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시사토 모치루의 ‘루나 하이츠’ 1,2권 국내발매. 출판사는 매니악한 선정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B사. 실수를 만회하고 다시 본업으로, 그것도 더욱 성숙/진화해서 돌아온 작가에게 박수. 리빙게임과 바람불어좋은날(오므라이스)와 내사랑 사고뭉치와 굿모닝고스트(꿈이라도 좋아)에서 각각 장점만 새로 조합한 듯한 멋진 시작. 묘한 ‘생활의 때’가 들어박혀 있는 진정한 성인용 하렘물(그러니까, 야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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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택 만평의 한계 [인물과 사상 0406]
!@#…[인물과 사상] 2004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스크롤의 압박. (여담: 소제목은 대부분 편집부에서 뽑아주셨는데, 저보다 훨씬 감각이 좋으셨다는…)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이쪽 지면 통해서 시사만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꺼내볼 예정입니다.
(주: 도판의 만평 개재일은 인터넷판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따라서 종이신문과는 1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그의 호흡에 관하여 – <트라우마> [으뜸과 버금 0405]
개그의 호흡에 관하여 – <트라우마>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만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보도록 하자. 설마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아직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시는 시대착오의 화신같은 분들은 다행히도 거의 멸종하셨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겁을 주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는 ‘유머’라는 이미지가 당장 떠오르는다고 대답하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화를 영어에서 지칭하는 용어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시피 ‘코믹스’다. 의미 그 자체에 코믹한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이 용어는 만화가 지난 역사동안 간직해온 대표적인 얼굴이 (좋든 싫든) 유머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화를 통해서 폭발적인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른 장르보다 더 쉽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유머를 단지 만화의 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 이상으로, 아예 그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르를 흔히 ‘개그만화’라고 부른다. 개그만화는 주어진 단위 지면 안에서 확실한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다. 때로는 200여 페이지짜리 책 한권, 때로는 한 페이지에 불과한 그 속에서 어떻게 독자들의 웃음보를 터트릴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발한 소재의 발굴이며, 다른 하나는 이야기의 리듬을 조절하여 독자들의 몰입도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특히 매일 4페이지 가량씩 연재되는 표준적인(?) 스포츠신문 개그만화의 경우, 위의 두 가지 요소를 거의 공식화시키기에 이르렀다. 독자들에게 친숙한 짐짓 진지한 상황을 때로는 있는 그대로, 또는 만화적 비유를 통해서 약간 틀어서 점차 고조시킨 다음, 마지막 한칸을 통해서 화려한 반전을 주며 독자를 놀래킨다. 그 마지막 반전 장면이 성공하면, 독자는 작품에서 눈을 떼면서 순간 폭소를 터트린다.
하지만 다른 방식의 개그 리듬은 어떨까. 반전이 한박자 일찍 찾아오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짤막하게 개그를 반복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엇박자인 셈이다. 달변의 자타공인 개그맨이 화려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느낌보다는, 어눌하게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이 썰렁하다 싶으면 그 개그를 다시 한번 구차하게 반복해주는 느낌이다. 전자의 경우는 한번의 폭소를 폭발시키는 것이 장점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이야기가 끝난 다음까지도 계속 키득키득대고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할 듯 하면서도 사실은 일상적이고 소심한 상황으로 수렴되는 소재와 결합할 때, 이런 ‘허허실실’ 개그 리듬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스포츠서울에서 인기리에 연재중인 <트라우마>라는 만화는 바로 이런 만화다. 엇박자의 개그와 ‘쪼잔한’ 캐릭터들의 향연 속에서 4페이지 단위로 매일매일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여 많은 인기를 누려왔다. 그리고 이들의 기대감 속에, 우선 두 권의 책으로 묶여서 단행본이 발간되었다. 물론 단행본으로 묶이면서 하루에 4페이지짜리 에피소드 한개씩 찾아보는 일상적 즐거움의 리듬은 아쉽게도 사라졌지만, 대신에 각 권 400 페이지를 넘는 두터운 레퍼토리의 융단폭격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독자들의 웃음보를 공략하고 있다. <트라우마>는 재능이나 발상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부지런한” 개그만화다. 