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언론이 아파트 시세에 목숨걸 때

!@#… 연말이 다가오니 또 한국 언론 공간의 경제지면은 부동산이 어쩌느니 하고 난리다. 그래, 또 신도시 어쩌고 이야기가 나오고 집값이 마구 미쳐날뛴다. 무슨 수를 써도 안잡히는 부동산 경제와, 그럴 수록 다 팽개치고 부동산에 올인하고 싶어하는 듯한 황당한 정부 정책의 모습이 대비되곤 한다. 그리고 이럴때 마다, 조중동은 항상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1) 시장기능에 맡기고 2) 공급을 확대해라 3) 이 모든 것은 실수요자의 목소리다 어쩌고. 하나씩 해석해보자. 1) 노무현 정부는 반시장세력이다, 2) 노무현 정부는 사람들에게 집도 안준다, 3) 집값 상승이 투기때문이라는 건 정부의 구라다. 뭐 저능하기는 하지만, 일관성 있어서 편하긴 하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1) 지금 시장기능에 맡기지 않고 있는 것이면, 가격을 정부가 정해주고 있나? 얼마나 시장기능이 활성화되었는지, 부녀회와 부동산중개업의 담합으로 호가를 몇억씩 퍽퍽 올리는데 말이다. 더 시장기능에 맡길 것이 뭐가 있는지 심히 궁금하다. 그냥 양도세도 없애버리라는 걸까? 2) 공급 확대라… 매번 ‘새로운 공급’인 수도권 신도시 이야기 나올때마다 그곳이 부동산 투기 거품으로 초토화되는 건 우연인가? 판교에 3만세대말고 30만 세대를 만들었으면 흔해빠져서 가격이 내려가기도 했겠다, 그치? 검단 지구에 2010년까지 20만 세대를 넣겠다는데 이번에 폭등 난리쌩쑈 벌어진 것도 공급이 부족해서 그런거겠구나. 3) 투기 목적이 아니라 실수요라면, 왜 아파트만 죽어라 오르는데? 아 물론 ‘땅값’이 올라서 덩달아 연립주택도 오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다 아파트만 사려고 하고 연립주택이나 소규모 단지는 ‘마이너 상품’ 취급받는 건 왜일까. 대형 아파트에서 표준화된 삶을 살지 않으면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이라도 삶이 무지막지하게 쾌적도가 떨어져서 그럴까? 에이, 대답은 여기까지 와서 읽고 있을 사람이라면 다들 알면서.

!@#… 시작부터 샛길로 빠졌지만, 굳이 부동산 세태 비판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돈 되는 곳에 돈 쏟아부어서 돈 벌고 싶은 발상은 인지상정. 내가 집 살때까지는 떨어지고, 내가 산 뒤에는 자산가치가 마구 올라가서 한 몫 잡고 싶은 심리는 뭐 자본주의 특유의 ‘천박하지만 인간본성에 가까운’ 속성이니 좋든싫든 (사실, 싫지만) 인정은 하고 넘어가야겠지. 이런 저런 변명을 붙이고 우리 잘못이 아니라 모두 정부가 잘못했다느니 하는 건 너무너무 구차하긴 하지만, 뭐 보잘것 없는 최소한의 자아존중감의 껍데기라도 보존하기 위한 애처로운 노력이겠거니 하자. 아, 물론 정부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경기위축을 각오하고서라도 확실하게 분양원가공개와 호가/거래가 동시공개, 그리고 양도세 최소 3배 확대 등 부동산의 투자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마구 떨어트리는 강력한 투기 억제 대수술을 밀어붙였어야지. 그보다, 이 부동산 과잉 세태의 소용돌이에서 언론이라는 축이 담당하는 부분을 줄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규범론적으로는 분배정의를 생각하면서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순은 담론 장사꾼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장사꺼리다. 한국의 종합일간지 치고 부동산 정보라는 황금 담론 시장에 목숨걸지 않는 곳이 과연 있을까. 개인들의 모순을 그대로 반영하고 확대재생산하면 독자가 생긴다. 매주 자세하게도 나오는 아파트 시세표(부동산? 얼어죽을. 그냥 아파트 시세표다), 매일매일 여러 면을 할애해서 펼쳐지는 아파트 시세 관련 뉴스를 통해서 말이다. 어디가 가격이 오를지 잘 찍어서 알려주는 기사들로 평소에 열심히 뽐뿌질을 하다가, 그쪽이 가격이 확 올라가버리면 투기가 어쩌느니 정책이 어쩌느니 말세라느니 특집기사들을 쏟아내면서 또 재미를 본다. 심지어 같은 날의 신문 하나에서도 “지면에서는 부동산 급등을 걱정하고 부동산 섹션에서는 돈벌자”고 하는 골때리는 짓도 전혀 새롭지 않다.

