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 2004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스크롤의 압박. (여담: 소제목은 대부분 편집부에서 뽑아주셨는데, 저보다 훨씬 감각이 좋으셨다는…)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이쪽 지면 통해서 시사만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볼 예정입니다.
(주: 도판의 만평 개재일은 인터넷판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따라서 종이신문과는 1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과 사상] 2004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스크롤의 압박. (여담: 소제목은 대부분 편집부에서 뽑아주셨는데, 저보다 훨씬 감각이 좋으셨다는…)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이쪽 지면 통해서 시사만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볼 예정입니다.
(주: 도판의 만평 개재일은 인터넷판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따라서 종이신문과는 1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출처 : 도깨비 뉴스 > (클릭)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거의 꿈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다면
이 꿈은 현실이 됩니다.
중동분쟁을 끝냅시다!
!@#…라는 군요. 정말 기분좋은 광고 한편이었습니다. …역시 저는 미디어의 힘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은 어떻든 간에.
!@#… 나는 누가 미국을 언론과 사상의 자유의 나라니 어쩌니 하는 순진무구 이단옆차기하는 소리를 하면 닭살과 짜증이 34.5%대 65.5% 비율로 마구 솟아난다. 오히려 민간에 의한 통제와 우민 정치, 상업화에 의한 의식마비의 극단을 달리는 사상최악의 사회 통치구조의 모범적 사례라는 입장에 더 가깝다. 계속해서 나의 이런 편향적인 스테레오타입을 강화시켜주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이번 건은 혼자 보고 있기 아까울 정도다.
!@#… 원문은 밑에. 에에… 결론만 풀어쓰자면, 부모들이 검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법안이 캘리포니아에서 상정되고 있다는 거다. 즉 부모들이, 어떤 매체가 지들 생각하기에 미성년자에게 유해하고 또한 유통되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연방법원에 고소할 수 있다는 것. 한국으로 번안해서 설명하자면, 검찰만 ‘천국의 신화’ 를 외설혐의로 고소하는 게 아니라, 지나가던 부모 누구라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다. 한국의 청소년 보호법은 저리가라할 정도로 극단적으로 포괄적인 표현/유통 검열 시스템이 생겨난다는 말이다. 수구 꼴통들이 사회정의로 받아들여지는 현재 미국의 메인스트림 상황에서, 과연 이 법안이 성공적으로 저지될 수 있을까?
!@#… 타산지석, 타산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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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bldf.org/pr/archives/000181.shtml
May 18, 2004
New Censorship Bill Turns Parents into Prosecutors
On April 28, California Congressman Duncan Hunter (R) introduced legislation that could “turn parents into prosecuting attorneys fighting a wave of obscenity,” the representative told Family.org. H.B. 4239, also called the “Parents’ Empowerment Act,” would allow the parent or guardian of a minor to sue in federal court anyone who knowingly disseminates any media containing “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if the material is distributed in a way that “a reasonable person can expect a substantial number of minors to be exposed to the material and the minor, as a result to exposure to the material, is likely to suffer personal or emotional injury or injury to mental or moral welfare.” The bill has been referred to the House Judiciary Committee.
On April 28, California Congressman Duncan Hunter (R) introduced legislation that could “turn parents into prosecuting attorneys fighting a wave of obscenity,” the representative told Family.org.H.B. 4239, also called the “Parents’ Empowerment Act,” would allow the parent or guardian of a minor to sue in federal court anyone who knowingly disseminates any media containing “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if the material is distributed in a way that “a reasonable person can expect a substantial number of minors to be exposed to the material and the minor, as a result to exposure to the material, is likely to suffer personal or emotional injury or injury to mental or moral welfare.” The bill has been referred to the House Judiciary Committee.The bill allows compensatory damages starting at no less than $10,000 for any instance in which a minor is exposed to “harmful to minors” entertainment products. The bill also allows that punitive damages and reasonable fees may be awarded to the prevailing party at the discretion of the court. The bill also seeks to strengthen the current test courts utilize in determining what is obscene material by providing a separate definition of obscenity specifically for children. It is an affirmative defense to action under this bill if a parent or guardian of the minor owned the material.
