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 몇가지 사소한(?) 소식들.

!@#… 개인 홈피를 빙자한 대형 커뮤니티, 대형 커뮤니티를 빙자한 개인 홈피(…). 뚝심의 개인 만화애니 정보 종합 포털(?). 여하튼 만화독자, 애니 감상자에게 귀중한 곳. 만화인(http://manhwa.in)에서 700백만 방문객 돌파 축하 이벤트. 여러가지 공모 이벤트와 축전 모음 등이 있으니 관심있는 모든 이들은 가보길. http://www.manhwain.com/main.html?no=102

!@#… <풍장의 시대>, 2005년 상반기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만협 홈피에서 공식 공지했으니 이제는 이야기하고 다녀도 되겠지(다른 두편은 <로또블루스>, 그리고 <월요일 소년>). 심사평은 그쪽 사이트에 올라갔으니 여기서는 생략. 그보다, 풍장의 시대의 스토리 작가 ‘가리’가 스탠바이 청춘의 ‘김영빈’님과 동일인물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약간 충격. -_-;

!@#… 계간만화 2005 여름호 발간.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 제작비 지원으로는 마지막 호(야속할 따름이다). 앞날이 잘되기를. 아니, 편집위원 주제에 남의 일처럼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지. -_-; 뭐 여튼 2004년 봄호부터 이어진 커버스토리 집필 개근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봄.

!@#… 아이큐점프 격주간 전환. 야심찬 신연재 예정.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현실적이고 좋은 쪽으로의 개혁이다. 적자를 줄이고 품질 좋은 잡지를 만드는 길로 한발짝 다가간 셈. 하지만 9년만에 처음으로 질적인 피크를 이루자 마자 일방적으로 폐간 당해버린 <영점프>의 전례가 떠오르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_-;

도망가는 자들에 관하여: <로또 블루스>[책속해설]

!@#… 최근 출간된 변기현 단편집 <로또 블루스> 책내 서평. ‘이쪽 계열 작가들’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선호가 좀 있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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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는 자들에 관하여: <로또 블루스>

김낙호(만화연구가)

대중 오락문화로서의 만화는 종종 “현실도피”라고 폄하되고는 한다. 하지만 이 분야가 누려온 폭넓은 인기를 상기해볼 때, 아마도 사람들은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무척 꿈꾸고 있음이 틀림없다. 때로 그 도피행은 장미빛 희망으로 가득한 가상세계로 향하거나, 소심한 현실에서는 엄두도 못낼 멋진 모험 이야기로 귀결된다. 하지만 만약 압박을 주는 현실과, 그것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하는 도망자의 모습 그 자체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도피는 현실에 대한 외면이 아니라, 어떤 가상적 비유를 통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변기현의 만화에서 반복적으로 채용되는 모티브는, 도망치는 주인공이다. 커다란 시스템의 아래에서 오랫동안 충실하게 ‘적응’하며 살아왔던 듯한 주인공이 있다. 요쿠르트로 감정을 통제하는 도시든(요쿠르트 도시의 사랑), 식용인간을 길러내는 가상세계든(FOOD), 위선적 착실함을 강요받는 교회든(로또 블루스), 과장된 남녀 연예관계든(레이디 앤 젠틀맨) 말이다. 그런데 그는 어떤 작은 계기를 통해서 자기 생활세계의 이상함을 느낀다. 결코 근본적이고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지만, 마치 선악과를 탐하고 낙원에서 추방된 인류의 조상들 마냥 이제는 더 이상 그 시스템 속에 속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도망친다. 하지만 그것은 시스템에 대한 반항이라든지 개혁을 위한 내딛음 보다는,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기현의 단편들을 단순히 염세적이라고 치부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여하튼 살아남고자 달려가는 사람들의 생명력 덕분이다. 주인공들의 도피 자체가 적어도 독자들에게 만큼은 삶의 의지이며 희망이 되어 주는 것이다. 아니 그런 거창한 결과까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의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의 현실”에 대해서 한번 더 성찰할 수 있는 기회 정도로는 충분하다.

