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르네상스와 로저래빗

!@#… nomodem님의 질문, “왜 로저래빗이 아니라 인어공주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 신호탄인가?” 에 대한 답변이 좀 길어져서, 따로 포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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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지적입니다 :-) 뭐 제가 그쪽으로 현재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련분야 연구자로서의 가락이 있으니,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제가 아는 바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이하 ‘로저래빗’)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인이 아닌, 실사 가족영화 라인을 부활시킨 공로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디즈니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하는 ‘디즈니 클래식’ 라인과는 별개의 경로로, 로저래빗의 성공은 이후 ‘애들이 줄었어요’ 같은 라인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극장용 영상 콘텐츠 분야 전체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리더스다이제스트의 지적 역시 틀리지는 않습니다.

2) 솔직히 로저래빗은 디즈니 전통의 힘보다는 스필버그 사단의 힘입니다. 제작자, 감독 뭐 하나 스필버그 계열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파트의 제작과 영화 배급에 있어서 디즈니가 관여되었을 뿐이지, 작품의 색은 전혀 디즈니 계통과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의 슬랩스틱 성향마저도 전형적인 워너브라더즈 ‘루니툰스’ 계통의 말썽장이들이지, 디즈니식 활극이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디즈니 계열에서는 그런 색의 작품이 단 하나도 나온 적이 없는 문자 그대로 전무후무한 작품. (하기야 그런 식으로 보자면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도 비슷한 경우입니다만, 최소한 명절과 활극과 뮤지컬 등 당시 히트치던 디즈니 클래식스러운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비틀었죠. 즉 디즈니 입장으로서는 전통의 히트요소를 이어가면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십수년전 내팽개친 팀버튼의 기획을 다시 받아들인 것입니다)

3) 로저래빗은 88년 개봉, 인어공주는 89년 개봉입니다(한국에서는 91년에 개봉했지만). 보통 2-3년씩 걸리는 디즈니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제작기간을 놓고 고려할 때, 로저래빗의 성공이 인어공주의 제작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힘듭니다. 일례로, 제작시기상 인어공주의 성공의 영향을 받지 못한 – 즉 뮤지컬도 낭만도 없는 – 90년에 개봉한 ‘코디와 생쥐구조대’는 80년대 후반의 여타 흥행실패 디즈니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묻혀져버렸습니다(라고 해도 수입 2800만불).

즉 카첸버그가 디즈니의 총체적 부활을 위해서 실사라인에서 로저래빗 프로젝트를,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라인에서 인어공주를 추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어공주에서 시도한 뮤지컬+스펙타클+낭만+모험의 요소의 성공은 91년 ‘미녀와 야수’로 완전히 굳히기 모드에 들어갔고, 93년 ‘알라딘’부터는 뭐 공식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결국 94년의 라이온킹에서 피크를 이룹니다. 디즈니의 3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번갈아가면서 1년에 하나씩 폭발시킨, 거칠 것 없는 시절이었죠. 카첸버그가 디즈니를 나가고, 무능한(…) 아이스너가 적당히 히트공식을 계속 우려먹는 걸로 현상유지를 하려고 발악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여튼 결론은: 90년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르네상스 신호탄은 ‘인어공주’가 맞습니다. :-)

!@#… 뭐, 이왕 로저래빗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글을 보면 로저래빗의 제작이 얼마나 이질적이었고, 그 결과 엄청난 흥행 성공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가 더 전개되지 않았는지 꽤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그냥 간단히 요점만 뽑자면,

(1) 캐릭터 저작권 문제: 루니툰과 디즈니 가족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꿈의 경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2) 기술적 난이도: 모든 실사-애니메이션 합성 효과가 아날로그 장인정신이었으니까요. 메이킹 다큐를 보면, 절로 기립박수가 나옵니다. 물론 작품 자체도 사실 기립박수감이지만.