On April 28, California Congressman Duncan Hunter (R) introduced legislation that could “turn parents into prosecuting attorneys fighting a wave of obscenity,” the representative told Family.org.H.B. 4239, also called the “Parents’ Empowerment Act,” would allow the parent or guardian of a minor to sue in federal court anyone who knowingly disseminates any media containing “material that is harmful to minors” if the material is distributed in a way that “a reasonable person can expect a substantial number of minors to be exposed to the material and the minor, as a result to exposure to the material, is likely to suffer personal or emotional injury or injury to mental or moral welfare.” The bill has been referred to the House Judiciary Committee.The bill allows compensatory damages starting at no less than $10,000 for any instance in which a minor is exposed to “harmful to minors” entertainment products. The bill also allows that punitive damages and reasonable fees may be awarded to the prevailing party at the discretion of the court. The bill also seeks to strengthen the current test courts utilize in determining what is obscene material by providing a separate definition of obscenity specifically for children. It is an affirmative defense to action under this bill if a parent or guardian of the minor owned the material.The bill is in its earliest stage, but if it passes, it will seriously threaten retailers, distributors, and publishers. Family.org talked to Hunter who said, “If the people who published (the material), published it in such a way that they could reasonably have expected children to access it, then the parents can receive an award of $10,000.”
“This bill is troubling on several levels,” explains CBLDF Director Charles Brownstein. “It appears to allow for civil actions against any, or every, member of the dissemination food chain, from the retailer to the distributor to the publisher, of work that an individual parent may object to. So any citizen, using their own sense of what is obscene or harmful to minors, can bring suit. Considering that comics still suffer the cultural and legal stigma of being perceived as a juvenile medium, this bill could become a dangerous weapon in the hands of an individual who walks into a comic book store and is shocked to find that comics offer much more than Archie and Superman.”
Hunter’s bill enjoys the support of several religious, family, and conservative legal groups including the Christian Coalition, the American Center for Law and Justice and the World Family Policy Center at Brigham Young University. Working closely with Media Coalition, the CBLDF will continue to monitor the progress of this bill.
The full text of the bill can be found here. You may also e-mail your representative or call the U.S. Capitol switchboard at 202-225-3121 to voice your concern about this bill to your representative.
!@#… 같은 인간인데!!!!
mms://file.manian.intizen.com/manmedia/ongbak_siyun.wmv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반중력장치가 개발된 것인지도. 개조인간 기술이라든지.
!@#… 97-98년동안(그러니까, 무려 학부시절…그것도 군인 신분도 못벗어난 상태에서), PC통신 나우누리에 있던 심리학과 사이버 과방에 주말 연재(?) 칼럼을 끄적였던 적이 있다. 꽤 다방면의 주제를 종횡무진한 만담반 진담반의 물건. 비록 그 통신 공간은 이제는 사라졌지만, 게시판 및 자료실 내용은 모두 백업해놓았던 덕택에 오랜만에 한번 다시 캡춰했던 것을 들춰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어이쿠… 정말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아이디어들이 마구 날라다니는구나… 라는 인상. 하지만 여러모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는 여러 세계관의 원형적인 모티브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 있어서 내심 푸훗하고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런 것이 일기장의 효용일까?
…여튼 전에 언급했던 전자게시판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부분이 보이길래 살짝 퍼왔다. 당시 심리학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 상에서 익명 게시판을 중심으로 많은 트러블이 있었던 맥락에서 나온 질책성 글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렇게 순박하게 문제에 접근했구나, 라는 느낌. 머리가 마구 굵고 복잡해진 지금으로서는 꿈도 못꿀 명쾌한 도덕주의…-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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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낙호] 까투리의 헛소리….(47)
올린이:서울심리(서울심리) 98/12/07 11:19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전략)
!@# … ‘게시판 의사소통’
현실세계의 심리과 과방에는 두 대의 컴퓨터, 랜 단말기가 있다. 그것도 나란히. 그 두 대를 잡고 서로 채팅을 하면 어떨까… “대화의 단절의 시작”이라 명명하기로 그냥 결정해버렸다.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대화를 단절하는 행위라. 생각해보니까 참 재미있군.
(아직까지의) 컴퓨터 통신이라는 매체, 그 중에서도 ‘게시판’ 이라는 물건은 참 신기하다. ‘글로 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대가리가 커다란 인간들, 그 중에서도 ‘지식인’ 흉내를 자주 내는 대학생이라는 계급은 ‘논쟁’을 벌일 때 글이라는 매체로 해서 그 권위를 높이려는 ‘자기 위안 행위’를 자주 해왔다(게다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여러 사람들에게 듣도록 하는 자본력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 전례로서 대자보 문화, 집단 잡기장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보존성이라는 측면에서 – 따라서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게시판에 비길 바가 못된다. 물론 대중성이라는 말은 아이디라는 (유료!) 출입증의 필요성을 우선 논외로 할 때 말이다. 오랜 시간의 보존성과 접근장소의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한 번 재기된 화두는 오래오래 남는다. 한 인간이 어떤 안건에 대하여 대자보를 잔뜩 써서 벽에 붙였다. 좀 있다가 그 자리에 그에 반박하는 대자보가 붙는다. 좀 더 있으면 또 그에 대한 반론이 나와 붙는다. 몇번 후면 처음부터 관심깊게 쳐다본 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고는 청테이프 쪼가리가 엉겨있는 벽면이 짜증날 뿐이다. 대자보 논쟁의 단점, ‘중간에 끼어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집단 잡기장 문화는 어떤가. 가장 가까운 예로 ‘심동일기장’을 들 수 있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건 과방에 눌러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동일기장을 가지고 나가서 집에서, 독서실에서, 까페에서 떠오르는 자유로운 생각을 적을 수 있을까. 또한 그 수많은 악필들 속에서 필체가 아닌 순수한 내용만을 보기도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힘들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프린터로 뽑아서 일기장에 풀로 붙여놓는 것도 별로 보기가 안좋지…).