그 부지런함은 바로 개그 리듬을 재창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때로는 실패할 때 – 즉 안 웃길 때 – 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충격과 부담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실없는 농담을 건네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은 어떤 경우라도 즐거움을 주고야 만다. 개그만화로서의 미덕, 최종목표는 모로 가나 도로 가나 결국 채워넣고야 마는 <트라우마>의 스타일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으뜸과 버금 200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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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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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무지개 저편으로 – <미스터 레인보우> [으뜸과 버금 0404]
무지개 저편으로 간 만화 – <미스터 레인보우>
김낙호 (만화연구가 / 웹진 <두고보자> 편집장)
예를 들어 비가 온 직후처럼 수분이 채 증발하기 전인데, 갑자기 햇살이 비추는 순간이 있다. 이 때, 운이 좋으면 빛이 대기중에서 파장길이에 따라서 분광현상을 일으키면서 커다란 곡선을 그려내는 경우가 있다. 생활용어로, 이것을 우리는 ‘무지개’라고 부른다. 무지개를 보면 괜스레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지고는 한다. 비온 직후 찬란한 햇빛과 함께, 마치 대자연의 힘이 우리에게 희망의 선물을 던져준 듯 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대홍수 이후 신과 노아의 약속의 징표로 여겨졌으며, 서양 민담에서는 무지개의 ‘저쪽 끝’에는 행복과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무지개의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생식에 얽매인 사랑을 넘어선 사람들, 바로 동성애 인권운동의 현장이다. 동성애 커뮤니티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깃발은 78년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대중적인 코드가 되었다. 아마도 그 무지개의 저편에는, 이들이 꿈꾸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그런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레인보우>(시공사, 1권 발매중)의 주인공은 동성애자다. 사실 ‘야오이’라는 장르가 만화팬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된지 오래인 지금, 그것이 무슨 특징이 되겠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느 동성애 판타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미스터 레인보우>의 하덕구는 생활인이다. 지금 이곳, 한국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청년인 것이다. 고스란히 있는 편견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커밍아웃을 피하고, 좁디 좁은 동성애자의 커뮤니티에서 위안을 받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세계 속에서 사랑을 찾아나선다. 밤에는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을 잔뜩 부풀려서 폭발시킬 수 있는 직업인 게이바 여(…)가수를 하면서, 낮에는 그런 사실을 숨기고는 사회에서 ‘정상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유치원 교사를 한다. 정체성과 사회적 삶을 동시에 유지하려면, 여러모로 바쁠 수 밖에 없는 사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꽤나 착한 사람이다. 가끔 희화화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코믹한 상황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레인보우>는 결코 자신의 주인공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한 유치원생의 잘생긴 아버지에게 연모의 정을 불태우며 소란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사랑을 고민하는 덕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기 그지없다. 나아가 그의 주변 인물들 조차도 코믹하고 궁상맞으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안고 싶은 사람들 투성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덕구를 좋아했던 한 후덕한 여학생, 덕구의 할머니, 허영끼 많은 유치원장, 덤덤한 동료 여교사… <취중진담>등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편안해진 펜선과, 기교를 가다듬은 화면 연출이 안정감 있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동성애와 성전환증의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든지, ‘남성답지 않게 여성스러움’ 등 동성애에 대한 막연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무비판적으로 재연하고 있다든지 하는 등은 지적의 대상이다. 나아가 아직 완전히 정돈되지 않은 이야기 전개의 호흡도 이후의 발전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부족했던 부분들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독자들의 상상력 속에서 완성을 시켜야 할 듯 하다. <미스터 레인보우>의 작가는 최근 급성 폐렴으로 인하여, 무지개의 저편으로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좋은 작품, 더 좋아질 것이 한없이 기대되던 작품을 중간에 남겨두고 가신 고 송채성씨의 명복을 빈다.