(3) 스필버그 사단과 디즈니의 충돌: 이게 좀 재미있습니다. 원래는 로저래빗 단편을 몇편 계속 제작해서 프랜차이즈의 생명력을 유지하다가 극장판 속편 등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로저래빗 단편을 붙여준 덕에 여차저차 성과를 올린 디즈니의 ‘딕트레이시’와 그 때문에 단편을 못넣어서 겨우 턱걸이한 앰블린의 ‘아라크네의 비밀’을 계기로 틀어지기 시작. 결국 스필버그가 이후 단편들에 계속 몽니를 놨습니다. 게다가 ‘쉰들러리스트’로 기억과 관용의 힘에 눈떠버리면서, 이후에는 나치를 악역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봐도, 나치가 악의 화신이 아닌 단지 상대편 군인들로 묘사되죠). 그런데 하필이면 극장판 로저래빗2의 스토리가 젊은 로저래빗이 1940년대에 헐리웃에 진출하는 내용의 프리퀄이고 당시의 처녀 제시카는 나치의 스파이-_-; 그래서, 퇴짜. 브로드웨이를 무대로 하는 새 각본이 나온 97년에는 이미 카첸버그가 디즈니를 떠나 스필버그의 품으로.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제작이 될 뻔 했으나, 이번에는 디즈니의 아이스너 사장이 예산 과다를 이유로 퇴짜. 그이후로 하필이면 애니-실사 합성영화들이 다 허접하게 만들어져서 죽을 쑤는 바람에 더욱 더 부활의 가능성 소멸. -_-;

!@#… 멋진 작품, 게다가 성공한 작품이라고 해도 꼭 강력한 프랜차이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죠. 사람들 사이의 알력이 시간을 지연시키고, 시간의 지연 속에 시장성은 불확실해지고(떨어지고), 그 결과 묻혀버립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 그 반대방향이죠. 작품이 묻히지 않게 계속 팬들의 담론 속에 유통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성을 증명해주고(즉 열심히 관련 상품을 소비하고), 그 결과 제작자들에게 알력이고 자시고 간에 다 극복할 만한 시간과 이권의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입체영화로 재개봉

!@#… 올 10월 31일은 할로윈. 할로윈하면…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 그리고 개봉 13년(!)을 맞이하여, 이 걸작이 무려 3D 입체영화로 재탄생. 상영장비가 갖추어진 극장이 한정된 관계로 아직 이 동네에서는 못보고 있지만 (…혹시 나중에 스파이키즈3D 처럼 DVD라도 출시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생각해보면 같은 ‘디즈니 디지털 3D’ 기술을 적용한 치킨리틀도 일반 2D만 나왔지) 그 발상 하나만으로도 이미 감동의 도가니. 그도 그럴 것이, 가상의 렌더링을 거친 CG작업 정도도 아니라 아예 실물 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니까. 즉 입체로서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없다고나 할까. 게다가 영화의 높은 조형적 미학을 상기해볼때, 이 멋들어진 고딕 난장판 동화의 입체판이 얼마나 막강할지 훤히 상상이 간다. 리뷰들이 이제 하나씩 슬슬 올라오고 있는데, 뭐 다른 말이 있겠나. 한 부분 인용하자면, “…사실 지금껏 이 영화를 한번도 안봤던 분들이 부럽다. 이 작품을 3D로 처음 접한다는 건 최고의 영화 경험 중 하나일테니까”.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한마디로, 보고싶단 말이다… -_-; 하지만 가장 가까운 극장이 한 140마일쯤 나가야 있다니(시카고), 대략 좌절스러움.

!@#… 그리고 입체판 개봉에 맞추어, 사운드트랙도 재출시. 이번에는 원본 사운드트랙에 보너스판이 하나 더 들어갔는데, 주요 노래들의 리메이크 또는 제작 당시 데모 버젼. 그 중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것은… ‘This Is Halloween’, performed by Marilyn Manson. 너무 잘어울려!!! 제작사 사이트에서 일부분 미리듣기 가능.