하지만 컴퓨터 통신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또다른 대안이 되어주었다. 게시판. 대자보를 차곡차곡 쌓아 놓은 듯한 정돈성. 심동일기장과 다를 바가 없는, 자유로운 ‘말’ 같은 ‘글’을 용납해줄 수 있는 공간. 아, 정녕 게시판은 꿈의 ‘논쟁’ 매체란 말인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말이 되나. 매체의 특성을 한순간이라도 잊어버리면 그것은 바로 우리를 덮쳐온다.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모든 장점은 곧 그 단점이 된다. 보존성, 그에 따른 대중성이라는 것은 논쟁의 당사자들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논쟁을 노출시킨다는 것이고, 그것은 특히 ‘오해’라는 것과 결합될 때 꽤 일을 꼬이게 만든다. 글과 말의 결합. 말을 하듯이 글을 쓴다. 아니, 말이 곧 글로 남는다. 그 속에서 맥락의 부재, 맥락의 변화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말’로 하면 대화 당사자와 주변 관찰인물들의 직접적인 관계속에서 그 맥락을 새로이 조절해 나갈 수가 있지만, 그것이 ‘글’로 이루어질 경우 이는 훨씬 힘들고 느려진다. ‘듣다가 중간에 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간에, 얼마나 애초의 맥락에서 비껴나가든 간에 끝까지 들어주고 반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상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글실력으로 반박하는 것에 실패하면 논점은 상대방의 것으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논쟁의 약육강식 논리는 ‘말’보다 ‘글’에서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되는 것이다.
또한, 게시판에서는 말을 하다가 글이라는 측면을 잊어버리며, 글을 쓰다가 말이라는 측면을 잊어버린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다른 개입이 없는 한) 영.구.적.으로 남아서 (전혀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한적이 없는 이도 포함한) 모두에게 공개된다는 것, 말 그대로 그 문제가 당사자들간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가 된다는 것. 그 문제의 초점에 ‘개인’이 있다면? 간단히 ‘이지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원했든 말았든 간에. 거기에 말을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글을 쓴다’는 생각만이 지배한다면 어떤 헛소리라도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강제로 주입하는 행태까지 (…찔리는군) 생겨난다. 간단히 말해서, 인간 한둘쯤 바보 만들고 전체가 콩가루가 되는 것은 식은 죽먹기라는 것이다.
그런 위험을 애초에 알아차린 초창기 통신인들은 엄격한 네티켓을 만들어냈다. ‘님’자 호칭과 극존칭의 사용, 다수의 권고에 의한 자진삭제, 네트상에서 생긴 문제들을 네트상에서 풀어서, 문제가 커짐을 공유한 모두에게 문제의 해결까지도 같이 공유하게 만들어주는 문화 등등.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통신인구가 폭발하면서 이는 거의 Recycle Bin으로 쳐넣어졌다 (그 대신 오히려 초창기에는 ‘장난’으로 했던 언어해체 – 어솨요, 안냐세요 같은 – 들에 장난이 아니게 집착한다… 마치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로 쓰면 바보라도 된다는 듯이). 그와 함께 통신은 점차 ‘잡스러워 졌다’. 통신은 애초에 의도한 ‘대화의 장’이 아닌, ‘자기 푸념의 장’으로 변질되어가는 것이다.