[으뜸과 버금 200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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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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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가 —
잃어버릴 뻔한 삶의 조각들을 찾아서: 최규석 단편집 ‘공룡둘리’ [책속해설]
…필자는 여러 지면에서 현실과의 고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젊은 만화가들의 경향성을 꽤 강도 높게 비판해온 바 있다. 삶과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고민들보다는, 장르적 규칙만을 소재로 조합형으로 만들어진 매끈한 엔터테인먼트 코드의 덩어리 – 한마디로 쭉정이만 남는다는 것이다.
최규석은 이런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는 몇 안되는 젊은 작가다. 시각적으로도, 미소년미소녀 같은 장르 코드나 화사한 기교에 의존하기 보다는, 거칠면서도 정확한 선과 뚜렷한 데생, 주제와 이야기 중심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에 대부분의 재능을 할애하고 있다. 아직 ‘장편’작품을 남기지 못한 신인에게는 과분한 평가일수도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힘은 마치 막일로 단련된 근육질 마냥 투박하고도 탄탄하다. 드라마틱하고 형이상학적 고민으로 과욕을 부리지 않고, 주변에서 약간만 자세히 보면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소외와 모순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온다. 하지만 최규석의 잠재력은 단순히 “어둡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한다”는 정도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현실의 범주에서, 때로는 절묘한 상상력의 비유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때로는 심지어 대단히 유머러스하게.
산다는 것의 업보: <사랑은 단백질>
<사랑은 단백질>은 본 단편집의 문을 여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살아가는 건 누군가를 밟고, 죄를 지어가며 쌓이는 업의 연속이다. 뭐 그렇지만 결국은 인간은 고기를 먹고 사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동물들 아니겠는가. 죄의식을 가지든, 무감각하든, 그 사실 자체만은 여전히 변함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닭집을 하는 닭사장, 족발집의 돼지사장의 처절한 희극성이 독자의 후두부를 강타한다. 전체 주제를 압축해서 다시 재현해내는 돼지저금통의 캐릭터도 압권이다. 풍자와 유머의 칼날을 잔뜩 갈아서 한껏 펼쳐보이기로 작정한 작가의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약자 위의 삶: <콜라맨>
원래 최규석은 <솔잎>이라는 작품으로 1998년 서울문화사 신인만화 공모전 성인지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군입대로 인하여, 작가의 정기 지면 데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대후, 작가는 다시 ‘데뷔’를 했다. 2002년 동아/엘지 국제만화전의 극화부문 당선작으로, 만화판의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첫 사건인 <콜라맨>의 등장이다. “…페스티벌용 작품의 경우 모호한 이야기에 복잡한 연출이나 화려한 작화실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설익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반면, <콜라맨>은…”는 당시의 심사평이 주목의 이유를 잘 요약해주고 있다. 공동작업을 한 서경순이 주로 작업했다는 골목길 배경의 표정들과, 투박한 삶을 사는 캐릭터들이 벌이는 이야기의 조화가 돋보인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밟고 그 기반 위에서 안정적 삶을 영위하는 전형적인 우리 삶을 묘사하는 접근법이 더욱 매력적이다. 이러한 주제와 시각은, 이후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공모전을 노린 해피(?)엔딩’이 아직은 약간 어색한 수작.