세상에 이리 날로 먹는 장사가 또 어디있을까. 사회는 정의를, 나는 정의를 넘어서는 잘난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의식. 모든 사람들이 난데없이 한꺼번에 의식개혁을 일으켜서 사회주의적 이상향의 개인으로 재탄생한다든지 하는 환타지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고서야 (하기야 지난 세기초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정말로 그딴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서 결국 사회를 종종 말아먹곤 했지만) 해결될 리 없는 워낙 근본적인 모순이다. 모두의 관심은 높지만 해결은 안되는 것에 대해서, 더욱 더 해결이 안되도록 부추키며 불지르는 것 만큼 잘 팔리는 담론장사가 또 어디있을까. 그렇게 해서 오늘도 내일도 부동산… 아니 아파트 시세는 언론의 자랑스러운 황금알 거위다.

!@#… 그렇다고 해서 난데없이 신문들에게 아파트 타령 좀 그만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좀 제정신을 가진 신문 한개 정도만 찍어서 “너희들까지 그러고 있으면 안되잖아”라고 해봤자, 누구나 아파트 정보를 보고 싶어서 신문을 구독하는 마당에 그 신문사보고 망하라는 이야기다. 한국 언론, 이러면 안되지 하고 규범론적으로 타이르는 것은 언론학자들의 위신을 세워줄수는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제 효과는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싸구려 뽐뿌질 기사가 더 잘팔리는데, 뭐하러 한국사회 주거환경의 미래를 신경써줘야 하겠나. 아니 그렇다면 이런 바보같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 결국 언론, 적어도 종합일간지와 전국방송에서 뽐뿌질해대는 아파트 정보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의 분업화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쓸만한 아파트 정보는 아파트 전문지와 부동산 전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것이 전부가 되도록 이들 매체들을 성장시키는 것. 사실 지금도 주간 전문 타블로이드와 웹사이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이 이미 일간지들에 나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도의 고만고만한 전문성 수준이니까 일간지의 독자들을 끌고오지 못한다. 하지만 신문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정보의 표시가 한계가 있다. 전국(을 빙자한 수도권) 시세표 빼곡하게 쳐넣는것과, 이미 시중에 공개될대로 공개된 내용의 투자정보를 기사화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기에 실력있는 전문 정보지를 육성해서 호가와 거래가, 뒷소문과 앞소문을 망라해서 준다면 종합 언론의 아파트 시세 정보 가치는 그 만큼 떨어지게 된다. 아니면 아예 국가차원에서 세무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해서 공식 거래 정보를 총망라한 총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서비스를 하든지 말이다. 여하튼 최소한 종합일간지와 뉴스에서 아파트 이야기만 줄창해서 모든 사회적 의제의 최전선처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투자의 본질이 “재산증식” 이라는 점을 빼도박도 못하게 뚜렷하게 해주는 효과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하지만 그 이전에 당장, 언론으로서의 룰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더 확실한 감시와 처벌이 먼저다. 브레이크 없는 저널리즘의 자유에 법적 책임이라는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 기사를 누를 수 있는 방법이야 당연히 없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최소한 어디가 개발된다더라 하면서 근거없는 뜬소문을 기사화하면 곧바로 토지공사가 수십억 고소를 해서 본때를 보여줄 수 밖에. 즉 하다못해 ‘틀린 보도’만이라도 확실하게 잡아서 지멋대로 막 쓸 수 없도록 하는 것도 대단한 첫 걸음이다. 허위 과장 보도에 대한 확실한 제제를 해서 섣불리 야매스럽게 뽐뿌질해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아마 일간지들의 부동산 관련 기사 가운데 절반은 지면에서 사라질 것이다 (어떤 섹션인들 안그러겠는가만은).

