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자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굳이 설명을 붙이는 것은 이 괴이한 게임을 모독하는 일.
http://tarakotappuri.hp.infoseek.co.jp/flash/tarako01.html
!@#… 피라미드 구조의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아냐!) 궁극의 교훈.
!@#… 관계자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굳이 설명을 붙이는 것은 이 괴이한 게임을 모독하는 일.
http://tarakotappuri.hp.infoseek.co.jp/flash/tarako01.html
!@#… 피라미드 구조의 공포를 느끼게 해주는(아냐!) 궁극의 교훈.
!@#… 그러니까, 옆의 공지사항을 유심히 읽어보시길. -_-; 축전은 http://www.capcold.net ;;;
!@#… 연쇄살인마 유영철 사형 확정이라는 뉴스가 최근 흘러나왔다. 물론 어제 대우 김우중 전 회장 검찰 출두라는 뉴스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피해의 규모가 다르다, 피해의 규모가!). 그리고 심심찮게 들려오는 여러 변태들의 소식 앞에 참 한국은 빠른 속도로 범죄선진국화 되어가고 있구나, 가히 세계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 그런데 이런 소식이 나올때마다 항상 토론이 붙는 것은, 사형제 찬반 이야기. 이런 놈들은 죽여버려야 한다, 아니다 사형은 국가의 살인이다 등등. 나는 개인적으로 사형폐지론자이고, 최근의 사형폐지론 움직임을 나름대로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쪽 진영의 여러 심성 고운 사람들과는 좀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사실 문제는 단순히 국가적 살인장치로서의 사형제도 폐지냐 존속이냐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연 현대사회에서 사형제도가 최고 형벌으로서 효과적이냐 아니냐, 효과적이지 않다면 어떤 대안이 있는가, 의 문제라고. 나는 항상 이야기해오듯, 사형제도가 형벌으로서 그다지 효과가 없다, 라는 쪽. 죽으면 땡이니까. 피해자들에게 특별히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것들의 죽음’이 피해자들이 입은 아픔을 실질적으로 보상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일벌백계의 효과가 있는가하면, 그것도 전혀 아니다. 요즈음의 사회적 자극수준이라면, 적어도 시청앞 광장에 데리고 나와서 눈 앞에서 삼대를 몰살하고 능지처참을 하지 않는 한, 그다지 ‘공포’에 의한 예방효과는 없다(사실 그것조차 빠른 속도로 면역력만 키울 뿐일 것이다). 유일하게 효용이라고 할 수 있을법한 건 사회적인 “스트레스 해소”, 즉 권선징악의 샘플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 정도인데, 그건 엽기 변태 살인마 한둘 정도 처단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뭐 적어도 전두환이 잘먹고 잘살고 있는 한.
!@#…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 별 효용도 없는 사형제도를 뭐하러 유지할까, 하는 거다. 인권 시비에나 휘말리고, 오남용 가능성이 항상 잠재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 사회에 가장 걸맞는, 좀 더 잔인하고 집요한 형벌을 창조해내야 한다고 본다. 범인에게 진짜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 과정이 너무나 섬뜩해서 사람들이 일벌백계의 교훈을 얻고, 나아가 사회적 스트레스까지 해소할 수 있는 것. 살아서 고통받아야 뉘우친다. 사형수들이 참회한다 어쩐다 하는 것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 살아있기 때문이다. 살아서 고통받아야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교훈을 얻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 고통은 충분히 강도가 세며, 누구나 공감 가능하며 한다.
!@#… 사실 그래서 저는 형벌로서의 ‘체벌’을 적극 지지한다. 조상의 지혜가 서려있는 태형(곤장)이야말로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멋진 형벌이다. 또 궁형 (거세)도 지지한다. 발정기마다 앞뒤 못가리고 온 동네 강아지들을 임신시키는 개새끼는 보통 다음날 거세당한다. 인간도 다를 바 없어야겠지. 정관수술 같은 거 말고, 완전히 잘라버리는 것 말이다. 그리고 유영철 같은 ‘인간의 형상을 한 재앙’ 에게는, 옛 중국인들의 잔인한 지혜를 총동원하는 것도 나이스하리라 본다. 한나라의 인돈(인간돼지: 사지를 잘라내고 두 눈과 귀를 도려낸 다음 돼지우리에서 살아가게 만들기) 같은… 다시금 말하지만, 나는 인권 때문에 사형을 반대하는 멋진 사람이 아니니까.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 수정 영리 자유 —
!@#… enterani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주간동아 488호(05년 6월 7일자) 커버스토리 기사, <만점논술비법> 가운데 한 꼭지, “학습만화에 빠지면 진지한 책 멀어진다“. 에에…우선 더 이야기를 이어가기 전에, 30초 동안 큰 소리로 웃어주고 시작하자.
