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그리고 반 고호를 만나다 <빈센트와 반 고호> [으뜸과 버금 0410]

이발소 그림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 또는 회화계에서 가장 비싼 값을 받고 그림이 거래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빈센트 반 고호. 하지만 반 고호가 살아 생전에는 전혀 해피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뻔한 에피소드다. 아무도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격렬한 감수성을 알아주지 않았고, 그 결과 가난에 찌들려 살다가 덤으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까지 겹쳐서 고생했다. 그리고 유일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도르와 함께 어느 공동묘지에 묻혀서, 사후에 자신의 그림이 천문학적 액수로 거래되는 상황들을 모두 놓쳐버리고 만 비극적 캐릭터다.

<빈센트와 반 고호>(애니북스 / 글라디미르 스무자 작)라는 만화가 최근 출간되었다. 반 고호의 생애를 다루는 이 만화는 반 고호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거센 붓터치를 구사하고 있는데, 그의 명화 속에서 등장한 – 즉 그가 생전에 보았을 그 다양한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극의 일부로 녹아들어가 있는데(이러한 자연스럽고 묘한 패러디 / 오마쥬를 가능한 것은 그림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만화라는 서사장르의 매력이다), 초반에 이어지는 평온한 풍경화 위주의 패러디가 결말에 가서는 주로 강렬한 필치의 환상적인 그림들로 바뀌어 나가는 시각적 연출 역시 전개의 극적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빈센트와 반 고호>는 만화의 매력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것의 유희성을 효과적으로 다루어주는 작품이다. 그것은 전혀 경박하지도, 고인의 진지한 삶 앞에 누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위인전을 이야기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작가는 안 그래도 매력적인 한 사람의 삶을 더욱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살짝 비틀어준다. 빈센트라는 고양이가 그림을 그려준 것이다! 소심한 무명화가 반 고호,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치명적인 유혹인 고양이 빈센트. 고양이 빈센트는 재능이 넘치는 화가이자, 거침없고 변덕스러운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그 만남과 우정은 반 고호의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충만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구도는 멀게는 시인 베를렌과 아르튀르, 가깝게는 영화 <베티블루>에서도 숱하게 보아온 익숙한 방식이다. 그리고 결말은 항상, 비극으로 끝난다. 처음에는 신선한 활력이었던 그 거친 에너지가, 인간의 사회와 규율 속에서 적응하면서 생활을 해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거침없는 천재가 결국 먼저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필자가 불만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좋은 만화책들이 홍보부족 또는 전략미스로 인하여 묻혀지는 것이다. <빈센트와 반 고호> 역시 출간 이후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보도 자료도 신문 기사도 뭣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어느 날 우연히 예술서적 서가에서 발견했을 뿐이었다. 당시 필자는 안 그래도 경향신문의 주간 만화섹션에서 소개할 좋은 신간을 매주 선정하는 역할을 맡아서 머리에 쥐가 나던 시기였는데, 이 책을 만남과 동시에 기쁨(좋은 작품이니까!)과 야속함(제발, 보도자료라도 좀 돌리지 그랬는가!)이 같이 밀려들어왔다. 좋은 작품이 제대로 알아줄 사람을 못 만나서 무관심 속에 묻혀버려서야, 반 고호의 불운한 일생보다 나아질 것이 없을 테니까.

PS. 여담(내용누설 주의): 유럽만화는 드라마틱한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또는 의인화된 동물이 등장해서 난장판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역시 만화는 애들 수준에나 맞아’라고 푸념을 내뱉는 분들에게는, 마지막 공동묘지 장면에 심어져 있는 ‘식스센스’급 반전을 한번 제대로 즐겨보시기를 권한다. 
[으뜸과 버금 2004. 10.]

(* 주: 원출처는 YMCA에서 운영하는 ‘으뜸과 버금’의 월간 소식지입니다. 좋은 만화를 소개받고자 하는 업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지면의 성격상… 분량도 capcold답지않게 짧고, 주례사 느낌이 강합니다;; 닭살이 돋더라도 참으시기를)

어떤 질서에 관하여 – <니나잘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마찰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갈등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원만한 합의로 이루어지면 참 좋겠지만 많은 경우 강제적으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공인받은 강제적인 권위와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가 어떻게 누구를 감시하고 심판할 것인가에 대한 질서가 필요하고, 그러한 권력의 양을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요구된다. 서열, 계급, 직급, 사회원로, 뭐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다. 

국산 학원폭력물 가운데 가장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역시 <니나잘해>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명문 학생 주먹조직 스콜피온, 그 리더인 이후, 그리고 차기 리더 후보 3인방의 수련과정이 전체 스토리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이런 내용은 장르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학교의 주먹 조직이 있고, 그 조직 내부에서 또는 다른 학교 조직들과의 마찰 속에서 완력이 탁월한 주인공들이 싸움을 통해서 자기 위치를 굳혀나아가는 이야기. 그 와중에는 우정도 있고, 배신도 있고, 연애담도 있고, 개그도 있다. 하지만 핵심적으로는 조직적 서열 관계 속에서 실력을 증명하고 점차 위로 올라가는 이야기로서, 성인만화의 가장 인기있는 장르인 조직폭력물(넓게 보자면, 무협만화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범주에 속한다)을 청소년용으로 변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바로 이들의 조직이 아예 학교의 평화와 안녕을 다스리는, 일종의 공인된 조직이라는 것이다. 완력이라는 단순명쾌한 비교척도와 선후배라는 서열개념이 결합되어, 완연한 힘에 의한 질서를 구축한 이상적인 조직형태. 심지어 문제아 집단이 아닌 치안유지자로 받들어지기까지 한다.