!@#… 물론 시민들 개개인이 신문지상의 온갖 부동산 소식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고급 정보만을 고급 소스를 통해서 취득하고 나머지 헛소문들은 과감히 무시하는 지능을 갖추는 것이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것은 대략 SF의 영역이니 현실적인 부분부터 파고 들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우선 한껏 끓어오른 담론의 거품을 좀 꺼트리고 그 다음에 하나씩 냉정하게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정석이라면, 그 거품의 가장 뚜렷한 현상이자 인도자인 언론 뉴스의 막나감을 제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그 목표를 위해서, 일간지들로 하여금 아파트 시세 설레발질의 뉴스 가치를 떨어트리게 하는 묘안들을 계속 생각해볼 때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할로윈, 2006 위스콘신 매디슨.

!@#… 10월 말일은 할로윈. 원래 있던 토착 축제에 기독교적 의미를 뒤집어씌우고, 그러다가 서로 섞인 새 풍습이 되었다가는 결국 현대에 들어서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또다른 명절 되시겠다 (이 패턴, 크리스마스와 완벽하게 붕어빵이다).

!@#… 좀 더 자세히 들어가자면 ‘여름의 마지막날’에 죽은 자들의 혼이 돌아와서 영계와 인간계가 연결된다는 켈트족 축제 사우인(Samhein)이 그 원류. 그래서 이날은 영적 존재들에게 해코지 당하지 않으려고 – 예를 들어, 죽은 자의 혼이 산 자의 몸을 빼앗아간다든지 – 사람들도 각종 영적 존재로 분장을 하며 뻑쩍지근하게 모닥불질 장난질 축제질을 했다. 이런 강력한 집결의식이 있는 날을 기독교 컨셉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가 만성절(All Saints Day = All Hollows’ Day)를 5월 13일에서 11월 1일로 과감하게 이전. 그렇게 해서 “너희들이 축제하고 있는 건 바로 만성절 이브를 기뻐하기 위하여 그러고 있는 거란다” 라고 의미부여를 하려고 한 것. 그래서 사우인이 Hollows’ Eve, 즉 Halloween이 되어버린 것. 아무거나 붙인 것은 물론 아니고, 만성절 자체가 문자 그대로 기독교의 모든 성인들을 한꺼번에 기리자는 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우인과 섞일 수 있던 것이다. 즉 죽은 성자들을 기린다는 것이 죽은 자들의 축제일과 잘 맞아떨어진 셈.

!@#… 뭐 그러다가 할로윈 풍습은 1800년대 후반 아일랜드 이민들의 미국유입과 함께 대박을 쳤다. 게다가 애들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 얻어오는 전통 풍습이 1930년대경 부터 ‘Trick-or-Treat’ 로 완성되어 일대 히트 기록. 사악한 영적 존재로 분장한 아이들이 문을 두들기며 “해코지당할래, 아니면 뭔가 대접해줄래?” 라고 집주인에게 선택권을 주면, 집주인은 사탕을 대접해주는 패턴. 영적 존재로부터 자기 집안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액땜 의식이자, 모든 집안이 애들 대접용 사탕과 과자를 사들이기 때문에 제과업계에게도 대박 시즌. 또 집집마다 큰 호박을 파내서 얼굴을 새겨넣고 그 안에 불을 붙이는 잭오랜턴 풍습 역시 농가를 기쁘게 했고 말이다(이것도 원래 아일랜드에서는 ‘무’였는데, 미국에 와서 호박이 되었다). 게다가 건전무쌍한 가족사랑 어쩌고 하는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친구들끼리 어울려서 마음껏 어둠의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컨셉인만큼, 공포 영화, 락공연행사, 길거리 축제, 술판과 심야 분장 이벤트 등이 발달했다. 즉, 유흥문화로서의 시장성도 출중.