인생사의 블랙코미디: <공룡 둘리>
<콜라맨>이 만화판에 관심있는 자들에게 최규석이라는 이름을 알렸다면, 일반 독자층에게까지 그 차원을 확대한 것은 바로 이 작품 <공룡 둘리>다.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탄생 20주년으로 ‘주민등록증 발급’이니, ‘둘리의 거리 제정’니 하고 호들갑을 떨때 난데없이 한켠에서 등장해서 큰 화제를 모았던, 본 단편집의 표제작. 공모전이나 졸업작품집이 아니라 본격 상업지면에서 데뷔를 한 첫 작품이다. 국가대표급 명랑만화의 캐릭터들을 처절하고 남루한 현실로 끌고들어옴으로서 만들어지는 극한의 블랙코미디. 다만 워낙 발상의 충격이 크다보니, 독자들로 하여금 웃어야할지 슬퍼해야할지를 헷갈리게 만들었을 따름이다. 최규석식 세계관과 주제의식을 한층 명쾌하게 정리하며, 곤궁한 현실과 역설적 유머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펼쳐보인 수작.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 왠지 둘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어지도록 하는 힘을 지닌 만화로, 단지 오마쥬나 패러디 정도로 의미를 한정시키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작품이다. 한창 젊고 실력있는 신인들을 ‘인디존’이라는 코너를 통해서 발굴하던 격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의 2003년 5월 1일자에 개재.
인간이 만든 것: <리바이어던>
2003년 상명대학교 졸업작품집에 실린 단편. 권력, 지배에 대한 짧은 우화이자, 유쾌한 소품. 스스로 왕이 되지 않겠다는 영웅이라는 지극히 합리적 발상에서 시작하는 모험이, 전체주의적 악몽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데뷔작이었던 <솔잎>에서 다루었던 개인과 사회의 충돌, 그것을 통해서 처음에는 개인이 파멸하지만 결국 사회가 점차 바뀐다는 주제는, 이제는 살짝 비틀어진다. 개인에게 파멸적인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그 개인들 스스로였다는 자괴감이 밝고 명랑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거친 상징이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리바이어던이 커다란 심해의 뱀으로 등장하는 얄팍한 장르모험물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계약에 의해서 형성시킨 절대적인 힘”이라는 토마스 홉스의 비유는, 그동안 더욱 치열한 고민들 통해서 주제의식과 여유를 성장시킨 작가의 작은 이야기로 재탄생한 것이다. 과장되었으나 간결한 컬러 그림체가 색다른 매력을 주는 작품.
택일의 기로에서: <선택>
한가지만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선택이란 필요없다. 하지만 세상의 여러 모습들을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해야 한다면 그때가 바로 선택의 순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 선택의 순간이 보통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학교졸업과 함께 ‘사실 세상은 이런 저런 것이 있단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선택하지 않으면 낙오될꺼야’라고 강요받고, 복잡한 갈등과 생각들이 ‘승자와 패자’로 단순화된다. 그 속에서, 과연 ‘패자’를 선택할 무모한 용기가 있는 사람은 어디있을까. <선택>에서 주인공이 몽둥이를 들고 결국 내린 것은 그러한 선택이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그 환성의 밑에 묻혀있던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로 꾸며내는 것은 작가로서의 선택인 셈이다. <리바이어던>과 함께, 졸업작품집에 실린 작품. 마지막의 응원장면은, 선택을 내린 개인이 다수로 확장되는 이미지라고 한다.
…진정한 치열한 고민은 더욱 진행될 수록, 전체적 시각과 여유를 낳는다. 그리고 여유는 유머를 만들어준다. 최근의 단편작품들에서 보이는 현실적인 처절함과 블랙유머의 조화는 작가의 성장의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비록 아직 다소 고지식할 정도로 직선적인 연출 호흡이 성장의 여지를 남기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갖 첫 단편집을 묶어내는 ‘신인’에게 이 정도의 기대를 가져보기는 오랜만인 듯 하다. ‘리얼리즘’이라는 흔한 용어로는 묶어내지 못하는, 비굴한 현실과 만화의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이야기꾼의 매력이다.