!@#… 93년 처음 미국서 개봉했을때는 개봉주말 성적 20만불에 최종 총수입도 고작(?) 5천만불이었던 그저그런 수준의 흥행성적. 90년대 중반의 디즈니 르네상스 속에서도 비디오 전용 속편이나 기타 프랜차이즈 작품으로 거의 뻗어나가지 못했던 이질적 존재 (완구류마저 주로 일본의 외부 기업들이 만들었지, 디즈니 공식 제품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뚜렷한 스타일 덕에 강력한 팬층을 거느린 덕분에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덕에 결국 이런 식으로 프랜차이즈 재런칭까지 왔다. 그 팬층의 일원으로 보자면, 참 감격스러운 일이다. 역시 이노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충직한 시장성을 증명해주면 결국은 공급이 움직여주게 되어있다니까. 때로는 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로까지.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이름의 힘

!@#… 북핵 건 등 국제정세를 좀 찾아보느라 영문 구글 뉴스 검색 중, 신임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의 이름이 이리저리 자주 오르내리는 것을 발견. 그 이름을 영문으로 보니… UN Secretary-general Ban. 그렇다. 그는 바로 공포의 미스터 ‘봉쇄'(ban)인 셈이다. -_-; 북한에 무역제제를 가하면 보나마나 기사 타이틀은 이런 식이겠지: “Ban Puts Ban on NK”. 혹은 그런 조치를 거부해버리면: “Ban Bans Ban”. 어쩌면 꿈과 낭만이 넘치는(…) 그랜드 피아노 로비보다는 이름발이 더 먹혔던 것인지도. 뭐 그러려니.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그림을 읽는다는 것의 주관성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기획회의061001]

그림을 읽는다는 것의 주관성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낙호 (만화연구가)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그 의미가 ‘아닌’ 것부터 하나씩 살펴보면서 시작해보도록 하자. 우선, 예술을 감상하는 행위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바로 감상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 절대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대단히 부실하게 꾸며진 공공교육 미술 교과서에 대한 참고서의 요점 정리마냥 달달 외우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예술의 감상이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와 감성과, 감상자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와 감성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 속에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그대로 탐정마냥 추리해내는 것은 미술사적 연구의 의미는 있지만, 감상이 아니다. 감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감상자 자신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 속을 작품 속에 투영하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사실은 작가의 작품이 권위의 무게를 뒤집어쓰면 쓸수록 점점 잊혀지곤 한다. 특히 모든 사회적 맥락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거의 권위만으로 사회적 입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고전 미술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지나치게 권위로 포장한 나머지 오히려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진정한 ‘감상’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김치샐러드 / 학고재)은 바로 감상이라는 행위에 관한 만화다. 원래 블로그의 인기 연재물로 큰 인기를 누렸는데, 미술 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여져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손가락을 캐릭터화한 주인공들이 명화 한편을 놓고, 그 속에 담긴 여러 의미구조들에 대해서 분석해가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그 분석은 결코 교과서적이거나 작품의 무게에 눌린 일방성에 빠지지 않는다. 바로 감상자가 처해 있는 사회적 현실, 바로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깊은 집단적 우울함을 지니고도 여하튼 희망도 찾아보는 평범한 현대인들의 세계에 비추어 그림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필리어』그림들은 경직된 현대인들이 ‘미친년’의 내적 평온과 자연성을 갈구하는 매력적인 회귀본능이며, 밀레이의 『눈먼 소녀』속에서 현재의 절망과 미래의 무지개에 대한 희망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떤 미술 교양 해설서보다 더 현대를 살고 있는 일반 독자들에게 와닿을 수 있으며, 설명에 의한 이해가 아니라 예술의 가장 일차적인 향유 방식인 ‘감상’의 기능을 복귀시킨다.