이 책은 변기현의 여러 단편들을 모아놓은 작품집이다. 발표맥락의 편차가 있기 때문에 서로 이질적인 느낌도 있고, 가끔 표현이나 이야기솜씨가 덜 다듬어진 구석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최근 발표작으로 올수록 빠른 속도로 자기 작품색과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명확하게 각인시키고 있으며, 이미 ‘유망주에 대한 기대’라는 수준을 가볍게 넘어선다는 점이다. 변기현의 작품들은 찰나적이고 인공적인 에피소드들 또는 진부한 대중문화 코드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환타지 세계가 지배하는 젊은 만화 창작 풍토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그렇고 그런 세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극화풍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극화풍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도구는 역시 극화풍 그림체다. 변기현의 그림은 동글동글한 미형 캐릭터들이 얄팍한 감성을 설파하며 돌아다니는 근래의 유행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80년대 극화마냥 경직되어 있는 모습이 아니라, 거칠게 과장된 듯한 모습 속에 숨어있는 탄탄한 기본기와 확고한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그가 묘사하는 인간군상은 표정이 살아있으며(특히 좌절과 난감한 상황에서 일그러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그렇기에 담담한 무표정의 순간 속에서마저 확실한 감정상태, 즉 내면의 이야기가 전달된다. 다양한 시선 각도라든지 역동적인 칸 진행 역시 이러한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춤을 춘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필체와 채색방식을 시도해서 극의 흐름에 가장 적합한 시각연출을 찾아나서는 모습 역시 이 젊은 작가의 만화에 대한 집념을 가늠하도록 해준다.

비록 작품집으로서는 첫 출간이지만, 변기현은 이미 최규석, 석정현 등 일련의 젊은 작가군과 함께 극화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스타일리쉬한 화풍을 구사하면서도 단순한 시각적 실험에 빠지지 않고 이야기의 서사성을 고집하며, 만화 특유의 시각적 비유를 애용하면서도 리얼리즘적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신랄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블랙코미디의 유희성을 버리지 않는다. 이 만화들은 이전 세대 리얼리즘 극화의 모습들을 단순반복하지 않고, 일본 장르만화들과 인터넷 만화들과 시각실험들이 난무했던 90년대 이후의 만화유산들을 고스란히 흡수 및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리얼리즘 사조를 강하게 연상시키는 감수성을 중심축으로 하되 그 방법에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혼합적인, “하이브리드 리얼리즘” 만화라고 감히 부를 수 있을 듯 하다(아마 후세의 사람들이 좀 더 적합하고 매끄러운 명칭을 새로 발명해주리라고 믿는다). 만화가 지니는 본연적인 혼합성과 자유로움을 정면으로 소화해내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에 좋은 결과가 오기를 바란다. 사실, 이미 좋은 조짐이 넘실대고 있는 셈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어차피 이미 작품들을 모두 감상한 후, 말미에 한번 곱씹어보기 위한 글에 불과하다. 이런 글은 닫아버리고, 다시 한번 변기현의 ‘야쿠르트’와 ‘로또’와 ‘닭다리’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다.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불허/영리자유 —

군인은 군대에서 뭘 배울까

!@#… 김일병 사건, 여차저차 국방부 수사발표. 결론은, “그놈은 미쳤었다”(왠지 베스트셀러 예감).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짜 코미디는 역시 그동안 시대의 변화 속에서 되바라질대로 되바라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우리네 언론들. 정말 미디어의 마인드가 이해가 안가는 것이, 무려 군.인.이. 철저한 살인 기술과 살인 감수성에 능통하다는 것이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고 “모두 폭력 게임에서 배웠다” 라고 경악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군인이란 자고로, 군대에서 삽질을 배우고 나오는 건 줄 알고 있나 보다(물론, 삽질을 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아아;;; 라기보다, 삽질을 배우고 나오는 건 사실이죠).

 

— Copyleft 2005 by capcold. 이동수정영리 자유 —

인간성의 조건 –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 [기획회의 050605]

!@#…지난호 기획회의. 우연찮게 비슷한 시기에 씨네21(507호)에서도 리뷰가 올라왔던데… 비교하며 읽어봐도 재밌을지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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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조건 – 이와아키 히토시의 <히스토리에>

꽤 옛날, 한 왕이 있었다. 그 때 왕들이 의례 그렇듯이, 어디론가 남의 땅에 들어가서 말달리고 싸우고 이김으로서 ‘정벌’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뭐가 그리 속에 불길이 타올랐는지, 정벌을 하고 나서 그 다음 그곳을 지배하고 가꾸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곧바로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갔다. 정벌하고 정벌하고 또 정벌한 결과, 어느틈에 지중해 연안에서 아시아 전역을 다 휩쓸고 다녔다. 뭐 그러다가 결국 죽었지만, 그의 정벌 자체에 대한 그 무한한 집착과 성과는 어째서인지 후세에서 높이 평가받아,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불렀다. 여하튼 그저 끊임없이 정벌을 반복하는 모습은 단순한 권력이나 지배욕과도 뭔가 다르며, 오히려 마치 병정개미와도 같은 순수한 본능에 가까워 보일 정도다.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냉정하게 지켜보는 입장이라면 어떨까? 사회적 명분을 뒤로 하고, 사실상 생물학적 특성인 듯한 그 행위들을 주욱 따라간다면 무슨 느낌이 들까.