(30초 경과)
…자, 웃느라 눈에 고인 눈물을 좀 닦아내고, 좀 이야기를 시작하자. 희대의 개그를 해주신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그리고 별로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은 담당 편집장님께 감사. 여러분들의 천박하고 시대착오적인 문화감각이 저에게는 큰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우선 논술공부의 존재이유를 ‘만점’에서 찾는다는 그 엄청난 커버 스토리 컨셉 자체부터 이미 참 경악스럽지만, 굳이 말을 꺼내기도 귀찮으니까 생략. 전에도 말했듯이, 간판을 얻기 위한 입시경쟁을 무려 교육열로 포장하면서 자위를 하는 것이 수십년동안 일반화된 이 사회에서 뭘 더 바라겠나. 여기서는 그냥 편의상, 그 중 한 꼭지만 씹자. 긴 글 읽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약간의 엑기스만 뽑아보자면 이런 거다(아니 사실 제목 자체가 엑기스다):
‘학습만화’를 경계하라
어린이 독서사이트 ‘오른발왼발’을 운영하는 오진원 씨는 “부모가 만화의 함정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고 나면 굉장히 유식해진 것처럼 보인다. 어른도 읽어내기 힘든 명심보감이니 목민심서니 하는 책들에 대해 줄줄 이야기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복잡한 가계도도 아주 쉽게 기억한다. 어려운 과학 상식을 풀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려운 건 뭐든지 쉽게, 조금이라도 일찍, 지식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에 빠지고 만다”는 설명이다. 글로 된 책, 진지한 책들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화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저해하기도 한다. 만화로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삼국지’를 익힌 아이들에게 책의 주인공과 배경은 ‘만화에서 본 그대로’일 뿐이다. 그런 만큼 부모가 나서 ‘만화가 아니어도 만화만큼 재미있는 책’을 골라 함께 읽고 독려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청소년이 되어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 이 기사를 보고 확실하게 동의한 점이 있다면, 어릴때 교육이 참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릴때 만화는 물론 책과 문화 전반에 대한 그릇된 편견만 잔뜩 주입받으니까, 커서 이딴 소리나 지껄이는 거다(그러면서 심지어 기자라고 월급도 받는다). 그런데 사실 이런 똑같은 말을, 꽤 똑똑하다는 어르신들의 입에서도 종종 듣곤 한다. 한마디로, 특별히 몇몇 개인들의 천치스러움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과 문화적 수준의 문제인 듯 하니까 좀 심란하기는 하다.
그냥 솔직히 말하자. 만화가 마음에 안드는거다. 애들이 독서를 안한다, 큰일이다, 라고 나름대로 한탄하고 싶은데, 실제로 애들은 독서를 하고 있더란 말이지.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인 적을 상정해야 한다. 그래, 애들이 책을 읽기는 하는데 그게 만화책이다. 그러니까 만화책이 나쁘고 저급한 것이다, 라는 나름대로 명쾌한 논리. 그 기저에는 물론 ‘훌륭한 문자서적’과 ‘저급한 만화’라는 꽤 전형적인 이분법적인 인식이 깔려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애써 숨기려는 노력조차 안하고. 만화가 나빠서 싫은 것이 아니라, 만화가 싫기 때문에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사실 비단 만화 뿐만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사회가 사실 해방후 50년이 넘도록 그런 방식으로 ‘적을 만들고 싫어해 줌으로써’ 작동해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만화가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주장은 정말 너무나 아스트랄해서, 가히 존경스러울 정도다.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엽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참 괴이하다. 아니 그럼 비비안리와 클락 게이블로 이미지가 고정되니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면 다윗을 건장한 체격의 백인 누드 젊은이로 이미지를 고정하니까, 미술품 감상을 하지 말아야 할까? 맛있는 고등어조림을 먹으면 고등어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받게 되니까 고등어는 무조건 시장에서 사서 날로 먹어야만 할까?