이 만화의 형식과 서술 방식 역시 이러한 목표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되어준다. 우선, 감상의 각 요소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명화를 조각내고 변형하며 말풍선을 달아가며 상황을 희화화하는 것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다. 그림과 사진, 각종 아이콘들을 간단히 포토샵으로 합성한 것에서 오는 아마추어적인 취향 역시 지극히 실용적이다. 하지만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에 걸맞게 쉽게 복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기법 자체보다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인터넷 상의 여러 문화 현상들을 작품 감상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것에 일조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표현기법들이, 오늘날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들의 가볍고도 실용적인 시각문화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특히 감상자가 처한 사회적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서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소위 ‘짤방’ 이미지를 직접 인용하여 엮어 넣는 자유로움 역시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고정된 시각 이미지의 연속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만화 특유의 속성 역시 바로 이런 보여주며 말하는 목표에 가장 적합하게 작용한다. 마치 명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감상해내는 내용처럼, 이 작품 역시 독자들에게 자신의 사회적 맥락, 문화 속에서 읽혀지기 쉽도록 친근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소통으로서의 미술, 미술 감상하기의 자세가 과연 작가가 완전히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기술적 한계의 결과인가 의심을 가질만할 법도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가끔 발표하는 미술작업들(특히 재기발랄함이 살아있는 ‘녹차소년’은 압권이다)은 그런 의심을 말끔하게 제거해주고도 남는다.

하지만 인터넷 상의 만화와 책으로 나온 만화 사이에는 다소의 격차가 있기 마련이다. 비단 길다란 횡스크롤을 책의 형태로 잘라 붙임으로서 나오는 연출 상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세계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평범한 누리꾼들에게 공감을 자아내는 발표형식과 두꺼운 미술서적을 사서 읽고 싶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라는 것이 있다. 특히 출판사가 원래 ‘무거운’ 미술 교재 전문 출판사라는 점은 책의 품질에는 플러스, 책의 수용 방식에 있어서는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양날의 칼이다.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은 미술 전문 서적이 아니라, 현대 문화 비평 에세이에 가깝다. 인터넷 상에서는 그런 감상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었으나, 미술 서적의 형식으로 나온 책 버전은 자동적으로 다른 맥락을 요구하게 되는 셈이다. 작가가 재구성한 듯 한 책의 흐름 역시 그런 점을 어느 정도 의식하여, 우울함의 바다에 빠지는 일화부터 시작하여 후반에는 보다 내밀한 고백과 결국 불안한 독백과 암전으로 끝나는 ‘닫힌 구조’를 취한다. 책으로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작품의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이자 이 작품이 공감을 자아낼 수 있었던 기반인 열린 감상이라는 측면을 쇠퇴시킨 셈이다. 이 작품의 원래 인터넷 팬들은 한 명의 작가에 의해서 창조된 명화에 대한 한명의 미술전문가에 의한 구조적 해석을 바란 것이 아니라, 감상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즐거움을 원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화 해설이 아니라 현대 인터넷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이 돋보이는 ‘외전’격 작품이었던 ‘의기양양 조선 고양이’ 라든지, ‘21세기 풍속화첩’이 이번 책에서 제외된 것이 적잖이 섭섭하다. 책의 구성적 일관성 측면에서는 분명히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지만, 작품의 진정한 매력에 있어서는 가장 노른자위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도시문명과 인터넷 속에서 소통하며 살아가는 현대 문화에 대한 감성적이고 날카로운 통찰이, 단순히 약간 대중적인 그림 해설서처럼 보이기 쉽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즉 이 작품의 출판과 홍보의 컨셉 조절에 있어서 근본적인 발상의 재정비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대적 감수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 자신의 감성에 대한 솔직함,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만화적 의지, 이 모든 것에 인터넷 세대의 연결 지향성이 더해지자 명화의 감상이라는 행위는 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차원 –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원래의 차원 – 으로 이동했다. 뭉크도 쿠르베도 브뤼겔도, 결국 우리 자신을 읽어내기 위한 도구다. 우울해(海)를 떠도는 이상한 손가락들의 그림 읽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예술의 감상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약간 다시 생각할 자극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에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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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학고재

북핵, 햇볕정책, 외교의 조건.

