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르네상스와 로저래빗

!@#… nomodem님의 질문, “왜 로저래빗이 아니라 인어공주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 신호탄인가?” 에 대한 답변이 좀 길어져서, 따로 포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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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지적입니다 :-) 뭐 제가 그쪽으로 현재 공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관련분야 연구자로서의 가락이 있으니,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제가 아는 바를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이하 ‘로저래빗’)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인이 아닌, 실사 가족영화 라인을 부활시킨 공로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디즈니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하는 ‘디즈니 클래식’ 라인과는 별개의 경로로, 로저래빗의 성공은 이후 ‘애들이 줄었어요’ 같은 라인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극장용 영상 콘텐츠 분야 전체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리더스다이제스트의 지적 역시 틀리지는 않습니다.

2) 솔직히 로저래빗은 디즈니 전통의 힘보다는 스필버그 사단의 힘입니다. 제작자, 감독 뭐 하나 스필버그 계열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파트의 제작과 영화 배급에 있어서 디즈니가 관여되었을 뿐이지, 작품의 색은 전혀 디즈니 계통과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의 슬랩스틱 성향마저도 전형적인 워너브라더즈 ‘루니툰스’ 계통의 말썽장이들이지, 디즈니식 활극이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디즈니 계열에서는 그런 색의 작품이 단 하나도 나온 적이 없는 문자 그대로 전무후무한 작품. (하기야 그런 식으로 보자면 ‘크리스마스 전야의 악몽’도 비슷한 경우입니다만, 최소한 명절과 활극과 뮤지컬 등 당시 히트치던 디즈니 클래식스러운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비틀었죠. 즉 디즈니 입장으로서는 전통의 히트요소를 이어가면서도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는 분위기였고, 그래서 십수년전 내팽개친 팀버튼의 기획을 다시 받아들인 것입니다)

3) 로저래빗은 88년 개봉, 인어공주는 89년 개봉입니다(한국에서는 91년에 개봉했지만). 보통 2-3년씩 걸리는 디즈니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제작기간을 놓고 고려할 때, 로저래빗의 성공이 인어공주의 제작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힘듭니다. 일례로, 제작시기상 인어공주의 성공의 영향을 받지 못한 – 즉 뮤지컬도 낭만도 없는 – 90년에 개봉한 ‘코디와 생쥐구조대’는 80년대 후반의 여타 흥행실패 디즈니 클래식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묻혀져버렸습니다(라고 해도 수입 2800만불).

즉 카첸버그가 디즈니의 총체적 부활을 위해서 실사라인에서 로저래빗 프로젝트를,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라인에서 인어공주를 추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어공주에서 시도한 뮤지컬+스펙타클+낭만+모험의 요소의 성공은 91년 ‘미녀와 야수’로 완전히 굳히기 모드에 들어갔고, 93년 ‘알라딘’부터는 뭐 공식이 되어버렸죠. 그리고 결국 94년의 라이온킹에서 피크를 이룹니다. 디즈니의 3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번갈아가면서 1년에 하나씩 폭발시킨, 거칠 것 없는 시절이었죠. 카첸버그가 디즈니를 나가고, 무능한(…) 아이스너가 적당히 히트공식을 계속 우려먹는 걸로 현상유지를 하려고 발악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여튼 결론은: 90년대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르네상스 신호탄은 ‘인어공주’가 맞습니다. :-)

!@#… 뭐, 이왕 로저래빗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글을 보면 로저래빗의 제작이 얼마나 이질적이었고, 그 결과 엄청난 흥행 성공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가 더 전개되지 않았는지 꽤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습니다. 그냥 간단히 요점만 뽑자면,

(1) 캐릭터 저작권 문제: 루니툰과 디즈니 가족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꿈의 경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2) 기술적 난이도: 모든 실사-애니메이션 합성 효과가 아날로그 장인정신이었으니까요. 메이킹 다큐를 보면, 절로 기립박수가 나옵니다. 물론 작품 자체도 사실 기립박수감이지만.