…이런 상상력 제로인 인간들 같으니라고. 상상력은, 무정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들을 구현화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고, 그 이상으로 다양한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주마. 오히려 더욱 많고 다양한 만화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양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같이 서로 공상을 나누고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문자로 된 책과는 영 담을 쌓는다고, 문자로만 되어있어야 ‘진지한 책’이고 뭐고 장땡이라고? 저기, 만화책에는 문자가 안들어가나? 무언극인가? 아니면 당신들은 그림으로 된 것 자체를 싫어하는 건가? 그 수많은 도표들로 가득한 전문서적들은 다 쓰레기인가? 교과서에 만화로 설명을 하는 건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인가? 인터넷의 ‘웹’이 글과 그림, 기타 멀티미디어로 다양하게 융화되는 것은 진지하지 못하게 되는 건가? ‘주간동아’에서 사진과 그림들을 전부 빼버려야 하지 않을까?
오진원씨라는 분의 멘트도 압권이다. 무려, ‘만화의 함정’이란다. 저기, 이 기회에 엄청난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바로… 애들이 그저 단편적인 지식들(그리스로마 신들의 족보라든지)만 줄줄 왼다고 애가 유식해졌다고 착각하는 부모들이 바로 함정 그 자체다!!! 그건 글로만 된 책을 읽는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 그걸 제대로 못하면, 아마도 주간동아 이나리 기자 같은 상상력 없는 어른으로 자라나고 말겠지.
!@#… 뭐,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가지고 비트 수를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만화는 그 자체로서 상상력을 키워주지도, 죽이지도 않는다. 만화를 ‘어떻게 읽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뿐. 그런데 그것은 만화가 아닌 어떤 매체라도 마찬가지고. 근거없는 저급한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이 바로 해악이다(그러니까, 바로 당신들이 해악이라는 말이다). 문자로만 된 책은 좋고 만화는 나쁘다… 좀 더 가면 실사영화는 좋고 애니메이션은 나쁘다… 좀 더 밀어붙이면 백인은 훌륭하고 검둥이는 더럽다, 자본주의 만세고 빨갱이는 죽여버려야 한다, 박정희 만세고 요즘 젊은 것들은 방종에 취해서 저 지랄인 것 뿐이다, 뭐 기타등등 기타등등. 저급한 이분법이 완전히 무르익어 버리면 또다른 해악을 자연스럽게 잉태하는데, 그것이 바로 양비론과 패배주의다. 뭐랄까, 너무나도 익숙한 패턴이라서 지겹디 지겹다 (하지만 그건 좀 다른 방향에서 길게 다룰법한 이야기니까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도록 하자).
!@#… 나는, 사실 굳이 만화의 지위 향상을 위해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 속 여러 구성원들의 일상속에 뿌리 내린 한심한 문화적, 사회적 인식 수준을 즐겁게 비웃기 위해서 한 마디 건네는 것에 불과하다.
(2006.12.12. 추가: 위의 해당 기사에 인용되신 오진원씨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간동아와 인터뷰한 적 없고 내용 역시 원래 주장하고 다니셨던 바와 크게 다르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오히려 학습만화의 장점을 많이 강조하고 다니신 분.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정말, 야매스러운 기사내용은 야매스러운 취재방식에서 탄생한다는 것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낀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 이번 월간 인물과 사상에 쓴 <만화 박정희> 글(발간 후 올릴 예정)과 다소간 이어지는 글.
========================
먼나라 우리나라 – <조선왕조실록>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나라의 정권을 잡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크게 신기할 것도 없는 노릇이다. 권력의 가장 물질적인 형태는 바로 무력이고, 그 무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가 서서히 나머지 권력 형태들을 갈구하여 어느날 갑자기 실력행사에 나선다는 시나리오는 동서고금 막론하고 항상 있어왔던 이야기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는 말이 하나 있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하리라”. 이 말은 어디까지나 무력의 폭풍 앞에 억압당한 불쌍한 우리네 중생들을 위한 위로의 한마디일 뿐이다. 칼로 일어선 자가 칼로 망하리라는 보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으며, 행여나 망한다 할지라도 이미 충분한 권세를 누린 다음에 망하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칼로 일어난 자를 사후에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한다. 별로 정당화할 구석이 없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구국의 결단’이니, ‘그래도 덕분에 경제는 살아서 밥은 굶지 않게 되었다’, ‘각하는 청렴하신 분이었다’는 등의 사실검증과는 상관없는 어거지 신화들을 마구 동원한다. 물론 권력을 잡은 자가 스스로 그런 프로파간다를 실시하는 경우도 많지만, 사실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의 아래에서 권력의 대상이 되었던 백성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어느 틈엔가 그것을 인정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권력에 복종을 하며 살아왔던 자신들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니까(심리학에서 ‘인지부조화이론’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것이 약간 오버를 하면,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신념이 된다. 아주 단순한, 권력의 생리다.