<만화, 내 사랑>이라는 책에서, 박재동은 오세영을 “쇠똥을 그릴 줄 아는 작가”라고 칭찬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최규석을 “청테이프를 붙일 줄 아는 작가”로 칭송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처절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느낌, 투박하면서도 정직한 접착력으로 앞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달라붙기 바란다.
김낙호 (만화연구가)
200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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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
<미정> – 변병준식 그림이야기의 성찬
단편집의 말미에 실리는 평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꽤나 난감한 일이다. 주례사 비평의 위험성은 기본이며, 더욱이 단편집은 그 속에 포함된 개별 작품들이 천차만별인 경우가 보통이라서 하나의 책으로서 평가를 내리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장황하게 작가론을 늘어놓아서 독자들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도 어색하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한 작가의 창작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들과 그것의 진행방향을 엿보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통의 단편집은 음반으로 치자면 B-SIDE 모음 같이, 작가가 보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와중의 틈새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즉각적인 시도들을 자유롭게 담고 있다. 즉 보다 직접적으로 날것 그대로의 사색과 그 발전과정의 흔적에 접속할 수 있는 접속점인 셈이다.
많은 비평적 찬사를 얻어냈던 <프린세스 안나> 이후의 변병준은 주로 도시를 그려내는 작가다. 단순히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펼쳐낸다는 것도, 도시하면 떠오르는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아니다.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상황들과 정서가 대부분의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다. 만화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그림들’이라고 생각해볼 때, 변병준이 묘사하는 도시공간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듯 하다. 친숙한 모습의 도시는 그 현실적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정서를 듬뿍 담은 정서적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때로는 지극히 쓸쓸하고 차가운 정서가, 때로는 그 속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희망적인 무언가가 그 공간 속에서 암시되고 있다. 이미 공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아가거나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없이 그냥 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물론 작가가 단편 위주의 작업을 주로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변병준의 만화의 주인공들은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의 반영이다. 공간배경과 하나가 된 그들의 생활 모습이 먼저 주어진 후, 이들의 과거 사연이 지나가듯 암시된다. 그 속에서는 극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결과를 낳기 보다는,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무언가를 매듭짓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가득찬 밀도의 표현적 그림들로 인하여 독자들은 캐릭터로의 이입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작품 속 공간으로 던져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입보다는 관찰을 유도해내는 그러한 화법 속에서 때로는 지나가는 농담처럼, 때로는 누군가의 사연을 두 다리 건너서 전해듣는 것처럼 드라마가 펼쳐진다.
본 단편집 <미정>에 묶인 것은, 작가가 화풍의 다변화를 시도한 2000년대 초반의 일련의 단편들이다. 첫 단편집 <첫사랑>이 성인취향 개그물과 도시의 차가움, 농촌의 따스함라는 여러 관심사들의 모음이었다면, 이번 단편집은 도시공간이라는 하나의 큰 컨셉 아래에서 다양한 화법을 시도해보고자 한 것이다. 이야기들의 큰 줄기는 무언가를 찾지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 상처입은 소년소녀의 이야기 등 두 가지인데, 그 중 전자는 작가의 정서적, 또는 생활의 자화상을 녹여낸 흔적이 짙게 베어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다.