(3) 스필버그 사단과 디즈니의 충돌: 이게 좀 재미있습니다. 원래는 로저래빗 단편을 몇편 계속 제작해서 프랜차이즈의 생명력을 유지하다가 극장판 속편 등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로저래빗 단편을 붙여준 덕에 여차저차 성과를 올린 디즈니의 ‘딕트레이시’와 그 때문에 단편을 못넣어서 겨우 턱걸이한 앰블린의 ‘아라크네의 비밀’을 계기로 틀어지기 시작. 결국 스필버그가 이후 단편들에 계속 몽니를 놨습니다. 게다가 ‘쉰들러리스트’로 기억과 관용의 힘에 눈떠버리면서, 이후에는 나치를 악역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봐도, 나치가 악의 화신이 아닌 단지 상대편 군인들로 묘사되죠). 그런데 하필이면 극장판 로저래빗2의 스토리가 젊은 로저래빗이 1940년대에 헐리웃에 진출하는 내용의 프리퀄이고 당시의 처녀 제시카는 나치의 스파이-_-; 그래서, 퇴짜. 브로드웨이를 무대로 하는 새 각본이 나온 97년에는 이미 카첸버그가 디즈니를 떠나 스필버그의 품으로. 우여곡절 끝에 그래도 제작이 될 뻔 했으나, 이번에는 디즈니의 아이스너 사장이 예산 과다를 이유로 퇴짜. 그이후로 하필이면 애니-실사 합성영화들이 다 허접하게 만들어져서 죽을 쑤는 바람에 더욱 더 부활의 가능성 소멸. -_-;

!@#… 멋진 작품, 게다가 성공한 작품이라고 해도 꼭 강력한 프랜차이즈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죠. 사람들 사이의 알력이 시간을 지연시키고, 시간의 지연 속에 시장성은 불확실해지고(떨어지고), 그 결과 묻혀버립니다. 이런 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딱 그 반대방향이죠. 작품이 묻히지 않게 계속 팬들의 담론 속에 유통시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성을 증명해주고(즉 열심히 관련 상품을 소비하고), 그 결과 제작자들에게 알력이고 자시고 간에 다 극복할 만한 시간과 이권의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지금 세계는 ‘하루히’ 열풍 [한겨레21/615호]

지금 세계는 ‘하루히’ 열풍

괴짜 주인공의 엽기적 유머, 라이트 노블의 정점에서 탄생한 성공작… 만화·애니메이션의 감수성으로 향유자의 취향 클러스터에 눈높이 맞추다

– 김낙호 (만화연구가)

최근 인터넷을 돌면서 대중문화 관련 포스트들을 검색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발견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스즈미야 하루히’다. 알라딘이나 예스24 같은 인터넷 서점과 교보문고 전체 판매순위에서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3권이 100위 안에 포진해 있고, 인기검색어 순위에서도 이 이름이 종종 출몰한다.

각종 동영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속칭 ‘하루히즘’이라고 불리는 패러디 영상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팬들이 시리즈의 1권인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엔딩의 ‘하루히 댄스’를 따라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이런 붐은 일본은 물론 한국, 나아가 북미나 유럽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각종 대중문화 관련 블로그와 포럼에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오르내려서, 이른바 “하루히는 세계 대세”라는 장난 섞인 말이 돌아다니고 있을 정도다.

각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적 인기

그 이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스타일의 감성적 현대소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히는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원작소설은 다니가와 나가루 지음, 이토 노이지 일러스트, 대원씨아이 펴냄)의 주역인 미소녀 여고생 캐릭터를 칭한다. 하루히는 자기소개 시간에 “평범한 인간에겐 관심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에서 온 사람, 초능력자가 있으면 제게 오십시오. 이상”이라고 ‘뒤집어지는’ 인사를 하는 괴짜. 소설의 내용은 지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이 괴짜 미소녀 여고생이 SOS단이라는 온갖 특이한 활동을 추구하는 동아리를 만든 뒤 벌어지는 ‘황당한’ 이야기다. 이 황당함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내레이션을 하는 남학생 ‘’. 하루히의 앞자리에 배치돼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는 죄로 동아리의 창립에 관여하는 은, 하루히에게 ‘반강제로’ 끌려온 ‘평범한’(이상하긴 하나 현실 수준에서 수용 가능한 평범함을 가장하고 있음) 학우들과 함께 부조리한 코미디의 세계로 빠져든다. 알고 보니 실제로 주변에는 외계인과 초능력자 등 기이한 존재들이 우글거렸으며 또한 우주는 하루히가 지루하면 지루한 데 맞춰, 재밌어하면 재밌어하는 데 맞춰 재편되는 ‘하루히의 매트릭스’였다. 이렇게 일면 엄청난 스케일로 발전해나가지만 여전히 작품은 가벼운 학원 코미디물의 외향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기에, 묘한 불균형의 즐거움이 쏠쏠하다. 이런 지극히 장르 대중오락 성향, 그것도 이른바 ‘오타쿠’ 취향의 소설이 그 정도까지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히 시리즈’는 속칭 라이트 노블로 분류된다. 거칠게 정의내리자면, 라이트 노블은 만화·애니·게임 등 일본에서 흔히 ‘서브 컬처’라고 부르는 대중문화 장르들과 감수성이 연동돼 있는 장르소설을 칭한다. 하지만 장르라고는 해서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SF)처럼 특정 소재와 사건들을 다룬다는 개념으로 묶이는 것은 아니고, 만화·애니메이션·게임 매체의 주류 대중문화 영역을 장르문화라고 부를 때의 그런 의미다. 라이트 노블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대본을 소설화한 것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만큼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감수성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커서, 매체 이식이 쉽게 일어나기도 한다.