박정희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다. 약간 더 – 한 500년 정도는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한 군인이 있었다. 그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기존의 나라를 뒤엎고 새 왕이 되었다. 그리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뿌리도 뭣도 없이 왕 노릇을 하면 분위기가 좀 거시기해지기 때문에, 고려 후기에 원나라의 관리 노릇을 한 그의 고조를 시작으로 해서 ‘조선왕조’를 상정했다. 그리고 그의 자손대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왕조의 역사를 주욱 묶어내서 만든 기록이 바로 그 유명한 ‘조선왕조실록’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5권 발매중, 휴머니스트)은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만화로 된 현대적인 화답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갖가지 일화들과 큰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현대의 독자들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적절한 현대적 비유와 그것을 만화적 연출로 버무리는 솜씨를 발휘한다. 진지한 내용과 독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대화 건네기, 그것을 딱딱하지 않게 감싸는 유머감각. 그리고 그 속에 명확하게 묻어나오는 작가 자신의 역사와 사회에 에 대한 시각.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었던 장점들을 이 작품 역시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해외문물에 대한 소개라는 화제성과 보수/수구적인 가치관과는 달리, 자세히 알든 말든 우선 사람들이 지겨워하고 보는 한국사 이야기라는 약점과 진보적인 가치관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선왕조의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그 속에서 벌어진 일들 이상으로 무척 흥미롭다. 작가는 그 역사가 권력의 암투를 통해서 진행되는 정치사라는 뚜렷한 줄거리를 읽어낸다. 그 정치과정 속에서는 구악을 멸하지 못하여 뒤통수를 맞는 이야기, 힘의 흐름에 따라서 철새짓을 반복하는 군상들, 무력과 모략의 미묘한 결합, 다툼의 속에서 가장 먼저 증발해버리는 신뢰와 사상, 민생 따위의 가치들 등, 무척 친숙한 테마들이 잔뜩 버무려져 있다. 역사가 의미 있는 것은 그것이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조선왕조의 역사는 바로 권력의 거울이다. 한국사를 다뤄온 다른 어떤 만화보다도 권력의 생리를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현재의 모습과 닮아있다. 멀게만 느껴졌던 ‘조선’이라는 사회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곳이 된다. 먼나라, 우리나라인 셈이다.
특정 인물이나 정파에 대한 일방적인 편들기도, 양비론적 패배주의에도 빠지지 않는 절묘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은 작가의 오랜 신문시사만화 경력 덕분인 듯 하다. 혹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원작 자체가 가지고 있는 풍부함 역시 작용했을 것이다. 권력의 작용 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사회상과 민중의 동향 등 총체적인 해석을 통해서 조선 역사를 단순한 탐욕스러운 개개인들이 벌이는 궁중드라마로 격하시키지 않은 점이 바로 이러한 두 가지 배경이 합쳐졌을 때 나올 수 있는 미덕이다. 그림체 및 시각연출 방식 역시 지나치게 설명조도, 지나치게 설명이 없어서 불친절할 정도도 아닌 균형을 맞추고 있다. 선은 명확하며 단순하고, 극적인 과장이나 섬세한 세부묘사에 빠지는 일 없이 가장 필요한 만큼의 정확한 장면묘사를 일삼고 있다. 물론 등장인물이 워낙 많다보니 캐릭터들이 간혹 서로 헷갈린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지만, 이만하면 ‘양반’이다.
이 시리즈는 워낙 장편으로 기획되어 있고, 이제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비록 간혹 스케쥴이 삐걱거리고 있지만, 용케 마지막 권까지 무사히 나와 줬으면 하고 바란다. 벌써 이 정도 수준의 1부라면, 마무리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박수를 받아 마땅할 터이다.
=======================================
(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동의없는개작불허/영리불허 —-
!@#… 좀 이런저런 바쁜 일들 때문에 오랫동안 새 포스트가 없어서 (언제 사진 모아서 일본여행기 올릴거냐!!!), 오랜만에 모형모형 포스트나 하나. 이전에 핑키파스(핑키+스틱파스) 포스트를 올렸을 때, 핑키파스를 만든 이유가 바로 건담소녀에 있다고 했는데 후속작이 하나도 없어서 좀 거시기했다. 그래서 만들었던 것이 이 프리덤 소녀. 원래 날개다는 건 여기서 처음 시도했던 것인데, 내 경우는 좀 더 건담이라는 컨셉으로…뭐 이런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