알렉산더의 파란만장한 시대를 다루는 만화 <히스토리에>(이와아키 히토시 / 서울문화사 / 2권 발행중)의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알렉산더 본인이 아니라 그의 개인 서기관이었던 에우메네스다. 에우메네스는 서기관이라는 입장에서 알렉산더의 기행(奇行)을 지켜보았으며, 총명한 두뇌와 리더십을 바탕으로 알렉산더 사후에 군대의 전권까지도 얻게 되는 인물이다. 물론 완전히 돋보이기 전에 결국 배신당해서 사망하지만, 확실히 특이한 경우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와아키 히토시라는 작가가 과연 누구였던가. 인류가 사실은 생태학적으로 문제가 많은 종족이며, 그래서 먹이사슬을 복원하러 정체불명의 포식자들이 나타나서 인간의 몸에 기생, 인간으로 둔갑하여 들어간다는 충격적인 세계관으로 90년대 고품격 일본만화의 정점을 이루었던 <기생수>의 작가다. 그 작품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던 모티브는 인간 바깥의 시선으로 인간을 냉철하게 바라보건데, 사실 인간이란 것이 별 것 없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관찰담이다, 말도 안되지만 너무나도 순수할 정도로 직선적이고 본능적인 기행을 냉정하게 목격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에우메네스에게 그 접근법과 문제의식이 그대로 계승된다.

그 문제의식이란 바로 인간됨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히스토리에> 초반의 배경이 되는 고대 그리스권 도시국가들을 아크로폴리스니 민주주의의 시발점이니 하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모든 시민은 평등하지만, 시민이라는 계급은 전혀 평등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의 성숙함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자들은 그들과 다른 종족들을 바바로이(야만인)라고 부르며 폄하하며 노예로 삼아버렸다. 여성과 아이는 물론 정치적 참여권을 가진 일반 시민이 아니며, 게다가 혈통이 중시되었다. 그런데 그렇다면 바바로이와 문명인의 경계, 즉 시민과 노예의 경계는 도대체 얼마나 명확한 것인가. 사실 전혀 명확하지 않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일 뿐, 그리 선천적이고 절대적인 기준 따위는 없다. 그것은 바로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성숙함의 경계선 역시 사실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와도 같다. 그럼에도 자꾸 자신들을 ‘인간’으로 자처하게 만드는 이성과 감성의 기준을 만들어 내며 자족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에 우선하는 것은 바로 생물로서의 본능 그 자체다. 그 중 하나는 개체의 생존본능, 또 다른 하나는 그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정복이나 복수 등 외적 공격성향이다. 고리타분한 고대 모험담이나 신화 섞인 전쟁이야기나 나오기 쉬운 이 시대와 역사를 배경으로, <히스토리에>는 인간에 대해서 논한다. <기생수> 당시보다도 더욱 진하고 집요하게.

인간(들)의 본질을 캐내기 위하여, 바깥의 자가 인간 활동 패턴을 관찰한다는 감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캐릭터들의 무심한 표정 덕분이다. 사실 이 작가는 그다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만한 팬시 느낌 강한 미소년 미소녀를 묘사하지도 않을 뿐더러, 표정묘사 역시 지극히 부족하다. 아니 사실 데생이나 그림체 자체가 뭔가 ‘끌리는 맛’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기준에서 지극히 야만적이고 잔인한 제도들을, 당연한 문명의 꽃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쪽 세계의 괴리감에는 그런 멍하고 무표정한 모습들이 오히려 확실한 효과를 준다. 그에 비해서 일반적인 연출방식은 대단히 완성도가 높아서 긴장 넘치는 복선은 물론, 난데없는 상황 반전 내지 급진전이라는 강력한 작품 통제력을 자랑한다. 특히 트라쿠스가 오랜 노예생활에서 풀려나서 햇살을 움켜쥘 듯 하늘에 손을 대는 희망의 모습과, 바로 그 다음 두 페이지를 장식하는 강렬한 죽음의 이미지의 대비는 이 만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시각 연출의 백미다.