‘하루히 시리즈’는 라이트 노블 계열의 정점에서 탄생한 성공작이다. 이 작품은 당대의 여타 소설 문학의 성과에서 자양분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라이트 노블로서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만화·애니·게임 쪽의 장르적 규칙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괴짜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클럽을 만들어 평범한 학우들을 엽기적 유머의 세계로 물들인다는 구성은 순수문학이나 영화보다는, 만화에서 흔히 사용되는 장르 규칙이다. 알고 보니 평범한 일상의 주변이 사실은 우주적 음모의 소용돌이였다는 식의 과장 역시 SF 애니메이션에서는 친숙하다. 또한 미소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특정한 구성 요소- 메이드복, 고양이귀, 유아 취향 얼굴과 큰 가슴의 결합, 무표정 등- 들을 분류, 각각의 항목 단위로 열광하는 현상인 속칭 ‘모에’ 취향에 대한 집착은 90년대 중반 이래로 그쪽 계열에서 폭발적으로 발달시켜온 것이다.

장르의 힘, 취향의 힘!

라이트 노블이기에 ‘하루히 시리즈’는 단순히 소설 애호가들을 불러모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르적 즐거움에 대한 총합으로서 만화·애니·게임 분야의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규합할 수 있다. 이 시리즈가 인기 있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장르의 힘이다.

그리고 ‘하루히 시리즈’가 히트한 두 번째 이유는 취향의 힘이다. 이것이 진짜 핵심이다. 양적 과잉으로 규정되는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즐기는 것은, 매체나 작품에 대한 집착이 아닌 특정 취향의 묶음이다. 말하자면 ‘취향 클러스터’다. 예를 들어 만화를 즐긴다고 하는 사람은 대부분 만화의 모든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세부 취향을 즐긴다. 그리고 그 선호하는 취향의 정체성이 선명할수록, 취향과 연동되는 다른 매체, 작품, 상품으로 자연스럽게 향유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미소녀 연애물 만화에 심취하게 되면 다른 만화인 예술만화와 학습만화로 애정을 키워나가기보다는, 애니메이션·게임·모형 등 여러 인접 분야에서 미소녀 연애물의 취향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취향을 깊게 파고들수록, 여러 매체와 향유 방식을 포괄하는 취향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하루히 시리즈’의 히트는 이런 취향 클러스터의 대표적 성과다.

이런 취향 클러스터가 작동했기에 올 4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소설로 피드백되고 그 인기가 증폭되었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80, 90년대의 혁신적 작품들에 비하면 전복적 에너지를 연성화한 정도에 불과하고, <멋지다 마사루>만큼 마음먹고 막 나가지도 않으며, <신세기 에반게리온>만큼 그럴듯하게 우주적 음모론을 전개하지도 않지만 폭발적인 힘을 얻은 이유다. 국내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뿌려진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다른 경쟁 작품들보다 높은 품질의 미소녀 영상을 제공했으며, 줄거리에서도 원작 이상으로 모에 취향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던지면서 팬들을 감동시켰다.