!@#… c동호회에서, 최근 북핵문제와 관련해서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감을 올리신 분의 포스트에 달아 놓은 댓글. 쓰다보니 길어져서 그냥 다시 쓰지 않고 여기에 그대로 퍼옴. 여하튼 내용상으로는 이전 글과 한 세트.

[re] 외교의 조건.

!@#… 외교에서 채찍과 당근이라는 것은 편의상의 비유일 뿐이고, 실제로는 ‘당근‘과 ‘당근 중단‘입니다. 물론 무력침공이라는 채찍이 존재하지만, 그것 이외의 모든 수단이라는 것은 애초에 주어왔던 혜택을 박탈하는 형식으로 밖에 할 수 없죠. 즉 당근으로 중독시키고 의존을 시킨 후 – 즉 국제 질서의 일원으로 타국과의 교역과 외교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후 – 문제를 일으키면 그것을 중단시키겠다고 위협하는 것.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 중독시키기에 충분한 당근이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북한과 중국은 외교가 아주 약간은 성립됩니다. 여하튼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한이 햇볕정책의 확실한 성과를 거두고 싶다면, 하다못해 중국보다는 더 많이 지원해주지 않으면 택도 없습니다… OTL 아니면 제2의, 제3의 금강산 특별 관광구역을 자꾸 늘려나가거나. 물론 남한이 지금 대북 물자를 끊으면 좀 더 나라살림이 궁해지기는 하겠고, 수십만명이 더 주린 배를 쥐고 쓰러지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남한과의 고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무언가 큰 대가를 내놓을 정도로 아쉽지는 않은거죠. 즉 도저히 ‘외교’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 그런데, 북한정권도 외교 루트를 원하기는 합니다. 다만 상대들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그들 사이에서 체제를 보장받겠다는 정말 골때리는 순진무구한 발상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게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자기 골방에 틀어박히고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주제에 ‘나 사실 큰일낼 수 있는 놈이야’라고 떠벌리는 것으로 자기 존재를 설파할 수 밖에 없는 악성 히키코모리 같은 짓거리에 심취하는 것. 관계는 싫지만 인정은 받고싶다는 그 모순된 목표가 국가 단위로 나타날 때, 이런 멍청한 짓이 일어나버린 것이죠. 그런 국가단위 히키코모리를 어떻게 갱생시킬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두들겨 패서 억지로 끌고 나온다” 라는 극단적 방법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야하는 것이 다시금 남한의 입장입니다. 방에 처박혀서 동네망신 다 시키는 그 히키코모리가 비록 50년 넘게 웬수처럼 지내왔어도 여하튼 형제니까요. 힘들어도 조금씩 사람들과 관계하게 함으로써 한걸음씩 방에서 끄집어 낸다, 가 제가 생각하기에는 여전히 모범답안입니다.

!@#… 햇볕정책은 그 자체로는 북한 정권을 뒤엎으려는 것도, 영속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좀 더 외교적 루트와 방법론으로 협상 가능한 상대로 만들어내는 기본 중의 기본 토대 만들기 과정이죠.

PS.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껏 통치의 미명하에 반인륜적 짓거리를 일삼아온 정권 범죄자들을 무사방면해주는 것은 제 정의 개념에는 크게 벗어납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정상적인 외교의 틀 안에서 하나씩 압박을 넣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천사들의 합창’ 동창회

!@#… ‘천사들의 합창’, 동창회 동영상. 역시 마의 공간 유튭.

http://www.youtube.com/watch?v=-s2Tzpup5oE&eurl=

!@#… 전체적으로 원판불변의 법칙. 다만 안습의 다비드 (후퇴성 탈모…), 꽃청년 마리오, 전형적인 금발미녀 마리아 후아키나가 돋보인다. 살오른 히메나 선생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_-;

!@#… 하지만 진짜 섬찟함(?)은, 이 시리즈를 추억하는 우리 자신들도 딱 저만큼씩 자랐을 것이라는 점. 아까까지 동영상 보면서 킬킬거렸던 바로 당신말야! (버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