!@#… 여하튼 이 모든 것의 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니 할로윈은 가장 미국적인 명절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고, 또 미국의 상업문화를 열렬히 동경하며 벤치마킹하기로 유명한 어떤 나라에서도 열심히 이식해서 대목 한번 잡으려고 무척 노력하는 중. 명절마다 차례를 지내고 기일마다 제사를 지냄으로써 혼백과 인사를 나누는 곳이라서 할로윈의 원래 기능은 완벽하게 무용지물이고, 괴기물을 통한 반문화의 축제 전통이 없기에 할로윈의 이미지가 상업성이 떨어지며, 무개념초딩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주루룩 문두들기며 트릭오어트릿 다니는 광경이 상상만 해도 공포스러운 곳에서 오로지 미국식 가면파티에 대한 동경만으로 할로윈 마케팅질을 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현명한 짓거리인지 심히 의심스럽지만… 뭐 나름대로 생각들이 있으니 그러겠지 하고 과감히 넘어가자. 스타벅스에 가면 된장녀 어쩌고 비난짓거리에는 마음껏 열올리면서, 멀끔하게 생긴 기업들이 대놓고 할로윈 설레발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는 모습이 심히 바보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뭐 그냥 패스. 세상에는 그딴 것들보다 중요한 것들 투성이니까.

!@#… 어쩌다가 할로윈의 기원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는데, 사실 원래 쓰려던 것은 그냥 올해 할로윈은 이렇게 보냈다는 시시껄렁한 개인 소식 포스트. -_-; 할로윈 축제 화끈하게 놀기 좋아하기로 유명한 매디슨이다 보니 뭔가 한마디 남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뭐 그냥 평범하게 미리 호박 좀 파고, 주말 저녁에 길거리 축제 구경 좀 가고, 화요일이었던 할로윈 당일에는 락콘서트 관람 정도. 뭐 별일 없었지만 그냥 궁금하면 클릭.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스타벅스 원두값이 싸서 세계가 어지럽단다.

!@#… 모기불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된장녀 끝물이라도 먹고 싶은지, 아직도 스타벅스 가랑이 잡고 늘어지는 언론이 좀 있어서 잠시 즐거웠다.

3100원짜리 스타벅스 카푸치노 원두 값은 단돈 90원
[국민일보 2006-10-27 18:14] 신창호 기자

!@#… 그럼그럼.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한 미덕이고, 세계적 경제 불평등에 대한 관심을 가져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말이다… 지식정보사회니 서비스 경제니 하면서 “무한한 무형의 가치를 창출하자“며 십여년째 설레발치고 있는 것들은 누구고, 스타벅스 커피의 원가가 어쩌느니 하면서 “무형의 가치는 날도둑질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또 누구인지;;; 뭐 어쩌겠나. 세계평화에 관심있어서 쓴 글이 아니라 스타벅스 때리기에 관심 있어서 썼다는 티가 줄줄 흐르는 글인데. 하다못해 현지 농장들이 원두를 “썩기 전에 팔아야 할 농산물”로 여길 수 밖에 없는지라도 고민해주지 않으니까.