또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원작의 사건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내용상으로는 5화의 외전 정도에 해당할 에피소드를 아무 설명 없이 1화로 편성해 방영하는 등 파격적 연출을 사용했는데, 이 점이 오히려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팬들의 참여의식에 더욱 불을 붙였다. 팬들은 패러디 동영상 공유는 물론, 소설의 설정에 대한 각종 정보 교류와 아마추어 동인지 창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발적인 붐을 조성하고 있다. 즉 ‘하루히 시리즈’는 새로운 혁신을 이뤄내기보다, 여러 향유 양식을 효과적으로 혼용해 성공한 셈이다.

당신의 ‘모에’는 무엇입니까

장르와 취향의 힘은 작품 자체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취향을 가진 자신의 향유자들과 얼마나 가깝게 동조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히 시리즈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기 작품의 현재 향유자들과 눈높이와 입장을 맞춰주고 있음을 밝힌다. “모에 요소가 더 필요하니까”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며 특정 미소녀 캐릭터를 동아리에 강제 가입시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작품의 향유자들이 지니는 취향과 동일시된다.

작품보다는 장르와 취향을 향유하고자 하는 시대에, 하나의 작품이 뚜렷한 족적을 남기려면 흐름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루히’ 소설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작품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변하는 만화·애니메이션 중심 장르문화의 미소녀·학원 코미디·우주 음모론 취향을 즐긴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적합한 대중문화론은 단순한 작품론이 아니라 장르와 취향을 수용하는 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한 라이트 노블의 히트로 한층 힘을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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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한겨레21에 실린 글 (정간지 발표원고의 경우 다음 호가 배포 또는 마감되어갈 즈음 – 즉 해당 지면이 충분한 유통을 마칠까지 기다린 후 블로그에서도 공개한다는 개인적 원칙). 원래는 생활면에 들어갈 가벼운 흥미성 기사였는데, 여차저차 쓰다보니 의도보다 하드해져서 결국 또 문화면으로 배치되었다. OTL 그런데 역시 한참 이쪽 계열 사람들의 대세라서 그런지, 무려 잡지 기사 페이지가 스캔되어 올라오는 상황까지 발생. 이번 건을 담당하신 구** 기자님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계실 듯. 개인적으로는 본문에 언급한 ‘취향 클러스터’라는 개념을 다른 기회에 좀 더 깊숙하게 개념화시켜볼 욕심이 있음. 나머지 사족은 수시아님 블로그에 남긴 것으로 대신한다.

“…주인장님 말씀대로, 한겨레21과 뉴타잎 독자들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니까요. ‘팬들을 위한 글’이 아니라, ‘그 팬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글’.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루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뭐랄까, 마치 일년전쟁 팬이 시드를 바라볼 때 느끼는 부족함 같은 것이죠.”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90년대 만화/애니사

(추가: 아래 내용의 확장판 및 다른 시대의 이야기들까지 합쳐서, 2010년 말에 책으로 묶여나온 바 있습니다: 클릭 )

!@#… 한국의 각 문화예술분야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종합하여 집대성한 역작, <한국 예술사대계>. 그 90년대편에 수록된 90년대 만화/애니메이션사. 나중에 소위 ‘정사’ 로 불리울 물건이다(원튼말든). 여튼 최근 오마이뉴스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만화판을 걱정하기 좋아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의외로 90년대의 역학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해서, 80년대 기준으로 2000년대를 이야기하는 괴이한 현상들이 난무.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본문을 여기에 공개. 어차피 연구비 형식으로 작업한 것이고 이미 책은 나왔기 때문에 여기 공개하는 것에 문제는 없음. ‘사관’과 ‘자료’로 뒷받침되는 역사 서술을 하고자 했는데, 여튼 당시 지면이 부족해서 참 많은 내용을 오히려 커트. 당연한 이야기지만 본 책에는 도판도 좀 들어가 있으나… 이 황폐한 문자 블로그에서는 문자만 그득.

!@#… 이외에도 90년대 이후 만화판도에 대한 종합적 접근을 더 보시고 싶다면, <만화세계정복>(두고보자 저, 2003)을 보시길. 지금은 나름대로 레어아이템. 자 그럼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클릭.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유니세프 반전기금 광고, 스머프 마을편

!@#… 첨부파일 클릭. (벨기에 현지의 뉴스클립인 듯. 뭐 따지고 보면 불법동영상이지만, 무려 그 쪽에서 뭐라고 할리가 만무하니까. )

!@#… 스머프 마을 폭격. 아주 화끈하게 박살내는 광고. 반전기금 모금용 광고. 유니세프 벨기에 지부 제작. 효과가 좋았다고 함. 인쇄버전과 동영상 버전 두 종류가 있음. 둘 다 원작자 고 뻬요의 유족들의 동의하에 제작.