개인적 대화로서 맥락부터 파악을 하고, 아마도 개인적 대화로서 끝날 수 있었을 논점을 다짜고짜 공개적인 ‘게시판의 장’으로 끌고 나오는 것은, 특히 사고의 깊이, 글솜씨, 게다가 덤으로 해당 사회집단에서의 위치마저 손위인 인간이 손아래를 대하는 것일 경우는 그 자체로 이지메다. 그것을 온갖 인간들이 다 달려들어서 거들어주면 그건 바로 ‘왕따’다. 행동에, 발언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논점이 되는 것이지, 그래서 그 인간이 더 좋고 싫고가 공개적인 발언이 되어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격함’을 위장한 ‘무례함’은 그에 걸맞는 정중함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하지만 걸어온 시비에 대해서 정말로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굴한 짓이다. 자신을 해명하고 변호하며,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논쟁의 기본자세다. 상대가 나보다 좀 강하면 어떠한가. ‘학습된 무기력’ 탓이나 할 것인가. 그리고 토라져 있다가 ‘떠나버릴’ 텐가.
음… 너무 질책성으로 흘러가는군. 사실 이미 어쩌다가 이런 화두에 관해서 생각하고 말을 꺼내게 되었는지 너무나 뻔한데 말이다. 단지 문제가 나오고 그것이 풀어져나가는 방식이 개인적으로는 감히 보기가 안좋았기에 한마디 뱉어보았다. 이런 노골적인 질책성 문건도 그냥 ‘헛소리’로 포장해서 내보내는 이 까투리도 매우 보기가 안좋지만 말이다… 어쩌겠어. 무책임한데 (정.말. 무책임하군…). 여하튼 아름다운 게시판을 보고싶다는 소망만은 ‘참소리’겠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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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특정 영화배우를 좋아하는 경우가 없다시피 하다. 다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그 배역, 즉 캐릭터를 좋아할 뿐. 그런 전제조건 위에서, 어떤 배우가 그 캐릭터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표현해내면 감동한다. 캐릭터를 잘 표현한다는 건, 사실 꽤 복합적인 것이다. 스토리 자체는 기본이고, 거기에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이 조화. 영화같은 집단 창작에서, 누구 하나에게 공을 집중해줄 생각은 절대 없다…주의자라서.
그런데, 그런 조화고 뭐고 간에 압도적으로 기가막히게 인상적인 어떤 연기가 뇌리에 남는 경우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유리가면’급 연기(뭐…만화를 보신 분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알것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AI’에서 할리 조엘 오스몬드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설정은, 인간과 똑같이 생긴, 어린이의 마음을 넣은 안드로이드. 문지방 너머에서 윤곽선으로만 보이다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바로 그 장면. 무심코 내딛은 그 발이 집의 바닥을…탐.색.한.다. 로봇 강아지 아이보 마냥, 묘하게 기계적인 관절 움직임과 마치 센서로 처음 새로운 공간을 학습하는 그런 이미지로 발목이 공중을 미묘하게 맴돌다가 비로소 착지. 이건… 막강하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아이보에 사람의 외피를 씌운거다. 그리고 방을 둘러다닐 때의 움직임도 감동. 우선 눈이 움직인다. 그 다음에 머리가 돌아간다. 그리고서야 몸이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보캅스럽지 않고 조금도 과장되지 않게.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죽여주는 연기’는, 반드시 전통적인 의미에서 잘 만든 영화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서 나름대로 화끈한 B급 액션영화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크리스챤 베일의 한 장면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평생 먹어온 감정을 억누르는 약을 끊고, 서서히 감정을 되찾아가는 주인공. 그런데 결국 자기 눈앞에서 자신이 좋아하려고 했던 여자가 화형을 당하고, 그와 함께 그 전에 묻어두었던 자신의 처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무표정, 무덤덤하게 형장 바깥으로 나온 주인공. 그리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런데… 그의 뒷모습이 절규하고 있다! 정말, 얼굴 이 안보여도 그 표정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말로 형언하지 못할 괴로움을 집중한 표정으로 바닥에 웅크리는 주인공. 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울지도 못하고, 소리지르지도 못하는 채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무너진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연기를 본 다음에 든 느낌일 따름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도 전에 먼저 어헉! 하는 탄성을 지르게 만든 사진이 있었으니…


…다음 배트맨 영화인 ‘Batman Begins’의 배트맨 역, 크리스챤 베일. 뭐라고 할까, 이건 상상했던 브루스 웨인의 젊은날 그 자체다. 젊은 대기업 사장다운 거만함, 하드보일드, 타협없이 자신만의 정의를 밀고나가는 불도저… 게다가 배트맨 옷을 입고 취한 저 포즈란! 크리스챤 베일의 집 지하실에 실제로 배트맨 비밀기지가 있다고 해도 믿겠다. 아니,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Christian Bale ………. Batman / Bruce Wayne” 이라고 안나오고,
“Batman ………………. Himself” 라고 올라와도 믿겠다.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다 한보따리에 싸서 강물에 던져버려… 이제야 진짜 배트맨이 나타났다. 물론, 영화는 정작 나를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각이 나오는 배트맨이 등장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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