!@#… 역시 언론은 재미있어! (데스노트의 ‘류크’ 풍으로 읽으시길-_-;)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 [문화저널 백도씨/0610]

!@#… 청강대 문화저널 ‘백도씨’ 지난호에 실린 글. 폭력 특집. 당연히, 밑의 글에서 ‘힘’을 모두 ‘폭력’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무방하다. 뭐랄까, 이건 슈퍼히어로라면 인간적 고뇌 어쩌고는 양념이고 진짜 핵심은 역시 호쾌한 힘자랑 활극이라는 취향의 소유자로서의 소신. -_-; 보통 그렇듯 그림 이미지는 생략.

 

슈퍼히어로 만화: 절대적 힘을 바라보는 관점의 진화

김낙호 (만화연구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끝까지 읽기(클릭)

현재로 이어오는 향수 – 달빛구두 [기획회의 061015]

현재로 이어오는 향수 – 달빛구두

김낙호 (만화연구가)

인간의 기억력이란 오늘을 살아가기에 가장 편리하게 만들어져있기 마련이다. 좋은 기억은 좋게, 그리고 아프고 힘든 기억들도 나름대로 긍정적인 의미를 덧붙여서 끄집어낸다.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이 작동하지 못하면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아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악귀로 남지만, 대체로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경험들이 현재 삶의 토양이 되어주곤 한다. 그 기억은 때로는 개인의 좁은 삶의 범위가 아닌 그 사람이 살았던 ‘세상’의 방식에 대한 기억이고, 그 사람의 세상을 만들어냈던 그 이전의 다른 사람들의 방식에 대한 나름의 기억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그런 세상에 한번쯤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정말로 단순히 옛날로 퇴행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각과 정신을 가진 상태에서 과거의 모습들을 보고 그 당시에는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서야 아쉬움이 남았던 것들을 제대로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대한 향수는 복고이면서도 지극히 ‘현재’ 중심적이다.

『달빛구두』 (정연식 / 전3권 / 휴머니스트)는 이런 의미에서 과거 향수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이다. 향수 정서를 내세운 많은 크고 작은 작품들이 그냥 과거의 모습을 제시하고 공감을 강요하며 끝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여러 시대의 모습 사이에 흐르는 다르면서도 같은 느낌에 집중한다. 작품은 광고회사 기획자 이봄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갑작스런 모친상으로 고향에 내려가서 그간 소원했던 어릴 적 아저씨에게 과거 부모 세대의 사연을 듣는 식으로 전개된다. 크게 3개의 시대가 펼쳐지는데, 현재의 이봄이 살고 있는 세계, 6살 당시의 이봄이 살던 부모들의 80년대 세계, 그리고 그 부모들이 젊어 서로의 사랑과 사연을 만들어나가던 70년대 세계가 그것이다. 어머니가 돈을 벌기 위해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 팔아서 어린 가슴에 상처를 받았던 딸내미는 다시 자라나 같은 일로 또 그녀의 딸에 상처를 주고, 그때 어머니가 그 어머니를 이해 못했듯 지금 자라난 현대의 이봄도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가 좋아하지만 딱히 고백하지 못하는,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너무나 애잔해서 열병이 되는 그런 것도 아닌 애매하지만 현실적인 짝사랑과 자신에게 구애를 해온 또 다른 좋은 남자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는 모습 역시 지극히 현대적인 세상의 이봄의 모습이자, 한 세대 거슬러 올라가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했다. 속절없이 속 좋지만 과거 운동권 경력 때문에 항상 일이 안 풀리시던 아버지, 억척스런 어머니, 동네에서 가장 친한 아저씨와의 80년대 골목길 생활의 기억은 70년대 그 부모 세대들이 젊었을 때 겪었던 70년대의 허름하지만 서로를 아껴주던 친구 생활과 비슷한 대구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시대이든지 간에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의 냄새가 나며 현재 세상을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힘을 지니는 것이다.