백금기사님 블로그 (클릭)

국내 기사 (클릭)

영국 기사 (클릭

!@#…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자각하고 있는 것 보다 대략 304958.304배 정도는 더 멍청하기 때문에, 평화니 공감이니 동정이니 말로는 아무리 떠들어도, 바로 자기와 연관되어 가치있게 다가오는 이미지가 없으면 말짱 황이다. 지금 미국에서 파키스탄 지진 기금 안모이는 거 보면 안다…(빈라덴 숨겨준 나라라고 잘 망했다라고 하는 찌질이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_-;). 수만 이라크 시민들 죽는 것보다, 어린시절을 함께한 가상의 파란 캐릭터들이 죽는 것이 더 슬프게 다가오는 세상에 알맞은 멋진 광고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유니세프 한국지부에서 만든다면, 어떤 아이템을 써먹을 수 있을까, 적잖이 궁금해진다. 하기야 그런데 한국은 어차피 여러 비극적 사건들과 징병제 덕분에 문화속에 전쟁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으니 그 이상의 쇼크를 주기가 쉽지 않기는 할꺼다. 음… 설마 또 아기공룡 둘리를 써먹어야 할까? (농담)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아아드만 스튜디오 창고 전소.

!@#… 10월 10일 월요일 아침, 아아드만 스튜디오(월레스와 그로밋 외) 창고 전소. 촬영이 끝난지 얼마 안되서 아직 창고로 옮기지 않은 최신작 정도만 빼고는 모든 소품, 세트, 원본 촬영 필름… 한마디로 역사 일체 소멸. 최신작 “The Curse of the Were-Rabbit” 는 얄굿게도 미국 박스오피스 정상 차지.

Scene from “The Curse of the Were-Rabbit”. (c)Aardman Studios. 

!@#… 하지만 이 사건 속에서 가장 빛나는 한마디를 남긴건 W&G 시리즈의 닉 파크 감독 자신.

Mr Park, who began making animations in his parents’ attic in Preston, when he was 13, said that, after the earthquake in Pakistan, the fire was “no big deal”.

13살의 나이에 프레스톤에서 부모님 다락방에서부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던 파크 감독은, 파키스탄의 지진에 비하면 이번 화재는 사실 “큰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 이 정도로 개념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정도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긍.

PS. 한국 언론에서는 적당히 영국언론의 초기 톱기사만 베껴서 들여와서 아드만 스튜디오가 완전히 다 날라간 것 같이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좀 더 많은 것이 아직 남아있다-_-; 화려한 외출의 로켓, 오스카 상들,  원본 네가티브 필름 등은 다른 전용 장소에서 보관. 게다가 원래 클레이 애니메이션용 캐릭터들 자체는 보관을 안한다(보존 문제가 있어서… 너무 오래두면 뭉게진다. 장기 전시 같은 것에 사용되는 것은 촬영용의 캐릭터 원본이 아닌 전시용으로 따로 처리한 물건들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시체신부(The Corpse Bride) 보고오다.

!@#… 팀버튼신작애니메이션,시체신부(TheCorpseBride).알사람은알다시피,<크리스마스악몽>과비슷한분위기의퍼펫애니메이션.목소리(+캐릭터모델)는조니뎁과헬레나본햄카터.학생할인극장에서봄.한줄감상:팀버튼의겨울연가…라면좀과장이지만,치정살인,집안간갈등,엇나간사각관계,신랑보쌈,두번의결혼식…신부가반쯤썩은시체이고해골들이캬바레를한다는소소한사항들만빼면순도100%멜로드라마.연인과함께보길(정말?).짐작하겠지만,전체적포스는<크리스마스악몽>보다부족한편. [예고편보기]

너구리대전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서.