본 단편집의 첫문을 여는 것은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미정>이다. 도시의 차가움과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나서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다룬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모티브를, 만화에서 비슷한 방향을 추구하는 변병준 식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자화상적 서정과 상처입은 도시남녀라는 두 축 모두의 출발점인 셈이다. 2003년 봄 <계간만화>에 실린 작품으로서, 당해 1월에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의 전시작가로 현지를 방문하고 있었을때마저도 원고를 작성한 일화 역시 재미있다. 두 번째 작품은 <연두 17세>로, <프린세스 안나>에서 시작한 상처입은 소녀 모티브를 다루는 방식이 이제 완전히 하나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주장하고 있는, 일본에서의 출판을 위하여 2003년 여름에 작성된 작품이다. 보다 간결하고 능숙하게 도시군상의 비극적 감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마무리된다. 그 뒤를 이어서 등장하는 것은 한국 소년만화계의 스토리 작가로서 스타급 위치를 누리고 있는 윤인완과 협업한 <유틸리티>다. 기대만큼의 흥미로운 스토리가 탄생하지는 못했지만, 위악적인 어린이들의 표정과 이들이 살아가는 살풍경한 도시공간의 이미지에서 생겨나는 블랙코미디는 또다른 발전 가능성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2002년 4월, 일본의 <빅코믹스피리츠> 증간호에 개제되었다. 흐릿한 모노톤의 컬러작업을 시도한 <너의 노래>는 2003년 가을,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층 친절해진 캐릭터들과 더욱 진일보한 공간묘사가 장점이다. <신일맨션201호>는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개그물인데, 그 쪽 분야의 실력 역시 녹슬지 않았음을 다시 증명해주고 있다. 2000년 봄, 작가의 일본 유학시절에 그려진 작품으로, 생활의 자화상이 작가적 망상과 겹치면서 발생하는 유쾌한 코미디다. <빅코믹스피리츠> 2001년 12월호에 개제되었으며, 소학관 코믹스피리츠상에 입선했다. 이 정서는 2001년 가을에 그린 차기작인 <할아버지 힘내세요>의 고양이 개그로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여기서는 망상 대신에 미소녀 여선생이 등장해서 작품을 끌고나가는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활용했다.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내 남자친구의 이야기>로, 양승천이 글을 맡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썰렁한 농담을 전달하는 짧은 이야기로, 의인화된 캐릭터들의 상황묘사를 통해서 독자를 농담 속으로 집어넣는 손쉬운 방법이 아닌, 전화통화로서의 전달을 같이 듣도록 하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스토리 자체보다는 그것을 주고받는 남녀의 관계, 그 감수성에 주목하도록 하고 있는데, 덕분에 여전히 이야기의 주인공은 골방의 만화가, 즉 작가의 페르소나인 것이다. 이로써 처음의 상상화된 자화상과 마지막의 현실적인 자화상이 수미쌍관을 이루며 본 단편집의 여러 이야기들을 감싸안는다.
본 단편집은 변병준이라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는 것인 만큼, 아직도 극복 과정 중에 있는 단점들 역시 드러나고 있다. 이야기의 극적 재미 부족이나, <프린세스 안나> 이래로 이어지고 있는 유사한 이미지의 칸간 연출 반복 등은 아직 풀어야할 숙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변병준식 개성으로 끌어내고, 더욱 깊은 방향으로 전개시키는 모습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2000년대 초반, 변병준이라는 작가가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의 성찬인 것이다. 그리고 도시적인 섬세한 감성과 상처입은 소년소녀, 그리고 따뜻한 유머와 당혹스러운 상황의 블랙코미디 등 이 모든 트레이드마크격인 요소들이 하나의 작품으로 녹아들어간 변병준식 걸작의 탄생이, 앞으로 그리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몇 년전, 한 지인이 변병준을 ‘박흥용의 적자’라고 일컫은 적 있다. <첫사랑>과 <프린세스 안나>에서 그가 보여준 도시풍경과 그 속에 녹아들어간 인간군상들이, 80년대 박흥용이 발표했던 작가주의 성향 단편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당시 박흥용 단편집의 제목은 <백지>였고, 이번 변병준 단편집의 제목은 <미정>이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다짐으로서 공란을 만들어놓은 것일 수도 있으며,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되는 어떤 여성의 이름일 수도 있도록 고안된 제목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이 가운데 어떤 가능성을 발전시킬 것인지, 즉 다음 책의 제목은 무엇이 될 것인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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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호
만화연구가, ‘두고보자’ 편집위원
20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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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출판된 책 속에 들어간 작품평입니다. 당연히 찬란한 주례사… 그러려니 감안하고 읽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