 사람과 사람들의 진정한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목표로부터 하염없이 벗어나는 나약함이 싫다. 무엇보다, 그것을 알면서도 마찬가지로 그것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미미한 기술적 숙련도만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기 네이버에 블로그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말이다. 정말로 열린 소통을 지향하는 네트워크, 그것을 목표로 하는 인터넷이 되었으면 좋겠다(그런데, 과연 나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원하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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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폄하발언… 보도할까/말까?

!@#… 다이내믹 코리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총선 지지도도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농당조로 흘러나온 ‘이제 쉬세요’따위 발언이 한 당의 지지율을 십수프로 갉아먹을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널뛰기다. 널뛰기 건너편에는 대략 코끼리. 지금 막 착지하면서 나를 저 하늘의 별이 되도록 날려버릴 것만 같은 현기증.

그래서… 여기 하나의 화두가 있다. “대학생 아마투어 기자 박하린은, 과연 속칭 정동영 노인폄하발언을 보도했어야 했을까, 말아야 했을까?” … 공당의 대표가 아무리 지나치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꼬투리 잡힐 수 밖에 없는 가벼운 비유를 코멘트로 던진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 왜 없겠나. 그게 솔직한 모습인가보구나, 하고 나름대로 의욕도 불타올랐을꺼다, 안그래도 의욕만땅일 대학생 기자니까. 그런데, 아무리 아마투어든 뭐든, 기자라는 역할에 나름대로 자신을 위치시켜보고 싶다면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생각했어야 했다.

1. 기자는 중립적이지 않다

– 언론의 중립성?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20년전, 지나가던 동네 꼬마들이나 신봉했을 법한 소리다. 언론은 중립적이지 않고, 중립적일 수도 없고, 중립적일 이유도 없다. 다만 얼마나 사실에 기반한 확실한 보도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조선일보고 뭐고가 지랄스러운 것은 논조가 개판이라기 보다는(물론 개판이기도 하지만), 비열하게 사실을 끼워맞추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마구마구.

당연히, 그 언론을 만드는 기자도 중립적일 수 없다. 중립적인 기자가 필요하다면, 저기 명동 옷가게의 마네킹군을 추천한다. 중립을 지향한다는 주장 자체도,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당연히 의식하든 말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어떤 주장을 하는 것이고, 그 주장이 얼마나 옳은 것인지를 자신이 조사한 근거를 가지고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보도조직 내에서 뭉쳐지고 또한번 의도에 따라서 걸려져서 짜잔! 완성품. 게이트키핑이고 어젠다세팅이고 하는 저널리즘 이론들이 왜 있을 것 같은가.

즉. 대학생 기자든 프로든, 의도한 방향이었든 아니었든, 결국 자신이 능동적으로 정치적 실천행위를 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단 말이다. “나는 그냥 썼는데 다른 언론들이 왜곡해서 확대시켰다”는 것은 변명 축에도 못든다.

2. 보도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 이번 보도를 하면 된거다… 되긴 뭐가 되나. 죽도밥도 안되지. 보도는 시작이다. 담론형성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보도라는 것은 논의와 토론의 시작점, 혹은 중간에 재점화의 근거자료를 주는 것이다. 만약 어떤 보도가 의도하지 않은 효과로 번진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1) 의도하지 않은 방향이기는 하지만, 그냥 방치한다. (2)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되었음을 알리고 원래의 의도를 주장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서 노력한다. (1)번을 선택했다면, 혹은 매우 소극적인 정도로만 (1)번을 벗어나겠답시고 끄적거린다면, 원래부터 그 결과대로 의도했던 것이나 사실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보도를 하면서, 자신이 담론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만약 아예 자각을 하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나는 단지 사실을 보도할 뿐이야’ 같은 꿈같은 소리를 지껄인다면? 대략 낭패다. 희망없는 바보인거다.

정동영이 노인투표 어쩌고 발언한 것을 보도하는 그 순간에는, 이 보도를 보고 사람들이 정동영, 그리고 그가 대변하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더 부정적인 이미지, 나아가 실제로 표를 그쪽으로 행사하지 말아달라는 분명한 의도가 개입된다. 스스로 의식하든 말든,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말이다. 그것이 원래 의식하고 있던 의도 이상으로 엉뚱하게 부풀려지는 것은 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면, ‘후일담’이 아닌 ‘허위/과장 보도 및 명예훼손 고소’로 맞서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보도로 인하여 만들어진 그 소동 속에서, 자신이 계속 능동적으로 담론 형성에 개입하고 있어야 했다. 보도는 담론의 과.정. 일 뿐이니까.

!@#… 그래서, 아마투어든 뭐든 내가 생각할 때 기자로서 가져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이다. 자신의 주장,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 열린우리당 표가 떨어지는 것을 원했던 것이면, 그냥 적극적으로 ‘그래, 나는 원래 그런 생각이었다’라고 하든지, 정말로 아무 생각 없는 행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간 것이라면 언론사들을 고소라도 하든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고 수면 밑으로 사라지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기자가 정동영 노인폄하발언을 보도한 것 자체는 하등 잘못된 것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해당 기자 자신, 나아가 방송국과 신문들이 그 여파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려고 하지 않는 – ‘우리는 단지 보도했을 뿐이다’ 라는 자세는 참으로 씁쓸하다. 아니 구역질난다. 언론은 저기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면서 훈수를 두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기 땅위에 발을 딛고, 여기서 이 짐 저 짐을 옮겨주고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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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차선감소 : 인터넷 거버넌스

 

 

!@#… 인터넷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있다. 인터넷의 물리적 인프라, 기술표준, 주소관리체계, 도메인 이름 부여, 컨텐츠에 대한 관리 체계 등등, 인터넷의 (메타)미디어적인 기능들을 조율하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주 상식적으로, 그런게 저절로 될 리가 없지 않는가?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하신 당신, 구석에서 손들고 서있기를)  인터넷이 탈중심적이고 자유롭니 어쩌니 하는 것도, 누군가가 뒤에서 조율할 것은 다 조율하면서 의도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추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현상이고 주장이다. 미디어의 기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술의 산물이 아닌, 결정의 산물이다. 누가 어떻게, 왜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모르면 알게 모르게 바보되기 쉽상이다.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말이다. 대략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2001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인터넷 거버넌스 연구센터(cigs)에 연구원으로 있을 때 만든 녀석이다; 지금 만들라고 하면 꽤나 또 고쳐야 할 개념들이 있을 듯) 

!@#… 뭐 여튼. 맨 위에 걸어놓은 저 그림. 인터넷이 점점 더 ‘넓어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점차 선택의 폭은 좁아질 것이라는 냉소를 담고자 사용하고픈 경고판이다. 전방 차선 감소. 그래, 인터넷의 앞날에는 앞으로 몇차선이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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