오한이 든다.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폭력은 나쁜 것이니까? 아니다. 이유는 좀 더 단순한 곳에 있다. 바로, 누구나 그러한 방식의 ‘질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모두에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닌, 단지 질서를 위한 질서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당연한 미덕으로 떠받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즐겁게 만화를 읽다가도 난데없이 머리 속에는, 관습헌법 같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가져다 붙이면서 자신들이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질서’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괴인들과, 여기에 아무 생각 없이 환호하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억누를 길이 없다. 이왕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어서 뽑아든 장르오락물인데… 현실도피에 또다시 실패했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11. 5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수구의 현장 – <나라가 불탄다> 필화 사건 [경향신문 만화풍속사]

역사를 다루는 만화, 아니 모든 창작물의 앞에는 지뢰밭이 놓여있다. 그 지뢰의 이름은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이러한 장르에서는 허구의 창작과 역사적 사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가 되어버렸다. 확실히, 사람들은 픽션 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은근히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러한 패턴은 얼핏 볼 때는 결국 창작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좋고 훌륭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내막은 약간 더 노골적이다. 사람들은 실제와 다를 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든 아니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방식으로 묘사될 때” 싫어함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임나본부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감을 표명하면서도, 한민족이 아예 대륙 중국의 절반 쯤은 먹고 들어갔다는 식의 <천국의 신화>에 대해서는 ‘픽션이니까’라고 대범하게 넘어갈 줄 아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적인 모습인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한 역사(?)만화가 필화 사건에 휘말렸다. <나라가 불탄다>라는 작품인데, <멋진 남자 김태랑> 등 ‘근성과 노력으로 출세하고 성공하는 남자’ 시리즈로 수십년간 정상급 인기 만화가로 군림해온 모토미야 히로시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중반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당연히 만주국, 관동군 등 당시의 역사적 배경들이 중요하게 펼쳐지고 있다(물론 이번 작품 역시 성공의 길을 걷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런데 최근의 연재분에서 남경대학살이 소재로 다루어진 것이다. 일본군이 남경에서 양민을 대량 학살한 이 역사적 사건은, 일본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분적 기억상실의 대상이다. 그런 일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소위 우파라고 불리우며 일본이라는 시스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들. 단순한 신인작가가 아니라 충분한 고정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중견 인기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더욱 위기의식을 느끼며 발끈했으리라. 그리고 출판사에는 항의전화가 쇄도하고, 급기야 출판사는 ‘단행본에서는 수정하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했다가, 얼마 후 아예 연재중단 선언을 했다. 나라가 불타지는 않았지만, 지면은 필화 속에서 불타 없어져버린 셈이다.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교훈을 얻을 때까지 그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지금 현재보다 훨씬 좋았다고 생각하면서 의도적으로 다시 불러들여 오려는 세력이라면 어떨까. 애써 얻어낸 교훈마저도 부정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의 픽션을 역사로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괴이한 차선위반 역주행을 우리는 ‘수구’라고 부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다 건너 나라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김낙호·만화연구가·웹진 ‘두고보자’ 편집위원/

[경향신문 / 2004. 10. 22일자]

(* 주: 원출처는 경향신문 금요 만화 전문 섹션 ‘펀’의 칼럼인 <만화풍속사>입니다. 격주로 박인하 교수와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는 일종의 태그팀 같은 것이니 만큼, 같이 놓고 보면 더욱 재밌을 겁니다. 여기 올라오는 것은 신문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입니다… 별 차이 없지만;;)

 

— Copyleft 2004 by capcold. 이동자유/수정자유/영리불허 —

<순정만화>(강풀) 또 대박치다.

!@#… 박수. 간만에 이 동네에 좋은 소식이 나왔군…

“순정만화”, 일본에 최고가 수출

YTN 2004-11-09 17:04]

[이경아 기자]

온라인으로 연재돼 큰 인기를 모은 만화 ‘순정만화’가 사상 최고가에 일본에 수출됐습니다.

이 만화는 우리나라 단행본 만화로는 가장 높은 금액인 천 만엔에 일본 후타바샤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체결해 내년 단행본과 잡지로 일본 독자들에게 선보이게 됩니다.

여고생과 30대 직장인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이 만화는 일본 뿐 아니라 중국과 태국 등 아시아 출판사들과도 계약을 체결했으며 국내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미국 대선 투표조작설…

!@#… 조작설 (주의: 영어의 압박). 대충 요약하자면, 종이투표를 한 곳(즉 물증이 남아있는 곳)은 출구조사 결과와 최종결과가 일치. 하지만 종이 증거가 남지 않은, 전자투표만으로 이루어진 곳은 출구조사보다 항상 부시가 의외로 더 득표. 직접 인용하자면, “전자투표로 되어있는 투표구마다 한 5표씩만 더 나오도록 조작해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이 음모론의 진위여부가 4년내로 검증될 가능성은 어차피 없지만, 여튼 이전 어느때보다도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미국인들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나름대로 아아아주 약간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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