!@#… 나는<평성너구리대전폼포코>를보면서무려자연보호캠페인으로해석해내는소위기자니평론가니하는사람들을도저히이해하지못하겠다.그들은이작품에서이야기하는전환기산업사회의계층모순과투쟁,그리고그속에결국적응하면서살아나가는소시민들의삶이안보인단말인가.얼마나순진무구한장미빛세상에서살았길래이정도로명쾌하게비유해줘도그개념자체를못받아들인단말인가.그것도제작된지10년이된작품인데도아직도그런글을무려기사로내뱉고있다니참기가찰노릇이지.-_-;

<하울의 움직이는 재앙>을 보고 오다

(애니품평이지만… 그냥 카테고리는 만화품평으로 넣었다. 서찬휘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오다. 이후는 당연히 스포일러 주의. 아니 사실 스포일러라도 많이 보고 가는게 사실 관람에 도움이 될지도. 여하튼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런 폭탄맞은 시나리오라도, 미야자키 브랜드가 붙으면 히트치는구나!” -_-; 뭐랄까, 미야자키 할아버지가 늙으막에 린타로나 제리 브룩하이머 같은 화끈하고 골빈 선남선녀 대파괴 폭죽쑈에 손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capcold식 표현으로, “재앙영화”. 영화 자체가 재앙이라는 말이다.

!@#… 노장에게 새로운 것을 바라기보다 그 원숙미를 즐기라면서 호평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원숙은 커녕 자기가 쌓아올렸던 좋은 실력을 몽창 날려먹은 희대의 괴작으로 보였다. 무슨 과시욕에 사로잡힌 얼치기 신인 초짜 감독 마냥, 세계관도 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스펙타클 이벤트에 끌려다니기 바쁘다. 이건 유치한게 아니라, 그냥 골빈 거다. 작품 속에서, 마법의 힘을 제거당하고 치매 할멈의 모습으로 폭삭 찌그러져버린 황야의 마녀 – 그것이야말로 이번 작품에서 미야자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재미있게 보았다는 분들을 비난할 생각은 아니다. 뭐 나름대로 다들 이유가 있겠지. 그 중에는 합리적인 이유도 있을테고, 그냥 미야자키니까 하면서 부화뇌동하는 자기사고 제로의 바보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왜 이걸 재앙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리를 좀 해놓고 싶다. 시나리오의 뭐가 그리 노골적으로 불만이라는 것인가? 딱 3가지만 정리해보자.

1) 주인공의 갈등과 성장은 밥말아 먹었는가: <마녀의 택급편>에서 보여준 소녀의 섬세한 성장과정. 그 마법은 이 영화에서는 완전소멸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에게 걸린 ‘늙는 저주’는 결국 마음의 활력을 반영한다. 마음이 소녀적인 활력과 사랑에 눈뜰 때, 그리고 무덤덤한 자기비하를 잊어버리고 잠을 잘 때는 자기도 모르게 다시 소녀로 돌아오는 소피. 이건 꽤 중요한 모티브이며, 작품을 끌어가는 갈등이자 원동력이 되어주었어야 할 물건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선택과 희생을 치루며 결국 새로운 성장을 이루면서 끝나는 기승전결을 완전히 무시. 그냥 하울만 기다리고 쫒아다니다 보니 어느틈에 저주는 해결. 뜬금없음의 극치인 것이, 거의 원더풀데이즈 급이다. 동기 없이 돌아다니기는 하울 역시 대동소이하지만 말이다. 전쟁 중재? 양쪽의 정치인들을 만나가면서 설전을 벌이거나, 혹은 그걸 두려워서 피하거나. 그냥 흐린 하늘을 날라다니면서 곡예쑈한다고 뭘 해결한다는 건가. 주인공들의 성장은 설정상 주어진 것일 뿐, 시나리오 상에서의 설득 과정이 뭉텅 빠져있다.