항상 그렇듯이, 티 없는 옥은 없다. 예를 들어 작품에서 필요 이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잔학성은 작품의 내적 리얼리티와 ‘인간이란 게 다 그런거지’ 식의 시니컬한 메시지를 잘 살려주지만 독자층을 좁게 만드는 요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히스토리에>의 경우 가장 큰 잠재적 문제는 연재 작업 그 자체다. 일본 현지에서도 월간지 연재작인터라 단행본 발간주기에 특별히 연연할 것은 아니지만, 우선 내용 전개가 확실히 느리다. 현재 발간된 2권까지의 분량에서는, 에우메네스의 현재 모습과 유년기 경험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알렉산더의 부하로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장편시리즈이기 때문에 엿가락 늘리기식 지속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요소까지 겹치면, 정말 난감해진다.

사실 말이 옥의 티지, 사실은 투정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에우메네스의 모험담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라서 그런 셈이다. 그 멍한 청년과 함께,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논하고 싶다. 에우메네스는 모르겠지만, 사실 작가는 이미 자신의 견해를 꽤 명확하게 표출을 해버리고 있다. 2권 마지막 페이지, 어린 에우메네스가 감정과 생존본능의 무게중심을 비견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대목을 보며 작가에게 마음 속으로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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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발간. 이전에는 ‘송인통신’이었던 출판 전문저널. 여기에 쓰는 글에서는 ‘책’이라는 개념으로 최대한 접근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찌되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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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총기난사, 미디어, 그리고 ‘보이는 적’ 만들기

!@#… 한 일병이, 자기 분대를 몰살시켰다.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 간에, 결국 그 짓을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일말의 정당성을 스스로 소멸시켜버리고 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더 큰 비극을 불러다준 멍청한 악행. 아마도 군법에 의거, 총살형 예정. 편의적인 근무수칙 위반, 수많은 상병들 사이에 둘러쌓인 일병, 인격모독, 내성적 어리버리 성격, 쌓이는 스트레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얼추 머리 속에서 시나리오가 그려질 법한 이야기. 그리고 항상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야기는 한국 군대의 비민주적/시대착오적 질서유지 방식에 대한 피상적인 질타. 순진한 인권론자들도 군기 강화를 부르짖는 이들도, 그 근본적 이유인 거대 조직 군대의 비효율성에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댈 구체적인 경영 마인드는 드물다. 너무 거대해서 제대로 쳐다보기가 너무 힘드니까. 구조조정을 하자, 라고 한다면 많은 고민과 드넓은 시각, 보이지 않는 다양한 방해요소들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 그래서, 많은 이들은 그것보다 훨씬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바로, ‘보이는 적‘을 만드는 것이다. 그 것이 진짜 적인지, 문제의 근본 원인인지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통해서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 없을지 조차 이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 앞에 보이고, 지금 당장 때려줄 수 있다는 사실 하나 뿐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이것, 저것

!@#… 아, 그래. 컴퓨터 게임이 문제고, 만화가 문제라고 하는구나. 뉴스라는 미디어가, 게임이고 만화고 하는 다른 미디어를 악의 근원으로 몰고 간다니 참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이러한 것들이 선택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체적으로 보이니까. 컴퓨터 게임에서 총쏘는 장면 많지? 만화에 환상적, 비현실적 싸움 장면 많지? 자 한번 봐라. 이번의 사건과 비슷해 보이지? 그래, 그러니까 이걸 보고 배운거다. 에잇, 게임 만화 나쁜놈들. 때려주자…. 뭐 그런거다. 존내 유치하고 치졸하고 말도 안되지만, 그게 세상 사람들에게 아직도 잘만 받아들여지는 논리다. 만화계가 어려우니까 대여점을 불태우자고 하고, 관동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니까 조센징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하고, 민심이 불안정하니까 후세인이 핵무기를 숨겼다고 하는 거다.

!@#… 어쩌면,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복합적이고 거시적인 이유, 바로 대자연의 규칙) 왕을 잡아죽였던(보이는 ‘적’을 퇴치) 수천년 전 그 당시의 정신수준에서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판을 넓게 보는’ 사회적 지성의 방향을 포기한 대가를 두고두고 치루는 셈이다. 앞으로도 더욱 많이 치루겠지. 자의식은 커가고 사회적 지능은 떨어져가는 어떤 시대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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