물론, 효과적인 과거 향수를 위해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바로 디테일이다. 어떤 좋은 의도도, 구체적인 기억들을 속속들이 새로 불러낼 수 있는 구체성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달빛구두』의 이야기적 매력은 새로움이 아니다. 모범생과 깡패의 우정이든, 그 사이에 삼각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든, 기본 인물구도나 큰 이야기의 뼈대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익숙하다. 하지만 향수에 있어서는 새로운 요소보다는 익숙함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깊숙하게 자극해서 결국 그 속에서 독자들이 새로운 의미와 정서를 읽어내도록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 그 세상의 가장 핵심적인 무언가를 연상시켜주는 세부적 에피소드와 소재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것, 바로 디테일이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수년간 스포츠신문에서 생활 개그만화 『또디』(이상하게도 많은 이들이 ‘또띠’라고 잘못 알고 있다)에서 잡다한 세속성을 묘사해 온 작가의 재능은 큰 장점이 된다. 세 가지 세상 모두, 각각의 현실감과 디테일로 대단히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전문소재 만화’들 마냥 전문 지식 자체를 오락거리로 삼는 식이 아니라, 서정적 감수성을 펼치기 위한 인간 세상의 모습이 제대로 압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세상은 바쁘고 도시적인 경쟁 관계, 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 구식으로 또는 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으로, 주인공 이봄이 근무하는 광고 기획사의 구체적인 업무과정 속에서 트렌디하게 담겨있다. 80년대의 세상, 즉 6살 소녀가 바라본 부모님의 생활고와 친구같은 옆집 아저씨의 공간은 골목길이다. 가계가 기울면서 골목길의 끝 쪽까지 이사 가는 모습, 에나멜 구두에 꿈을 담고 아이들끼리 나름의 사회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80년대의 삶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리고 작품 초반의 명장면이자 현실보다는 낭만적 꿈에 가깝게 그려진 어머니의 바이올린 연주 일화 역시도, 아줌마스러운 억척 엄마가 사실 멋지고 세련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세밀한 울림을 준다. 봄이의 아버지 어머니와 동네 아저씨, 즉 작품의 진짜 주인공들이 젊은 시절을 보내온 70년대의 세상은 계급과 권력의 세상이고 억압에 짓눌린 저항의 시대다. 고등학교나 동네의 일상의 세밀함도 대단하지만, 특히 주인공들의 평범함이야말로 최고의 디테일을 자랑한다. 운동권에 뛰어든 주인공은 투철한 의지로 불타는 민주 투사가 아니며, 조폭에 뛰어든 다른 주인공은 출세를 위하여 아득바득 기회만 엿보는 대물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극적인 이야기일수록 오히려 세밀한 디테일에 신경을 써야 등장인물들이 대단한 상징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연재 당시 칸 간 연출에 다양한 실험을 넣지 않아서 다소 심심했던 부분은, 책 형태로 재편집하는 것에는 오히려 편리함으로 다가온 듯하다. 물론 시각적 세부묘사보다는 둥그런 그림체로 감성적인 형상들을 구사하는 것에 더 장점을 지니고 있는 작가의 스타일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칸 들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은 들지만, 거꾸로 보면 그런 느슨한 여백의 느낌이 좀 더 편한 독법이 가능했던 7-80년대의 만화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향수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지난날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지나간 것을 기억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반추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것에 있다. 각자 삶의 경험 속 어딘가에 있는 그 달빛구두를 발견할 수 있기를.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즉, 업계인 뽐뿌질 용.)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달빛 구두 – 전3권 세트
정연식 지음/휴머니스트

언론개혁법의 현황

!@#… 자세한 코멘트 달기도 싫다. 그냥, 꼬라지가 안습 그 자체다.

[미디어오늘] 2006년 10월 25일 (수)
신문발전기금 ‘그림의 떡’
– 담보 없어 지원 포기·금융기관 거부…사업비 200여억원 허공에

!@#… 무능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일을 벌여놓고 무능하면 민폐다.

— Copyleft 2006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