2) 세계관도 설명 못하면서 뭘 그리 벌려놓는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전쟁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욕망, 그리고 박애 넘치는 해결과정을 방대한 세계관과 함께 자연스럽게 전달해낸다. <하울...>은 도저히 같은 감독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울에서 전쟁을 한다는 그 양쪽 나라의 논리는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일반인/정치가/마법사/정령/악마 등 여러 종족과 계층들의 관계 역시 얼렁뚱땅 설명 없이 넘어간다. 설명 없어도 이해할 만한 거라면 좋겠지만, 스토리상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건너뛰는 것이다. 그래서 칼시퍼가 하울에게 들어가게 된 과거 회상에서 애초에 왜 칼시퍼가 지상으로 소환당했는지, 어째서 그 합체의 과정 속에서 하울은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 하다못해 그 저주의 구체적인 내용이 뭔지(그냥 힘쓰다보면 괴물로 변한다는 거 말고, 제대로 된 ‘규칙’말이다) 모두 생략. 그렇기 때문에 후반에 들어가서는 모든 스토리 전개의 논리가 급격하게 붕괴된다. 전반에 세계관 구축을 하고 후반에 그 속에서 사건들이 벌어지고 수습되는 구조여야 할 것이, 세계관 구축도 안된 상태에서 사건만 뜬금없이 계속 연속되다보니 망가지는 것이다. 덕분에 소피는 ‘쓸데없이’ 성을 무너트렸다가 다시 세우고,  하울은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뭘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고생하고 다닌다. <하울...>에서는 스토리 전개 자체에 매우 중요한 세계관 설명이 뭉텅이로 빠졌다. 불친절한 시나리오와 멍청한 시나리오는 한끝 차이다; 유감스럽게도 <하울...>은 후자다. 원작 소설을 찾아읽어보라고? 제대로 된 시나리오 각색에 실패했다는 시인이겠지. 여튼, <하울...>의 시나리오는 작품 속 세계의 구동 원리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것에 처절하게 실패하고 있고, 그 덕분에 결국 남는 건 미야자키 하야오표 ‘코드’들 뿐이다. 날라다니다가 추락할 때 손을 잡아준다든지, 자연 평원과 기계 무기의 대립된 이미지라든지, 고풍스러운 환타지 비행선들의 공중전이라든지 말이다. 각각 그 자체로만 보면 매력적일 지라도, 통합된 추동력 없이는 키치처럼 보일 뿐이다. <온 유어 마크>에서 무려 6분 만에 모든 세계관을 다 표현하고도 여유가 남아서 복합 선택형 스토리구조까지 도입한 천재감독은 도대체 어디로 간건가?

3)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은 디자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이웃의 토토로>에서 보여준 환타지 캐릭터들의 활기찬 생명력도 모두 소멸. 그냥 처진 눈에 분주하게 제자리를 돌기만 할 뿐인 개는 아무 매력이 없다. 그냥 쫒아다니면서 가끔 도움을 주기만 하는 허수아비도 마찬가지다. 갈등도 뭣도 없는 꼬마 마법사 역시 마찬가지. 뭐랄까, 마치 <포카혼타스> 이후로 점점 망가져 가던 디즈니 클래식의 동물조연들을 보고 있는 느낌. 그 난잡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조차 이렇게 망가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임무와 역할과 상징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거신병 같은 초절정 사연만땅 조연 캐릭터는 다시 만나기 힘든 것인가. 개연성 없는 주연 캐릭터들은 앞에서 이미 언급했으니 패스.

!@#… 지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전 세계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에, 이래도 나를 추종할래?” 라는 도발이다. 출중한 이야기꾼으로 자기 입지를 확보해온 지브리, 그중에서도 미야자키 감독이 이렇게 망가질 줄이야. “너따위가 뭔데 대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씹는거냐?”라고 항의하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런 대 감독이, 나 따위한테도 씹힐만한 시나리오를 들고왔는데 어쩌란 말이냐!”

!@#… 만약 쓸데없는 전쟁 이야기가 빠지고 마법사들끼리의 세력/파벌 다툼이 중요한 축으로 다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럼 황야의 마녀도 선생님도 그렇게 낭비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울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소피가 자신의 저주를 푸는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소피의 자기희생과 진정한 성장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다못해 주인공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 정도는 구경할 수 있었을테지. 하울과 캘시퍼의 운명공동체적 애증관계가 좀더 잘 묘사되었더라면?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아니 어쩔 수 없이 정들어버렸으면서도 힘으로 균형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묘한 긴장감이 돋보였을 것이다. 만약, 만약, 만약… 좀 더 낳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던 수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프로젝트에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는 이런 물건이 탄생했으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 뭐, 적어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래서는 “이번 것이 진짜 은퇴작이었습니다”라는 선언은 못할 것이다. 어서 설욕작을 새로 만들지 않으면, 막판에 치매성 졸작으로 자기 얼굴에 먹칠을 한 감독으로 대대로 기억당할테니까. 이것이 바로 나름대로 <하울...>의 의의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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